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여행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36]

paxlee 2019. 12. 11. 00:09

 

생(生)이 보일때까지 걷기 [35-2]

2부, CDT(Continental Divide Trail)


< 2007년 7월 6일, 애너콘다 : 몬테나주

CDT를 종주 하고자 한데도 PCT나 AT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경로가 전구간 표시되어 있지 않아 각자가 알아서 길을 찾아 가야 한다. 출발점과 도착점도 그렇다. CDT에서는 '커넥팅 풋스탭'법칙이 지배하는데, 이는 그때 그때 주어지진 노선에서 가장 적합한 경로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애너콘다 컷오프 역시  수 많은 결로중 하나였다. 밥과 나는 장을 보고 세탁을 하고 인터넷을 사용하느라 애너콘다에서 하루 종일 보냈다. 오후 5시가 되어서 열흘치 식량을 짊어지고 걸었다. 나보다 한참이나 키가 작은 밥은 보도 위에서 걸었다. '

"크리스티네 이제 물을 구해야 해요" 그때 어느집에서 테라스로 막 나오는 한 부인을 보고 "실례합니다. 물을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그런데 어디서 오는 길인가요"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이어지는 콘티넬탈 디바이드 트레일을 걷는 중이예요"  "조, 어서 나와 봐요, 젊은 이 두명이 왔는데, 글쎄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걸어 가는 중이래요!"  우리가 트레일에서 "즉석 식품과 초코렛만 먹는다고 하니, 그럼 건강에 안좋다고 하면서 우리가 음식을 좀 해주느 것이 어떨가요? 여보"  우리 애들이 쓰던 방이 있거든요. 오늘 밤은 그방에서 묵도록 해요." 


우린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침대에서 자고, 어쩌면 뜨거운 물로 샤워도 할수 있을지 모른다!  "어때요, 밥. 오늘은 여기서 묵을 래요?"  밥이 "그러죠. 뭐, 어차피 식량도 아슬아슬 한 참이니"  한 시간뒤 밥과 나는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식당에 앉았다. 레베커는 "스테이크 요리가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오븐에 구운 감자와 샐러드를 곁들일 거에요, 젊은 이들도 좋아해야 할텐데," 스테이크를 한조각 입에 넣는 순간, "레베카 지금까지 먹어본 스테이크 중 최고예요. 독일에서는 없어요"  "그럴수 밖에요, 이 산에서 방목해서 키운 소인데요"  밥과 나도 몬테나 주를 걷는 동안 방목한 소때를 여러번 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에요. 해발 1600m 높이에 있어서 겨울나기는 좀 힘들겠어요" 그날밤 안락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이룰수 없었다. 밥은 옆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휴직기간 5개월이 지나고 11월에는 직장에 복귀해야 한다. 나는 회사 동료들을 저버릴수 없는 노릇이다. 회사 소유주는 아니지만 회사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은 나를 올가메고 있었다.


아튼날 아침 베이컨 굽는 냄새에 잠이 깼다. 아침 식사도 베이컨과 달걀프라이, 시럽을 곁들인 팬케이크, 토스트와 잼까지 있었다.  "레베카 음식을 정말 많이 하셨네요. 우리 끼리는 다 못 먹을것 같은데, 조는 어디있죠?"  "오늘 아침에는 조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요. 자리에서 일어 날수 없다며 나보고 대신 인사를 해 달라고 하더군요."  "어제 저희 때문에 무리 하신것 아닌가요?"  "아니예요, 전혀 그렇치 않으니 걱정마요. 오리려 젊은 이 들이 와서 감탄하더 군요"  레베카가 종이 한장을 건네며 "우리집 주소에요. 멕시코 국경에 다다르거든 우리에게 엽서 한장만 보내줘요"  "조도 엽서를 받으면 아주 기쁘 할거예요."


