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여행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31]

paxlee 2019. 11. 28. 23:19

 

生(생)이 보일때까지 걷기 [28-3]|

 

< 2004년 5월 13일 / 카혼고개, 15번 주간고속도로 : 켈리포니아 >


정오의 폭염을 피하기 위해서 나는 해뜨기전에 출발해서 한 시간째 걷는 중이다. 오늘 일찍 출발한 목적은 15번 주간고속도로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였다. 독일에서는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지난 3주간 트레일을 걸으며 체력 유지를 위해 오로지 고열량의` 기름진 음식을 배에 채우는 욕구 뿐이었다. 정오까지 아직 15km를 더 걸어야 한다. 마침내 15번 주간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PCT는 고속도로 아래 뚫린 굴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600m전방후게소에 있었다. 땀과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쓴체 에어컨이 켜진 패스트 푸드점에 들어 섰을 때는 정오가 지난 시간이었다.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스루하이커들이 보였다. "여, 저먼 투어리스트 씨! 트레일 위에서 걸어야지 그렇게 기어 다녀서야 되겠어?" 팩맨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럼 일단 가서 씻고 오죠." 그렇게 말하고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꿀뚝에서 막 기어나온 꿀뚝 청소부 모습 이었다.


나는 캠핑용 냄비와 물팩에 물을 체운 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양말을 벗고 양변기 위에 다리를 올려 냄비의 물을 다리에 부었다. 그렇게 15분간 씻고나니 내 모습이 보였다. 화장실 휴지로 타일 바닥의 물기를 닦았다. 그때 스루하이커의 농담이 생각났다. "스루하이커와 노숙자, 이 둘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바로 고어택스이야!" 2분 뒤, 네비게이터 옆에 의자에 털석 주져 앉아, 쟁반에 쌓인 쓰레기를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열량을 얻으려면 특별할인 중인 소시지 맥머핀 세트가 두개가 최고에요. 900칼로리가 단돈 2달려 50센트 거든요." 팩맨이 끼어 들었다. "안타갑게도 지금은 아니에요. 소세지 맥머핀은 아침식사 메뉴 이거든요. 발써 12시 반이 예요?" :아침식사로 900칼로리를 섭취한 열량만해도 3000칼로리는 될 걸요. 소세지 멕머핀 2개, 밀크세이크 2잔, 치즈버거 2개, 그리고 감자 튀김 하나.." 내가 메뉴판을 살피고 있을때, 프리티 레그가 나를 툭치며 놀려됐다. "이봐, 저먼 투어리스트 난 이제껏 맥도널드에서 자네처럼 메뉴판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본적이 없네."  "평소에는 패스트 푸드점에 가지 않아서 그래요."  그는 화제를 바꾸어 "자네도 내가 오늘 트레일을 떠난다는 걸 알고 있지?"  "예, 사람들에게 들었어요." 


 "내게는 PCT 완주가 무리인것 같아. 더운것도 힘든데 이제 정강이에서 통증까지 느껴 지거든, 다리가 아파서 견딜수 없을 정도야. 아내도 혼자서 집을 지키기 싫은 모양이고, 그래도 그간 트레일에서 보낸 시간은 즐거웠네,, 자네 덕분에 트레일 별명까지 얻었고 말이야. "그럼 이제 별명 때문에 저한테 화난것도 풀었나요?"  "화라니, 당치 않는 소리, 오히려 그 반댈세, 아내에게 전화로 그 이야기를 들려 줬드니 숨이 넘어가게 웃더구먼, 지금은 그런 별명을 얻은게 뿌듯할 뿐이야. 사족은 이만 해두고, 감사의 표시로 오늘 점심은 내가 사겠네!" 그 말에 미소를 짓고, 치킨 너깃과 감자 튀김 라지 사이즈 하나, 후식으로 딸기 셰이크와 애플파이를 골랐다. "그것 갖고는 어림없을 텐데" 그는 덥수룩한 수염에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깨끗한 음식점 안에 앉아있는 스루하이커들은 다른 별에서 온 사람 같았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스루하이커 무리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 났다. "프리티 레그, 당신의 그 멋진 각선미가 그리울거에요."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누며 그를 한번 껴 안았다. "행운이 있기를 바라네, 저먼 투어리스트, 나는 이제 다시 칼로 돌아가야 하지만 말이야."  PCT는 앞으로도 내게 수없이 새 친구를 선물 했다가 도로 빼앗아 갈 것이다. 칼이 그랫듯이.....


