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산행기

-*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 히말라야 초오유 등정기 *-

paxlee 2007. 5. 22. 22:06

출처 ; 월간 山

2006.11. 445호

 

[히말라야 초오유] '이젠 더욱 사랑하고 행복할 것 같다'

여성 스포츠클라이머의 8,000m급 거봉 첫 등정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견디지 못하면 히말라야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장무에서 니알람까지는 끝없이 펼쳐지는 병풍 속 그림이다. 지난 봄 발가락 동상으로 인해 메마른 가슴과 함께 우울하게 내려왔던 길이다. 지금은 들꽃 하나도 작은 폭포도 새롭게 내 가슴에 다가온다. 또 다시 황량한 BC로 가는 나의 마음은 비장의 각오에 처연하기까지 하다. 계속 마시는 물이 혈관을 타고 기관에 각종 영양소와 산소를 공급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자꾸 난다. 맑은 소변색이 정상이다.

    ▲ 초오유 정상에 오른 고미영. 등뒤로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보인다.

4,900m의 초오유 BC에 도착했다. 깨끗하진 않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물도 있고, 맞은편엔 허허로운 벌판에 벌거벗은 민둥산도 있다. 그 사이에 미리 자리 잡은 원정대들 텐트가 가득하다. 셰르파 앙 치링이 미리 준비한 휴대용 침대가 고맙다. 그 위에서 앉았다 엎드렸다 하며 책을 보고 있으려니 옆 텐트의 프랑스인 사진작가 크리스토퍼가 영락없이 바닷가에 있는 모습 같다며 셔터를 눌러댄다.

이번엔 후배가 좋은 음악을 가득 담아준 MP3를 들으며 누워본다. 아직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있는 프랑스 칼랑크 해변의 바닷물 같은 하늘이다. 저 멀리 초오유(8,201m) 정상이 나의 보금자리를 고요하고 차분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이 정처 없이 떠도는 내 마음이다. 강물 위로 나는 새가 자유롭게 떠도는 내 육체다.

9월13일, ABC에 도착하여 더욱 가까워진 초오유 정상은 여신의 마음처럼 넓어 보인다. 쿡과 키친보이가 3일 동안 다져놓은 돌밭에 한 달 동안 머물 나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내 마음을 정리하듯 텐트 안을 정리한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깔리고 내가 가져간 매트리스가 그 위에 하나 더 얹혀진다. 나의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날 고마운 침낭이 가장 위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를 떠날 때까지 따뜻하고 쾌적하게 지낼 수 있겠지.

여자 셰르파라 불릴 만큼 순조롭게 등반

다음날은 등반의 성공과 건강을 기원하는 라마제가 간단히 진행되었다. 지난 에베레스트 북면 베이스캠프에서 나를 본 적이 있다던 라마는 어린 시절부터 사원에 머물다가 어른이 되어 어떤 여자를 알게 되어 세상으로 나와서 지금은 셰르파를 겸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밀가루 같은 하얀 가루를 서로 얼굴에 바르고 니알람에서 사온 맥주와 콜라를 주위 사람들과 나눠 마시며 올려다본 초오유 정상은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빛 가을하늘이다. 같은 키친텐트를 이용할 미국팀 4명은 C2에 고소적응하러 갔다고 쿡인 바브라함이 얘기한다. 키친보이 펨바는 티베트인으로 5형제인데, 아내는 한 명이고 맏형인 그로부터만 아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티벳의 전통이라고 한다. 다양한 세상이다.

다음날, 앙 치링은 C1 건설에 먼저 나섰고 나는 아침을 먹은 후 혼자서 중간캠프를 향해 걸었다. 길은 평탄하지만 돌이 많았다. 2시간쯤 힘도 들이지 않고 걸으니 중간캠프에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C1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법 경사진 돌길로 2시간 더 걸어야 했다. 걷다보니 어느새 C1 가까이에 가게 됐고, 사람들의 걸음은 테이프를 천천히 돌리는 슬로비전처럼 느리게 걷고 있었다.

