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산악인 고상돈 *-

paxlee 2006. 12. 30. 14:57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고상돈[高相敦,1948.12.29~1979.5.29]은 1970년 3월 대학산악연맹 회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한국일보사와 대한산악연맹이 공동으로 후원한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대장 김영도, 대원 19명)의 제주대표로 참가하여  1977년 9월 15일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성공하였다. 그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으며 청주상고를 졸업하고, 청주 전매청 연조제조창에서 근무하면서 청주대학교 경영학과 2년을 수료하였다.  

 

1977년 구성된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2차 공격조로서 셰르파(Sherpa) 펨바 노르부와 함께 9월 15일 낮 12시 50분(한국시간 오후 4시 30분)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정상을 출발한 지 7시간 20분간의 사투 끝에 정상을 정복하였다. 등정을 마치고 무전을 통해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고 했던 당시의 말이 유명하다.

 

당시에는 원정대의 장비상황이 열악하여 1차 공격조이던 박상렬 부대장이 28개의 산소통을 다 쓰면서도 정상 앞 100m 지점에서 실패하여 그의 등정이 힘든 상황이었으나 에베레스트산 기슭에서 프랑스 원정대가 버리고 간 신품 산소통 12개를 그가 주운 것이 정상을 정복하는 데 결정적인 행운이었다. 그는 정상에 1시간 가량 머물면서 1976년 설악산 동계훈련을 받다가 눈사태를 만나 숨진 최수남·송준송·전재운의 사진을 만년설에 묻었다.

 

1971년 네팔정부에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신청을 내면서 시작된 에베레스트 원정은 무려 6년에 걸쳐 도전한 끝에 그에 의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며, 한국은 국가별로는 세계에서 8번째, 등반팀으로는 14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국가가 되었다. 또한 세계에서 처음으로 몬순(계절풍) 기간인 9월중 등반과 21일간의 고속 캐러밴 등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다.

 

그는 대한산악연맹 충청북도지부 이사로 있으면서 1979년 북아메리카 최고봉인 알래스카산맥의 매킨리산(McKinley;해발 6,194m) 원정대에 참가하여 1979년 5월 29일 등정에 성공하였으나 이일교와 함께 5월 29일 하산하다가 자일 사고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이때 박훈규는 중상을 입었다. 이로써 그는 영원한 산사나이로 한국 산악계의 전설이 되었다.

 

영국의 산악인 멀로리 경은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느니까"라고 답했다. 기자들의 짓궂은 질문에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이라는 해석도 있지만,그의 답변은 명언이 되어버렸다. 유럽의 철학은 성벽에서 나왔고,인도의 철학은 숲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다. 산은 말없는 말,즉 침묵의 언어로써 인간을 가르치기 때문에 사색과 명상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조병욱 박사는 "산은 자연의 철학자며 우주의 교육자"라고 찬탄했고,고은 시인은 "사랑을 하려면 5월의 산에서 하라"고 권했다.

 

고상돈씨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때는 1977년. 이제는 한국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좌를 완등하거나 7대륙 최고봉과 남·북극점을 다녀오는 산악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했다. 장비와 기술이 개발되어도 대자연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법. 불굴의 의지가 아니고는 극복하기 쉽지 않다. 그분은 한번도 산을 정복했노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 단지 산이 오르는 걸 허락 했노라고,,,

 

대한민국 산악인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친 故고상돈씨가 하늘나라로 간지 정확히 26년만에 부활했다. 스스로 부활한 게 아니라 그를 아끼는 동료 산악인들에 의해 부활됐다. 고상돈씨가 잠들어 있는 1100도로(제2횡단도로) 휴게실 옆에서는 미망인과 가족, 생사를 같이했던 동료 등 100여명이 모여 동상 제막식 및 26주기 추모제를 가졌다.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딸 고현정씨(26)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26년만에 먼길을 달려왔다. 미망인 이희수 여사(54)는 제 남편을 부활시켜주신 모든 산악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현정이가 아빠를 그리워할 때마다 부활하신 당신에게 보내겠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고상돈씨와 맥킨리 등정에서 최후를 같이 했던 박훈규씨(58)는 동갑내기였던 상돈이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산 사나이들의 표상이었다1977년 에베레스트 정복이 밑거름이 돼서 지금은 대한민국 산악인들이 세계를 정복하게 됐다고 말했다.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등반대를 이끌었던 김영도 당시 대장도 지금도 세계 최고봉을 향해 험난한 길을 떠나던 (상돈이의)모습이 선하다상돈이는 우리들에게 고귀한 희생정신과 진정한 용기를 심어줬다고 회고했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산악인들은 제주도산악연맹 회장을 역임한 김영훈 제주시장이 한라산 1100도로의 이름을 고상돈 도로로 바꿔나가자는 제안에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고씨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9월15일이 산악인의 날로 지정될 정도로 고상돈씨는 대한민국 산악인들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다.

 

 1977년에 청년대상, 체육훈장 청룡상을 받았다. 제주도의 한라산 해발 1,100m 고지에 묘소가 있으며 고(故) 고상돈대원 기념사업회가 조직되어 해마다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2년 6월 에베레스산에서 청소활동을 벌이던 단체에 의해 고상돈 원정대의 깃발이 발견되었는데, 깃발에는 '77 K.E.E(77: 등반연도, K.E.E: Korea Everest Expedition)'라고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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