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장애인·혼혈인 등 37명 히말라야 체험기 *-

paxlee 2007. 9. 3. 09:14

 

            장애인·혼혈인 등 37명 7박 8일간 히말라야 체험기

◇ 캉진곰파 마을에 걸려 있는 타르초. 라마 경전이 적힌 깃발이 곳곳에 매달려 있다. 마을에서 올려다 본 칸진리봉의 설경이 장관이다.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히말라야는 그 품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집에 돌아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그리워진다고 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히말라야에 다시 가고 싶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글쎄요, 당장은 말고. 한 3년 후라면 모르겠어요.(웃음)"라고 반신반의했던 내가 지금은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언제든 다시 히말라야에 가기를 꿈꾸고 있다.

"렛삼 삐리리~ 렛삼 삐리리~ 우레라 덩키 달라마 버섬 렛삼 삐리리~ 음음음~~ 음음~ 렛삼 삐리리~~" 지금도 흥얼흥얼 입가에 맴도는 노랫가락. 산행 내내 셰르파들이 따로 또 같이 즐겨 부르던 이 노래는 '한잔하고 춤추세'라는 뜻의 네팔민요다.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이나 '쾌지나 칭칭'처럼 마을마다 부족마다 삶의 애환을 즉흥가사에 담아 부른다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유난히 정겹던 이 노래가 나에게는 마법을 외는 특별한 주문이 되었다. 좀처럼 별을 보기 힘든 서울 하늘이지만 '렛삼 삐리리'하고 흥얼거리며 올려다보면 짙은 어둠위로 어느새 별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히말라야의 청명한 밤하늘처럼. 그리곤 설산(雪山)으로 에워싸인 히말라야 칸진리봉 정상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며 고산지대 원주민들의 선한 얼굴, 그 미소가 나의 얼굴에 번진다. 산 아래 계곡이 들려주던 장엄한 자연의 오페라가 들려온다.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 양쪽 다리 모두 의족인 진병휘 대원이 멘토 대원과 셰르파의 도움을 받으며 칸진리봉을 오르고 있다.


장애인·혼혈인 등 37명 히말라야에 도전


지난 4월 21일 아침,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한 나는 7박 8일의 일정으로 네팔 랑탕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절단 장애인과 혼혈인 그리고 멘토와 제작진 등 총 37명으로 구성된 '장애인·혼혈인 히말라야 희망원정대'의 멘토 대원으로 참가한 것이다. KBS에서 주최한 이번 원정은 연예인 봉사단체인 사랑의 밥차(www.foodcar.co.kr·사장 채성태)와 한국절단장애인협회(www.uk-ortho.co.kr·회장 김진희)가 주관하고 현대백화점 사회복지재단과 현대홈쇼핑, 코오롱스포츠에서 경비와 장비를 지원해 이루어졌다. 원정 대상지는 랑탕히말라야의 칸진리봉(4700m)이다.

랑탕은 네팔히말라야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운 계곡으로 알려진 곳이다. 카트만두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이자 네팔 최초의 국립공원인 이곳은 1949년 영국인 탐험대에 의해 발견되었다. 히말라야 등반이 처음인 나는 "8000m급 산은 없지만 산군들이 아담하고 아름다워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다음으로 트레커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김세준 원정대장의 설명에 내심 안심이 되었다.


등반 전문가가 아닌 나에게 히말라야는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히말라야하면 우선 만년설로 뒤덮인 거대한 설산과 강풍으로 인한 매서운 눈발이 날리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에게 그곳은 '전 세계 트레커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세계의 지붕인 동시에 무수한 전문 등반가들이 목숨을 잃은 위험한 곳'과 동의어나 다름없었다.

4월 21일 인천을 출발한지 7시간 만에 네팔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에 도착했다. 네팔비자를 받고 짐을 찾은 후 숙소인 하얏트 호텔로 이동했다. 번잡하고 낙후된 카트만두 시내의 풍경을 지나 들어선 호텔은 한국의 특급호텔 못지않은 호화스러움을 자랑했다. 우리보다 먼저 온 다른 한국인 원정대 팀들도 눈에 띄었다. 다음 날 아침 7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전세버스를 타고 트레킹 시작지점인 샤브르벤시(1460m)로 향했다. 카트만두 시내를 빠져나가는 데에만 시간이 꽤 걸렸다. 도심지의 교통체증은 만국공통인가보다.


