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여행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35]

paxlee 2019. 12. 8. 00:38

 


생(生)이 보일때까지 걷기 [35-1]


2부, CDT(Continental Divide Trail)


< 2004년 11월, : 베를린 >

"지난 반년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면접을 보는 중이었다.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여행을 했습니다. 4,277km를 온전히 두발로 걷는 여행이었죠."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회사 공동대표 빌헬름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게 뭡니까? 자아를 찾는 여행, 뭐 그런 겁니까?"  "빌헬름 사장님, 진작 자아를 찾지 못한 사람은 그런 트레일을 절대 완주 할수 없습니다. 다섯달 동안 혼자서 야생속을 걸으면 떠나기 전에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죠."  이번에는 크리스토프 지터가 "튀르머 씨, 무척이나 보기 드문 일을 해 냈군요. 이런 자리에 지원하는 사람의 이력으로는 더욱 특이 한데...."  "달리 생각 할수도 있습니다. 두분이 제 상사가 된다면, 끈기와 목적 달성 의지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10월 16일 토요일,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당일 바로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훑어 봤다. 그 중 하나가 무척이나 구미에 당겼다. '생산업체 최고 운영 책임자 구함' 광고를 낸 회사는 정확히 내 전문분야 업체인 데다 베를린 근교로 위치도 좋았다. 빌헬름이 "그럼 생산라인을 같이 보죠"  나는 두 사람을 따라 어마어마하게 넓은 생산공장으로 들어섰다. 공장을 한바퀴 둘러본 뒤 지터가 나를 출구까지 바래다 줬다. 문 밖으로 나온 나는 회사 주차장을 눈으로 훑었다. "아, 저쪽에 있는게 임원용 회사 차량입니다."  "멋진 자동차죠?"  사장의 말에  "아, 그러네요. 정말 종은 차예요."  나는 그와 악수를 하고 헤어지며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럼, 튀르머 씨, 저의 인사 담당자로부터 조만간 연락이 갈 겁니다."  헤드 헌트는 이틀 뒤에 전화를 걸어 왔다. 


"튀르머 씨,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네요. 회사 대표들이 튀르며씨를 고용 하겠답니다."   "축하 합니다. 1월 1일부터 근무하면 됩니다."  PCT에서 돌아와 처음 지원한 회사에 합격을 하다니, 그가 전화를 끊기전에 나는 질문을 던졌다.  "그 자리에 지원한 사람이 몇 명이었나요?"  그러자 헤드헌트는 "남자 지원자만 여든 명이었어요. 튀르머씨는 유일하게 여성 이었고요. 저도 튀르머 씨를 적임자로 추천 했습니다. 그런 도보여행을 완주한 사람 이라면 분명 정신적인 힘이 넘쳐날 테니까요.  새 직장에서도 그런 힘이 필요할 겁니다."


< 2005년 7월, : 베를린 >

"자, 그럼 건배 합시다. 튀르머 씨!"  나는 잔을 들어 빌헬름과 지터의 잔에 부딪쳤다. 두 사람은 나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놀라운 성과를 올렸어요. 튀르머 씨가 우리 회사를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위기에서 구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터가 말 했다. "감사 합니다."  이번에는 빌헬름이 나를 주시했다. "특별히 알고 싶은게 있나요?"  "뭐, 예를 들어 쉴때는 무엇을 하나요?"  "주로 잠을 자죠"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럼 일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 하면요?"  "주말에 종종 트레킹을 하러가기는 해요"  두 대표는 여전히 "연봉이 무척 높은 데, 그 많은 돈으로 뭘하죠?"  "그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닌데요, 뭘"  "월급으로 좋아하는 물건을 사거나, 그러는 일도 없나요?"  "물론 사죠, 최근에는 웨스턴마운틴니어링사의 거위털 침낭을 샀어요, 영하 15도의 혹한에서도 따뜻하게 잘수있는 제품이랍니다."  두 사람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화제를 바꾸어 내년 예산안에 관해 언급했다.