앙 치링은 나를 보더니 밑에서 퍼져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올라왔다며 깜짝 놀란다. 고도계를 보니 6,300m에 와 있다. 거의 쉬지 않고 걸었으니 셰르파 걸음하고 비슷했던 것이다. 9월15일은 호적상(?) 내 생일이라 케이크와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바브라함에게 주문했는데, 어찌되었는지 마음이 급해 전진캠프로 향했다.

▲ 프랑스 산악인 올리비에와 함께.

함께 등반허가를 내고 장무에서 만나 ABC까지 같이 온 일본인 3명과 프랑스인 2명을 초청했다. 치바씨는 75세로 산소를 10통이나 준비할 정도로 정상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다. 딸 준코와 함께 왔으나 그녀에게는 산소 한 통도 양보하지 않아 결국은 등반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 욕심 많은 할아버지가 평소 인사 잘하고 관심을 보였더니 내심 바라고 있던 여러 종류의 핫팩을 선물로 가져왔던 것이다. 초오유(터키보석의 여신) 정상이 날 부르는 거 같아 맘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같은 키친텐트를 사용하는 미국팀 가이드는 마운틴 매드니스 여행사의 사장 크리스였다. 그녀는 미국 최고의 여성 알피니스트이며 이미 에베레스트, 로체를 비롯한 8,000m급 6개봉을 등정한 여장부다. 그들은 3일 동안 고소적응을 위해 C1과 C2에서 자기로 하고 나섰지만, C2까지 가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앙 치링은 이미 C2까지 텐트와 식량을 옮겨 놓았고 우리도 3일 동안의 여정에 나섰다.

          ▲ 크레바스 주위에 수많은 텐트가 들어선 C1


첫날은 6,100m의 중간캠프에서 자고, 둘째 날 C1으로 향했다. 이미 두 번을 올랐던 길이기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오르는데 기타를 메고 전진캠프로 같은 날 도착했던 러시아인 알렉스를 다시 보게 되었다. 쉬지 않고 그 남자 뒤를 바짝 붙어 가는데 “You are very strong!”하며 말을 건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누구랑 왔느냐? 묻는다. 한국에서 혼자 왔다고 했더니 C1에 도착하면 차 한 잔 하자고 한다.

 

오들오들 떨면서 화장실 옆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가이드도 없이 왔다기에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사람이구나 짐작했다. 저녁은 햇반과 즉석미역국을 끓여 미리 볶아온 김치와 언니가 만들어준 멸치볶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잠도 잘 자고, 다음날 아침도 햇반에 시금치된장국을 넣고 끓여 먹었다. 앙 치링은 나보고 여자 셰르파라고 했다.

C2까지는 6~8시간 걸리는 거리로 비교적 어려운 부분 두 군데가 있다. 거의 도착해 가는데 두 사람이 내려오면서 앞으로 5일 동안 엄청난 눈(3m)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으니 빨리 C1으로 하산하라고 한다. 날씨는 이미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지금 내려간다 해도 위험하긴 마찬가지고 다행스러운 것은 C2는 눈사태 위험이 없는 곳이다. 텐트 안에서 차 대신 미역국을 마셨다. 라면에 밥 말아서 국물까지 마시고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앙 치링은 머리 아파서 한숨도 못 잤다며 희한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가 아프다든가, 소화가 안 된다든가, 잠이 안 온다든가 고소증세가 전혀 없으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단, 배고프면 화내는 사람인 줄 알기 때문에 자주 물었다. “Are you hungry?” 지난 봄 에베레스트 등반이 많은 도움이 되는 구나 싶었다.

 

원정 앞두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산길 달려

3일만에 ABC로 돌아가는데 바브라함이 눈보라 속에 차와 간식거리를 들고 마중나와 있다. 무전할 때마다 내 안부를 묻던 동갑내기다. 미국인들이 C2에서 잘 자고 왔다고 하니까 “브라보, 해냈구나” 한다. 그 날 저녁부터 김치에 돼지고기 넣고 고추장 풀어서 매운 김치찌개를 매일같이 먹었다. 같이 식사하는 미국인들은 매일 같은 메뉴가 지겹지 않냐고 묻는다. “당신은 커피 매일 마신다고 지겹습니까?”

