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여행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34]

paxlee 2019. 12. 4. 05:19

 

生(생)이 보일때까지 걷기 [28-6]


< 2004년 9월 13일, 스카이고미시 : 워싱턴 >


에이터 북은 스루하이커에게 성경과도 같은 존재였다. PCT를 걷는데 필요한 정보는 데이터 북과 타운 가이드에 모두 들어있다. 이정표가 워낙 잘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집만 되는 데다. 바씨기까지 한 지도를 들고 다니는 여행자는 거의 없다. 데이타 북에는 주오 중간지점 목록이 실려있고, 거리와 고됫ㄱ수 보급소, 장 볼곳과 켐핑장소에 대한 짤막한 설명도 되어있다. 스루하이커들은 이런 자료를 가지고 각자 걸어야 할 거리와 해발고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계산 했다. 타운 가이드에는 트레일 근처에 있는 마을과 도시의 속소, 수퍼마켙, 우체국등에 관한 모든 정보가 매우 상헤히 설명되어있다. 숫자가 빼곡하게 인쇄된 데이타북을 훑어보는 동안에도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나는 트레일의  3,990km 지점에 위치한 수전제인(Susan Jane)호수 바로 근처까지 와 있었다. 스티븐스 고개와 2번 고속도로는 3,996km 부근, 호수에서 6,4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지금 그곳까지 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텐트를 치려는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주피터(Jupiter)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해양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고있는 20대 후반 여성이다. "어, GT씨!"  그녀는 나에게 인사를 건냈다. "마침 잘 만났어요. 나와 함깨 딘스모어 저택으로 가죠, 세느파도 곧 뒤따라 올거예요, 딘스모어 가족은 스티븐스 고개에서 22km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스카이 고미시(Skykomish)에 사는 트레일 엔젤들이었다. 그들의 집은 '도보 여행가들의 피난처'라 불렀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지금 스티븐스 고개를 가게요? 그럼 어두워 져서야 도착 할텐데요"  주피터는 "에이 말도 안되는 소리, 여기서 부터는 어차피 쭉 내리막 길인데요. 월, 어두워진 뒤에 조금 걷는 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니고"  "그건 상관없지만, 어두워진 뒤에는 도로로 나와 봤자, 태워줄 사람이 없을 거에요." 이런 빗속에서는 더더욱 그렇고, 누가 자동차 실내를 진창으로 만들고 싶겠어요. 히치하이크를 하려는게 아니예요. 딘소모어 가족이 스티븐스 고개까지 우리를 데리러 오길 기대하는거죠."  "이 근방에는 휴대폰이 터지지도 않는데"  "간단해요, 스티븐스 고개에 스키장이 있는데, 거기에 공중전화가 하나 있어요. 그럼 전화를 걸어서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을 하면되요. 안된다고 하면 그냥 걸가에 텐트를 치고 자면 되고요"  주피터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녀는 나에게 "같이 갈거예요? 말거예요? 이렇게 시간 낭비하다가 저체온증이 온다고요"  주피터 말이 옳았다. 현재 기온은 영상 7도지만 나는 이미 뼈속까지 젖어 있었다. 내가 '알았어요' 대답하기 무섭게 주피터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허둥지둥 그녀를 따라 나섰다. 우리는 날씨가 침울해 질까봐, 쉼없이 수다를 떨었다. 음식에 관한것과 대소변의 색깔과 냄새, 묽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소변을 유심히 관찰하면 건강상태를 어림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하이커들의 소문들이 있다. 우리는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빠른 속도로 걸으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한시간 쯤 지나 화제가 샐러멘더와 비셔스 사이의 흥미진진한 관계에 까지 이르렀을때, 내게는 더 이상 걸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형당 수치가 바닥까지 내려가 뭐라도 먹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였다. 그러나 주피터는 내게 명령하듯 말했다. "저먼 투어리스트 씨! 여기서 걸음을 멈추고 배낭을 내려 놓으면 절대로 않돼요"  "알았어요, 나도 안다고요, 계속가요"  허기가 져 쓰러질 지경이 였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다행히 배낭 바깥쪽에 달린 주머니에 초코바 하나가 남아 있었다. 주피터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손만 뻗어 배낭에서 초코바를 꺼내줬다. 우리가 뛰다시피 걷는 동안 땅거미가 졌지만, 비는 끄치지 않고 쏟아졌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불빛이 눈에 들어온 순간 우리는 마침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자 멀리서 누군가 신호를 보냈다. 주피터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분명 세르파일 거예요" 주피터가 말했다. 세르파도 마침내 우리를 따라 잡았다. "숙녀분들 그 빌어먹을 공중전화는 어디있죠?"  세르파가 말했다. 공중전화를 찾기까지 그리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피터가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주피터의 얼굴이 긴장 되었다가 얼굴이 환해 지는 것을 보니 통화가 되는 모양이었다. 2분쯤 후에 주피터가 나오면서 엄지를 치켜 올렸다. "제리 던스모어가 곧 데리러 온데요"  그녀의 말에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세이서 좁은 전화부스 안에 낀체로 기다렸다. 두 시간 뒤 나는 주피터와 함께 딘스모어 저택의 윌풀 욕조에 몸을 담근채 행복에 젖어 있었다. 이렇게 따뜻한 욕조에 누워 있으니 기분이 확 풀렸다. 안드레아와 제리딘스모어 부부의 배려로 오늘 밤은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이들은 몇 km 남지 않은 케나다까지 완주 할수 있도록 스루하이커들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주며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 2004년 9월 20~21일, 패세이턴 와인드니스 : 워싱턴 >


