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백수의 일상 - 327. <『The Greatest Generation(위대한 세대)』>

paxlee 2022. 1. 14. 05:59

1, 그들이 살았던 시대.

 

『The Greatest Generation(위대한 세대)』는 20세기 미국의 국민들이 대공항과 제 1,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들의 국가관과 국민성을 적나나하게 보여주는 기록으로 소설보다 더 사실적이고 다큐멘타리의 정수를 보여준다. 국가는 젊은이 들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져줄 것을 기대하였다. 미국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첨단 국가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1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생산력은 자동차산업, 통산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베이브 루스, 유진 오닐, D.W 그리피스 같은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이끌어 갔으며, 스코트 피츠베랄드 같은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했다.  

 

세계는 변화의 바람이 급속도로 불어왔다. 1920년은 미국에 행운이 깃던 해였다. 미국의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여 1억 600만을 넘어섰다. 경제가 성장하자 농촌에 살던 사람들이 도시로 급격하게 몰려왔다. 여성은 19차 수정헌법의 통과로 투표권이 주어졌다. 경제가 발전 되면서 최초로 정규 라디오 방송국인 피츠버그의 KDKA 방송국이 미국 중부 전역에 방송이 시작 되었다. 그때 러시아에서는 볼세비키 혁명이 피를 부르고 있었다. 그후 1920년도에 태어난 미국 아이들은 그 어느때보다 더욱 유복하고 기회가 넘치고 신나는 인생을 살았다. 

 

'조용한 카알'이라고 불리우는 '칼빈 쿨리지' 대통령은 은행가와 기업가, 투기업자들이 결정하는 대로 나라가 움직여가는데 만족하여 백악관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때 <뉴욕커>잡지가 창간되어, 자유를 찾는 복장과 행동하는 플래펴들은 찰스턴의 새로운 춤을 추었으며,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캐츠비』를 썼다. 테네시 주에서는 스코프스 과학 교사가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기도 하였다. 진화론 대 창조론을 놓고 스코프스의 변호사인 '클라란스 대로우'와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의 열정적이고 극적인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미국 32대 프랭클린 D.루스벨트 대통령

 

그렇게 미국의 경제와 사회와 문화가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주식 시장은 1929년의 대폭락을 만회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러기엔 타격이 너무컸다. 소득은 급격히 감소했고 1,300여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다.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했고 459만 명이 아무 대책없이 거리로 내몰렸다. 겨우 499달러 남짓한 돈이 미국 농가의 한해 평균 소득이었다. 당시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는 갈수록 확산되는 경제난에 직면해 마치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는 엄격하고 차가운 사람이었고, 공학과 경영의 천재라는 그의 명성은 그 어느 때보다 투터워진 빈곤층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에 대한 잔인한 비아낭으로 급속히 바뀌었다. 

 

그때 헨리 루스는 비지니스 전문 잡지 <포천>을 창간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와 미국 항공사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로우엘 토마스는 NBC와 CBS에 전국적으로 심야 라디오 뉴스를 시작하였다. 당시 바다 건너에서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러시아의 조셉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이 세계를 뒤바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뉴욕 주지사인 프랭클린 밀라노 루스벨트가 193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유세를 계획 중 이었다. 1933년경에 1020대에 태어난 10대들의 장래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경제사정이 악화되니, 농작물 생산도 극심한 가뭄으로 악화되었다. 그들이 손에 쥔것은 젓소 한마리와 자존심, 그리고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한다는 굳은 결의 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하고, 지방 우체국에 취직해서 하루 1달러를 받고 일했다. 그래도 집근처의 곡물창고에서 시간당 10센트의 노임을 받았던 그녀의 아버지보다 벌이가 나은 편이었다. 집없는 실직자들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일자리를 찾아서 혹은 구호 물품을 얻기 위해 미국의 거리를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 소득이 전혀없는 사람이 3천만명이 넘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제32대 대통령으로서 취임 선서를 하면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미국인들을 위해 뉴딜 정책을 펼 것을 약속했고, 1500만명의 실업자를 안고 있는 미국을 향해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오직 한가지, 그것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그는 비상 금융법 , 연방 비상 구호법, 전국 산업 부흥법을 통과 시켰고, 1935년에는 사회보장제도가 될 법령을 제정했다. 그러나 누구나 다 기뻐하고 만족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듀퐁사를 이끌어가는 부유한 미국인들, 제너랄 모터스의 설립자들, 백만장자 석유 기업가들은 뉴딜 정책에 방해하기 위해 자유 연맹을 결성했다. 개인적으로 루즈벨트는 자신이 속한 상류 사회에서는 반녁자로 낙인 찍혔다. 

 

1930년대 말 미국에서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로 광범위한 라디오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는 '찰스 코플린' 신부가 노골적으로 반유대주의를 전했다. 루이지에나 출신의 뛰어난 인민주의자 '휴이 롱'은 월가의 악폐와 기업의 탐욕에 맞서나갈 젊은이의 힘에 대한 독특한 스타일의 연설로 처음에는 주지사에 그 후에는 상원 의원에 당선되어 세력을 얻었다. 1938년에는 전쟁의 화염이 세계 곳곳을 뒤덮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장악했고 반유대운동은 독일 영토내에서 모든 유대인의 사업을 파괴하는 악의적이고, 계획적인 운동인 크리스탈나하트와 함께 더욱 격렬해졌다.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에서 야만적이고 살육적인 전쟁을 계속했다. 스탈린은 여론조작을 위한 공개 재판을 주재했고 공산당 내의 자신의 정적들을 즉결 처형했으며, 수천명을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냈다. 이 시기에 영국의 총리 '내빌 채임벌린'은 뭔헨에서 히틀러와 맺은 협상으로 자신이 나라를 구했다고 믿었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우리 시대의 평화가 달성될 것을 믿습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말입니다." 그러나 둘다 착각이었다. 

 

미국에서는 재선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가 경제를 살리려는 지속적인 노력과 나라 밖에서서의 위험스러운 사태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의회는 공정 노동 규약을 통과시켜 근로 시간과 최저 임금을 법으로 규정했다. 의회는 공정 노동 규약을 통과시켜 근로 시간과 최저 임금을 법으로 규정했다. 연방 정부는 농부들에게 패리티 가격제를 적용했고, 외국에 대한 밀 수출에는 보조금을 지급했다. 

 

1940년대 나치는 프랑스, 벨기에, 내덜란드, 룩샘부르크, 덴마크, 노르웨이와 루마니아를 점령했다. 동쪽에서는 스탈린이 러시아와 공산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지상군을 키우고 있었다.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어 추축국이 되었으며 그 추축국을 중심으로 40년대가 끝나기 전에 자신들이 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은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3선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는 수출 관리법을 통과시켜 군수 물자의 해외 수송을 막았다. 지프가 새로운 군용 운송 수단이 제작되기 시작했고, 전투기가 개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