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여행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33]

paxlee 2019. 12. 3. 19:08

 

生(생)이 보일때까지 걷기 [28-5]

 

< 2004년 6월 29일, 사우스레이크 타호 도착전 : 켈리보티아 >


투올레미 메도스에서 사우스레이크 타호(South Lake Tahoe)까지의 거리는 235km 였다. 중간ㅇ 식량을 보퉁하지 않고 7일을 걸어야 한다. 첫날부터 공통에 1주일의 식량을 쑤셔넣느라 애를 먹었다. 터질듯한 배낭을 매고 다니는 일고 이만 저만 힘든게 아니었다. 6일째인 오늘은 음식을 거의 다 먹어치운 뒤라 배낭이 무척 가벼워 졌다. 사우스레이크 타호로 가는 관문인 50번 고속도로에 이르기까지 저녁과 점심을 한번씩 만 먹으면 된다. 그외에 시리얼 250g과 초코바 3개, 엠엔멤즈 초코렛 스물 일곱알이 남아있다. 이정도면 아슬아슬 하게 맞아 떨어질 것이라고 퍈단했다. 그러나 나의 위장은 의견이 다른 모양이었다. 하루 24시간 내내 배가 고팠다. 내 머리속에는 오르지 음식 생각 뿐이었다. 6일동안 나는 으밋ㄱ 븐배량을 철저히 지키는데 가진 의지력을 총동원했다. 무의식중에 너무 많은 음식을 먹어치우지 않도록 한번 먹을 량을 비닐봉지에 나누어 포장했다. 그때 당일치기 등산객 남여가 지나가면서 "PCT 스루하이커 이신가 보네요."  하며 말을 걸었다. "예, 맞아요"  "세상에 진짜 맥시코에서 캐나다까지 걸어가는 거예요?"  여자 쪽에서 감탄하며 말 했다. 궁금한 것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면서 "초코바 몇개 드릴까요?"  "정말요? 초코바라면 언제든지 대환영 이지요"  배낭을 디지드니 밀키웨이 호코바 2개와 시리얼 하나를 내게 건냈다. "안타갑게도 이것 뿐이네요"  "고마워요" 뜻밖에 행운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멀어져갔다. 손에 든 초코바를 바라보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초코바를 바라보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 2004년 7월 22일, 던스뮤어 : 캘리포니아 >


캡틴 마이크와 런드로맷, 그리고 나는 던스뮤어에 가기위해 히치하이커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내가 미끼 역활을 맡았다. 5번 주간 고속도로에는 나갈수 없어서 구 고속도로에서 기다리며 자동차가 거의 지나다니지 않았다. "행색이 이 꼴이니 안될수 밖에요"  "마지막으로 샤워한게 언제였지요?"  "버니폴스 주립공원에서 했으니 나흘 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냄새가 왜이리 고약하지"  "따질건 따지자고요. 악취는 몸과 옷과 배낭 속에 있는 물건에서 나는 거에요. 두 사람은 옷을 마지막으로 세탁한 게 언제예요? 그러니까 '벨덴'에 있는 트레일 엔젤의 집에서 였어요"  차가 드디어 한대 오고 있었다. 나는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엄지속가락을 내 밀었다. 이번에는 성공이었다. 한 여성이 우리 옆에 차를 세우드니 곧장 물었다. " PCT 여행자들이신가요?"  "맞아요, 던스뮤어에 가는 길이에요."맞아요, 던스뮤어에 가는 길이에오"  마침내 한 시름 놓은 내가 대답하지 중년의 여성은 우리를 향해 말했다. "그럼 타세요. 데려다 줄테니"  우린 군말없이 탔다. 그녀의 깨끗한 중형 자동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세 사람중 가장 키가 큰 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던스뮤어 어디로 가세요?"  차주인이 물었다. "혹시 아침식사를 할 만한 카페가 있을까요?  초텔에 체크인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일러서요."  "틀림없이 값싸고 양 많은 곳을 찾고 있겠죠."  "맞아요,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아, 냄새가 좀 고약하죠."  그녀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에이, 엄숙해서 괜찮아요. 남편이 케슬 그레크스 주립공원에서 산림관리인으로 일하거든요."  "아, 그래서 PCT를 잘아시는 군요!"  "맞아요, 여러분 같은 PCT여행자들을 테워주는 일도 많아요.  여러분이 좋아할 만 한 카페도 알고 있고요." 


