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이 보일때까지 걷기 [38-1]
3부, AT. (Appalachian Trail)
< 2007년 12월. 베를린 >
독일로 돌아온지 3주가 넘도록 고민 하던 나는 마침내 올리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차피 언제가는 CDT에 관해, 그리고 그녀의 전 남자친구와 나와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려고 했다. "CDT는 어땠어요? 안그래도 궁금했어요" 저 중요한 것부터 말 할래요. 사실은 트레일을 걷던 중에 밥과 사귀게 되었어요. 나는 본론부터 끄냈다. 뜻밖에도 올리케는 웃음을 터뜨렸다. "크레이셔 국립공원에서 밥을 만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이미 그렇게 될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런데 그리 좋게 끝난게 아니라서....," 올리케는 또 웃었다. "그것도 예상했어요. 내가 워낙 밥과 오래 만났잖아요." "그럼 나때문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은 거에요?" 그는 "크리스티네, 전혀 아니예요. 솔직히 그땐 밥이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 하기를 빌었어요. 이제는 그가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통화는 세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올리케는 내 어깨에 얹혀 있던 무거운 짐을 덜어 줬다. "크리스테네,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요. 당신과 밥이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예요. 밥은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당신도 나처럼 그의 성격을 받아주기 어려웠을 거에요." 그제야 나는 마음을 정리 할수 었었다. 아직도 밥을 좋아 하지만 그를 다시 만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때달았다.
< 2008년 3월 31일. 배를린 >
나는 다시 AT를 떠나기 전에 집을 비우고 짐을 정리했다. 모든 집을 기부하거나 지원 단체에 후원하고 이사박스 8개와 메트리스와 접이의자 하나 자전거 한대는 창고를 빌려 보관해 뒀다. 그리고 마지막 밤에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었다. 새벽 2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나만의 안식처를 포기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인가? 나는 누워서 천장을 응시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수백번 곱씹었다. 앞으로 12달 안에 AT를 완주하고 유럽, 호주, 일본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이 내 목표였다. 이후에는 곧바로 직장을 구할 마음은 없었다. 미주 트레일을 걷는 동안 나는 자연 속에서의 삶이 어렵지도,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축한 돈만 가지고도 몇년동안 이 단순한 삶의 방식을 누릴수 있다는 내 삶이 매력적인 여행지 정보롤 가득했다. 그러나 경영 전문가였던 나는 무턱대고 뛰어 들지는 않았다. 모든 위험 가능성에 대해 의료 보험사와 상의하고, 연금보험 상담도 받았다. 저축한 돈도 직절한곳에 투자도 해두었다. 집을 오래도록 비워놓기가 싫어 포기 할때가 가장 힘들었다. 언제든 배를린에 돌아와 세어하우스에 방하나를 얻을수 있기에 여유를 부릴수 있었다. "네 나이때 나는 5년동안 휴가 한번 가지않고 일만 하며 버텼다. 오직 가족을 위해서 말이야, 그런데 너는 하는일 없이 허송세월을 하겠다는 거냐," 아버지는 이렇게 나를 비난했다. 나의 행동에 걱정어린 충고를 했다.
< 2008년 6월 16일. 밀리노켓 : 메인 >
메드웨이(Med way)에서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에서 내린 나는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주위를 살폈다. 셔틀버스를 예약한 AT 스루하이커는 네명이나 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마흔살쯤의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 하세요? 저는 리처드라고 합니다. AT 가시는 분 맞죠?" 그 사람은 손으로 뜬것 같은 사슴무늬 스웨터에 청바지 차람이었다. "아...맞아요! 저는 저먼 투어리스트 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그의 의외의 복장에 어리둥절 하며 그와 악수를 했다. 그는 또 다른분을 부르드니 내게 소개했다. "이 분은 존에에요. 버스에서 알게 되어고요. 존도 AT 를 종주하러 왔다고 하네요." 존은 내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그때 셔틀버스가 들어왔다. "이봐요, 세분 AT 로지에 가시는 분이면, 얼른 타세요!" 버스는 많은 좌석이 비어 있었다. "배낭은 짐칸에 넣는게 좋겠어요, 운전수겸 호텔주인인 폴이 내 배낭까지 함께 처리해 줬다. 우리는 AT 북쪽 출발점에서 가까운 메인주의 소도시 밀리노켓을 향해 출발했다.