< 2005년 12월,  :  베를린 >

나는 모니터에서 향후 10년간의 사업계획를 붙잡고 고심하는 중이다. 그러나 눈 앞을 채운 수많은 엑셀 피벗 테이블에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이나 시선을 들어 사무실을 둘러 봤다. 정면에 걸려있는 12월의 달력사진은 몬태나주의 글레이셔 국립공원에 있는 세인트 메리 호수였다. 캐나다와 국경이 맞 물리는 그곳에는 콘티넨탈 디바이드 트레일의 출발 점 이었다. 그때, 내 인생이라는 사업계획은 어떤가?  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1년 뒤, 5년 뒤, 혹은 10년 뒤에 내가 머물고자 하는 자리는 어디지? 나 자신의 목표, 자원, 기회, 위험요소는 무엇이란 말인가?


순간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10년 뒤에 나는 지금 이 사무실에도 다른 어떤 사무실에도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다시 뛰쳐 나가고 싶었다. 돈이라면 이미 트레일 하나를 종주할수 있을 만큼 모았다. 두개를 완주 하기에 충분할지 모른다. 트레일 만이 목적이라면 더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지만, 향후 회사 운영자로서 하게될 모든 일은 지금까지 해온 일의 반복일 뿐이다. 몇년 뒤에 내가 수천 km를 단숨에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힘이 넘칠 것이라 장담할수 있을까?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튀르머 씨, 지터씨 께서 통화하고 싶어 하십니다."  "안녕하세요, 지터 씨! 전화를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그와 나는 꺼리낌 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였다. 한때 부실한 중견 기업이었던 회사가 나의 기업회생 전략 덕분에 탄탄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경쟁 기업체에 회사를 매각할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매입 의사를 밝힌 프랑스 기업의 인수 협상자리에 동행하고 있었다.  "성공 입니다."  지터가 흥분해서 말했다. "오늘 프랑스에서 수락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쪽에서 우리업체를 인수 하겠답니다."  이 정보가 내 여행계획에 어떤 기회로 작용할 것인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튀르머 씨의 자리는 그대로 유지 될 테니까요. 새 소유주도 틀림없이 튀르머 씨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내 속셈은 전혀 달랐다. 회사를 가만 두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였다. 나는 축하 인사를 건냈다.  "축하 드립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1주일 뒤 나는 내 사무실에서 지터와 마주 앉았다. 새로운 회사 소유주인 플링거도 동석했다. 오늘은 내 미래를 경정하는 날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뒤, 나는 냉철한 경영전문가 다운 태도로 회사의 앞날에 대해 그들의 계획을 물었다. 플링거는 "먼저 튀르머 씨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질문했다. "풀링거 씨, 회사를 인수한 후 귀하의 임원을 경영진으로 임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는 이 점을 문제 삼지 않을 뿐 더러 회사측과 협상한 뒤 회사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풀링거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것인지 모르겠군요. 튀르머 씨는 커다란 성과를 올린 장본인 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튀르머씨를 임원으로 채용할 예정입니다."  나는 내 능력을 인정 받고 자리도 보장받는 것이다. 나는 그냥 트레일로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이 멋지고 안정된 직장을 떠나는게 현명한 선택인지 나에게 되물었다. 내 대답은 그렇다 였다. "풀링거씨, 죄송하지만 제게는 다른 계획이 있습니다. 다시 도보여행을 떠나는 거에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여행이야 휴가를 내고 가면 되지 않습니까?"  "저는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장거리 트레일을 완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에 두번째 트레일을 도전 할 계획이고요, 그러려면 법정 휴가만으로는 부족 합니다. 5개월이 걸리는 여행이거든요"  "그럼 퇴사하고 싶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5개월 휴직하는 것을 허가 한다면 사정이 달라 지겠지만요."  이로써 내가 가진 패는 모두 내 놓았다. "가려는 곳이 저기 인가요?"  "예, 저기도 제가 갈 장소들 중 하나입니다."  "언제 출발할 계획입니까? 내년에 당장 떠나야 하나요? 아니면 한해 더 일을 하며 기다릴수 있나요?"  우리는 협상 하면서 30분을 보냈다. 나는 1년 반 동안 운영 책임자로 일한 뒤 5개월간 휴직을 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2007년 6월이면 콘티넨탈 디바이드 트레일 위에 서 있을 것이다. 1년 반은 쏟살같이 흘렀다. 회사는 잘 굴러가고 꾸준히 성장세를 보였지만 나 만큼 나도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하루 12시간 근무는 날이 갈수록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매 주말이면 자연 속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보냈다.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은 조만간 본격적으로 트레일을 밟게 될 거라는 기대감 뿐이었다.


