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퍼온글

-* 자기 경영 33 *-

paxlee 2007. 3. 26. 20:59

 

"자기 경영(自己經營)"[33]

 

■ 61.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춰라.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라는 시 귀천을 쓴 시인 천상병의 소원은 내 집 하나만 있었으면 이었다. 심지어 그는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외친다 고도 했다. 그러나 1993년 그가 삶을 마감한 곳은 주인 말고도 세가구가 있는 집 이었, 열 네 사람이 몸을 부딪치며 살던 그런 곳이었다. 왜 그는 가난했던가. 시를 좋아했기에 시만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돈을 다루는 상과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다. 시인으로서 시만 쓴다면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똑같은 시인이지만 류시화는 내가 짐작하기에 가난한 시인이 아니다. 그는 편집자로서 세상에서 대가를 얻어내는 마케팅기법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이 시인이라면 천 시인처럼 살든, 류 시인처럼 살든 스스로 선택할 나름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류 시인처럼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대가를 얻어내고 싶다면, 자기가 하는 일의 범주를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어느 직업을 가졌든지 간에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보자. 보통의 자가용 운전사의 경우 목적지까지 잘 모셔다 드리고 차량관리 잘하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라고 생각한다. 약 10여년 전 기사 한 명을 채용했다.

 

그 시절에 나는 언제나 신경이 날카로웠다. 보통의 직원들은 야단을 맞으면 얼굴이 하루 종일 굳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불덩이 같이 화를 냈어도 5분 후에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약속 장소에 가실 시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길이어도 지도를 미리 보고 샛길들을 확인했고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음에도 오후에 비가 안 올 수도 있다 고 하면서 차를 닦아놓았다.

 

내가 책을 권하면 그는 내가 좀더 부려먹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심심하다고 기사대기실에서 화투를 치는 사람도 아니었다. 우선은 차량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남은 시간에는 여직원에게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었다. 자기 돈으로 차량정비 서적을 사서 공부하는 운전사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1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새로 기사를 구하고 다른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 하고 그를 당시 연 매출 400억원대 회사의 영업부 과장직에 앉혔다. 그리고 다시 1년후 그는 사표를 냈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를 알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를 내보냈다. 몇 년 후 그가 업소용 김치 납품공장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음을 들었다.

 

직원이 10명정도 된다는 말과 함께. 사람들은 한가지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자기 기준에 맞추어 일을 한다는 점이다. 부자가 될 사람은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자기를 맞춘다. 그 기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넓고 깊다. 당신의 기준을 바꾸라는 말이다.

 

■ 62. 이해관계 속에는 우정이 설 자리가 없다.

 

수많은 친구들이 있는 아들과 친구라고는 한 명뿐인 아버지가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돼지 한 마리를 죽여 거적으로 싼 뒤 아들에게 지게에 지도록 하고 친구들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도록 시킨다.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좀 도와주게나.  하지만 문을 열어주는 친구는 없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친구를 찾아간다. 아버지의 친구는 크게 걱정을 하며 문을 열어준다.

 

이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때 들었던 것이다. 나는 우정이란 친구가 살인을 해도 그렇게 받아들여주는 관계라고 배우며 자랐다. 영화 친구도 그런 우정을 보여준다. 엘윈 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 이나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역시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마음을 우정의 극치로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친구가 살인을 해도 받아들이려 하지만, 그 친구가 나를 이용하고 엄청난 해를 끼친다면 친구의 배신으로 망한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지 않은가. 친구이기 때문에 내게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 우린 친구 사이 라며 용서해야 한다면, 나는 그런 우정은 사양하고 싶다. 처세술 저자들은 친구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라고 말한다.

 

데일 카네기의 처세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 목적이 뻔하다. 실리적 도움을 받기 위함 아닌가. 나쁘게 말하면 이용하기 위한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과연 우정일까 도움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명함에 찍힌 내용에 따라 만들어가는 인간관계가 어떻게 우정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그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프란체스코 알베로니의 우정론에 의하면 우정은 에로스의 윤리적 형태 이며,  친구는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유롭게 만나는 관계 이고,  우정은 그 만남의 구슬들을 섬세히 꿰어가는 최고의 세공품 이어야 한다. 나는 20대중반 이후부터는 그 어떤 사업적 목적을 갖고 친구를 찾아간 적이 없다. 나는 친구를 만나면 두뇌 속 계산기의 전원을 꺼놓고 싶다.

 

나는 내 친구들도 나를 만나면 그 계산기의 전원이 꺼지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정이 순수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친구와의 동업을 절대 권장하지 않는다. 동업자들간에 중요한 것은 신뢰관계가 아니라 능력의 균형 이며, 능력에 따른 정확한 계산이다. 특히 당신은 아는 것이 없는 분야에 돈만 대고 일은 친구가 하는 식의 동업은 우정을 파괴하는 지름길이다. 이것은 미국경영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진리이다.

 

친구를 돕는다는 생각에 능력이 없는 친구를 고용하지도 말라. 당신은 베푼다고 생각하지만 그 친구는 자신을 당신과 동등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몇 년 후 당신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감동적인 우정을 보여주는 수행자 싯다르타와 뱃사공 고빈다 사이에는 아무런 경제적 이해 관계가 없었음을 기억하라.

'소나무가 퍼온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자기 경영 34 *-  (0) 2007.03.27
-* B와 D사이에 C *-  (0) 2007.03.27
-* 자기 경영 32 *-  (0) 2007.03.25
-* 자기 경영 31 *-  (0) 2007.03.24
-* 자기 경영 30 *-  (0) 2007.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