< 2004년 5월 20일~23일 / 아구아 둘세와 그린벨리 : 캘리포니아 >


"어서 오십시오, 오아시스 입니다."  세븐업 캔을 손에 든 내비게이트가 활짝 웃으며 나를 맞았다. 챙이 넓은 베이지색 햇빛차단 모자를 쓰고 버드넛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밤 아구아 둘세(Agua Dulce) 에 사는 트레일 엔젤, 소플리스 부부의 집에서 묵은 덕분 이었다. '오아시스'란 모하비 사막의 식수 보급소를 가리킨다. 내가 쏜살같이 아이스 박스로 달려드는 사이에 내비게이트와 버드녓은 접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스 박스 뚜껑을 열자 기분 좋은 냉기가 확 펴져 올랐다. 얼음 조각 사이에 탄산음료 켄이 잔뜩 들어있고 맥주 켄도 몇개 보였다. 나는 얼음같은  스프라이트 하나를 집어 단숨에 절반을 비웠다. "와, 이게 왠 호강이야." "이 식수 보급소는 앤더슨 가족이 지원하는 곳이에요. 새 얼음과 음료를 체워 놓고간지 얼마 안된 모양이에요: 내비게이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개의 음료수를 마시고 세븐업 하나 더 꺼냈다. 그늘에서도 기온은

30도에 이르고 있었다.


"소플리스 가족의 집에서 방금 호강하고 왔는데 또 호강이네요" 다나와 제프 소플리스는 PCT전체를 통털어 가장 유명한 트레일 엔젤 이었다 '하이커의 천국'이라 불리는 이들 두 사람은 아구아 둘세라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작은 마을에 커다란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데, 저택 입구에는 세탁기, 인터넷이 되는 PC, 자동차 사용규칙을 명시해 둔 안내판까지 있었다. 자동차를 빌려 켈리포니아의 '레이'라는 아웃도어 전문점에 다녀 오거나 장을 보는데 이용하게 해 주었다. 이곳에서 묵은지 3일째 되던날, 다나는 내게 2인실을 비우고 정원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 달라고 부탁 했다. 떠날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신호였다. 그날 저택에 묵고 있는 스루하이커가 49명 이엇으니, 재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35km 하루만 더 걸으면 도달하는 지점에 또 다른 트레일 엔젤이 있다. 테리와 조엔 부부가 그들이다. 얀더슨 부부는 근방에 다섯 군데의 식수 보급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카사데 루나(Casa de Luna)라 불리는 거처를 마련해 주고 도보 여행자 들에게 음식과 숙소를 제공했다.


'달의 집'이라는 뜻의 이 숙소 이름은 여행자 들에게도 매우 뭉클하게 와 닿았는데, 그 이유는 멕시코 국경에서 앤더슨 저택까지 오는데 보통 한달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광란의 라운지'라는이곳에서는 온갖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수 있었다. 네비게이트가 "소플리스 저택이 스루하이커 들에게 일종의 미국식 기업이라면, 앤더슨 부부의 집은 히피 여행자들의 일일 탁아소 같은 곳이지" 그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늘에서 꽤 오랜 시간 휴식을 취한 뒤 무자비한 태양의 열기 한 가운데로 나오자 몸의 리듬이 돌아오는 데만도 몇분이 걸렸다. 우리는 저녁시간 조금 넘어 앤더슨 부부의 집에 도착했다. 앤드슨은 한손에 맥주를 다른 한손에 담배를 든체 우리를 맞았다. "카사 데 루나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히피 치구들!"그의 아내 테리는 우리에개 종이 접시를 가져다 주며 눈짓으로 샐러드를 가리켰다. "마음껏 들어요!"  우리는 체면을 거두고 접시 가득 음식을 담았다. 그리고 어디서 주워온 것처럼 낡아빠진 소파위에 앉아있는 다른 스루하이커들 사이에 비집고 앉았다. 이후에 팩맨과 와이즈 플라워, 버넛, 마지막으로 비세스(Vicius)라는 별명을 가진 스루하이커가 줄줄이 나타나는 바람에 모임은 금세 파티 분위기가 되었다.


