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산서를 읽는 즐거움 -

paxlee 2005. 9. 11. 07:45

                     -* 산서(山書)를 읽는 즐거움 *-

 


장 코스트가 쓰고 손경석 님이 번역한《젊은 알피니스트의 마음》은 장 코스트의 산에 대한 단상들을 필자의 감동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산에서 경험했던 바를 그대로 옮긴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프랭크 스마이드가 쓰고 박성용 님이 번역한《
산과 인생》은, 지금도 가끔 열어 보면서 흐트러진 정신을 잡아주는 내 삶의 등대같은 고전이다.

 

산을 알고 이해하는 단계를 뛰어 넘어 산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보물들을 찾아내는 희열과 보람을 선사한다. 산에서 찾는 삶의 진실과 그 깊은 의미는 반복해서 읽을수록 맛과 향이 더해진다. 먹이를 찾는 야생 짐승처럼 산서는 갈증의 대상이었고 폭식의 충실한 메뉴가 되었다.


이렇게 산서에 시나브로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등산이라는 행위 자체가 철저히 움직이는 것이지만 책을 통해 다른 산악인들의 사상과 수평적으로 교류하면 완성도 높은 등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또한 시간과 공간이 주는 한계를, 독서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고 감정 이입을 통해 산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기회도 갖기 때문이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과 이유는 사람의 얼굴 만큼 각각 다르다. 등산은 올라갔다 내려오는 단순 동작의 반복으로 이루어지지만, 산에 머무는 시간에는 무한한 상상력이 가동된다. 그때의 시간들을 자신만의 영원한 순간으로 간직하고자 기록을 남긴다. 높이가 낮은 근교 산이든 해외의 고산 원정이든, 등산을 좀더 품위 있고 휴머니즘이 풍부한 행위로 발전시킬 수 있는 근거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산서는 산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하여 산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다. 산의 절대적인 존재에 도전하는 인간이, 그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역사를 기록한 감동과 외경의 서적들이다. 산서에는 대자연의 감동과 경이로움이 있고, 저자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교감을 통해 풍요로운 정서와 깊은 내면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산서에는, 산에서 겪게 되는 위험과 곤란
평화와 아름다움 구름과 나무 바위와 얼음 눈과 들꽃 들만 있지만, 결코 화려한 칼라로 유혹하지는 않는다. 사람과 산이 만났을 때의 놀라운 경험이 계속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순수한 영혼들의 빛깔과 진정한 모험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등산에 초보자이든 베테랑 전문 등반가이든, 산서에는 우리가 산에 있지 않더라도 흥분과 감동의 세계로 몰아 넣고 환각 상태로 빠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숨어 있다. 장 코스트가 묘사한 알피니스트의 소박한 정서부터 라인홀트 메스너의 드라마틱한 다큐멘터리는,
그 어떤 문장의 작법이나 미사려구 연출도 흉내 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인간 의지의 大 전시장이다.

죠센 헴렙의
《 Ghosts of Everest 》를 통해 1924년 에베레스트에서 조지 말로리와 샌디 어빈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는데, 말로리와 어빈이 선택한 최고의 등반 장비는 그들의 용기와 의지였다. 『1999년 5월 1일 오전 11시45분, 콘래드 앵커가 에베레스트 북벽 8,160m 지점에서 조지 말로리의 시체를 발견한다.

 

탐사 대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말로리의 시체는 엎드린 자세였고 두 팔은 위를 향해 뻗어 있었고 부러진 오른쪽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두 다리는 서로 교차되어 있었다. 그는 탈진해서 앉아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떨어지면서 계속 제동을 하였고 추락이 멈추었을 때 한동안 살아 있었던 것 같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75년간의 전설을 불과 45분 만에 묻은 5명의 탐사대원들은 당시를 회상한다. ‘어느 누구도 말로리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편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좀더 머물고 싶었다.’』

1996년 5월, 에베레스트에서 벌어진 대참사의 비극을 소개하며 안내등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존 크라카우어의《 Into Thin Air 》는, 8000 미터라는 고도가 삶과 죽음의 가느다란 실낱같은 경계선 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상에 가까워 지면서 고객들을 돌아서게 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정상이 눈 앞에 보이면 고객들은 기필코 오를려고 고집을 부립니다. 기상과 체력 조건, 하산에 필요한 시간 등을 고려하여 하산을 권유하면 면전에서 코웃음을 치고 마냥 올라가기만 합니다. 8000 미터에서 저산소증으로 인한 치매현상은, 판단의 정확성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7만 달러라는 거액을 지불한 고객들은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경험있는 가이드들의 판단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상에 오르게 해달라는 의미로 만용을 사게 됩니다.’ 등정 후 하산하면서 갑자기 몰아닥친 강풍과 추위, 저체온증, 산소부족 등으로 대참사가 발생하였다.

