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여행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32]

paxlee 2019. 11. 29. 09:09

 

生(생)이 보일때까지 걷기 [28-4]


< 2004년 6월 8일, 포레스터 고개 : 캘리포니아 >


신발과 양말과 바지는 이미 흠뻑 젖어 버렸고 티셔츠도 땀에 절어 있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으로 들어가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팻의 상황은 더 안 좋았다. 작은 체구 때문에 허리까지 눈속에 빠져 있었는데, 등산스틱을 허공에 휘져으며 겨우 구덩이에서 헤어 나오는 중이었다. 손으로 눈 위쪽을 짚어 지탱하려 하자 도리어 그의 몸은 눈 속으로 푹 들어가 버렸다. 물개처럼 기어서 눈구덩이로부터 빠져 나오기는 했는데, 몇 미터 못가서 그는 또 다른 구덩이에 갇혀 버렸다. 나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우리는 기진맥진해서 움직임을 멈추고, 서로 마주보게 되었다. 우스꽝스러운 몰골을 본 우리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스루하이카들은 '말뚝 박기(Postholing)'라 불렀다. 햇볕의 열기를 받아 부드러워진 눈층의 윗부분은 사람의 체중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눈층이 무너지면 몸은 두꺼운 눈 더미에 말뚝처럼 박히고 발은 바닥에 흐르는 눈 녹은 물에 빠져 버린다. 포레스터 고개까지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고, 눈은 여전히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나는 눈길에서 벗어난 팻을 향해 외쳤다. "더 이상 못 가겠어요, 여기서 점심 먹고 가요?"  귀가 어두운 팻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걸어갔다. 다행히 뒤 따라오던 사우스포와 그의 동료 나우오어네버는 내 상태를 파악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커다란 화강암 바위 쪽으로 향했다. 햇볕이 따뜻하게 데워진 바위에 앉아 젖은 양말과 신발을 벗은 뒤 쭈글쭈글해진 발을 말렸다.


우리는 눈 앞의 절벽을 응시했다. 그 위쪽 어딘가에 고갯길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사우스포가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오기 전에 사진을 봤는데 고갯길은 아마 저쪽 절벽 사이, 작게 V자로 파인 곳에 있을 겁니다. 우리는 광대한 풍경에 압도된 체 수백 미터 높이로 치솟은 절벽의 틈새를 올려다 봤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틈새였다.

"오늘 내가 저기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하산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러나 우리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늘 저녁부터는 저기압 지대가 지난 며칠간 지속된 맑은 날씨를 몰아내고 최소 48시간 동안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머물 것이다. 이제 휘트니 산에서 만난 당일치기 등산가가 전해준 일기예보였다. 눈 폭풍이 몰아칠지도 모르는 상황에 고갯길을 넘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 오늘  고개를 넘지 못하면 최소 이틀간은 이곳에 발이 묶이게 되는데, 그러면 가진 식량이 충분치 못한 상황이었다. "저녁 9시까지 해가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서둘러 출발하는 편이 좋겠어요. 눈구덩이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될 테니,"  "맞아요. 늑장 부릴 시간이 없어요."  나도 동의하며 흠뻑 젖은 양말을 도로 신었다. 우리는 PCT에서 7주를 보낸 덕에 충분히 단련되어 있지만, 나우오이네비는 벌써 기력이 거의 소진 된 것 같다. "일어나세요. 우리가 함께 있잖아요."  오후 4시 정도 되자 우리는 거의 고갯길에 다다랐다.