 비세스가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독일인 관광객에게 'mooning'이라는 표현을 설명할 때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능청맞게 웃으며 일어 서드니 우리앞에 등을 보이고 서서 순식간에 바지를 내리고 허연 엉덩이를 들이 밀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mooning'이 '볼기짝을 내 보이는 행위'를 뜻하며 사회에 공개적으로 자행하는 미국식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파티는 '하이커의 자정'이라 불리는 저녁 9시에 끝났다. 해가 뜨기 전에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니 해가 진 뒤에는 늦게까지 버티지 못한다. 조 앤더슨은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아침 9시가 조금 넘어면 맥주를 마실수 있지." 우리는 한바탕 웃고, 정원으로 나가 텐트를 쳤다. 그리고 곧 잠에 빠졌다. 이튼날 아침 새벽 5시에 눈을 떳다. "좋은 아침이에요.저먼 투어리스트 씨! 10분 후에 아침 식사가 시작 될거에요." "메뉴는 뭔가요?"  팬 케이크와 와풀이요. 그런데 테리가 식사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가봐요. 배고픈 중생들에게 참고 기다려 달라는 군요."  잠시 후 주방에 들어서자 갖내린 커피의 향긋한 냄새가 나를 맞아 줬다. 주방의 환경은 볼 만 했다. 테리 핸드슨은 분홍색 목욕가운을 걸치고 조리대 앞에서 분주히 팬 케이크를 뒤집는 중이었다. 그는 입술 사이에 뭉개뭉개 내 뿜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머리칼에는 롤 몇개가 말려 있었고, 발에는 분홍색 털실 슬리퍼를 꿰어차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그녀가 "좋은 아침 이에요. 친구들!" 인사를 건냈다.


PCT의 트레일 엔젤들은 스루하이커들 만큼이나 각양각색 이었다. 앤드슨 부부는 그중 '투박하지만 정이 넘치는 부류의 전형이었다. 정말이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이었다. 아홉명의 배고픈 스루하이커들은 팬 케이크와 와플 몇개가 익기가 무섭게 먹어 치웠다. 테리는 계속 조리대 앞에서 요리에 열중했다. 무료로 먹고 자는 그곳은 그들 개인의 사비로 제공하기 때문에 떠날때 모두들 약간의 돈을 내고 떠난다.


< 2004년 5월 23일 ~ 6월 3일>


모헤비 사막은 영상 40도를 넘는 열기가 숨통을 짓누르는 날도 허다했다. 모하비 사막 곳곳에 있는 다리는 시간이 흐를 수록 노숙자 보호소처럼 변했다. 발포메트를 깔고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사막에도 사유지가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PCT 여행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철조망 울타리는 돌아가야 한다. 모노 호수 물을 도심까지 끌어오기 위해 건설된 켈리포니아 수로를 따라 걷기도 했다. 테하자피 산 정상을 오르는 길에 80kg이 넘는 체중과 무거운 배낭을 매고 가는데 기온은 떨어지고 바람을 피해 모자와 장갑, 따뜻한 자켓으로 무장하고 떨면서 휴식을 취했다. 모하비 사막은 스루하이커들을 혹독한 시험에 들게 하며 낙오자를 길러내는 곳이었다. 프리티 레그와 같이 중도에 몇 명이 벌써 포기 했지만, 난 포기 할수가 없었다. 운동에 문외한이 나는 그래도 처음에 근육통이 조금 있었지만, 몇 일이 지나자 좋아졌다. 하루 평균 33km를 걸으며 지금까지 별탈이 없다. 걷다보니 반드시 케나다 국경까지 완주 하리라는 결심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 2004년 6월 3일, 케네디 메도스 야영지 : 켈리포니아 >


케네디 메도스(Kennedy Meadows)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으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나는 이제부터 3주간 우리는 해발 4,000m에 이르는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종단할 것이다 6월이라고 해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종단하는일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강설량이 많은 해에는 겨울이 지나고 6월이 되어도 시에라 네바다 산맥 곳곳에 눈이 쌓여 있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눈이 많이 내린 해에는 트레일을 원활히 종주하기 어려웠다.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가는 일정이 늦어져 겨울이 오기전에 케나다 국경에 도착할 수 없게 된다. 대안으로 교통편을 이용해 시에라 네바다 산맥 구간을 일단 지나친 다음 되돌아와 이 구간을 걸어서 완주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광활한 영토에 대중교통이 많지않은 미국에서는 이동수단을 찾는 일 자체가 커다란 난관이다. 다행히 나는 운이 좋았다. 적설량이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해였다. 그래서 겨울이 체끝나기도 전에 적설량이 평군 이하로 내려가 있었고, 뒤늦게 폭설이 내리는 최악의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다.