15분 뒤 던스뮤어에 도착한 우리는 그녀와 헤어져 코너스 톤이라는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느 ㄴ이미 케슬크레그스 주립공원으로 가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종업원이 입구에서 }세분인가요?"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를 이웃한 공간의 구석진 자리로 안내했다. "이봐요, 앞쪽에 앉으면 안됩니까? 입구쪽에 앉아야 우리 동료들이 들어오는지 지켜볼 수 있단 말이에요."  종업원은

"손님들은  PCT 여행자 맞죠? 우리는 이곳에 살기 때문에 익숙하지만, 광광객들은 가끔 과인반응을 할때가 있답니다. 그래서 PCT 여행자들은 늘 가장자리로 안내해요. 그래야 서로 방해가 되지 않으니까요. 일행이 오면 물론 저희가 이곳으로 안내해 들릴겁니다."  여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놓고 갔다. 캡틴 마이크가 메뉴판을 들고 말했다. "상관 없어요. 난 배가 고프다고 요."  "나도 마찬기지에요."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잠시뒤에 어머어마한 양의 멕시코식 아침식사가 내 앞에 놓였다. 핀토콩, 살사소스, 다카몰레, 트르티야, 사워크림, 그위에 달걀프라이가 두개 얹혀 있었고 엄청나게 큰 유리잔에는 오렌지 쥬스가 가득 체워져 있었다. 트로티야 위에 콩과 살사소스를 얹고 있는 데, 종업원이 라루(Raru), 시수(Sisu), 시슬리B, 그리고 스피리트를 우리 탁자로 데려왔다. 모두 최소한 아침식사 메뉴 하나와 추가메뉴, 음료까지 주문했기 때문에 탁자는 금세 빈틈없이 들어찼다. 많이 먹지 않는 사람은 스리피트 뿐이었다. 그녀는 도보 여행자가 아니라 자동차로 이동하며 다니는 일종의 트레일 엔젤이었다. 아침식사를 거나하게 먹고 나오며 계산을 하였다. 카페밖은 영상 35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 2004년 8월 1일,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주의 경계에서 >


'오리건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나무표지판이 있었다. 타릴드플라워는 표지판에 입을 맞쳤다. 드디어 캘리포니아 북쪽경계를 지나 오리건 주에 들어선 것이다. 벌써 3개월 넘게 걸어서 도착한 것이다. 한없이 멀고 신비스럽게만 느껴졌다.

주 경계선에서 점심 휴식시간를 가졌다 그때 옆쪽에 위스키 한병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트레일 엔젤이 두고 갔는지, 여행자들이 무게 때문에 두고 갔는지 모르지만, 팩맨이 "위하여" 외치고 한 모금으 ㄹ마셨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별을 들고 그댈 마셨다.


나는 독일에 있는 친구들에게 구걸 메일을 보냈다. 굶주린 독일 여행자에게 초코릿 좀 적선하실분 없나요? 트레일에서 살아 남으려면 하루에 400g의 초콜릿을 먹어야 하거든요. 미국인들이 만든 허쉬초코릿은 도무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요. 스니키즈는 날마다 8개를 먹다보니 이제 신물이나요. 남자 친구인 볼프강만이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엄청남 양의 초코릿 소포를 시애드 벨리로 보내줬다. 독일에서 막 도착한 300g 짜리 견과류 초코릿 한판을 후식으로 먹었다. 나머지 초코릿은 무더위에 녹지 않도록 플리스 재킷에 둘둘싸서 메고 다니는 중이다. 우리는 너나무 그늘에서 드러누워 위스키 병을 비우고 내 여분의 초코릿의 상당량을 먹어 치웠다. 이제 캐나가까지 고작 1,500km 밖에 남지 않았다.


< 2004년 8월 3일, 애슬랜드, 오리건.>


애슬랜드의 푸드코읍이라는 대형 유기농 식료품점에 들어선 나는 진열대를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우와, 종류가 0가지도 넘는 것 같아요 슈퍼마켙에서 흔하게 파는 시리얼과는 비교도 안되겠어요"  "이런게 맛도 좋아요."  "이렇게 건강한 음식을 구한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와일드 플라워가 말했다.  "그런데 조금 비싼것 같군요."  내가 책정해둔 하루 생활비는 약10유로였다. 하루에 먹는 음식의 무게는 1kg이 약간 안된다. 초반에는 몇 주일간은 예산과 무게를 맞추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여러번 실페를 거듭하고 여러날을 굶주린 끝에야 날마다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침식사로 시리얼 250g과 점심과 저녁에는 봉지에 든 즉석식품하나, 그리고 400g의 간식을 여러차례 나누어 먹게 되었다. 간식은 그때, 수퍼마켙에 어떤 제품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 졌지만 제리나 견가류, 감자칩 등 열량이 높고 무게가 적게 나가고 부피가 적은 누델라와 땅콩버터가 좋았다. 스루하이커들은 거의 초코릿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다음 수퍼마켙은 700km 떨어진 캐스케이드 록스에 있는데, 거의 3주일을 걸어야 도착하는 거리다. 상자 3개를 트레일 근처에 위치한 리조트나 호텔로 미리 보내 두어야 했다.