그러나 정상을 목전에 둔 지점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난관이 우리를 가로 막았다. 문제는 길 전체를 눈이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경사가 매우 심할 뿐 아니라 양 옆은 수백 미터 높이의 까마득한 절벽이어서 실수로 한 발만 미끄러져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그러나 눈 속 깊이 남아 있는 발자국은 앞서간 여행자들이 이곳을 무사히 지나쳤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니 위장이 오그라들고 심장박동이 겹격히 빨라졌다. 동료들의 눈에 비친 두려움이 그들의 심정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누가 앞장 설레요?"  "내가 먼저 가지"  놀랍게도 나우오이네버가 앞으로 나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배낭에서 얼음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 도끼로 눈 쌓인 경사면을 내려 찍었다. 다음 발자국을 향해 신중하게 왼발을 대딛고 있었다. 같은 동작을 열번 정도 반복한 뒤, 마침내 그는 눈밭을 지나 단단한 땅을 딛는데 성공했다. 그는 "별것 아니구먼, 아래쪽만 쳐다보지 않으면 돼"  기왕 해야 하는 일 이라면 빨리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나는 두번째로 도전에 나섰다. 팀에서 얼음도끼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나 뿐이었다. 나는 등산 스틱으로 내 몸을 균형잡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아래를 내려다 보지 말자' 한발짝, 두발짝 "할수 있어!" 나우오어네버가 나를 향해 소리쳤지만, 그를 보지 않았다. 이제 1m만 더 가면 안전한 땅을 밟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는 어느새 돌바닥을 딛고 서 있었다. 건너편에서 사우오어네버가 "보기보다 쉬워요" 


이후 뜻밖의 상황은 장거리 도보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강한 신체뿐만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줬다. 체력이 약한 나우오어네버가 선두에서 길을 개척한 반면, 체력이 강한 소유자인 사우스포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해발 4,000m 지점에 서자 그의 가장 큰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바로 고소공포증 이었다. "별것 아니라고, 친구, 나도 중간에 돌아갈 뻔 했지만, 결국 무사히 건너지 않았나" 그를 진정시키려고 말을 건냈다. 사우스포는 공포가 짓누르는 듯 물러섰다. "아무래도 나는 못할 것 같아요."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순전히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예요. 내가 배낭을 들어 줄까요? 짐이 없으면 건너기가 조금 수월할 텐데,"  그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공포에 질려있었다. 이 길이 아니면 내려가는 길은 없다. 나우오어네버가 재차 나섰다. "이봐, 사우스포, 정말 보기와는 다르다니까, 내 목소리에만 집중하고 아래쪽은 바라보지 말게, 자. 이제 바로 앞에 나 있는 발자국에 오른발을 맞춰봐"  그가 체면을 걸듯 말하자 사우스포는 마지못해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다음엔 얼음 도끼를 경사면에 찍어 넣고"  "이제 왼발을 옮겨" 사우스포가 위험구간을 한 걸음씩 건너는 동안 차분히 지시를 내리며 그를 이끌었다.


"이제 금방 끝날 거야"  사우스포는 지시에 따라 한발 한발 옮겨왔다. 나우오어네버는 기특하다는 듯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잘해 냈네, 친구!"  "에이, 됐어요"  사우스포는 그제야 소동을 일으킨 게 민망했는지 황망하게 한마디를 내 뱉고는 펫에게 주의를 돌리려 했다. "이제 당신만 건너면 끝이네요."  팻은 귀가 어두워 말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도끼를 들고 눈밭으로 들어섰다. "이봐요, 내 사진 찍어두는 것 잊지 말아요"  그녀가 중간 지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하는 그를 보며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그는 두 팔을 하늘 높이 지켜들고는 얼음도끼를 든체 손까지 흔들었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서있는 팻을 보니 오금이 다 저릴 지경이었다. "사진 찍었어요?"  팻이 그렇게 물었다. 그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두가 무사히 눈밭을 건넜지만, 사우스포가 "자 이제 서둘러야죠."  얼마 내려가자 눈이 없는 마지막 굽잇길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렇게 100m를 더 걸어서 포레스터 고개에 도착했다. PCT 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해발 4,002m 지점 이었다. 그곳에서 내려다 본 전경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동시에 두려움을 자아냈다. 북쪽 내리막길은 계곡 바닥까지 내려오니 눈이 덮여 있었다. 호수는 여전히 꽁꽁 얼어 붙어 있었다.   


