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히말라야 14좌 완등자 *-

paxlee 2007. 1. 17. 21:04

 

※ 히말라야 14좌 원정의 역사 및 완등자

 

현재까지 14좌를 모두 오른 산악인은 전세계에서 7개국 11명으로, 이중 한 명은 사망했다. 1950년 프랑스 원정대가 안나푸르나를 초등정하기 전까지 이 고봉들의 정상은 신들 만의 영역이었다. 인류의 히말라야에 대한 도전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으나, 이 8천미터의 고봉들은 2차대전이 끝날때까지도 희생만 요구할뿐 정상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 원정대의 안나푸르나 초등정은 그래서 인간이 8천미터라는 높이를 스스로 초월하고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로 받아 들여졌다. 프랑스 원정대에 의한 인류 최초의 8천미터급 등정이 달성되고 3년 후인 1953년, 영국 원정대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초등정했고 이어서 다른 전인미답의 봉우리들이 차례차례 인간의 발 아래 놓였다.

 

중국원정대가 14번째 봉우리 시샤팡마를 초등하기까지 이들 8,000m급 14개 고봉 정상을 모두 오르는 데 무려 4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 일본, 중국 등 9개 강대국이 참가한 가운데 많은 알피니스트들의 히생 끝에 이룩된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란 단 한사람이 지구상의 8천미터급 봉우리를 모두 오르는 세기적인 위업을 달성했다.

 

이것은 한계를 초월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무한한 지를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8천미터는 알피니스트들에게 동경의 높이가 되었고 그 정상에 오르려는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최고봉 14좌를 완등 후 세계 산악인들의 도전이 전개되어 1987년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가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7월 31일 엄홍길님이 도전에 성공하여 한국인의 긍지를 세계 산악계 알렸다.  

 

1.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 -(1944년 이탈리아 티롤 출생)

 

이탈리아 출신 라인홀트 메스너는 1986년 그의 마지막 목표인 마칼루(8,463m)와 로체(8,516m)를 무산소 등정하면서 14좌 완등이란 대업적을 이룩해냈다. 70년 낭가파르바트 등정 후 82년 가셔브룸2봉 등정에 이르기까지 8개봉 등정에 성공한 그는 자기 능 력의 한계를 확인해보려는 의도에서 14개 고봉 완등 목표를 세상에 공표한다.

 

그리고 4년 뒤인 86년 로체를 등정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8,000m급 14개 고봉 완등이란 위업을 이룩했다. 그는 무려 18회나 8천미터급 봉우리의 정상에서 세기의 철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메스너는 단순히 8천미터봉의 정상을 '수집'하는데 그치지 않고 70년대 히말라야 등반사에 혁혁한 기록을 남겼다. 8천미터에서 최초의 알파인스타일 등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가셔브룸 1봉 등정(75년)을 비롯하여 세계 산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78년)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난제로 남아 있던 낭가파르밧 단독등정(78년) 등 히말라야 등반의 변화를 주도해 그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현대등반사를 거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메스너는 자신의 경험과 산행철학을 뛰어난 저술로 승화시켜 산악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전부 20여권의 저서를 남긴 그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세 번의 산악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 예지 쿠쿠츠카(Jerzzy Kukuczka) -(1948년 폴란드 출생)

 

후발주자로서 메스너와 각축전을 벌 이는 바람에 '8,000m 고봉 등정레이스'라는 유행어를 창출하기도 했던 그는 79년 로체를 무산소 등정을 시발로 87년 시샤팡마 정상에 오름으로써 14개 고봉 완등에 성공했다. 메스너가 17년 걸린 업적을 그는 9년만에 해낸 것이다. 성공률 90퍼센트에 4회의 동계 초등정과 5회의 신루트 등정, 그리고 대부분이 단독등반이나 알파인스타일 등반이라는 것이 그의 등반기량을 대변한다.

 

그의 등반이 더욱 빛나는 것은 공산권 출신인 열악한 장비와 빈약한 자금의 열세를 오로지 산에 대한 열정과 집념으로 극복하고 대위업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그의 집념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88년 안나푸르나의 험난한 남벽에 새로운 루트를 올라 세인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1989년 10월, 히말라야의 마지막 과제라 불리는 로체 남벽을 등반하던 중 추락해 영원히 히말라야에 묻히고 만다.