김치의 우수성을 알고 있기에 가끔 나의 메뉴에 손대기도 했다. 그 날부터 눈이 내리더니 5일동안 계속 퍼붓는다. 그 사이 쉬면서 샤워도 하고 얼굴 마사지도 하고 미국인들이 가져온 DVD플레이어로 영화도 보았다. 혈중산소포화도를 재니 85% 전후로 양호한 상태다.

100개가 넘는 원정대가 있어 인사하고 경험담 듣느라 지루한 줄 모르고 하루 하루를 보냈다. 저녁에는 러시아팀에 가서 기타 치고 노래도 불렀다. 5,700m에서 노래하다보니 가끔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정도로 숨도 차지만 훈련이거니 생각하고 열심히 불렀다. 알렉스는 2004년 자누 북벽을 등반해 황금피켈상을 받은 등반가였는데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열정적으로 잘 했다.

▲ C1에서 C2로 오르는 세계 각국의 산악인들.

6일째 날씨는 좋아졌지만 아무도 먼저 나서는 팀이 없다. 그동안 내린 눈으로 C1은 가슴까지 눈이 쌓였고, 눈의 무게에 못 이겨 부서진 텐트도 많다는 것이다. 제발 우리 텐트가 아니기를 고대할 뿐이었다. 오후에 프랑스 샤모니 가이드팀 17명이 주축이 되어서 원정대 대표들과 셰르파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였다. 하루를 더 쉬었다가 함께 출발하자는 의견으로 정리되었다.

정상으로 향한 내 마음은 소풍 가는 유치원생처럼 설렘으로 가득 찼다. 러시아팀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C3에서 다시 보자는 인사와 함께 하루 일찍 출발하였다. 30년 전 초등학교 동창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한 것처럼 정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짐을 꾸렸다. 양말과 장갑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데 앙 치링이 정리해준다.

9월28일, 새벽부터 일어난 바브라함은 김치를 끓이고 밥을 지었다. 거기에 김가루를 넣고 비벼서 지퍼백에 담았다. 푸른 하늘의 하얀 구름처럼 내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웠다. C1에 도착하니 다행히 텐트는 무사했으나, 화장실로 쓰던 자리에 필리핀에서 온 새로운 등반대가 메워 버리고 텐트를 쳐놓았다. 밤에 두 번씩 일어나야 하는 고역 때문에 화장실 옆에 자리를 마련했는데 난 어쩌라고. 죄지은 사람처럼 컴컴할 때까지 기다려야하고 아침에는 날 밝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데 참다가 참다가 훤해지면 일어나게 된다.

해결할 때 누군가 텐트 안에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있다. 같이 쳐다본다. 요세미티 거벽등반할 때 여자도 서서 소변을 볼 수 있게 만든 기구가 있다고 들었는데 다음에는 어떤 방도를 강구해야지 싶었다. 많이 만들어서 베이스캠프에서 팔면 인기 좋겠지.

앙 치링은 C2의 텐트가 망가졌으면 손봐야 된다며 새벽에 출발했고, 나는 햇반에 시금치된장국을 말아서 먹고 8시쯤 출발했다. 높은 산에 와서 잘 적응하고 있는 내가 대견했고 튼튼하게 낳아준 아버지가 새삼 고마웠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이틀에 1.5리터 소주 한 병씩 드시고는 뒷짐 지고 논두렁을 휘휘 돌아보시는 모습이 선했다. 막내딸이 어디에 가 있는지도 모른 채.

6시간30분 걸려서 C2에 도착했다. 그토록 강렬했던 태양은 오렌지빛 하늘로 물들인 뒤 숨어 버렸고, 만년설이 뒤덮인 산맥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장관이다. 이제는 정상만이 목표가 아니고 이런 멋진 곳에 서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고 행복했다. 저녁엔 라면에 밥 말아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엔 어김없이 햇반에 즉석국을 먹고 앙 치링은 C3에 텐트를 쳐야 되기 때문에 또 먼저 출발했다. 7,600m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빨리 걸을 수 없었다. 아직은 힘들지 않다, 참을 만하다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겼다. “Don't look above there.” 앙 치링이 늘 하는 소리다. 앞사람 뒤꿈치만 보면서 걷다가 얼굴 마주치면 서로 격려하고 쉬면서 사과도 얻어먹고 하다가 C3에 도착했다. 알렉스를 비롯한 러시아팀이 등정에 성공한 뒤 C2로 하산하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는 꼭 성공하길 바란다며 큰 손으로 악수를 청한다.