< 2997년 7월 9일. 위렌호수. 애너콘다 - 핀틀러 와일드 니스 : 몬테나 >  

"좋은 아침이에요. 크리스티네! 생일 축하해요! 밥이 내게 다정하게 입을 맞추며 인사를 건냈다. "지금 선물 줄까요?"  "그럼 눈을 감아요."  "이제 입을 벌려봐요."  혀에 뭔가 감촉이 느껴졌다. 그것을 깨물자 잘 익은 채리의 달콤한 밧이 입안 가득 퍼졌다. "음!" "하나 더 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흔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거의 500g이나  되는 채리를 이틀 동안 짊어지고 다닌 것이다. 해발 고도 2,000m가 조금 안되는 곳이라 밤이면 기온이 0도까지 떨어지는 곳이라 채리는 냉장고에서 꺼낸듯 시원했다. 밥은 세개째 채리를 내 입에 넣어 줬다. "이제 당신 억어요" 내가 권하자 그는 사양하지 않았다. 우리는 체리를 맞잇게 먹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피쳐와 저먼 투어리스트  아니오? 안에 있어요?"  아는 목소리였다. "프랜시스! 프랜시스 피톤이군요." 밥과 나는 텐트에서 뛰어 나왔다. 프랜시스 피톤은 AT와 PCT 완주경험이 있는 그는 'CDT 요요'를 시도하고 있었다. 한 시즌내내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종주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프랜시스의 소형 배낭에는 우리보다 훨씬 적은 장비가 들어 있었다.  "오늘 밤에는 얼어 죽을 것만 같아서 새벽 2시에 일어나 계속 걸었어요. 추위를  견딜만한 옷이 없거든요."  "친구들 나는 이제 가보아야 해요. 오늘 최소한 60km는 걸어야 하거든요." 그는 우리를 껴안고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새일을 맞아 깜짝 손님이 다녀간 기분이었다.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나는 텐트앞에 앉아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애너콘다 핀들러 와일드 니스의 풍경을 감상했다. 거울처럼 잔잔한 위런 호수의 정경이 펼쳐져 있었다. 유리처럼 투명한 물속에서 셀수없이 많은 무지개 송어때가 헤엄치고 폰테로사 소나무와 미송이 평풍처럼 호수를 둘러싸고 있었다.  물기를 가득 먹음은 듯 짙푸른 고산의 폴밭에는 보라색 층층이 부채꽃이 만발했다. 그 너머로 해발 3,200m에 이르는 잔설이 눈에 띄었다. "밥 저게 뭐죠?"  "큰뿔 모양이에요. 둥글게 말린 커다란 뿔을 잘봐요."  그들이 작은 무리를 지어 돌 투성이 비탈을 가뿐이 뛰어 다니는 장면을 넋을 놓고 바라 봤다. 나는 밥을 돌아보며 물었다.  "밥, 어떻게 하면 좋을가요"  CDT를 완주한 뒤에 독일로 돌아가서 또 다시 몇년을 회사에 매여 있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면 무작정 사직서를 내고 회사와 동료들을 외면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에요"  "직장을 그만 두면 내년에 당신과 함께 에팔레치아 트레일을 종주 할수 있을지 몰라요."  "뭐라고 말좀 해봐요!"  "나더러 당신 일에 대해 무슨 말을 하라는 거에요?"  그가 퉁명스럽게 대꾸 했다. 그는 "슬슬 짐을 챙기죠. 곧 출발해야 해요"