 

3. 에라르 로레탕(Erhard Loretan) -(1959년 스위스 출생)

 

메스너와 쿠쿠츠카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8,000m급 고봉 등정레이스가 다시 불붙기 시작한 것은 95년 스위스의 에라르 로레탕이 세번째 완등자로 등장하면서였다. 알프스의 속공스타일(알파인 스타일)을 과감하게 히말라야에 접목시킨 속도등반의 대가인 그는 82년 낭가파르바트 등정을 시작, 83년 여름, 한시즌 최초의 해트트릭 등정을 성공하였다. 

 

85년 K2와 다울라기리를 매우 빠른 속도로 오르고, 86년에는 에베레스트 북벽을 2박 3일만에 왕복해 세계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 그가 88년 초오유에서 친구를 잃고 잠잠하다가95년 캉첸중가를 마지막으로 14개 고봉 완등을 끝냈다 로레땅의 등반 특징은 초스피트, 초경량, 무산소, 노셀파, 야간등반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즉, 최악의 자연조건을 선택하여 최선의 방법으로 등반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등반을 벌거벗은(naked) 등반이라고도 표현한다. 등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장비나 식량에 크게 의존함이 없이, 가능한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자연과 만나 모험의 극치를 맛본다. 통열한 모험은 그가 추구하는 행위 이념이자 예술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너무나 보호받도록 되어있는 인위적인 세계 속에서 길들여진 채로 살고 있다. 도시의 삶이란 모든 위험한 일을 피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강열한 감동을 위해, 그리고 위험 앞에서 인간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알피니즘은 고귀한 비밀을 지닌 미스테리로 남을 필요가 있다.

 

4. 카를로스 카르솔리오(Carlos Carsolio) -(1962년 멕시코 출생)

 

카르솔리오는 35세 최연소 완등자 기록과 함께 95년 가셔브룸1봉과 2봉,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를 연속 등정해, 한해 4개 고봉 등정기록을 세우기도 했다(이 기록은 지난 해 박영석씨가 5개 등정으로 깼다). 85년 쿠쿠츠카와 함께 남동벽새 루트를 개척하면서 낭가파르바트를 등정한 그는 96년 마나슬루를 등정함으로써만 11년만에 완등자 대열에 올랐다.

 

카르솔리오는 92년 브로드피크 서벽을 단독으로 등반하면서부터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록 정상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신루트를 단독으로 도전한 그의 등반은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카르솔리오는 93년까지 6좌의 8천미터급 등정을 마쳤으나 이때는 버느와 샤무, 에라르 로레탕, 파우스트 데 스테파니, 비키 그러셀리, 세르지오 마티니 등이 14좌 완등 예정자로 주목받고 있었다.

 

94년에 들어 카르솔리오는 18시간 40분 만에 초오유 남서벽을 단독으로 등정했으며 곧 로체로 가서 서벽을 통해 23시간 50분 만에 등정을 이룬다. 그리고 가을에는 다시 브로드피크로 달려가 서벽을 단독등정함으로써 1년에 3개봉을 오른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95년 들어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다울라기리 북동릉을 30시간 만에 등정하였다,

 

그리고 가셔브룸 2봉 단독등정에 이어 가셔브룸 1봉을 30시간 만에 올라 8천미터급 산을 1년에 4개봉 오른 산악인이 되었다. 그리고 96년 마나슬루를 등정함으로써 85년 낭가파르밧 등정으로 시작된 그의 14좌 완등 레이스는 마감되었다. 그의 14좌 완등은 모두 무산소등정이었으며 3개의 신루트와 7개의 단독등정으로 이루어졌다

 

5. 크리스토프 비엘리키(Krzystof Wielicki) -(1950년 폴란드 출생)

 

한편 카르솔리오에 이어 96년 9월에는 폴란드의 크리스토프 비엘리키(43)가 8천미터급 완등 대열에 합류해 주목을 받았다. 비엘리키는 8월 10일 파키스탄의 K2를 등정하고 이어서 9월 1일 낭가파르밧을 오름으로써 16년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카르솔리오가 주로 단독등정으로 8천미터급 등정을 이룩했다면 비엘리키는 동계등정으로 그의 등반력을 과시했다.