6월은 흑곰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였다. 이때 곰들은 무척이나 배고픈 상태일뿐더러, 이 처럼 이른 시기에는 야생에서 먹잇감을 충분히 구할수도 없다. 그러니 곰들이 배낭에 식량을 가득 채우고 다니며 혼자 텐트에서 자는 스루하이커를 노리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모든 공식 야영지에는 곰이 열수없는 쓰레기통과 식량 보관박스가 구비되어 있고, 도보 여행자들도 의무적으로 곰통을 소지해야 하였다. 사막에서 고산지대로 들어서면서 눈과 곰 문제에 맞닥뜨린 스루하이커들은 장비 역시 새로운 환경에 맞춰 재정비해야 했다. 케네디 메도스 야영지는 수십년 전부터 장비를 점검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혔다.

그리고 이곳에는 스루하이커에게 필요한 편의시설이 모두 겆춰져 있었다. 텐트 칠 자리는 기본이고, 작지만 알찬 잡화점과 사워시설, 세탁기, 빨랫줄, 공중전화, 무엇보다도 식량이 구비되어 있었다. 상점 주인은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소포를 수령해주거나 다른 곳으로 다시 부쳐주기도 했다. 거의 모든 스루하이커가 바운스박스나 추가 보급품을 이곳으로 배송시켜 두고 꿀맛같은 제로 데이를 즐겼다. 특히 6월 초의 케네디 메도스는 스루하이커들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잡화점에 딸린 세탁실에서 스프라이트와 구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새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허리 아래로는 텐트 깔개만 대충 감은 차림새였다. 깉고 덥수룩한 수염과 팔꿈치 아래부터 구릿빛으로 탄 팔이 치즈처럼 히멀건 몸통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벅30은 콜라를 들이켜다가 그 광경을 보고는 사래가 들려 캑캑거렸다. "거, 「블루스 브라더스」(The Blues Brothers:미국 코메디 영화)라도 찍는 거요?"  "아무려면요. 우린 늘 최신 유행하는 스루하이커 패션을 고집하죠"  스프라이트가 능청스레 대답하며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오늘 같은 날에는 몇 벌 안되는 옷을 죄다 빨아야 하기 때문이다. 짐을 초경량으로 유지해야 하는 도보 여행자에게 갈아입을 옷은 사치였다. 그래서 빨래하는 동안에는 우비를 입거나 스프라이트와 고트처럼 텐트 깔개로 몸을 휘감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쯧쯧, 그렇게 형편없는 것도 패션이라고."  옆 탁자에서 누군가 비웃는 소리가 들려, 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쪽으로 향했다. 그속에는 팩맨이  앞의 두 사람 못지않게 우스꽝스러운 몰골로 앉아 있었다. 속이 살짝 비치는 모기방지 그물이 키 190㎝는 됨 직한 거인이 털투성이 머리통에 씌워져 있었다.


우리는 한달 반의 여정 끝에 드디어 사막을 벗어난 것이 기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다음 관문인 시에라네바다는 PCT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에너지와 희열이 샘솟았다. 동시에우리는 눈 덮인 고갯길을 수없이 기어 오르고, 만년설이 쌓인 광대한 설원을 가로지르고, 거센 물살을 헤치고 강을 건널 일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굶주린 갈색곰 수백 마리가 산맥 곳곳에 숨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수백만 마리의 모기가 온 몸을 찔러댈 것이다. 스루하이커들에게 시에라네바다는가장 혹독한 실험대였다. 이곳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케나다 국경까지 갈 확률이 거의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사워를 하고, 옷을 빨아 널고, 장비를 정리해 버릴것은 버리고, 필요한 경우 보수하거나 교환 하기도 했으며, 바운드박스에서 필요한 물건만 꺼낸 뒤 재발송할 수 있도록 다시 포장했다. 또 서류를 점검하고, 식량을 얼마나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하고, 선크림과 모기약 통을 채우고 손발톱을 깎는 등, 할 일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곰통에 6일 동안 먹을 식량을 구겨 놓었다. 공간을 민큼없이 활용하기 위해 1.5kg짜리 MNM 초콜릿을 구입해 뜯은 뒤 곰통의 빈틈에 쏟아 부었다.