딘스모어 저택에 묵고 난 후 10명이 한무리가 되어 걸었다. 스카이 코이시에서 캐나다 국경까지는 이제 280km 남았다. 폭설이 내리지 않는한 지금 우리를 가로 막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워싱턴주의 가을을 마음껏 음미하며 걸었다. 그러나 겨울은 이미 문턱에 와 있었다. 밤이면 기온이 빙점을 지나 영하까지 떨어지는 일도 많았다. 낮에는 각자 자기만의 속도로 걸었다. 저녁에는 함께 탠트를 치거나 짧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모이곤 했다. 하루는 다섯명이 트레일에 앉아 비를 맞으며 쉬고 있길래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들은 두껍게 만 조인트(담배)를 피우는 중이었다. "뭣들 하고 있어요?"  테크노가 한 모금 피우라고 담배를 건넸지만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상관 없어요. 오늘은 더 이상 계곡 건널일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이걸 피우면 걷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둥둥 뜰걸요" 테크노와 나란히 걸으며 나는 장거리 도보여행자들이 술대신 마리화나를 선호하는 이유를 분명히 깨달았다.술은 무거우나, 초경량을 선호하는 이들은 담배를 즐겼다.


이튼날 아침 출발 했을 때, 캐나다 국경까지 고작 70km 남겨두고 있었다. 한번 더 트레일 위에서 텐트를 치고, 다음날 아침 한번 더 배낭을 싸고, 한번 더 브로콜리가든 즉석 식품을 먹고 나면 이 생활도 끝이었다. PCT 완주를 목정에두고 있다는 기쁨과 더불어, 곧 끝난다는 쓰디슨 깨달음이 밀려왔다. 저먼 투어리스에서 이제 다시 크리스티네 튀르며로 돌아가는 것이다.

PDT를 마칙 이틀ㅈㄴ은 지난 다섯달 중에서도 가장 멋진 날이었다. 이날 아침 테크노와 디제이 다음으로 내가 록고개에 도달했을 때 별안간 구름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며 수일동안 자욱하게 까려있던 안개층이 걷혔다. 케스케이드 산맥 북쪽의 눈 덮인 능선이 한 눈에 들어왔다. 토에크는 암스테르담에서 온 30대 후반의 꺽다리 남성이었다. 그는 AT에 이어 PCT가 두번째라고 했다. 험준하게 솟구친 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얼굴에 부드럽게 와닿는 뜻밖의 햇살을 즐겼다.


