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여성 산악인 고 지현옥 *-

paxlee 2007. 4. 16. 22:10

 

한국 최초의 여성 : 에베레스트 등정 (1993.5.10.)

 

지현옥 (1962-1999 ), 최오순 (1970- ), 김순주 (1971- )

첫 에베레스트 등정 여성은 지현옥 (등반대장), 최오순, 김순주이다. 이들은 1993년 5월 10일 현지시간 19시 45분경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름으로써 한국여성으로는 최초, 세계여성으로는 3번째로 에베레스트에 등정에 성공한 여성 등반대가 되었다. 이중 지현옥씨는 1998년 7월에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파키스탄령 히말라야 가셔브룸 제2봉을 무산소 단독 등정하였다.

 

한국인 가운데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등정한 산악인은 누구일까?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고상돈씨를 떠올린다. 그러나 한국 여성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자를 묻는 질문에는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영원한 히말라야의 산처녀 지현옥. 그녀는 신들의 거처인 히말라야의 꼭지점을 국내 처음, 그리고 세계에서 열여섯 번째로 등정했던 이 시대의 원더우먼이었다.

 

지현옥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비롯해 남자들이 주축을 이룬 원정대 대장, 세계 최초로 가셔브럼Ⅱ봉(8035m) 무산소 단독 등반 등 역사가 일천한 한국 여성산악계에 수많은 기록을 남겼던 인물이다. 이제 고인이 된 지 벌써 다섯 성상(星霜)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산악인들 가슴에 깊이 각인됐던 그녀의 강렬했던 모습은 지워지질 않는다. 길지 않은 40평생 중 절반인 20년간을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산을 잡고 몸부림치게 만들었는가.

 

산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구도자의 모습으로 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산악인 지현옥의 발자취를 이 자리를 빌어 잠시 되새겨 본다. 1961년 충남 논산군 연산면에서 태어난 지현옥은 히말라야를 올랐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의 자그마한 체격과 가냘픈 몸매의 평범한 여성이었다. 청주사범대학(서원대 전신)에 입학하기 전만 하더라도 산에 대해서는 문외한 이었다. 그러나 산악부가 독특한 서클이라는 고등학교 선배의 말에 이끌려 산악부에 가입했다.

 

암벽등반을 하면서 산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됐고 대학 3학년 시절 남자 동기생 두 명이 군입대와 고시공부로 산을 멀리 하게 되자, 자연스레 산악부장을 맡게 됐다. 이런 그녀에게 해외원정의 기회는 졸업 후 5년이 지난 뒤 찾아왔다. 1988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194m)를 등정했다. 여섯 명의 여성 클라이머로 구성된 매킨리 원정대에서 지현옥은 심한 고소증세를 느끼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대원 중 가장 먼저 정상을 밟았다.

 

1993년 교보생명 사보 3월호에 실렸던 지현옥의 수기에는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60㎏의 짐을 나르면서 들개처럼 헐떡거렸고 목에서는 피가 넘어왔다. 계속되는 구토는 막창의 그 무엇인가 까지도 끌어 올리듯 지독하게 이어졌다. 희박한 산소로 인한 고소증세는 두개골이 빠개지는 듯한 고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것이 등반이란 말인가? 이것이 인간이 할 짓인가?하는 갈등이 심했다.

 

여기서 포기하고 그토록 우습게 여기던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투처럼 치러진 첫 원정에서 나는 내 자신에 보란 듯이 승리했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았지만 그것은 산 정상에 올랐다기 보다는 내 자신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산에 올랐고 하얀 산은 그 전투의 장을 마련해 주었을 뿐이다.

 

이후 89년과 90년에는 안나푸르나(8091m)와 캉첸중가(8586m)를 등반했다. 그리고 91년 서원대 산악부를 이끌고 중국 곤륜산맥의 무즈타그아타(7546m)로 원정을 떠나 7000m대에서 비박을 하고 후배 대원 한 명과 함께 등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여기서 지현옥은 고산 등반가로서의 자질과 대장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이러한 경험은 2년 뒤 93한국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에베레스트 원정대원에 선발돼 현지 정찰 겸 적응훈련을 위해 92년 히말라야의 로부제 (6183m)와 임자체(6119m)를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32살의 나이에 13명의 대원을 이끌고 에베레스트 원정에 나서 5월 10일 오전 10시45분(한국 시간 오후 2시) 최오순(당시 26세), 김순주(25세)와 함께 정상을 밟았다. 지현옥님은  등반은 산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며 산악인으로서의 강한 도전 의지를 피력했다.