AT는 총길이가 3,500km로 트레일 증에서 가장 짧은 동시에 가장 인기 많은 트레일이다. 올해 AT 종주 여행자가 약 2,000명에 달할것이라 했다. 종주 성공율은 가장 낮았다. 고작 1/4이 완주를 한다고 하였다. 로지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폴은 배낭 무게를 달아 보라고 권했다. "우리 호텔에서 장비를 한번 더 점검하고 필요없는 물건은 집으로 돌려 보내십시요." 장비의 무게는 6kg 이하 였지만, 첫 여드레 동안 헌드레드 마일 와일드니스를 걷는데 필요한 식량의 무게가 더해져 있었다. 하루치 식량이 1kg이니 총 8kg이 더해진 것이다. "장거리 트레일을 좀 걸어본 분이군" 폴은 나를 보며 말했다. 존의 배낭은 31kg을 가리 켰다. "대체 뭘 그리많이 구겨 넣은 겁니까?" 폴이 물었다. 존이 배낭에서 꺼내 보이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랬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죠, 열량도 풍부 하답니다." "초경량 원칙이라는 말 들어본적 없어요?" "에이 AT가 있다는 것은 1주일 전에 알았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 바로 표를 예약하고 짐을 챙겼어요. 군대에서 배운대로 준비해서 이곳까지 왔어요. AT가 아주 기대되는 군요" 존은 당당하게 우리를 바라봤다. 28kg 배낭을 들고 온 리처드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AT를 알게 되었나요?" "저는 작년에 스루하이킹을 계획하고 이곳 북쪽 끝에서 출발했었어요." "그런데 카타딘 산을 오르다가 발을 접질리는 바람에 중단 했어요." "걷기 시작한 날 중단 했다고요, 그래서 다시 시도하려고 이렇게 온거 아닙니까."
< 2008년 6월 17일 ~ 18일. 백스터 주립공원 : 메인 >
AT 스루하이커들 중 90%는 트레일 남쪽 출발점인 스프링어(Springer) 산에서 출발한다. 약1,800명이 해마다 이곳에서 종주를 시작하는 셈이다. 시즌이 시작되는 4월 초에 그 일대가 볼만하다. 나는 AT 북쪽 출발점인 백스터 주립공원 내 카타딘 산에서 종주를 시작 하기로 했다. 북쪽에서 출발하려면 CDT와 같이 눈이 녹는 6월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무렵은 1,3월에 남쪽에서 출발한 스루하이커들이 도착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AT 종주는 이처러럼 시간선택의 폭이 매우 넚었다. 이튼날 폴은 리쳐드와 나를 백스터 주립공원까지 대려다 줬다. 먼저 산림 경비원을 만나 여행자 등록을 한 뒤 카타딘 스트림 야영지 이용료를 지불했다. 이 주립공원의 이용 규칙이 엄격해서 출발한 스루하이커에게는 지정된 다만 남쪽에서 출발한 스루하이커에게는 지정된 산장을 이용하는 일이 허락 되었다. 저녁에 산장에 들리니 바구스, 브러래빗, 그리고 도저라는 트레일 별명을 가진 세명이 머물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날씨와 트레일, 장비 등에 관해 잡담을 나눴다.
"트레일의 끝을 눈앞에 도고 있는 기분이 어때요?" 마구스가 먼저 대답했다. "내일이면 끝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홀가분해요" 브르레잇이 동조했다. "나도 이제 한계에 다달았어요.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꿀뚝 같아요" 로지는 "마지막 한주동안은 매일 40km씩 걸었어요. 최대한 빨리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서 말이죠" 나는 그들를 보며 "PCT에서는 흔히들 하는 말이 있죠. 캐나다에 일착으로 도달한 사람은 뭔가를 잃는 샘이라고......, 우리도 종주를 금히게 마무리 짓고 싶지 않아서 며칠간은 일부러 천천히 걸었어요. "맙소사, 우리는 점점 더 빨리 걸었는데" "이번 시즌에 남쪽에서 출발한 사람들 중 1등으로 카타딘 산에 도착하는게 우리의 목표였거든요.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기도 하고요."