토에크는 "GT씨, 미국 트레일을 완주한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을 알고 있죠?"  "하나만 완주한 사람, 아니면 세개를 모두 완주한 사람, 두개만 완주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적어도 자의로는 말이예요"  "예, 들어 봤어요, 어째서 그런거죠?"  "트레일 하나를 종주 하면서 장거리 도보여행 바이러스 감염되면 세 트레일을 모두 정복할 때까지 멈출수 없게 되어 버려요. 그런데 첫번째 트레일을 겅험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ㅇ낳은 사람은 이 고되기만 한 여행을 두번 다시는 하려들지 않아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두번째 라고 했죠? 그렇다면 당신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맞아요! 그 말은 즉, 내가 벌써 콘티낸탈 디바이스 트레일 종주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예요. 그러지 않고는 이후의 직장생활을 견뎌낼수 없을 거예요"  "언제 할건지는 결정 했나요?"  "아마 2007년에 할것 같아요"  "그럼 CDT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군요. 우리는 오늘 내로 35km를 더 걸어야 했다.


< 2004년 9월 22일, 패세이턴 와일드니스 : 워싱턴 >


PCT는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봐주는 게 없었다. 비가 내리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35km를 더 가야한다. 몇 시간동안 오르막길이 이어졌고 해발 2,000m에 이르자 빗방울이 눈송이로 변했다. 토에크는 눈 위에 그가 좋아하는 'Life is good' 이라는 글귀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새겼다. 우리 열 사람은 일렬로 줄지어 걸으며 중간중간 서로의 사진을 찍어줬다. 토에크는 사진을 찍다가 그만 눈 쌓인 길엣 미끄러지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PCT를 걷는 동안 넘어진 건 이번이 처음 이에요"  "뭐라고요? 지금껏 한 번도 안 넘어 졌다고요?"  손을 내 밀어 그가 일어나도록 도와줬다. "그래됴, 지금까지는 한번도 너멍진 적이 없어요."  무두 쉴새 없이 재잘거리며 오늘 저녁에 있을 완주 기념파티 계획을  세웠다. 오후 4시가 되자 국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의 나무를 베어 일직선으로 낸 선이 바로 국경이었다.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국경에 도달하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얼마 만 인가, '모뉴먼터 78'이라 불리는 은색의 결뎨 표지석에 도달했다. 북위 49도, 바로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이었다. 우리의 관심사는 그 옆에 서 있는 다섯개의 하얀색 나무기둥이었다. 기둥에는 "퍼시픽 크레스트 국립 경관 트레일 북단 출발점'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다섯 달 하고도 하루 전에 내가 서있던 멕시코 국경의 PCT 기념물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상념에 젖은 체 보잘 것없는 이 기념물을 응시했다.