< 2007년 7월 19~20일.  리도어, 비티구퍼 산맥 : 아이다호 > 

"젠장!" 갈림길에서 아무리 땅 바닥을 훑어봐도 밥의 신발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다려 주지 않고 가버린 것이다. 트레일에서 각자가 나름 대로의 속도로 걷는게 원칙이지만, CDT에서는 종종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트레일이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 색실을 놓치거나 다른 경로로 들어서기가 십상이었다. 그러면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서로 만날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좌절감과 근심에 젖어 비탈길을 내려가다보니 엄청난 분노가 치솟았다. 밥은 나를 기다려주는 배려조차 하지 않았을까?  15분 쯤 걸어가자 나무 들곁에 앉아 쉬고있는 밥이 보였다. 나는 화가나서 그를 향해 소리쳤다. "빌어먹을 밥! 어째서 저위에 갈림길에서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은 거에요"  길이 엇깔릴뻔 했잖아요!"  그는 나를 보드니 "그럼 좀 더 빨리 걸으시죠, 친애하는 여류 사업가님!" "당신 혼자서도 얼마든 다닐수 있을거요. 지금껏 그렇게 대단한 인생을 살았으니, 내 말이 틀려요?"  그는 큰소리로 쏘아 붙이고 굽이길을 돌아 사라졌다. 나는 밥과 관계를 유지 하는 일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서로 너무 달랐다. 육제적으로 밥이 우월했지만, 그는 나처럼 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에게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15분 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배낭을 둘러맺다. 식량이 바닥이 났기 때문에 서둘러 배노크 고개까지 가야 했다. 그곳에서 대륙 분소계와 교차되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가면 리도어 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황량한 고개위에 올라가니 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밥의 곁에 앉아 목초지의 울타리에 등을 기댔다. 그는 식수 물팩을 내게 건냈다. 물을 마시고,  "밥, 난 당신의 트레일 동반자로 적합한 상대가 아닌가 봐요. 여자보다는 당신처럼 체력이 좋고 걷는 속도도 빠른 남자와 다니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그는 내게 말했다. "두번 다시 남자와는 안 다닐거요.  혼자 걷든지, 아니면 여자와 함께 다니든지"  "어째서요?" "예전에 남자 동료들과 걸은 적이 몇번 있었는데 매번 끔찍하기 짝이 없었어요.  남자둘이 걷다보면 어느쪽에서도 휴식을 취하고 싶다거나 좀 천천히 걷자는 말을 꺼내지 않아요. 


자신이 더 빠르고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서죠.  그러다보면 걷는 일이 점점 더 경쟁으로 치닫게 되요?"  그는 "일단 리도어까지 간 뒤에 생각해 봅시다."  리어도로 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두시간을 기다렸지만 지나가는 자동차를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고도 한참 뒤에 나타난 낡아빠진 폭스바겐이 반대 방향으로 가는 중이었다. "혹시 나중에 리도어 쪽으로 돌아 가시나요?"  "그렇게는 한데, 개도 산책을 시켜야 하고 남는 자리도 없고....,"  그러나 우리는 30분을 기다린 끝에 그차를 얻어터고 리도어로 향했다. 리도어에 도착하자 우리 옷에는 개털이 잔뜩 붙어 대충 털어낸 다음 슈퍼마켙에 들어갔다. 우선 급한대로 배를 체우고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컴퓨터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는데 밥이 "바노크 고개로 돌아가는 차편을 구했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요?"  "어떤 노신사가 말을 걸더군요. 내가 배노크 고개에서 여기까지 오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하니, 돌아가는 길에 태워다 주겠다고 약속 했어요.  그런데 내일 아침에 시간이 된데요.


우리는 예배당 뒤쪽 잔디밭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냈다. 이튼날 아침 도서관 앞에서 마틴과 그의 아내 라레이를 만났다. 가는 길에 그들은 트레일에 관한 질문을 쏟아냈다. 고개에 도착후에 그들은 우리와 함께 조금 더 걷갰다고 나섰다. 이곳은 몬테나주와 아이다호 주의 경계이다. 나는 민둥산의 능선 길을 걸으며 탁트인 경관을 둘러 봤다. 파란 하늘아래 수백km 밖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우리 미국인들은 몬테나주를 '빅 스카이 턴트리(Big Sky Country)라고 부른다오"  라레이가 말했다. "마틴과 나는 평생동안 세계 방방곡곡을 누볐어요. 노후는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에서 보내고 있지만,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이곳이에요. 그리고 라레이는  "나는 다른 어느곳 보다도 여기에 있을 때 자유를 느껴요"  30분 뒤 마틴과 라레이가 작별 인사를 건네고 그는 우리에게 애틀랜타의 주소를 남기고 헤어졌다.


