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민주화’ 다음이 ‘저질화’
싸움에도 수준이 있는데, 수준 낮은 사람들끼리 與는 수준 낮은 내분.
野는 수준 낮은 투쟁, 더 나은 정치로 가는 잠시의 진통이기를 바란다.
요즘 여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무엇보다 그 수준이 낮아 혀를 차게 된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싸우는 것 자체도 희한하지만 그 내용이 ‘내부 총질’ ‘체리 따봉’ ’푹 찔러’ 등 민망할 정도다. 과거 대통령 주위의 실세들은 경험 경력 능력 품성 등에서 다른 의원들을 이끌만한 역량이 되는 사람이 많았다.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과문한 탓인지 현 정권 실세들을 그렇게 따르는 의원은 아직 보지 못했다. 진심으로 그들을 존중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다음 공천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것뿐이란 인상을 받는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을 ‘오합지졸’이라고 한다. 오합지졸이 이준석 한 명을 어쩌지 못해 매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권성동(왼쪽에서 셋째) 원내대표, 주호영(윤 대통령 오른쪽)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지난 25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구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오미자 주스로 건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을지연습 기간임을 고려해 이날 술은 금지했다. /뉴시스
국민의힘 사태는 정치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불길하다’거나 ‘찜찜하다’는 느낌은 가졌어야 한다. 이준석에 대한 징계나 비상대책위를 만드는 과정을 볼 때 이준석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법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를 지적하고 건의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법원이 이준석 손을 들어 주는 날 당 연찬회를 열고 웃다가 졸지에 찬물을 뒤집어썼다.
이럴 정도로 대통령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기업이었으면 전원 해임이다. 정치로 해결할 문제를 법으로 붙들고 아직도 씨름하고 있다. 대통령실 구성도 수준이 낮으니 취임 석 달 만에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바꿔야 한다. 총체적 수준 미달이다.
국민의힘이 드러내 놓고 서로 싸운다면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서로 싸우고 있다. 치열함은 막상막하라고 한다. 이낙연 전 대표의 정치 복귀와 이재명 대표와의 재대결은 피하기 힘든 수순인 것으로 보인다. 양 진영 사이의 적대감이 그만큼 크다. 현재 세력에서 밀리는 이낙연 측은 이번 전당대회를 포기하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기회가 오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근거가 뭐냐’는 물음에 ‘저 쪽(이재명 측) 이너 서클 수준이 낮다’고 답한다. 그들을 잘 모르니 ‘수준’을 알 수는 없지만 한국 정치에서 이례적인 그룹인 것은 사실인 듯하다.
민주당 주류만이 아니고 현재 양대 정당 모두가 이례적이다. 국민의힘의 실질적 중심인 대통령이 정치 경험이 없다.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4회 연속으로 잘못된 공천을 했다. 그 결과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치적 의지, 실력, 노력에서 역대 최저 수준에 있다. 그런 당이 의석수조차 적으니 체격, 체력, 머리 모두 수준 미달이다.
민주당 대표는 많은 국민에게 ‘범법 혐의자’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우리 정치 역사에 이런 적은 없었다. 대선 패배 두 달 만에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다시 두 달 만에 당대표에 나선 것도 이 범법 혐의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비친다. 이 역시 처음 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법과 당헌을 밀어붙이고, 아내의 경찰 출석에 물타기를 한다고 돌연 대통령 부인 특검을 꺼내 드는 것을 보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수준’이다. 민주당 수준이 이렇지는 않았다.
한국 정치는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로 넘어왔다. 시대마다 소명이 있었고 그를 완수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산업화, 민주화 다음에는 그 이름이 무엇이든 ‘수준 있는’ 정치가 올 것으로 믿고 기대했다. 그 기대는 차츰 깨지고 있다. 점점 더 수준 낮은 인물들이 정치를 하니 여(與)도 막가고, 야(野)도 막간다.
국민의힘이 지리멸렬하는 것은 좋은 정치 자원이 충원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부터 성장하는 시스템이 없으니 출세주의자들만 북적거린다. 어느 분야든 A급 인재는 정치를 외면한다. 당에서 대선 후보도 못 내고 외부에서 와야 했다. 이준석의 등장으로 청년 정치가 모처럼 뿌리를 내리는가 했더니 최악으로 가고 있다.
민주당은 ‘운동권 이후’가 없다. 한국 운동권은 20대부터 정치를 한 집단으로 정치 기술은 갖고 있었으나 운동권 정치가 수명을 다하고 막을 내리는 지금, 민주당엔 ‘민주화 된 뒤에 민주화 운동 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민주당과 그 주변에서 위세를 부리는 몇몇을 보면 ‘저질’이라는 말밖엔 할 수 없다.
여야 모두 이런 처지라면 앞으로 ‘정계 개편’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은 처음부터 국민의힘에 큰 애정이 없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 이낙연의 대립이 원심력이 될 수 있다. 수준 낮은 정치가 이합집산까지 될지도 모르겠다. 산업화, 민주화 다음에 온 ‘저질화’가 더 나은 정치로 가는 잠시의 진통이기를 바랄 뿐이다.
[양상훈 칼럼]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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