< 2007년 4월 CDT 도착 2개월전 : 베를린 >

PCT를 계기로 알게된 친구 셀프메이드(올리케)와 함께 지난 주말 슈바르츠 발트(검은 숲의 남부 산악지대)를 댜녀왔다. 우리는 종종 연락하며 가끔은 직접 만나 지난 추억을 돌아보며 새로운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눈 덮인 수바르트 발트에서 그녀의 전 애인이있던 밥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올리게는 밥과 헤어진후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비서가 "풀링거 씨와 그림 씨가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오늘은 사장, 부사장과 면담이 잡혀 있었다. 다섯달 동안 휴직기간에 내 업무를 수행할 직무대행에 대하여 의논하는 자리였다. 나는 두 상사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부사장 그림씨가 "오늘은 튀르머 씨의 '트레일 협의 사항'에 관해 논의를 해야 할것 같습니다"  "예, 그렇게 해야죠"  "빙빙 돌리지 말고 솔직히 털어 놓아요. 튀르머씨, 그 트레일 이야기는 그저 구실이 잖습니까?"  나는 의아하게 부사장과 사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내 말에 그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사장님을 꼬드겨 휴직허가를 얻어 냈잖습니까, 다른 속셈이 있으면 말 하세요. 돈을 얼마나 더 줘야 회사에 남을지 말해봐요" 이 남자가 왜 이렇게 성나 있는지 알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그러니까, 제 여행계획이 연봉 협상을 위한 작전에 불과하다는 말인가요?"  "그게 아니면 뭡니까? 솔직히 말해 봐요."돈을 더 달라는 겁니까? 더 좋은 차를 원하는 겁니까?"  "그림씨, 여행은 구실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다섯달 동안 미국을 도보여행을 하였고, 다시 한번 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우리가 그런 허황된 일을 하라고 튀르머 씨에게 자유시간을 줄거라 생각합니까?"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이미 그렇게 계약도 체결했고요. 저 역시 휴직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우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당신을 해고 할수 있어요."  그때 풀링거가 끼어 들었다. "그림씨, 그만 진정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눠 보는게....."  그림씨는 성질을 내며 "지금 당장 댁의 비서를 불러들여 해고 통지서를 받아쓰게 할테니 그리 아시오"  나는 상황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예상 못햇다.


나는 이 협상이 결렬되면 회사를 그만 둘수도 있었다. 나는 평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림씨, 뜻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당장 회사운영에 공백이 생깁니다. 제가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는 저 스스로가 원해서 입니다. 당황한 풀링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림씨는 협박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무릎이 풀렸는지 주저 앉았다. 그러면 "좋습니다. 그럼 직무대리에 관해 논의 해 봅시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보니 여행뒤에 내가 다시 임원 자격으로 여기서 일할수 있는지 불투명 해졌다. 그림과 달리 내 사업 파튼들은 나의 여행계획을 무척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미련없이 직장을 등질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여행 이야기는 더 듣고 싶은데, 출발하기 전에 한번 만나볼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미국으로 떠니기 전의 며칠간을 나는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보냈다. 2007년 6월 8일 금요일. 나는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 2007년 6월 12일,  이스트글레이셔 국립공원 : 몬테나 >