가렉은 배낭 안에 들어 있던 비닐봉지에서 노란색 깃털 장식 다섯 개를 꺼냈다. 1주일 전에 미리 우편으로 받아둔 것이었다. 그녀는 기세등등하게 우리를 향해 외쳤다. "자매님들, 이제부터 쑈 타임이 시작 되겠습니다. 옷을 벗고 깃털 장식만 걸친 채 여자들끼리 기념사진을 찍는 거예여요!"  트레일 완주 끝에 나체 사진을 찍는 사진은 한번ㄷ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처럼 사진에 포인트를 주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20대 초반밖에 되지 않은 스트라이드와 푸는 썩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옷을 몽땅 벗어야 하나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가기라도 하면 부모님이 집에서 쫓아 낼지도 몰라요."  그러자 카렉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상의만 벗는 걸로 하죠. 물론 모두 사진을 절대 유출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고요. 자, 이제 가진 옷들 중에서 제일 섹시한 의상을 입으세요!"  내게 제일 섹시한 의상은 옆쪽에 지퍼가 달린 남색 우비 바지였다. 그때까지 그치지 않고 내리던 부슬비에도 어울리는 의상 이었다. 이윽고 샛노란 깃털 장식을 하나씩 목에 두른 반라의 여자 다섯명은 PCT 기념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남자들은 열광하며 서텨를 눌러댔다. 여남은 장의 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옷을 입고 보니, 남자들은 임 자취를 감춘 뒤였다. 덤불 속에서 느닷없이 태크노가 '바~달! 을 외치며 뛰어 나왔다.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신발과 털모자, 그리고 중요 부위를 감싼 장갑 한 짝 뿐 이었다. 연이어 여기저기서 '바~달!'이 터져 나오며 나머지 남자들도 똑같은 복장으로 덤불 속에서 나타났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몰골에 우리는 배꼽을 쥐고 웃어댔다. 날이 어두워지기 직전에 우리는 500m를 더 걸어 캐나다 영토내에 있는 백컨트리 양연장으로 가서 마지막으로 텐트를 쳤다. 그리고는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거운데 두고 열 사람이 둘러앉아 남은 식량들로 만찬을 즐겼다. 스루하이커 포틀릭(각자 음식을 가져와 즐기는 파티)인 샘이었다. 모닥불 빛에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비춰 봤다. 어느덧 모두의 표정에는 트레일 종주에 성공한 뒤의 환희가 가시고 침울한 상념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트레일이 자신을 얼마나 크게 변화 시켯는지 모두 절감하는 중인 듯 했다. 우리는 트레일을 걷기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코에크는 말없이 내 곁에 앉아 나뭇가지로 남은 불씨를 뒤적거렸다. 나는 그를 향해 나직이 물었다. "토에크 씨, 내일도 우리를 여전히 스루하이커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는데,"  그는 "아니예요. GT 씨, 한번 스루하이커는 영원한 스루하이커니까요. 당신은 영원히 이 이름을 내려놓을 수 없을 거예요."  "도보여행 때문에 나는 이제 제대로 경력을 쌓을 수 없게 됐어요. 이 모든 것을 햠께할 배우자도 찾을 수 없겠죠. 그렇게 따지면 사실 장거리 도보여행이 내 삶을 망가뜨린 셈이에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나느 ㄴ내 인생이 이렇게 된게 미치도록 기쁘답니다! 잘 자요, GT 씨!"


< 2004년 10월 10일, 독일행 비행기 안에서 >


시애틀에서 로스앤젤레스 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 걸어서 완주하는 데 다섯 달 학도 하루가 꼬막 걸린 거리를 이렇게 쉽게 갈 수 있다니, 찬다 좌석에 앉아 넋을 잃은 채 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비행기가 워싱턴 주와 오리건 주를 지나칠 때는 가을 안개 때문에 캐스케이드 산맥을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상공으로 들어서자 하늘은 청명해 졌고,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장대한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 트레일의 전 구간을 내 두 발로 완주한 것이다.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오로지 혼자서 중간에 마주친 모든 장애물도 극복하고서 말이다. 사막의 불타는 열기도,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던 북서부 태평양 연안의 비도, 시에라네바다의 눈 덮인 고개도, 오리건으 거센 계곡물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방울뱀과 흑곰까지도, 이 모든 것을 이겨냈는데 이제 무엇이 나를 가로 막을 수 있겠는가?  독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알 수없는 미래를 향해 가면서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트레일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 이제 나는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트레일이 우리를 보살필지어다.' 이번에도 이 금언이 증명되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얼마 안가 나는 좋은 새 직장을 구할 것이다. 그게 뜻대로 안 된다면? 그때는 다시 한 번 뚜벅뚜벅 여행을 떠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