 

하나 둘 죽어가는 대원들을 보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좌절 절망 공포 등을 체험하면서 자연의 위대함보다는 인간의 무력함에 전율한다.』

《 Himalaya Alpine-Style 》을 저술한 스티븐 베나블은, 히말라야 거벽에서 알파인 스타일로 도전한 경이로운 등반들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등반의 의미를 정리했다.『익스트림 어드벤처, 극한의 모험은 산악인이 간직하는 영원한 테마일 것이다. 등반계획을 세울 때는 예측 가능한 위험 요소를 포함해서 이성적이고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친다.

 

합리적인 모험을 진행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 환경적인 요인이 클라이머 개인의 정신적육체적 한계와 겹치면서 극한의 모험으로 치닫게 된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고 그 극한의 모험을 피하거나 타협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 시대마다 직면하는 일정 수준의 한계성이 있고, 그 한계에 신중히 도전하면서 등산의 역사는 전진을 계속하여 왔다. 순간순간 접근하는 조난을 인지하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확신을 갖고 도전하는 정신적인 평형감각이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극한의 모험을 합리적인 모험으로 진행시키는 등반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미국의 신예 클라이머 마크 트와이트는《 Extreme Alpinism 》에서 훌륭한 등반가의 조건을 제시했다.

훌륭한 등반가는 뛰어난 체력과 기술의 소유자라기 보다는, 자신의 육체를 외부의 자연 조건과 환경에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진 자이다. 위대한 등반가는 도전하는 대상에 맞게 자신의 성격조차 새로이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의 소유자이다. 그들은 난관을 만났을 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통제하면서 목표를 향해 지독하게 집중한다.

 

이러한 강인한 의지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이해하고 육체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통렬하게 깨닫는 과정에서부터 길러진다. 산은 자연의 힘과 비밀의 환상적인 걸작이다. 등반에서의 실수와 경험을 통하여 정확한 자기반성을 치열하게 반복해야 한다.

 

등반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곧 등반가 자신의 변신과 성격 개조의 과정이기도 하다. 추위와 고통, 죽음에의 공포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과정은 철저하게 인간 의지의 영역이다.』

영국의 작가 데이비드 로스는, 스코틀랜드의 여성 클라이머 앨리슨 하그리브스의 삶과 죽음을《 Regions of the Heart 》에 정리하면서 등반가로서의 그녀를 조명했다.『1995년 5월 1일, 앨리슨은 여성 최초로 산소통과 셀파의 지원없이 단독으로 에베레스트 북릉을 통해 등정에 성공한다.

 

3개월 후 그녀는 K2를 역시 같은 방식으로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다 갑작스런 폭풍에 희생된다. 이 기록적인 등반의 성과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어렵고 위험한 K2에 도전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다.’라는 언론의 비판으로 퇴색한다.

 

 그녀가 깎아지른 공포와 죽음의 지대에서 얻은 자유와 성취, 그 꿈을 찾아가는 여자의 모습, 결혼생활의 불화와 갈등으로 파탄을 맞는 아내의 모습, 이혼 후 아이들과의 생활을 위해 생계수단을 확보하고 경제적인 자립을 해야하는 엄마가 선택한 직업은 전문 등반가,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은 항상 그녀를 괴롭혀 왔다.

 

앨리슨이 계획한 경이로운 등반들은 이런 혼란스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그녀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아들 톰과 딸 케이트가 있다. K2를 등반하며 앨리슨은 한 시도 그들을 잊은 적이 없고, 이번이 마지막 원정등반이라며 다짐했고, 고른 숨을 쉬며 자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아이들과 K2 모두를 원했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아이들에게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K2를 등정한다면 아이들에게는 더욱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리라고 믿었다. K2 정상을 밟고 하산하는 순간부터 폭풍이 그녀를 휘감은 순간까지가 앨리슨이 누린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직 누구도 밟아보지 못해서, 또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유혹하는 지구 위의 공백지대…. 히말라야
파타고니아 알래스카 알프스의 어느 한 지점을 응시하는 클라이머의 눈빛…. 지금도 삶과 죽음의 끈적한 독백으로 모험에 도전하는 등반가들의 인생…. 그 모든 것이 가득한 산서를 잡는 손은 언제나 흥분과 설레임으로 작게 떨린다.

 

                       - 소나무가 읽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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