암트렉(Amtrak=전미 여객철도공사)의 앰파이어 빌더(Empire builder=미국 중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장거리 열차)는 느긋하게 덜컹 거리며 몬테나 주의 숲을 헤치고 달렸다. 사흘전 베를린에서 출발한 직후부터 모든일이 틀어지는 것만 같았다. 오후 4시에 도착 예정이었으나, 몇 시간씩 대기하며 두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탄 끝에 나는  한 밤중에 조용한 스포캔 공항에 내렸다. 수화물 찾는 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독일에서 부친 두개의 짐 중에서 하나만 도착했다. 식량과 지도가 든 가방을 끝내 나오지 않았다. 짐 하나는 못찾고 밖에 나오니 택시도 없었다. 호텔 셔틀차량이 새벽 1시가 되어서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이튿날 수화물 안내소에 확인한 결과 내 가방은 이곳에서 4,000km나 떨어진 플로리다 주의 마이에미에 가 있었다. 불행중 다행히 짐은 벌써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초조하게 하루를 더 기다린 뒤에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CDT라 불리는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은 미국 장거리 트레일 중 가장 역사가 짧으나 가장 야생적인 트레일이다. 미국의 대륙 분수계를 따라 로키산맥의 능선을 타고 이어진다. 몬테나에서 아이다호, 와이오밍, 콜로라도, 뉴멕시코주를 지난다. 통일된 공식 경로가 아직 없기 때문에 CDT 종주거리와 기간이 정확하지 않다. 다양한 경로중 어느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4,200km에서 5,000km에 달한다, 대략 5개월이 소요된다. CDT는 PCT에 비해 거리가 길고 난이도가 있는 트레일이다.


< 2007년 6월 13일, 미국과 케나다의 국경, 글레이서 국립공원 : 몬테나 >

이스트 그레이셔에서 케나다 국경까지는 셔틀 차량이 운행된다. 경비가 40달러이다. 밥은 국경까지 100km 정도의 거리를 히치하이커 해서 가기로 했다. 세인트 메리까지 가는 첫 구간은 어느 관광객 부부의 차를 얻어타고 갔다. 도보 여행자들은 세인트 메리관광 사무소에서 글레이셔 국립공원 트레킹 허가증을 받고, 곰대처 안전교육 영상도 시청했다. 산림경비원이 경고에 우리는 긴장할수 밖에 없었다. "우리 국립공원에는 400마리의 희색곰과 천마리가 넘는 흑곰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요즘 초여름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워험하니 곰 퇴치용 스프레이는 준비해 오셨나요?"  "아니요, 전 못가져 왔어요" 그럼 호루라기는 가져 왔어요! 호루라기를 불어서 미리 곰에게 경고를 하면 갑작 스럽게 마주치는 일은 피할수 있거든요"  곰의 귀에는 마멋의 휘파람 소리처럼 들려요.  걷는 동안 큰소리로 대화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세요.


89번 고속도에서 밥과 나는 국경이 있는 치프산으로 가기위해 히치하이커를 시도했다. 1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앞에 멈춰선 차에는 술취한 네명이 타고 있었다. 밥이 운전자와 이야기를 하고 다른 대책이 없는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그들이 얼마를 다려간 후 차를 멈추드니 "여기서 내려셔야 해요. 1km 만 더가면 국경이 나와요. 우리는 자동차를 정리해야 해서 이만," 그들은 맥주켄등을 트렁크 안에 정리를 하드니 출발했다. 밥과 나는 15분 쯤 걸어서 국경에 닿았다. 국경이라고 새겨진 표시 기둥이 하나 서 있었다. CDT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 같은 것은 없었다. 경비원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자, 그녀는 그러라고 대답했다. 먼저 내 여권과 비자를 꼼꼼히 검사했다. 밥과 나는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국경에 도착하여 19분만에 부슬비를 맞으며 첫 걸음을 때었다. 


