서울 이야기

길상사 [吉祥寺]와 법정[法頂] 스님

paxlee 2015. 3. 9. 07:09

길상사 [吉祥寺]와 법정[法頂] 스님

삼각산 길상사 일주문

길상사는 서울 성북구 성북2동 323번지에 있다. 성북동은 고급 주택지로 유명한 동네이다.

1997년 이 대법사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의 길상사가 되었다.

길상사의 전신은 우리나라 3대 요정(삼청각,대원각,청운각) 중의 하나였던 대원각이었다.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은 시인 백석과 자야(김영한)의 애틋한 러브스토리와

무소유의 참 진리가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녀는 몰락한 가정의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스스로 기생이 되어야 했던 여인이다.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은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가곡과 궁중무를 배운 미모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특히 잡지에 수필을 발표할 만큼 시와 글, 그림에 두각을 보였는데, 어느날 운명적으로

시인 백석을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감성이 장 통했고, 백석은 미모에 총명함과

아름다운 감성까지 지닌 진향을 자야(子夜)라 불렀다.


이렇게 그들의 운명적 사랑이 시작 되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백석은 만주로 떠나 버리고,

자야는 서울에 남아 기생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하루도 백석과

함께 하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자야는 성공해 당시 서울의 3대 요정이자 밀실정치의 중심으로

알려져 있던 대원각을 운영하는 거부가 되지만 정신적 만족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잡지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의 전 재산인

대지 7천여평과 건물 40여 동을 지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법정 스님은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주지 스님의

자리를 탐하지 않고 오로지 회주로서 묵묵히 살아왔기에 큰 재산의 시주는 용서할수 없었다.

하지만 8년간의 끈질긴 설득으로 1993년에 대원각은 요정에서 풍경과 법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찰로 바뀌게 되었다. 법정 스님은 김영한 님에게는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었다.

길상사의 길상은 법정 스님이 프랑스 파리에 불자모임 터을 만들면서도 길상사라고 이름 지을 만큼, 원래부터

좋고 상서로운 의미의 길상이라는 단어를 사랑했다. 그래서 김영한 님의 법명과 사찰을 길상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길상화 그녀는 1999년 11월 14일 84년간의 삶의 애환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길상헌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 출처 http://cafe.daum.net/inwon52/ESjd/1415?q=%B1%E6%BB%F3%BB%E7%C0%C7%20%BF%AA%BB%E7&re=1 -
 

7충 석탑은 길상사를 무주상보시한 길상화 보살님과 법정 스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길상사와

성북성당, 덕수교회가 함께 한 종교간 교류의 의미을 전하기 위해 무상으로 기증하였습니다.

기증일자 : 2012년 11월 11일

기증자 : 백성학 1940년 4월 18일 생 영안모자 회장

성모마리아 같은 느낌의 관음보살상

이 불상은 천주교 신도인 초종태 교수가 만든 성모마리아를 닮은 보살상은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담고 있다고도 한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보살상에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러 있어야 했다.

지장전 뒷 쪽에 있는 불상

['7층 석탑'과 '관음보살상', '야외 불상'이 길상사의 대표적인 석 조형물이다.]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다.

- 법정 스님 -

맑고 향기롭게 - 길상사[吉祥寺]

길상상 안내판

여기 침묵의 그늘에서 그대를 맑아라
이 부드러운 바람결에 그대 향기를 실으라
그대 아름다운 강물로 흐르라
오 그대 안 저 불멸의 달을 보라

보리수나무와 길상사 범종

길상사 입구 탐방객들

설법전[說法殿]

적묵당[寂默堂]

극락전[極樂殿]

극락전의 앞 뜰의 동자승과 석등

법정스님의 진영각[眞影閣]

진영각[眞影閣]-법정스님의 유물과 소품이 전시된 공간

 

법정

법정(法頂, 속명(본명) 박재철(朴在喆), 1932년 11월 5일(음력 10월 8일) ~ 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이자 수필가이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수십 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해 왔다.

1932년 11월 5일(음력 10월 8일)에 전라남도 해남군 우수영(문내면)에서 태어나 우수영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 6년제 였던 목포상업중학교에 진학했고 이후 전남대 상대에 입학하여 3년을 수료하였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때인 1954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3월에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년 4월에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70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지냈다. 2010년 3월 11일에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입적(入寂)하였다. 기일은 불교식 전통에 따라 매년 음력 1월 26일로 지낸다.

진영각 앞 뜰에 피는 모란의 새싹

길산선원 스님들의 숙소

 

지장전[地藏殿]

지장전 2층은 불교 도서관이다.

지장전 앞 작은 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