아직 해가 떠 있는 네 시간 안에 안전한 야영지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한랭전선이 도달하기 전에 고산지대를 벗어나는 게 우리의 목적이었다. 다행히 해가 들지 않는 북쪽 산등성이의 눈밭은 한결 단단해 발이 빠지지 않았다. 서로 떨러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쉼없이 전진했다. 발밑에서 버석버석 밟히는 소리와 우리의 거친 숨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나우오우네버가 기력이 거의 한계에 다다른 모양인지 그의 안색이 흙빛이었다. "걸을 수 있겠어요? 조금 쉬었다 갈까요?" "괜찮네"

나우오어네버의 힘을 복돋우러 말했다. "나 때문에 자네들까지 지체되는 구먼, 그냥 자네들 먼저 가는게 좋을 것 같아, 난 혼자서도 갈 수 있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사우스포와 나는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내내 함께 걸었으니 끝까지 함께 가야죠. 조건이 좋다면야 각자 알아서 가도 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나빠요. 지금은 같이 헤쳐나갈 때라고요." 사우스포가 말했다. "군대에서 처럼 이곳에서는 아무도 동지를 져버리지 않거든요"  "혈당수치가 바닥일 테니 초코바라도 한 개 드세요. 그럼 좀 나아질 거예요."  내가 초코바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그는 극구 사양 하다가 안도의 표정으로 초코바를 받아 허겁지겁 초코바를 배어 물었다. "자네들은 정말 멋진 친구들이야" 사우스포가 말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아마 나는 아직 그곳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거에요." 그렇게 우리는 최고의 난 코스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 2004년 6월 9일, 인디펜던스 : 캘리포니아 >


우리는 오늘 식료품을 보충하기 위해 키어사지 고개 넘어에 있는 트레킹 공원 주차장으로 내려간 뒤 히치하이크를 하여 인디펜던스라는 소도시까지 가는 계획 이었다. "죄다 꽁꽁 얼어붙어 버렸네" 희색빛 하늘에서 주먹만한 눈송이가 소리없이 떨어지고 있다. 6월 중순에 12월의 풍경을 보게 되다니, 맥팬은 긴 내복 바지와 털모자 차림으로 내 텐트 앞에 서있고 아내 와일드는 그 곁에서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잘 잣어요?"  그녀가 물었다.  "추워서 한숨도 못 잤어요, 겨우 잠들 참이었는데, 댁의 남편 때문에 깨었어요."  여기서 어니언 벨리(Onion Vally) 트레킹공원 주차장까지의 거리는 20km 였다. 인디펜던스까지 가려면, 그곳에서 또 20km를 더 가야 한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지금까지 PCT를 걷는 동안 해결 되었잖아요."

주차장에 먼저 도착한 벅30 이 인디펜던스까지 타고갈 차편을 구할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머지 분들의 이동 문제도 해결 되었다. 호텔에 도착한 벅30이 체크인 한뒤 후미 여행자들을 데려와 달라고 호텔측에 부탁했다. 나우오인버와 내가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호텔 서틀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시간후 11명이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호텔 테라스에 모여 앉았다.그릴위에는 티본 스테이크와 햄버거 패티, 옥수수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벅30은 2리터짜리 콜라를 여러병 사왔고, 다른 사람은 맥주를 나는 아이스티를 마셨다. 다리를 높이 올린체 스테이크가 익기를 기다렸다. 해발 1,200m 저점에 있는 인디팬던스의 공기는 티셔츠 만 입고 있어도 될 만큼 온화했다. 해발 3,000m의 고산에서 눈을 맞으며 추위에 떨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우오어네버는 맥주 캔을 마시면서 내 곁에 와서 "저먼 투어리스트 씨, 내가 할말이 이소만"  "예, 하세요"  "내가 자신을 너무 광신했던 모양이네, 2년전에 AT 트레일을 완주 했으니 이번에는 사우스포와 PCT를 한 구간 만이라도 걷기로 한거야."  "잘 생각 하신거에요, 사우스포도 선생님과 함께 다녀서 정말 즐거운 모양 이던데요."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아니야 바보같은 생각 이었어, 나이 육십에 사무실에만 앉아있던 늙은이가 건강한 스루하이커들과 겨룰 수 있으리라 여기다니, 본론만 말 하자면 난 여기 인디펜던스에서 PCT를 중단할 생각이네."  화들짝 놀란 나는  "여기서 중단한다고요? 사우스포와 2주일 더 동행하면서 시에라네바다를 완주 하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는 손을 내 저었다. "그건 욕심일 뿐이야, 사우스포에게도 방해만 될거야, 그렇다고 혼자 걷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내일 곧바로 귀가 할 생각일세."