이튼날 아침 나는 자욱한 안개와 부슬비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이른 시간에 카타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AT의 기술적 난이도는 이곳에서 이미 확인할수 있었다. 1993년에 공식적으로 완성된 PCT는 애초부터 도보 여행은 물론 승마를 하기에도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트레일이었다. 그래서 PCT는 경사가 완만하고 구불구불한 구간이 많았다. 반면에 AT는 1937년 오로지 도보여행을 목적으로 완성된 것이라 굽잇길 따위는 문제도 아니었다. 경사도 15% 이상의 오르막길이 전체구간의 무려 11%를 차지하고 있었다. 카타딘 산 정상으로 이어진 헌트 트레일로 들어서자 걷는 시간보다 두손을 대고 기는 시간이 늘어났다. 사람 키만 한데다 미끄럽기까지 한 바위들을 두 팔과 두 다리를 총동원해 타고 올라가야 했다. 그칠줄 모르고 내리는 비 때문에 우비를 걸쳤는데도 흠뻑 젓어 버렸다. 추위에 떨면서 정상에 올라서니 카타딘 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나무 표지판이 있었다. AT 사진에서 많이 본 그 표지판이다.
정상에 올라왔지만 사진을 찍어 줄 다른 여행자가 없어서 15분을 비를 맞으며 떨며 기다렸다. 오후에 한차레 더 등산을 하고 기진맥진 한체 카타딘에서 리처드가 트레일 첫날 발을 접질린 이유를 짐작할수 있었다. 나보다 3시간 늦게 정상에서 내려온 그는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몸은 무사해 보였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축하하는 나를 보고 그는 밝게 웃음을 지었다. 그는 다시 무릎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500km 지점에서 종주를 중단했다. 동이 트기전에 나타난 여자 경비원은 야영지를 한바퀴 돌며 야영 허가증을 확인했다. 트레일의 높은 난이도를 몸소 체험한 뒤 궁굼한 점을 그녀에게 질문했다. "여행자들이 오르막이나 내리막길에서 부상을 당해 꼼짝할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그녀는 "예전에는 늘 헬리곱터를 동원해 부상자를 운송했어요"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안 합니다. 더 이상 투입할 헬리곱터가 없거든요" "그럼 이제 부상자를 어떻게 구조하죠." "우리도 몰라요, 아마 들것에 싣고 산에서 내려와야 할것 같아요." "그런데 왜 헬리곱터를 더 이상 투입하지 않는 건가요?" "전쟁 중이라서 그래요. 헬리곱터는 이제 군사적 목족에만 투입되고 있어요."
< 2008년 7월 9일 미후석 골짜기 : 메인 >
나는 고램(Gorham)의 레스토랑에서 호사스러운 만찬을 즐기고 편안한 호텔에서 묵으며 나의 마흔 한번째 생일을 보낼 계획 이었다. 그러나 AT는 내 계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거친 길이 계속되어 하루24km만 겨우 걸을 수 있었다. 그 바람에 고램을 35km 앞둔 마후석 골짜기에서 생일을 맞아야 했다. 그의 모든 AT여행자들은 2km 남짓되는 이 구간을 트레일에서 가장 험난한 지점으로 꼽았다. 직접 가서보니 그 이유를 알수 있었다. 골짜기는 마치 거인이 바윗돌을 가지고 구슬치기하는 장소 같았다. 길다운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 바윗덩이와 이끼낀 직벽 뿐이었다. AT를 알리는 하얀색 표지만 돌투성이 미로 사이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거대한 바윗돌 아래를 기어서 통과 하느라 몇번이나 배낭을 벗어야 했다. 내 키보다 높은 데다 미그럽기까지 한 바위를 거미처럼 타고 오르기도 부지기수였다. 그 뒤에는 다시 엉덩이를 깔고 내려와야 하는 내리막이 계속 됐다. 작은 실수 한번에 다리가 뿌러지거나 그보다 더 심한 부상을 입을 수 있기때문에 나는 동작 하나하나에 모든 집중력을 쏟아 부었다.
골짜기를 반쯤 통과 했을때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듯 폭우가 쏟아졌다. 엄청난 비가 사정없이 퍼붓는 바람에 내 몸은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젖어 버렸다. 바위 투성이 미로에 갖힌 나는 뿌옇게 서린 김 때문에 앞이 보이지도 않는 안경 넘어로 하얀 트레일 표지를 찾으려 죽을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냄새는 점점 더 강렬해져 코를 찔렀다. 얼마안가 냄새의 근원지가 어렴풋이 보였다. 사슴의 시체가 바위틈에 끼어 있었다. 나는 덜덜 떨며 무릎을 바닥에 댄체 계속해서 바위를 기어 올랐다. 비밀의 정원같은 이 으스스한 골짜기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2km가 채 안되는 거리를 통과 하는데 거의 3시간이나 걸렸다. 마침내 가파른 길이 눈에 보였다. 동료 여행자들은 트레일 경험이 없는 20대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AT가 끝없이 숲을 따라 이어진 탓에 감상할 풍경도 없었다. 나는 넘어졌다 일어나며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나는 등산 스틱으로 옆에있는 나무를 후려 갈겼다.
