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아내에게선 산(山) 냄새가 난다.'

paxlee 2016. 8. 16. 08:11



['히말라야 은인' 만난 곽정혜씨]

2006년 하산 도중 조난당해 박재우·최인수씨가 발견해 구조

등정 꿈 포기한 선배들 덕에 얻은 '두 번째 삶'
"선배들 명예 위해 기록 남기고파"  '선택-스물여섯 청춘의 에베레스트' 책 출판.


곽씨의 2006년 에베레스트 등반 모습.
곽씨의 2006년 에베레스트 등반 모습.


2006년 5월 18일 밤 9시 20분쯤 에베레스트 8000m 고지. 스물여섯 살이던 여성 산악인 곽정혜씨는 죽어가고 있었다. 155㎝, 48㎏의 작은 몸으로 8848m 높이의 세계 최고봉 정상을 밟은 지 9시간 반 만에 일어난 사고 때문이었다. 산소통의 산소가 바닥나는 순간부터 혼미한 상태로 내려오다 균형을 잃고 넘어진 것이다. 100m쯤 미끄러지다가 멈추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그녀는 곧 의식을 잃었다.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히말라야의 신이 도왔을까. 창학 100주년 기념 중동고 원정대의 정상 공격조가 마침 사우스콜 캠프(7925m)에서 정상으로 향하다가 쓰러진 곽씨를 발견했다. 베이스캠프에서 안면을 튼 상태였지만 대원들은 잠시 갈등했다. 8848m를 다시 오르기도 어렵지만 2년의 준비 기간과 두 달 안팎의 원정 기간, 엄청난 비용을 날리면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박재우(당시 33세)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참가했고 최인수(37세)씨는 아내에게 숨긴 채 무급 휴가로 왔기에 다른 원정 대원을 위해 자신의 등정을 포기한다는 게 쉬운 결정일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선택했다. "산은 그대로 있지만 곽정혜씨는 우리가 지금 지나친다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들은 곽씨를 사우스콜 캠프로 옮겼고 의식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에는 5400m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다. 로프에 묶인 채 천길 벼랑 같은 설벽을 내려서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크레바스를 건너는 위태로운 구조였다.

산악인 박재우·최인수씨는 “10년 전 에베레스트에서 조난당한 곽정혜씨를 구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자 인연이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곽씨, 곽씨의 딸, 박재우·최인수씨.
산악인 박재우·최인수씨는 “10년 전 에베레스트에서 조난당한 곽정혜씨를 구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자 인연이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곽씨, 곽씨의 딸, 박재우·최인수씨.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귀국 후에는 심한 동상으로 왼 손가락 모두와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잃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곽씨는 "이렇게 살아 뭐하나 하는 번민의 시간이 길었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을 앗아간 산은 다시 그녀에게 힘을 북돋아주었다.

손가락 상처가 아문 뒤 여행사와 등산잡지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손가락이 없는 아내의 왼손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자랑하는 남편까지 얻었다.

지난 11일 만난 곽씨 품에는 다섯 살배기 딸 봄이가 안겨 있었다. 10년 전 사건을 회고한 '선택-스물여섯 청춘의 에베레스트'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사우스콜에서 그녀를 구조했던 최인수, 박재우씨를 포함한 중동고 에베레스트 원정대원들과 많은 산악인이 인사를 건넸다.

곽씨는 "등정의 오랜 꿈을 버리고 저를 구해주신 선배님들의 명예를 위해 기록을 남겼다"고 말했다. "누가 '아줌마 손이 왜 그래요?' 물을 때마다 '울 엄 마 산에서 꽈당 넘어지면서 손을 다쳤어요. 그 산 이름이 에베레스트예요' 라고 대신 대답하는 딸에게도 엄마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고요."

그녀는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에베레스트를 오를 것"이라며 "산에 대해서만큼은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라고 덧붙였다. 남편 이영준(40)씨는 책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아내에게선 산(山) 냄새가 난다.'

한필석 월간산 편집장 : 2016.08.16.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