생각해 보니 나우오어네버의 말이 틀린것은 아니었다. 트레일 위에서 한달반을 보내는 동안 누구나 각자의 속도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다른 사람을 따라 잡거나 기다려 주기 위해서 자신의 탬포보다 빠르게, 혹은 느리게 걷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자기의 속도를 지키지 않은 사람들은 중도에 중단하는 사례가 많았다. 스루하이커들이 혼자 걷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 이었다. 낮 동안의 길을 혼자 가지만 야영지에서 만나곤 한다. 그러나 포레스터 고개처럼 위험한 구간이 있을 때만 예외였다. "내가 아우오어네버에게 "그 결정이 최선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선생님을 알게되어 기뻣어요. 함께 다니는 것도 정말 즐거웠고요." 아우오어네버가 미소를 지으며, "자네에게 줄 선물이 있어"  "선물 이라고요?"  "그래, 선물. 내가 원래는 사우스포와 함께 시에라네바다 구간을 완주 하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버밀리언 벨리 리조트로 식료품을 밀 보네 뒀지. 환송시켜 봤자 비용만 들거야. 그래서 고민해보니 자네가 공짜로 먹을 것을 얻으면 분명 기쁘할것 같았네. 그러니 내 보급품을 대신 가져가" 그가 일어서드니 호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장을 꺼내 들었다. "벌써 전화로 이야기 해뒀어, 맛 있는게 잔뜩 들어 있을 테니," 나는 말없이 종이를 받아들고 감사의 말을 건냈다. 나우오어네버는 내 어깨를 한번 툭 두드리드니 화제를 바꿨다. "스테이크가 다 익은것 같구먼, 밥이나 먹으러 가세. 벡 가죽이 등에 달라 붙을 지경이거든!"


1주일 뒤 버미리언 벨리 리조트에 도착해 엄청나게 큰 식료품 상자를 받아든 나는 지금쯤 나우오어네버가 어떻게 지낼까 생각 했다. 뉴욕의 집에서 종종 우리 스루하이커들을 떠올리고 있을 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소포를 열었다. 그 안에는 30개는 됨직한 에너지바와 냉동건조된 트레킹 식품, 유기농 식품점에서 구입한 시리얼이 들어 있었다. 모든것이 최상풍이었다. 이렇게 값비싼 식료품을 내 손으로 구입하는 일은 아마 영영 없을 것이다. 내가 먹지 않을 음식을 동료들에게도 나누어 줬다. 뜻밖의 선물은 나를 상념에 잠기게 만들었다. 나우오어네버의 중도 하차로 인해 트레일 공동체의 신뢰성과 수루하이커의 냉혹한 속성을 확인할수 있었다. 트레일 공동체는 정이 넘칠뿐 아니라 비상시에는 여행자들은 하나로 엮어주기도 하지만, 스루하이커들은 목표달성을 성공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 2004년 6월 23일. 투올러미 메도스 야영지 : 캘리포니아 >


