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야기

백수의 일상 - 468. <雲峴宮(운현궁)은 칠궁과 함께 별궁이다>

paxlee 2022. 5. 14. 07:05

雲峴宮(운현궁)은 조선의 5궁에는 속하지 않으나, 그 부속 별궁에 속한다. 
5궁은 경복궁(慶福宮), 경희궁(慶熙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덕수궁(德壽宮)을 말한다. 

5궁 이 외에 별궁으로 운현궁과 칠궁이 있다. 

 

운현궁은 이하응의 사저였다. 운현궁은 후사없이 사망한 철종의 뒤를 이어 대원군의 둘째 아들 고종이 왕으로 등극하게 되면서 국왕의 潛邸(잠저)가 되었다.

이하응은 대원군으로 봉작 되었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고종을 輔政(보정) 한다는 명분 아래 운현궁에서 궁정 운영에 깊이 관여하였다. 운현궁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러진 곳이다.

별궁으로 사용되어 각 방의 조세가 모이는 종친부의 중심이 되었다. 1873년 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하는 최익현의 상소로 대원군이 실각하면서 운현궁의 권위는 실추 되었다.

운현궁은 대원군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치적 부침을 거듭한 영욕의 세월을 함께 하였다. 

 

老安堂(노안당)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가 썼지만 추사의 필체이다.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체로 흥선대원군이 거쳐하였다. 
 

老樂堂(노락당)은 운현궁의 안체이다. 별다른 장식이 없다. 기둥마다 옛 글이 붙어있는 것이 특이하다. 대원군이 좋아하는 글귀들이라 한다. 

 

이로당은 노락당과 함께 운현궁의 안체로 안쪽에 위치한다. 대원군 부인 (부대부인) 민씨가 거쳐하던 곳이다. 
노락당과는 뒤로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궁궐과 같이 복도 아래 통로가 있다. 
 

운현궁에는 老安堂(노안당), 老樂堂(노락당), 二老堂(이로당), 이렇게 세 건물이 주축이 되어있다. 

마당에 돌로 만든 절구통이 있고, 한쪽에는 우물샘이 있다. 

좌측 문은 옛날 서빙고와 같은 얼음 창고가 있고, 넓은 돌로 만든 茂承臺(무승대)에는 난을 올려 놓았던 臺(대)라고 한다. 

집 뒤에 양식집은 옛날에 운형궁에 속한 건물 이었는데, 직계 후손이 개인에게 불하하여 지금은 개인 소유이다. 이 건물이 드라마 도깨비를 촬영한 건물이었다고 한다. 

 

운현궁 유물 전시관이 있다. 

위 사진은 명성왕후가 기거하던 방을 전시한 곳에서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