< 2007년 7월 23일. 대드멘 호수 근처, 몬테나와 아이다호의 경계점 >

넒은 목초지를 걷고 있을 때,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앞에 멈춰선 그는 "안녕하십니까? 어디서 오시는 길인가요?"  그는 카우보이였다. 그에게 도보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가축은 몇마리나 몰고 나녀요?"  "몇 천마리는 되죠!"  "가축들은 1년내내 바같에 풀어 놓나요?"  "아니요, 겨울이 다가오면 헬리곱타로 한곳에 몰아 목장으로 다려가요"  "목초지에서 풀을 뜯다 없어지는 가축은 보통 몇 마리 정도 되나요?"  "1년에 대 여섯마리 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장화에 왜 카우보이 박차를 안달고 있나요? 멍청한 질문 같지만 이해해 주세요. 난 독일 사람이라 진짜 카우보이를 보는게 처음이거든요."  그는 잠시 생각하드니, 그는 파란 눈으로 나를 똑바로 보며 "똥을 누다가 벌렁 넘어지는 바람에 그걸 깔고 앉은 적이 있거든요. 그뒤로 두번 다시 차지않ㄱ 되었어요!"  말을 마치고 그는 오른손을 모자챙에 갖다대며 작별 인사를 하고 말머리를 돌려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사라져 갔다.


< 2007년 8월 5일. 두보이스, 와이오밍 >

두보이스(Dubois) 근처 26번 고속도로의 주유소에서 공중전화를 발견했다. 밥이 주유소 옆의 빨래방에서 세탁을 하는 동안 나는 독일에 있는 가장 친한 친한 친구이자 내 우편물 관리인인 마이크에게 전화를 걸어 새로운 소식을 묻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앞에 우비를 입고 서 있으려니 숨이 턱턱 막혔다. 다른 옷은 죄다 새탁기에 넣어  어쩔수 없었다. 독일은 지금쯤 밤 10시였다. 마이크는 벨이 한번 울리자 바로 받았다. "이메일은 확인 했어?"  그는 인사도 않고 대뜸 물었다. "아니, 일요일이라 도서관이 문을 닫아서 인터넷을 쓸수 없었어,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는거야?"  마이크가 "그러면 천천히 이야기 하게 일단 앉아봐"  "그럴수 없어 와이오밍 주의 주유소 공중전화로 거는 거야, 햇빛에 구워지기 일보 직전이야"  "그러면 일단 심호습을 한번 크게 해!"  그가 명령하듯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야? 빨리 말해"  "좋아, 네 고용주에게서 서신이 왔어, 너를 해고 하겠데!"  나는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게 대체 무슨 반응이야! 충격 때문에 정신이 나갔어?"  "그래 좋아서 미처버릴 지경이야!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니"  나는 기쁨에 겨워 전화기에 대고 외쳤다. 지난 몇 주동안 고민해온 문제를 그에게 이야기 했다. 해고로 고민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말과 자유를 찾은 것이다.  이제 자연속을 누비며 살고픈 꿈을 실현 시킬수 있게 되었다. 내년에 AT를 종주하는 것도 가능해 졌고, 자전거로 유럽 일주를 할수도 있게 되었다. 마이크와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 놓은 뒤에야 나는 흥분으로 두손이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두번째 맞는 해고 였다. 이번 해고는 내게 최고의 기회였다. 나는 다시 독일로 전화를 걸었다. "전 고용주 풀링거에게 전화로 직접 물었다. "제가 한일 중에 실수가 있어서 해고한 건가요?"  "그럴리가요. 전혀 아닙니다."  "튀러머 씨, 부디 상호 협의를 통해 이 일을 원만하게 끝 맺었으면 합니다."  "물론이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2007년 8월 11일 ~ 14일. 냅색콜, 윈드리버 산맥 : 와이오밍 >