우리는 투올러미 메도스 야영지에서 휴식을 취했다. 시슬러 B는 PCT에서 보기 드문 유형의 여행자였다. 미국의 장거리 트레일 에는 보편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의 수가 훨신 적었고, 그나마 여성 스루하이커들은 남편이나 연인과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170㎝의 마른 체형의 소유자인 그녀는 갈색으로 그을린 몸에 헐렁하게 걸친 아웃도어 복이나 중성적으로 짧게 자른 머리칼 때문에 개구장이 남자애 처럼 보였다. 그녀도 펫처럼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그와 달리 보청기를 착용해서 대화가 수월했다. "실제로 곰을 본적이 있어"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뇨, 하지만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많이 들어 봤죠"  그녀에게 팻이 겪은 일을 들려줬다. 팻이 그날은 날씨가 좋아서 텐트를 치지 않고 곰통은 멀리두고 배낭을 배고 자는데 한 밤중에 곰이 나타나서 배낭을 꺼집어 낸후 달아났다. 밤이라 어두워 날이 밝은 후 찾아 나섰다. 다행히 배난만 조금 찢겼을 뿐 모든 물건은 되찾았다고 한다.시슬리 B는  "곰들이 식량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문제에요."  "그래도 여기는 저런 보관함이 있으니 안전 하겠지"  "곰통이 없는 날이 오면 춤이라도 출것 같아요. 부피도 큰 데다 무게도 1.2kg이니 힘들어요"  "의자 대용으로 쓰면서 1주일만 더 고생하면 곰 출몰지역에서 벗어나니 곰통은 집에 보내도 돼."  우리는 생각에 잠긴체 주위를 둘러 보았다. 30여명의 스루하이커들이 투올러미 메도스 야영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모두가 오리털 침낭을 바람이 잘 통하는 볕에 널어 말리는 중이었다. 그때 시슬리 B가 웃우면서 말했다. "그런데 말이지, 난 최근에 곰보다 훨씬 재미있는 구경을 했지 뭐야"  "뭔 데요,"  호기심에 그녀에게 물었다. "엇그제가 바로 알몸 걷기의 날 었잖아...."  나는 그녀의 은근한 속삭임에 궁금증이 동했다.