"저먼 투어리스트 씨, 물 팩에 연결하는 호스를 하나 더 준비하는 게 어때요? 하나는 물 팩에, 하나는 곰통에 연결해서 엠엔엠즈를 빨아 먹게 말이에요."  내 모습을 지켜보던 팩맨이 놀리듯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대구를 않은체 곰통의 뚜껑을 닫았다. "그런데 눈이 이 정도 녹은 상태라면 정말 고개를 넘는데 문제가 없을까요?"  "정상까지 올라가기만 하면 문제없을 거예요. 내려갈 때는 엉덩이를 대고 미그러져 내려가면 그만이니까"  "굴러서두(glissade)를 하란 말인가요? 그건 썰매없이 썰매를 타는 거나 마찬기진데,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내 대꾸에 벅30이 되물었다. "뭐가 위험하다는 거죠?"  "그거야 통제가 불가능 할 정도로 속도가 빨라지면 멈추거나 뱡향을 조절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럴때는 얼음도끼나 등산스틱을 이용하면 돼요.그냥 엉덩이를 대고 편한 자세로 앉아 있으면 그만인데요. 뭘,"  "글쎄요, 그러다 바지라도 찟어지면 어떻게 해요?" 

나의 대꾸에 벅30의 명언이 튀어 나왔다. "에이, 간단해요. 엉덩이에 강력 접착테이프를 붙이고 돌격 앞으로!"  팩맨과 와일드 플라워와 함께 그 광경을 상상하다가 그만 큰 소리로 웃음 터뜨렸다.


< 2004년 6월 7일, 휘트니 산 : 캘리포니아 >


제기랄!"  "내 양말이 꽁꽁 얼어 버렸어요."  "하느님 맙소사!"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신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 몇 번이나 개울을 건너는 바람에 속옷까지 푹 젓어버린 신발이 얼음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아이고, 거기다 발을 집어 넣으려면 고생께나 하겠구먼,"  사우스포가 짓궂게 한마디 전졌다. 우리는 해발 3,100m의 크랩트리 메도스에서 야영을 한 뒤였다. "우린 꽁꽁 언 물병을 녹일 참이오, 여기도 얼 만한 건 죄다 얼어 버렸거든,"  팩맨의 소리가 들렸다.  "시작부터 영 좋지 못하네요."  "이봐요, 저먼 투어리스트 씨, 이제 일어나서 몸 좀 푸시죠. 같이 안갈 거예요?" 사우스포가 나를 닥달했다. 해발 4,421m에 이르는 휘트니(Whitney)산에 오르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휘트니 산은 알래스카를 제외하면 미국 전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PCT가 이 산을 직접 지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크랩트리 메도스에서 하루 짬을 내어 등산하기로 한 참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열한명의 스루하이커는 오늘 무리를 지어 산에 오를 계획이다. 나는 마지못해 따뜻한 침낭에서 빠져나와 짐을 챙기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여행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유쾌한 기분 덕분에 그리 만만치 않은 산길도 웃으며 오를 수 있었다. 계곡을 건너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 무릎까지 빠져 버렸다. 호수를 지나며 호수가에서 물을 채우고 간식을 먹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때 와일드 플라워가 말없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드니 호수를 향해 눈짓을 했다. 30m쯤 떨어진 곳에 마멋 한마리가 우리를 엿보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관찰할 뿐이었다. 세 시간이 지나고 해발 1,000m를 더 올라가서야 목적지에 다다른 우리는 한사람씩 차례로 휘트니 산 정상을 밟았다. 기온은 영상 8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오의 타오르는 태양이 머리 위를 내리쬐고 있었다. 정상에서 보는 경치는 압도적 이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거댜한 기암괴석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바위틈에 앉아 점심 휴식을 취했다. 정상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정상의 한쪽 돌벽뒤에 위치한 '열린 화장실'을 이용 했는데, 그처럼 숨 막히는 장관을 감상하며 생리현상을 해결한  것은 내 평생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