< 2004년 8월 24일, 팀버라인 로지 : 오리건 >


차거운 부슬비가 내려 배낭과 신발과 양말, 속옷까지 모든게 흠뻑 졌었다. 비에 젓어 몸이 식으며 한기가 들었다. 극한의 상황은 이틀째 계속되고 있었다. 비가 많은 미국 북서부에서 걷기를 멈추면 체온이 더 떨어질 위험이 있어 나는 쉬지 않ㄱ 걸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팀버라인 로지에 도착할 것이다. 로지는 후드산 남쪽 1,830m 지점에 있는 유석 깊은 호텔로 나는 그곳에서 점심휴식을 취하며 몸을 녹일 계획이다. 그런데 호텔로 향하는 길이 안개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안경에 묻은 물기를 닦고 앞을 살펴 보았으나 방향감각이 묶여 있었다. 그런데 앞쪽에 물체가 움직였다. 나도 그쪽으 ㄹ향해 결어갔다. 초록색 판초 우비를 보자 그가 울리케라는 것을 알았다. "울리케, 나 여기 있어요."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이예요. 오늘 아침에 먼저 출발 했잖아요. 벌써 팀버라인 로지에 도착 했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한시간 전에 도착해서 기다려도 당신이 오지 않기에 걱정이 되어 될돌아와 봤어요."  그제야 올리케가 배낭을 메고 있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정말 나를 찾으러 ㅇ 날ㄹ씨에 다시 온거에요?"  나는 그녀의 우정에 감격했다. 올리케는 어깨만 한 번 으쓱 하고는 "이쪽에예요. 10분 만 걸어가면 호텔이예요. 밥도 그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30분 뒤 나는 기 ㄴ내복 하의와 유릴하게 젖지 않은 스웨터를 걸친채 로지의 라우닞에 앉아 있었다. 밥과 올리케도 곁에 있었다. 나는 후무스를 마구 퍼 먹었다. 젓은 옷들은 의자위에 널어 말리는 중이었다. 따뜻하고 건조한 실내에 앉아 으밋ㄱ을 먹고 있으니 얼굴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


< 2994년 8월 26~28, 케스케이드 록스 : 오리건 >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위싱턴주 경계에 있는 케스케이드 록스 였다. 밥은 우리보다 몇 100m 앞서 걷고 있어 올리케와 나는 독일어로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 그녀가 판초위이에 붙은 모자를 벗으며 "드디어 비가 그쳤군요."  "정말 그러네요."  얼마간 침묵이 흐르고 오릴케가 입을 열었다. "몇일전부터 이야기 하력 했어요. PCT를 완주하고 나면 밥과 헤어질 거예요. " 깜짝 놀라며 헤어지다니, 왜요?"  나를 보고 올리케가 걸음을 멈춰섰다. 이윽고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두 사람은 호주에서 처음 만났을때, 밥은 야외활동에 경험이 픙부했고, 올리케는 초보 중에서도 초보였다. 초반에 밥의 도움이 많았다. 계속함께 여행 하면서 올리케도 여행 노하우를 습득했다. 그러나 밥은 그녀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나를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미숙한 여행자로 생각하며 모든 결정을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는 따라 오지 않으면 꼭 싸움이 벌어졌어요. 나는 이번 여행을 함께하고 싶지 않았는데, 기회를 줘 보고 마음먹은 거예요."  "청혼을 했다고요?"  "그렇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낭만적인 청혼은 아니었어요. 결혼하는데, 필요한 서류를 가져 오라고 일방적으로 통보 했어요"  "감성이 그리 풍부한 편은 아닌 모양이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12년을 사귀는 동안 단 한번도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으니까요"  점심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 좀더 걷자. 우리를 기다리는 밥이 보였다. 올리케가 나에게 말했다. 밥이나 다른 여행자에게 내가 그와 해어질 생각 이라는 말을 하지 말아 주세요.  그는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을 거예요. "물론이죠, 우리만 알고 있는걸로 해요"  나는 그녀를 안심 시켰다. 이튿날 아침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캐스케이드 록스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무료로 PC와 인터넷을 사용할수 있었다 이메일을 확인하자 변호사로부터 새소식이 있었다. 그는 노동재판에서 형상을 시도해 성과를 거두어서 보상으로 2개월치 급여가 지급된다고 했다. 변호사엑 감사 인사를 남겼다. 올리케는 그새 시애틀로 가는 버스표 예약을 마쳤다. PCT를 완주하고 비행기로 독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PC를 끝네고 그녀는 무척이나 홀가분 해 보였다. "트레일을 끝내고 당신이 시애틀로 간다는 것을 밥도 알고 있나요?" 그녀는  "물론이에요. 여러 차례 이야기 했어요.


그는 우리의 관계가 여기서 끝이라는 것을 인정하러 하지 않아요."  "어째서 지금부터 따로 다니지 않는 거예요?"  "그는 PCT를 반드시 나와 함게 완주 하려고 해요. 우리는 함개한 시간이 많아 이번 트레일만은 끝까지 함께 걸으려고요.  하지만 그 뒤에는 끝이예요."  오릴케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튿날 밥과 올리케와 나는 케스케아드 록스 근ㄹ=교의 컬럼비아 강위에 놓여있는  '신들의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PCT가 지나는 마지막 연방 주인 워싱턴주에 들어섰다. 캐나다 국경까지는 이제 800KM빢에 남지 않았다. 밥은 롤리케와 몇일을 더 걸었을 때, 두 사람이 삼힌 설사를 하는 바람에 나는 그들과 헤어져야  했다. 밥은 지독하게 앓으면서도 계속 걷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올리케는 의사를 찾아가자고 그를 설득 했다. 그들은 진료를 박디 위해 히치하이커를 해야 했고, 나느 혼자 계속 걸었다. 그뒤 PCT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삶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