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764. <'文 골수지지' 손절해버린 아들, 국힘도 그렇게 망가지고 있다.>

paxlee 2022. 9. 1. 05:36

'文 골수지지' 손절해버린 아들, 국힘도 그렇게 망가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배경은 국민의힘 의원총회. 

그래픽=김현서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윤석열과 이재명이 맞붙었던 지난 대선을 앞두고서였다. 대학원 시험이 코앞인 지난 2016년 엄동설한에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시위에 22번이나 참석하는 등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골수 지지자였던 큰아들이 국민의힘에 투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들은 "나를 이해하려면 이준석을 공부하라"고 했다. 아들이 진작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건 알았지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투표할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 없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들은 단순히 민주당이 미워 홧김에 국민의힘 후보를 찍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준석일까.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아들이 대체 왜 혐오주의자에, 포퓰리스트, 자기 정치를 위한 갈라치기에만 능한 싸가지없는 이준석을 지지했을까. 편견 없이 그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전 대표에게 붙은 온갖 낙인은 사실 조금만 검색해봐도 크게 과장됐다는 걸 알 수 있다. 구체적 내용은 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그 스스로 이런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한 것이나, 국민의힘이 지금 그로 인해 지금 대혼란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다. 예의 바르게 물러나는 대신 그가 싸가지없게 법적 대응을 하면서 빚어진 일이니 하는 말이다.
   

이 전 대표는 그를 대표직에서 끌어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하며 기자회견까지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당 안팎의 '선당후사'(당이 우선이니 개인의 이익은 훗날 도모하라) 요구를 거부하며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국민의힘을 넘어 이제 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도 불태워버려야 한다, 오로지 자유와 인권의 가치와 미래에 충실한 국민의힘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비대위 전환의 의도는 반민주적이었고 모든 과정은 절대 반지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의 의중에 따라 진행되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가처분 신청을 했다고 했다.
   

과거 거대 정당, 특히 보수 정당일수록 보스를 일사불란하게 뒤따르며 질서 있고 안정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겉으로는 당정분리를 내세우지만 뒤로는 대통령이 부당하게 공천권을 휘둘러도 선당후사의 자세로 승복했다. 그런데 이 전 대표는 이런 과거의 정치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걸 이해하려면 그의 주 지지층인 20~30대 청년의 이념적 지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박지호 교수(대만국립대 경제학과)는 페이스북에 "이준석 현상은 세계사적으로 독특한 자유주의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풀어서 설명해보자. 자유주의는 19세기 서구에서 왕정이라는 구체제를 거부하고 의회라는 대의제를 통해 왕을 견제했던, 개인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사상적 토대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젊은 층 사이에서 벌어진 공정에 대한 요구와 젠더 갈등, 능력주의 담론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사태 등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난 일련의 퇴행적 사건과 결합해 좀 더 두드러져 보였을 뿐이다. 실은 이준석으로 대변되는 이 시대 청년은 유교적 가부장 문화 속 권력(그리고 이의 상징인 국가)으로부터의 자유를 요구해왔다. 이게 핵심이다.
   

그리고 지난 정부 출범과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 한마디에 인천국제공항(인국공) 비정규직을 일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이대남과 문 정부와의 충돌이 본격화했다. 당시 많은 언론이 공정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갈등의 주된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의 인국공 방문일이 정규직 전환의 기준점이 됐다는 사실 말이다. ‘문재인이 왕이냐’ ‘대통령이 (독재자) 김정은이냐’는 이대남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런 목소리를 대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게 이준석이다. 이념의 동질성으로 이대남이 이준석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념이 아니라면 이준석의 어떤 성향이 이대남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020년 8월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인천공항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방적 정규직 전환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스1]

 

이준석은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건 책임이라고 단언한다. 정치지도자는 불리하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담론에 입장을 밝히고 토론해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다른 정치인들이 혐오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 여성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얽힌 쟁점을 회피할 때 그는 정면으로 부딪쳤다.
   

당 대표에서 쫓겨나는 과정에서 이준석이 보여준 행동은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난 평소 정치의 사법화는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준석이 만약 비민주적인 비대위 구성을 문제 삼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도 당원의 지지를 받는 당 대표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리고 법원은 이런 상식을 확인해줬다.
   

국민의힘이 최근 비대위 구성과 관련해 보여준 일련의 혼란상은 한 마디로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20세기 방식의 수직적 보수, 그리고 특권과 반칙을 거부하며 투명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21세기 수평적인 보수 간의 문화적 충돌이라고 생각한다. 청년이 옳아서가 아니라, 청년은 시대정신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또 정당의 지지기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런 점을 간과하고 당장 총선 공천을 위해 영원히 죽는 쪽을 연거푸 택하고 있다. 의원총회에서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당헌·당규를 바꿔 새 비대위를 띄우고, 이준석의 추가 징계를 요청하기로 했다니 하는 말이다. 국민의힘은 청년층의 이준석 지지가 허상이라면서 그를 제거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그들에게 큰아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준석 없는 국민의힘에 표를 줄 생각은 전혀 없다. " 이렇게도 덧붙였다. "물론 제기된 성 상납 의혹으로 이준석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이준석에 대한 지지도 접는다. "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

위원회 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세상도 국민 시선도 달라졌다. 내부총질로 파열음이 당 밖으로 나오면 큰일 난다는 식의 진영논리는 설 자리가 없다. 일관된 방향성은 중요하지만 때론 정책에 대한 당정 간 이견과 비판이 오히려 정부는 유능하게 만들고, 정당은 더 민주적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역행해 진영과 다른 생각을 핍박했던 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한 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Opinion : 조기숙이 고발한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중앙일보. 2022.09.01. 

이화여대 교수.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홍보 수석 비서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