 

그렇게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산에서 보내고 꿈에도 그리던 에베레스트를 등정했건만 이러한 영광은 그녀에게 한 순간의 꿈처럼 다가왔다 사라졌다. 자부심을 안고 귀국한 지현옥의 앞에는 영광과 찬사가 아니라 갖가지 험담과 시기·질투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모든 것이 잘못 알려진 것으로 판명됐지만 당시 지현옥에게는 치욕이자 좌절이었고 그녀는 오랜 번민 끝에 등정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가을에는 캉첸중가에 도전하겠다고 밝혔었다.

 

프랑스 산악인 가스통 레뷔파는 산은 하나의 다른 세계다. 그것은 지구의 일부라기보다는 동떨어져 독립된 신비의 왕국이다. 이 왕국에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 뿐이다라고 말했다. 삶의 의지와 히말라야에 대한 애정으로 철저히 무장한 그녀는 여성들만의 K2원정대를 꾸리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잡았던 것이다.

 

미국의 여성 산악인인 난다데비 언솔드는 산은 우리를 태어나게 하고 다시 우리를 거두어들인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란 신이 허락한 짧은 숨결이다라고 말했다. 지현옥도 안나푸르나 원정에서 1982년 한국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등반에 나섰고 하고픈 등반활동을 끊임없이 해왔으며 대자연 속에서 격렬하게 몸부림치다 대자연의 품에 안겼던 J모 선배가 몹시도 그리웠다고 말했다.

 

등반기술을 가르칠 때는 사정없이 매서워 시어머니라고 불리지만 평소에는 후배들에게 자상한 선배로 인기만점의 지현옥. 매사에 치밀하고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짙은 눈썹과 서글서글한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그리운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인간이 이상이라고 여기는-이루려고 해도 이루지 못하는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그녀의 열정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시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대신한다.

 

"저기 모든 경계가 끝나고

길들이 사라지는 곳

침묵이 시작되는 그 곳으로

나는 천천히 다가간다.

그리고 밤을 밝힌다.

별들로, 이야기로,

멀리서 나를 기다리는

물결의 숨소리로,

새벽이 시작되는 그 곳"

 

우리나라 여성 산악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 지현옥님이 1999년 4월 29일 안나푸르나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여성산악인 지현옥씨가 우리 곁을 떠난 지 5주년을 맞아 추모 흉상이 모교인 청주 서원대에 세워졌다. 서원대는 지씨의 업적과 도전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문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흉상을 교내 미래광장에 건립하였다. 흉상은 높이 140㎝ 크기로 청동으로 제작됐고, 지씨가 졸업한 미술교육과 선·후배 동문들이 직접 만들었다.

 

흉상 건립에 필요한 비용도 동문회와 학교 선·후배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마련했다서원대 총동문회는 우리나라 여성 산악인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친 고 지현옥 동문의 사망 5주기를 맞아 고인의 활동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흉상을 세우게 됐다고 밝혔다. 195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지씨는 서원대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본격적인 산악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999년 4월 안나푸르나 두번째 등정에 나섰다가 하산길에 실종됐다.

 

 조령산 촛대봉 아래엔 1994년 암벽 훈련하다 추락사한 서원대생 산악인의 묘비가 엄숙히 자리해있다. 조령산 정상엔 작은 묘비명으로만 한 산악인이 이 땅에 살다 갔다는 흔적이 남아있다. 한국 여성산악계를 개척하고 이끌어 온 산악인 지현옥님의 짧은 추모비는 비 바람에 깍이며 쓸쓸히 조령산 정상에 서있다. 그곳에 고 지현옥님이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산악을 배우고 훈련하던 곳이 바로 이곳 조령산이어서 지인들께서 추모비를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

 

  고 지현옥 약력

 

◎ 1961년 충남 논산 출생 ◎ 충북 서원대학교(청주사범대) 졸업 ◎ 여성으로는 한국 최초, 세계 16번째 여성 에베레스트 등정. ◎ 체육훈장 기린장(1993) ◎ 올해의 산악인 상 수상(1999) ◎ 매킨리 등정 (1988) ◎ 안나푸르나 등반 (1989) ◎ 캉첸중가 등반 (1990) ◎ 무즈타그아타 등정 (1991) ◎ 로부제, 임자체 등정 (이상 1992) ◎ 에베레스트 등정 (1993) ◎ 가셔브룸1봉 등정 (1997) ◎ 가셔브룸2봉 등정 (1998) ◎ 안나푸르나 등정 (1999) 후 하산길에 실종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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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녀의 몸은 히말라야 어느 눈 덮인 골에서 그때의 모습으로 잠들어 있을 것이다. 시신을 찾지 못하는 한 지현옥은 살아 있는 것이다. 단지 돌아 오지 못하는 것일 뿐.....

 

[글 / 김세준 중앙일보 기자 / 99안나푸르나원정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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