"망할 AT같으니!" 나는 혼자 화를 내고 투정을 하면서 들어붓듯이 퍼 붙는 비를 맞으며 눈물을 쏟아 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잠식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여행을 그만 둘수도 없었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주먹을 쥐며 가슴을 쾅쾅 쳤다. 내발로 걸어온 이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2km 만 더 가면 산장이다. 거의 한시간이 지난 뒤 나는 풀구스(Full Goose) 산장에 도착했다. 커다란 산장은 스루하이카와 보이스카우트 단원들로 발디딜 틈없이 붐볐다. 오늘이 나의 생일 이었으나,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텐트구역에 묵묵히 텐트를 친 뒤 물을 떠 왔다. 식사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축축한 침낭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쓸데없는 생각이 괴롭히기 전에 잠에 빠져 들었다.
< 2008년 7월 12일 ~ 13일 고램 : 뉴햄프셔 >
생일이 이틀이 지나고 나는 고램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늑한 호텔에 목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주말이라 묵을 만한 숙소는 모두 예약이 꽉차 있었다. 이리저리 해맨 끝에 나는 하이커스 파라다이스(Hikers Paradise)라는 도보 여행자 전용 호스텔에 묵게 되었다. 싱글룸에 묵었음에도 좀처럼 잠을 이룰수 없었다. 미국의 숙박업소가 흔히 그렇듯이 호스텔도 도로변에 위치한데다 방음도 거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에도 운은 따르지 않았다. 까다로운 숙소 주인은 일단 체크아웃하면 공용시설에 머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울적한 기분으로 트레일로 가는 길을 걷다보니 아늑해 보이는 카페가 보였다. 나는 아침식사라도 푸짐하게 먹으려고 카페로 들어갔다. 아침 카페는 만원이었다. 계속되는 불운에 기운이 쭉 빠진체 돌아서 나가려는 순간 여종원이 "혼자 오셨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괜찮으시다면 저쪽에 계신 래리씨와 합석 하시는 건 어떼요?" 그녀는 상냥하게 말했다. 그 남자는 면도도 하지 않은 수엄과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래리씨는 저의 단골 손님이고, 아주 편한 분이에요. 이야기 상대가 생기면 래리씨도 기뻐할 거에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래리씨, 이분이 동석 하실 거에요" 배낭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자 마자 그는 자기 소개를 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난 래리에요.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하지만, 정부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아요." "그렇군요," 그의 열띤 정치 이야기는 길어졌다. 식사가 끝나고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져 왔다. 래리가 지갑을 꺼내드니 내 식사 비용까지 지불하고는 이렇게 제안했다. "난 고램에서 약간 떨어진 외곽에 살고 있어요. 괜찮다면 대화도 좀더 나눌겸 우리집에서 하룻밤 묵는게 어때요?" 래리는 호감이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AT에서 고독한 한달을 보내며 직접 교류에 목말라 있었던 터였다. 나는 망설였다. 래리가 기존에 알려진 엔젤이 아니라, 그냥 낯선 사람이다. 게다가 AT는 폭력범죄가 잦았다. 내가 주저하는 것을 눈치첸 래리가 말했다. "선뚯 낯선 사람을 따라가는일이 물론 내키지 않을 거에요. 원한다며 그냥 지금 AT로 대려다 줄께요. 하지만 난 이곳 단골 손님 입니다. 절 못 미더우면 당신이 우리집에서 묵는다고 종업원에게 이야기 해줄수도 있어요" 그는 너그럽게 말했다.
나는 내 건전한 믿음을 따르기로 했다. 어짜피 나와 래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도 수없이 많았고, 나는 그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내 결정은 옳았다. 우리는 미국 정치에 관해 토론하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자 래리는 다락방에 잠자리를 마련해 줬다. 무엇보다도 그곳은 무척 조용했다. 그래서 세상 모르고 10시간을 푹 잘수 있었다. 이튼날 아침에 래리는 풍성한 아침식사를 차려준 뒤 나를 트레일까지 테워다 줬다. "언제나 몸조심 하세요. 어려운일이 생기면 언제든 나에게 전화하고," 그는 돌아가면서 이렇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묘한 상쾌함을 느끼며 기분좋게 걷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서부와는 달리 인구밀도가 높은 동부 해안의 AT에서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는 스루하이킹을 두체례 경험한 터라 트레일의 스타일에 익숙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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