새벽 2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일찍부터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내일이면 정상에 설 수 있겠지. 에베레스트 ABC에서 퉁퉁 부어 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발가락 동상으로 움직일 수 없던 BC에서의 열흘 동안 외로웠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심정이었다. 8,000m 첫 원정은 나에게 시련을 주었지만 거기서 포기하거나 주저앉을 수 없었다. 다시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어떤 훈련이 적당할까? 생각하고 연구했다.

청계산을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뛰어 올랐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리산 종주도 여러 번 했다. 손과 발가락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루트도 하지 않았고, 적당히 몸 안에 지방을 쌓기 위해 술과 고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앙 치링이 깨운다. 새벽 1시30분이다. 누룽지와 즉석국을 끓여 먹고 장비를 챙겨 출발한 시간이 2시50분. 일본인 치바씨가 준 핫팩을 손바닥과 발바닥에 넣었다. 참 고마운 선물이다. 산소마스크를 처음 사용하는데 답답해서 자꾸 벗었더니 앙 치링이 난리다. 참아야 하느니라.

이미 출발한 사람들의 랜턴 불빛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고,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꽤 가파르게 이어진 정상으로 가는 길은 두 개의 커다란 록밴드가 있다. 고정로프를 설치해 주마를 이용하는데 꼭대기의 것은 낮에 봤던 것보다 경사가 훨씬 더 심했다.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차고 두꺼운 우모복과 삼중화를 신고 주마링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화생방훈련을 하는 대원들 같아 웃음이 났다.

나를 품어준 산만큼 내 마음도 넓어진 듯

 

   ▲ ABC에서 바라본 초오유.
차츰 날이 밝아지면서 티벳의 하얀 산들 사이에 시샤팡마도 보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데 중국대원 한 명이 크램폰이 벗겨져서 500m쯤 추락했다고 한다. 조심해야지 하면서 한 발 한 발 집중했다. 날이 훤히 밝았고 드디어 오전 8시30분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보이는 곳에 섰다. 30분간 머물면서 사진과 비디오를 찍었다. 위성전화로 회사(코오롱스포츠)에 전화도 했다. 좋은 세상이다.

하산할 때는 산소마스크를 전혀 쓰지 않고 내려왔는데 별다른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스키로 하강하는 유럽 클라이머들이 눈에 띄었다. 앙 치링이 정상에 선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

“아직 감정이 없어, 배가 안 고프거든.”
피식 웃는다. 바브라함한테서 무슨 음식이 먹고 싶냐며 무전이 왔다.
“고추장 푼 김치찌개.” 맛있는 김치찌개와 화려한 케이크를 먹고 러시아팀 캠프에 갔더니 알렉스가 환한 웃음과 함께 축하한다며 안아준다. 기타 연주와 노래가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다음날, 프랑스인 올리비에는 자기 생애 가장 특별하고 원더풀한 여자를 처음 만났다며 카트만두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다. 알렉스도 짐을 싸는 동안 나를 옆에 앉아 있게 하고는 강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두 남자가 떠난 뒤 빨래와 샤워를 하고 얼굴 마사지도 하면서 하산할 준비를 하였다. 이틀 후에 야크가 도착했다. 가을에는 60kg까지 짐을 져나르는 야크는 고지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동물이다. 온 몸을 다해서 충성하고 똥까지 땔감으로 이용한다.

3주 전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면서 습관적으로 자꾸 정상을 올려다봤다. 터키보석의 여신은 여전히 조용하게 손짓하고 있다. 이제는 잘 가라는 손짓이다.

나의 첫 8,000m 등정이 된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던 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여러 등반가들과의 소중했던 시간들, 산은 두렵고 힘든 대상만은 아니라는 사실, 깊고 넓게 품어주는 산처럼 내 마음도 한 뼘쯤은 더 넓어진 느낌. 그래서 더욱 사랑하고 더욱 행복할 것 같다.

         - 글·사진 / 고미영 코오롱스포츠챌린지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