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755. <‘웜비어 첫 장학생’ 이서현씨 인터뷰>

paxlee 2022. 8. 31. 00:16

웜비어 첫 장학생 이서현씨 “‘대동강의 기적’ 발판 만드는게 꿈”


평양 출신 美컬럼비아 대학원생, TED 강연서 북한 실상 알려
“일부 한국인, 노동신문에 세뇌돼 北지도자가 인민에게 진심인 줄”

 

이서현씨가 지난 6월 UCLA에서 열린 강연 플랫폼 테드(TED) 행사에서 북한에서의 삶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대동강의 기적을 이뤄낼 발판을 설계하는게 꿈”이라고 말

했다. /TEDxTalks 유튜브

 

북한 여행 중 억류됐다가 2017년 6월 미국 송환 직후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씨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오토 웜비어 재단’은 지난 24일 첫 장학금 수혜자로 평양 출신의 탈북민으로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관계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서현(31)씨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웜비어씨의 부모는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이씨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이것이 “북한 정권에 강력한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2017년 6월 미국 송환 직후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씨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오토 웜비어 재단’의 ‘웜비어 첫 장학생’으로 선정된 평양 출신의 탈북민 이서현(31)씨.현재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북한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이씨는 북한인권위원회(HRNK)와의 인터뷰를 통해 탈북이유와 북한인권에 대한 바람을 말했다./HRNK

 

과연 어떤 꿈일까. 27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이씨는 “북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찾아주고, 남한 사람들이 단 반세기 동안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것처럼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어 낼 발판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워싱턴DC에서 열린 북한 인권 행사에서 웜비어씨 부모를 만나서도 “김씨 정권의 야만적 만행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도록 북한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2500만 북한 동포들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인권을 존중받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세우기 위해 미국에서 열심히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씨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통치 자금 관리와 외화 벌이 무역을 담당하는 노동당 39호실의 고위 관리 리정호(리씨는 북한 본명을 사용하고 자녀들은 탈북 후 개명했다)의 딸로 평양에서 태어났다. 이씨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아내 리설주가 졸업한 금성학원에서 초등 과정을 마친 뒤 평양외국어학원을 거쳐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를 2년 다녔다. 이후 아버지가 다롄 주재 대흥무역총회사 지사장을 지낼 때 다롄의 동북재경대학으로 유학 가 2014년 7월 졸업했다. 그러나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을 전후해 이어진 잔혹한 숙청을 지켜본 일가족은 2014년 10월 한국으로 탈북했고, 2016년 3월 미국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이씨는 유튜브 ‘평해튼(Pyonghatton·평양+맨해튼) TV’ 등을 통해 오빠 현승(37)씨와 함께 북한 실상을 알리는 인권 운동을 해왔다. 이씨는 지난 6월 UCLA에서 열린 강연 플랫폼 테드(TED) 행사에서 중국 유학 시절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됐다며, 함께 공부하던 룸메이트가 하루아침에 보위부 요원들에게 끌려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너무나 착하고 사랑과 배려심이 많은 친구였다”고 회고하는 이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친구에게는) 아버지가 장성택의 직속 사무실에서 근무했다는 죄밖에 없었다”며 “2013년 12월 초 보위부 요원들이 기숙사에 찾아와 백팩 하나만 멘 친구를 데려갔다”고 말했다. 2시간 후 친구에게서 “아무래도 나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소지품 좀 보관해 줘. 전화기는 버린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것이 마지막 연락이었다. 친구 아버지는 처형당하고 어머니와 남동생까지 모두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다는 소식은 나중에 들었다.

 

이씨는 “이전까지는 나처럼 해외에서 공부한 학생들, 아버지처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북한도 잘사는 나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며 “하지만 (일련의 처형과 숙청으로) 북한 독재자에게는 결국 엘리트든 일반 주민이든 북한 2500만명 모두가 다 일회용 배터리 같은, 소모품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 후) 북한을 경험하지 않은 일부 한국, 미국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북한의 선전 매체인 노동신문을 계속 접하다 보니 오히려 그분들이 역으로 세뇌를 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북한 독재자가 진심으로 인민을 위하고, 북한이 그래도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가’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더라. 거짓말도 100번 하면 믿게 된다고…”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북한에만 있었다면 물고기가 자기가 물속에 있는 줄 모르듯이 내가 어떤 환경에 있는지도 전혀 의식조차 못 했을 것”이라며 “중국에서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서 북한 시스템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보를 유입해 주는 것이 가장 빨리 북한의 변화를 불러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조선일보 / 2022.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