 

그는 80년 2월 에베레스트에 첫 동계등정을 이룩한 것을 시작으로 등산계에 알려졌다 그는 84년에 브로드피크를 하룻만에 오르내려 세계산악계를 놀라게 했고 마나슬루 남벽과 다울라기리 동벽에 신루트를 내기도 했다. 또한 86년 캉첸중가 동계초등, 88년에 로체 동계 단독 초등의 위업을 달성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안나푸르나 남벽(91년), 초오유 남서벽(93년) 등정과 시샤팡마 남벽을 신루트를 내며 20시간 만에 등정(93년)해 기염을 토했다.

 

이어서 95년에는 가셔브룸 1, 2봉을 연속등정하고 96년에 와서 K2 등정에 이어 낭가파르밧을 단독등정함으로써 마지막 등정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폴란드의 작은 거인 크지슈토프 비엘리키. 그에게 있어서 산은 무엇일까? 산은 지극히 주관적인 곳이다. 도시에서 10년 걸려 체득할 수 있는 것을 산에서는 단 5분만에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산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포용력이 넓어지게 한다. 산에 다니면서 받는 감동, 그것이 내가 산에 다니는 이유다.

 

6. 훠니또 오이아르자발(Juanito Oiarzabal) -(1956년 스페인 바스크 출생)

 

1982년 네팔히말라야의 캉충체(7,678m) 등반이 첫 해외원정이었다. 1985년 초오유를 오른 것이 최초의 8천미터급 등정이다. 이후 87년 가셔브룸2봉, 92년 낭가파르밧, 93년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94년에는 K2 남동릉에 신루트를 내며 올라 세계산악계의 주목을 받았고, 1995년에는 마칼루, 로체, 브로드피크를 연속해서 올랐다 그가 14좌를 모두 오르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때였다.

 

이때부터 소규모로 8천미터 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로 달려갔다 96년 캉첸중가, 97년 가셔브룸 1봉 등반에는 한국의 엄홍길도 대원으로 참가했다. 그런 그가 99년 봄 안나푸르나 등정을 끝으로 세계에서 6번째 그랜드 슬램 달성자가 되었다. 그의 등반행태는 과거의 14좌 완등자들에 비해 크게 뛰어난 것은 없었지만 인구가 2백만명 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꿈꾸고 있는 그의 고향 바스크 지방에서는 그의 위업을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 준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7. 세르지오 마르티니 (Serigio Martini) -(1950년 이탈리아 출생)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마티니가 2000년 5월 19일 세계 4위의 로체(8,516m)를 올라 7번재로 완등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1997년 로체봉에 도전해 정상에 올랐다고 주장했으나 다음날 정상에 오른 산악인들에 의해 그의 발자국이 정상에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1999년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르며 14좌 완등을 달성했다고 밝혔으나 97년의 로체 등정의혹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세르지오는 이런 이의제기를 담담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여 1년 뒤에 다시 로체를 찾았고 결국 정상에 오름으로써 아무런 의심없이 8천미터 완등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세르지오 마티니는 1983년 K2(8,611m) 등정을 시작으로 히말라야 8천미터급 등정자 대열에 올랐다. 2년 뒤 대장으로 5명의 대원을 이끌고 마칼루(8,463m)에 도전해 전원등정의 성과를 올리고 돌아왔다. 이어서 86년에는 낭가파르밧과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87년에는 가셔브룸 2봉을 올랐다.

 

88년에는 시샤팡마와 초오유를 연속 등정했고, 89년에는 다울라기리를 올랐다. 4년간 공백기를 가진 그는 93년 브로드 피크 등정으로 다시 8천미터 14좌 완등레이스를 개시해 매년 한 봉우리씩 올라 2000년 5월 19일 로체봉을 끝으로 17년간의 등반여정을 끝냈다. 그의 등정은 이탈리아의 또다른 8천미터 등정주자인 파우스토 데 스테파니(1953년생)와 함께 했다. 스테파니는 1997년 당시 13개의 등정을 기록하고 있었고 세르지오 마티니와 함께 로체봉을 올라 14좌를 모두 올랐다고 주장했으나 세계산악계에서 인정을 못받고 있다.

 

8. 엄 홍 길 -(1960년 경남 고성 출생)

 

히말라야의 탱크로 불리는 슈퍼알피니스트 엄홍길 그가 8000미터급 거봉 14개를 모두 등정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는 2000년 7월 31일 세계 2위의 고봉 K2를 올라 세계에서 7번째,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기록달성에 성공한 것이다. 그의 첫 히말라야행은 에베레스트부터 시작되었다. 85년 겨울,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어렵다는 남서벽 등반에 도전했던 그는 그러나 7,500m까지 진출하는데 만족해야 했었다.