미국의 장거리 트레일에는 하짓날 도보 여행자가들이 알몸으로 트레일을 걷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말만 전통일 뿐 엇그제 난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여행자를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그날 내가 만난 여행자는 네명 뿐이었다. "트레일을 따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거야, 뒷사람이 나를 앞서 갈수있도록 한 옆으로 조금 비켜섰지. 그런데 뜻 밖에도 스프라이트와 고트가 벌거벗은 체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 오는게 아니겠어?"  그기서 시슬리 B가 뜸을 들이드니 "두 사람은 나를 발견하기 무섭게 덤불로 숨어 들드니 아주 멀찍멀찍이 돌아서 가더라고, 자기들도 창피했던 모양이지, 맙소사! 어짜피 내 손자뻘 밖에 안되는 녀석들이 말이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 가여운 녀석들 같으니, 저러다 살갗이 터서 물집이라도 잡히면 어쩌려고...."  "오늘은 내가 한턱 쏘지"  한껏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작은 위스키 병 두개를 꺼내어 의기 양양하게 치켜 들었다. "남편이 보낸 특별 선물이야, 나름 좋은 유리병 두개씩이나 짊어지고 걸어 다닐수는 없잖아, 그러니 오늘 내로 반드시 비워야 한다. "그럼 기꺼이 도와 드리죠"  싱글거리며 나도 일어섰다. "부상은 좀 어때요? 제가 도와 드릴건 없나요?"  1주일 전 그녀는 뮤어고개 바로 위쪽 산장에서 묶고 이튿날 아침 곧장 하산하면서 그녀도 엉덩이를 대고 앉은체 글리사드를 하며 산을 내려 왔다. 꽤나 재미있어 몇번 시도 하였다. 이른 아침에 고개 북쪽 산등성이에 쌓인 눈이 꽁꽁얼어 붙은 곳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던 중 얼어붙은 눈 속 얼음 덩이에 엉덩이를 찟기고 말았다. 눈위에 핏자국이 조금 묻을 정도였다고 했다. 은밀한 부위의 상처를 혼자 치료 할수가 없어서 여성 스루하이커에게 반창고를 갈아 붙여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래서 쉴때도 그녀는 앉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아니, 이제 많이 나아졌어, 조심만 하면 앉을수 있을 정도야, 바지도 남편이 새로 사서 보내줬고, 그럼 나중에 한잔 하자고"  그녀는 명랑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해가 진 후에 나는 약속대로 시슬리 B를 찾아갔다. 우리는 작은 위스키 병을 하나씩 손에 든체 피크닉용 벤치에 앉아 말없이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을 올려다 봤다. "어째서 여행자들 중에서 여자가 이렇게 적을까요?" 의아하다는 나의 말에 시슬리 B는 한숨을 쉬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말이야, 두려움 때문인가? 아니면 신체조건이 남자만 못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일지도 모르고, 이유가 무엇이던 답답하기는 매 한 가지야"  "맞아요, 어짜피 남자들도 이곳에서 40km만 걷고나면 여자들에게 치근델 정신도 없을 탠데, 게다가 이런 산속 어디서 누가 텐트를 치고 자는지알게 뭐에요.여자들이 돌아다니기 위험하기로 치면 이렇게 외진 트레일보다 미국 전역의 대도시들이 훨씬 더하죠."  "여자가 남자에 비해 약하다는 것도 근거없는 생각이야, 내 남편은 표준체중보다 30kg은 더 나가는 비만이거던, 남편과 나 중 누가 더 장거리 도보 여행을 더 잘해낼지는 누가 봐도 뻔하지, 남편이 이곳에 온다면 아마 산 하나도 넘지 못할걸, 그래서 난 트레일로 떠날때 남편이 날 데려갈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아"  "그런데도 많은 여자가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죠.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에요."  30분 뒤 '하이커의 자정'에 맞추어 잠자리에 든 나는 침낭 안에서 1년전을 회상했다. 그때 나는 PCT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지난 두달동안 PCT를 걷기로 결정한 것을 후회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매일 녹초가 되어 텐트안에 몸을 뉠때면 감사의 마음과 만족감이 차 올랐다. 시에라네바다의 남은 구간은 시슬리 B와 함께 걸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었다. 시슬리 B는 아침 6시 전에 해가 뜰 무렵에 출발해서 1시간 걷고 10분 쉬고, 그녀는 시계처럼 정학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점심 시간에 만났다. 텐트 칠때는 거의 늘 함께였다.  


아침 식사는 차거운 물과 약250g의 시리얼이다. 시리얼을 물과 함께 먹는데 익숙해 지려면 시간이 필요하지만, 알단 익숙해지면 베너에 넣는 연료를 전략 할수 있어 좋다. 나는 커피 대신 냉수만 조금 마신다. 그 뒤에 트레일 자료를 보면서 하루 계획을 세운다. 오늘 걸을 구간에는 어느지점에 식수 보급소가 있는가? 점심먹기 적합한 장소는 어디일까? 야영은 어디가 좋을까? 오전 중에는 하루 동안 먹을 간식거리의 절반을 걸으면서 먹는다. 초코릿이나 젤리, 견과류 200g에 해당한다. 점심에는 조그마한 가스버너에 즉석 식품을 데워 먹고 오후에는 남은 200g의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오후 6시가 되면 저녁먹을 장소를 물색한다. 장소를 발견하면 먼저 즉석 식품을 조리하고 냄비와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최소한 24km을 더 걷는다. 그래야 밤 중에 곰이 음식냄새를 맡고 접근하는 사태를 막을수 있다. 아침부터 저녁 8시까지 나는 35km를 걸으며 1kg의 음식을 섭취하고 최소한 5,000마리의 모기를 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적절한 장소를 찾아 텐트를 치고 늦어도 9시면 침낭안에 들어가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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