"밥, 더는 못가겠어요!"  해발 고도 3,700m 의 바위 투성이 상등성이를 내려 가느라 후들후들 떨였다. "엄살 피지 마요."  "밥, 무서워서 못가겠어요."  또다시 외치자, 옆에서 육중한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바위를 밟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배낭이 충격을 완화시켜 주었다. "정말 둔하기 짝이 없군요."  아래 쪽에서 밥이 질타를 했다. "제기랄 도대체 언제 내려 올 작정이오"  "이상 못 가겠다고요" 내게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원드리버 산맥은 독특한 형태여서 경관이 특이 했다. 남색콜을 거치는 이길은 윈드리버 산맥을 통과하는 수많은 경로 중의 하나였다. 나는 난이도가 낮은 경로를 택하자고 말했다. 밥은 납색콜을 두려워하는 나를 무시한 체 이쪽이 경치가 좋다고 고집을 부렸다. "배낭이리 줘요" 밥이 내 배낭을 매고 앞서 내려갔다. 배낭을 벗으니 몸을 일으키고 산 비탈을 내려 갈수 있었다. 골짜기 아래쪽에 내려와서 내 배낭을 돌려줬다. "밥, 내가 그리 대담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건 나도 알아요. 그러나 당신이 고함을 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그는 "심리적인 뭐가 어쩌고 하는 설교 따윈 집어 치워요. 서둘러야 하니까?"  그리고 그는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트레일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형편없이 적은 량의 식량이 놓여 있다. 바운스박스를 배달 시켜둔 사우스 패스 시티까지는 최소한 이틀은 더 걸어야 했다.


"큰일에요, 밥"  "나도 알아요. 당신이 그렇게 까지 느릴줄 누가 알았겠어요. 좀 더 빨리 걷기만 했어도 충분 했을 텐데"  이 말을 들으니 나는 슬슬 화가 났다. "벌써 두달이나 함께 걸었으니 내가 험한 구간을 걸을 때, 얼마나 빨리 걷을수 있을지 충분히 어림할수 있잖아요"  "식량을 다시 분배해야 겠어요."  "그런건 진작 제대로 했어야죠"  나는 그에게 쏘아 붙였다. 그는 허기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식욕을 재대로 통제하지 못해 간식거리를 일찍 먹어 치우고는 했다. 번번이 내가 간식을 나누어 주고는 했다. 무겁게 지고 다닌 식량을 , "그럼 내가 종일 아무 것도 안 먹으면 될거 아니오"  그는 서둘러 내 말을 가로 막았다. 그때 다른 도보 여행자 한명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저것봐요, 린트가 틀림 없어요"  그의 몸에는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장거리 트레일의 지도가 새겨져 있었다. 오른쪽 허벅지 앞쪽에 AT가 , 왼쪽에는 PCT가 새겨져 있고, CDT는 허벅지 뒤쪽에 새길 예정이었다. 등에는 아이스 에이지 트레일 이 그려져 있다.


"여, 왜들 그러고 있어요?"  린트가 우리옆에 털석 주저 얹았다. 이야기 뒤에 식량문제를 덧 붙였다. "아이고, 그럼 때맞쳐 잘 만났군" 린트가 배낭에서 초코바와 시리얼바를 꺼내며 말했다. "빅 샌디 로지 (Big Sandy Lodge)로 보내둔 바운스 박스를 어제 받았어요. 음식을 너무 많이 넣었지 뭐에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다 짊어지고 왔어요.  그 만약의 경우가 당신들을 만나 거군요"  그는 간식과 시리얼을 우리에게 한아름 안겨줬다. "린트, 굶어 죽기 직전이었는데, 당신이 우리를 구했어요!"  그리고 그는 일어났다. "난 오늘 이스트 템플( East Temple) 봉에 오를 예정이에요.  그럼 사우스 패스 시티에서 봐요!"  그말을 남기고 뚜벅뚜벅 멀어져 갔다.


몇일 뒤 박물관 도시 사우스 패스 시티에서 린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전 만큼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무슨일 있어요."  "아버지가 깜빡 잊고 식수 소독제를 넣지 않았어요. 다음 구간의 그레이트 디바이스 분지에서 가축용 식수 공급대의 물을 소독하지 않고 마시면 틀림없이 심한 설사를 하게 될텐데"  " 되었네요.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구해줄 차례에요"  "제게 남은 소독제가 있어요."  나는 그에게 작은 플라스틱 팩 두개를 주었다.  린트가 뛸듯이 기쁘했다. 그는 웃으며 "트레일이 우리를 보살필지어다. 그게 정답이에요. GT 씨" 그는 스루 하이커들의 오랜 금언을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