 

그는 다음 해에도 남서벽 원정대에 참가해 8,300m를 오르는데 그쳤으나 이 등반에서 그의 고소등반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결국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2년 후인 1988년 9월 23일. 그에게 8천미터의 정상은 이렇게 어렵게 다가왔다. 그 후도 그의 히말라야 등반은 결코 평탄치가 않았다. 그는 89년 안나푸르나 동계원정부터 92년 낭가파르밧까지 다섯 번이나 께속해서 고배를 마셨다. 그야말로 정상과는 인연이 먼 산꾼으로 낙인찍힐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93년 국제캠프사의 가이드로 초오유(8,201m), 시샤팡마(8,027m) 연속등정한 것을 시작으로 8천미터 정상을 향해 끊임없는 열정과 집념을 보였다. 94년 시샤팡마 중앙봉, 95년 브로드피크와 마칼루, 96년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97년 가셔브룸 1봉과 2봉을 등정하고 98년 10번째 봉우리 안나푸르나로 향했다. 그러나 안나푸르나에서 셀파의 추락을 제동하다가 추락, 다리 골절상을 입고 1년동안 등반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1년 뒤 와신 상담 끝에 그는 다시 안나푸르나에 도전해 마침내 정상에 올라섰다. 이 등반에서 한국의 독보적인 여성 등반가 지현옥을 잃은 엄홍길은 그녀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14좌를 마치겠다고 다짐했다. 1999년 여름 낭가파르밧에 달려가 간단히 등정을 마치고 가을에 캉첸중가 북벽에 도전했다가 다시 두 대원을 눈사태로 잃고 돌아왔다. 그리고 2000년 봄 그는 다시 캉첸중가로 달려가 정상공격 도중 비박을 감행하는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 정상 등정에 성공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7월 31일 파키스탄의 세계 2위봉 K2봉에 우뚝서 12년에 걸친 긴 8천미터 정상등정의 종지부를 찍었다. 세 살 때부터 의정부 도봉산 골짜기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남다른 체력으로 키웠다. 키 167㎝, 몸무게 66kg, 왜소한 외모와는 달리 지구력 심폐기능과 심장박동수 등에 있어 대단한 체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 외 알베르토 이뉴라테기(스페인), 박영석, 한왕용 등이 있다.

 

※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 14좌

 

01. 에베레스트 (Everest )       8,848m 네팔/중국

02. 케이투 (K2)                 8,611m 파키스탄/중국

03. 캉첸중가 (Kangchenjunga)    8,586m 네팔/인도

04. 로체 (Lhotse)               8,511m 네팔/중국

05. 마칼루 (Makalu)             8,463m 네팔/중국

06. 초오유 (Cho Oyu)            8,201m 네팔/중국

07. 다울라기리 (Dhaulagiri)     8,167m 네팔

08. 마나슬루 (Manaslu)          8,163m 네팔

09. 낭가파르밧 (Nanga Parbat)   8,125m 파키스탄

10. 안나푸르나 (Annapurna)      8,091m 네팔

11. 가셔브룸1봉 (GasherbrumⅠ)  8,068m 파키스탄/중국

12. 브로드피크 (Broad Peak)     8,047m 파키스탄/중국

13. 가셔브룸2봉 (Gasherbrum Ⅱ) 8,035m 파키스탄/중국

14. 시샤팡마 (shisha Pangma)    8,012m 중국

15. 얄룽캉 (Yalung Kang)        8,505m 네팔

16. 로체샤르 (Lhotse Shar)      8,400m 네팔/중국

 
※ 7대륙 최고봉

 

아  시  아 - 에베레스트(네팔과 중국의 티베트 국경 히말라야 산맥.8848m)

남아메리카 - 아콩카과(아르헨티나 안데스 산맥.6959m)

북아메리카 - 매킨리(미국 알래스카.6195m)

아프리카 - 킬리만자로(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부근.5895m)

유      럽 - 엘부르즈(러시아 코카서스.5642m)

남      극 - 빈슨 매시프(남극대륙.4897m)

오세아니아 - 코지오스코(호주.2228m)               

 

출처 : 'blog.naver.com/smilesunkr'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