< 2007년 6월 14~18일 글레이셔 국립공원 : 문테나 > 

글레이셔 국립공원은 CDT의 거창한 서막은 빙하기의 얼음이 이곳에 깊숙한 골짜기와 깊고 푸른 호수를 수도없이 남겨 놓았다. CDT에서 둘째날 우리는 첫 희색곰 무리를 만났다. 나보다 앞서 구릉를 기어 오르던 밥이 곰을 발견 하고는 얼어붙은듯 동작을 멈쳤다. 그때 냄새를 맡았는지 키가 2m에 달하는  곰이 눈 앞에 버티고 섰다. 우리는 서서히 물러났다. 곰은 침엽수 쪽으로 들어갔다. 3일째 되는 날은 눈발을 만났다. 눈 밭을 지나 산불로 훼손된 지역을 걸었다. 이글 크리크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불타고 없어서 우리는 눈녹은 물로 불어난 차거운 계곡물이 무릎까지 차 올랐다. 젓은 산발이 마르려면 몇일은 걸리게 생겼다. 4일째 되는 날 CDT를 걷는 여행자를 처음 만났다. 폭스트롯이라는 별명의 젊은 미국인 남성인 그는 트리플 더마이르 고개로 가는 길목에 실망한 표정으로 주저 앉아 있었다. "벌써 한나절은 기다린 것 같아요. 고개 넘어에 곰 두마리가 있는데 도무지 움직이려 하지 않아요"  포스트롯과 함께 점심 휴식을 취한 뒤 고개넘어를 살펴 봤다. 곰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다같이 애틀랜틱 크리크 야영지 까지 걸었다. 그곳에 CDT 여행자 한 무리가 머물고 있었다. 밥과 AT를 종주한 와일드켓도 그곳에 있었다. 이튼날 아침 그들은 먼저 떠나고 밥과 나는 둘이 출발했다. 5일째 날은 기온이 급강하 하드니 눈발이 날렸다. 고산 지대에서 날마다 32km를 걷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늦어도 빅해칫 산맥에 도착할때 쯤이면 기운이 날거에요"  점심시간에 나는 추위에 떨며 작은 냄비를 손으로 감쌌다. 몬티나의 야생이 만들어낸 거친 풍경속에 추위는 엄습해 왔다. "밥 추워서 못견디겠어요"  "그럼 어서 출발합시다. 걷다보면 몸이 더워질 거에요"  나는 그에게 바짝 다가가 "온기를 좀 나눠 굴래요?" 밥은 당황한듯  "그게 무슨 뜻이죠?"  "아이고 정말, 그냥 어깨위로 팔이라도 좀 둘러줘요.: 그리고 나는 그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밥은 어색한 동작으로 근육질의 팔을 내 몸에 둘렀고,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몇분 동안 우리는 쿵쿵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GT 씨, 이제 출발해요"  "알았어요"  그리고 우리는 30분 동안 말없이 걸었다. 야영지에 도착하자 하늘이 조금 개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할 때도 우리는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GT 씨, 내일 일찍 출발 해야애요."  "물론이죠, 혹시 내가 못 일어나며 깨워줘요"  "아니면 당신이 나를 깨우던가요"  밥은 자기 탠트로 갔다. 밥은 2년 반전에 올리케와 헤어지고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동안 여자가 그리웠던 눈치였다. 밥은 외로움에 찌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난 두해를 거의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날마다 12시간을 일하다보니 미처 이성을 사귈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내심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애정을 나누고 픈 마음이 간절했다.추운 것은 몸뿐이 아니었다. 강추위와 고독에 떨며 침낭속에서 웅크린체 고민을 거듭했다. 밥과 나는 트레일 위에서 이성적인 동반자였다. 나는 그의 거친 남성성이 마음에 들었고 그도 내게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눈빛에서 눈치체고 있었다. 밥은 미국인이고, 나는 독일인 이었다. 밥의 전 애인이 올리케였다. 새벽 5시가 지나 동이 틀 무렵 나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발포메트와 침낭을 든체 밥의 텐트로 건너갔다.


"좋은 아침이에요. 밥"  밥은 잠에서 들깬 얼굴로 텐트의 외겹을 들추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GT씨, 좋은 아침 그런데 이시간에 뭐하는 거예요?"  나는 심호흡을 하고 계획했던 일을 한번더 고민했다. "밥, 안으로 들어가게 옆으로 조금만 비켜줘요"  밥은 그대로 엉거주춤한 상태였다. "빨리요, 비도 오고 춥단 말이예요"  "들어와요,"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나는 발포메트와 침낭을 들이밀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밥은 곁에 눕는 나를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예요?"  "너무 추워서요."  "춥다고요?"  "당신곁에 있으면 조금 따뜻히질것 같았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는 그의 두손을 내 웃옷 아래로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자신의 손가락이 내 가슴에 와 닿고 나서야 밥은 내 말을 이해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출발하려던 계획을 미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