카트만두 분지를 지나 카가니 고개를 넘어서자 고산지대의 중턱을 가로지르는 끝없는 도로가 나타났다. 끝없이 펼쳐진 계단식 논에서는 보리, 옥수수 그리고 알 수없는 갖가지 작물들이 한창 자라고 있었다. 트리슐리 강의 긴 다리를 건너 트리슐리 마을에 도착해 점심으로 네팔인의 주식이라는 '달밧'을 먹었다. 가정식 백반 같은 것으로 밥과 콩 스프 그리고 치킨 커리 비슷한 반찬 두어 가지가 나왔다. 특유의 향이 있긴 했지만 시장기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

트리슐리 마을에서 포장도로가 끝이 났다. 바로 밑이 천길 낭떠러지인 꼬불꼬불, 울퉁불퉁한 비포장 산길도로를 일곱 시간 가까이 달려 첫 번째 숙소인 샤브르벤시 마을에 도착했다. 모두가 살아서 무사히 신의 세계로 가는 무시무시한 관문을 통과한 것에 감사를 올렸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원정 대장은 "산행 첫날이 제일 힘들므로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고 대원들에게 당부했다. 랑탕 계곡의 초입은 규모가 다르긴 하지만 설악산 계곡과 풍경이 비슷했다. 울창한 밀림 속 완만한 경사로를 만년설에서 녹아내리는 힘찬 물소리를 들으며 걸어갔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밤부 로지에서 점심을 먹고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반복한 끝에 날이 저물 무렵 라마호텔 마을(2480m)에 도착했다.

 

로지에 짐을 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굵은 소낙비가 사납게 내리기 시작했다. 첫 산행을 무사히 마친 안도감과 피로감 탓인지 식사 후 바로 잠에 곯아 떨어졌다. 여느 때보다 달콤한 수면을 취했지만 아침부터 몸이 천근만근이다. 손발과 얼굴이 눈에 띄게 부어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랑탕 마을(3240m)이다. 예상 산행시간은 8시간이다. 이제 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해발 3000m 지대로 올라가기 때문에 추위에 대비하고 고산증을 조심해야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 경험이 있는 대원들은 "히말라야에서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고산증"이라며 단단히 겁을 주었다. 울창한 활엽수림이 끝없이 이어진 고라타벨라를 지나 랑탕 계곡에 들어서자 갑자기 짙푸른 숲 사이로 갑자기 눈부신 설산이 드러났다. 대원들 모두 너나할 것 없이 탄성을 질렀다.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지칠 대로 지친 다리에 갑자기 힘이 솟았다.

드디어 랑탕 마을에 도착했다. 같이 가던 셰르파 잠바는 "이곳에서부터는 '나마스테(네팔 인사)'보다 '타시텔레(티베트 인사)'라고 인사를 하는 게 좋다"고 일러주었다. 이곳은 히말라야를 넘어와 정착한 티베탄들의 마을이기 때문이다. 마을 가운데에는 수력을 이용한 마니차가 돌아가고 있었다. 돌과 황토 그리고 야크 똥으로 마무리된 가옥들이 퍽 인상적이다. 마을의 아름다움에 젖은 것도 잠시. 드디어 고산증이 찾아왔다. 어지럼증이 일면서 멀미가 나 물 이외의 어떤 음식도 입에 댈 수가 없었다. 구토에 설사를 하고 코피를 쏟는 대원들도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그'를 만나다.


랑탕 마을에서 힘겨운 하룻밤을 보낸 후 다시 캉진곰파(3840m)를 향해 길을 떠났다. 고산증 때문에 걷는 속도를 더욱 늦춰야 했다. 곳곳에 초르텐(돌탑)과 마니스톤(라마경전의 글이 새겨 있는 바위)이 있는 길을 지나자 황량한 바위와 모래더미 길이 펼쳐졌다. 이제 상하좌우 어디에서나 설산의 모습이 보였지만 감상할 여유조차 없다. 고산증세에 시달리느라 천천히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고 운무가 깔렸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묵묵히 걷는 것뿐이다.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서도 지금껏 살아온 나날들이 눈처럼 내려앉았다. 멀리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캉진곰파의 설경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그림엽서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이다.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4월 26일 아침, 드디어 산행 마지막 날이다. 원정대의 무사 등정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낸 후 칸진리봉을 올랐다. 그리고 오후 1시 10분. 랑탕 히말라야 칸진리봉 정상에서 나를 비롯한 희망원정대 서른네 명 대원들은 서로를 얼싸 안고 함성을 질렀다.

 

볼을 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고산증 때문에 정상에 오르지 못한 대원이 셋. 공교롭게도 절단 장애인 대원들은 모두 정상을 밟았다. 한 쪽 다리 또는 두 다리 모두 의족을 한 그들은 걷기가 어려워지자 두 팔로 기어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껴안으면 누구라도 사랑한다고, 장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산은 몸으로 오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의지로 오르는 것"이라고 히말라야가 묵묵히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라면서 산행의 값진 체험을 하였다.


"첫 만남에서 '그'가 나에게 준 것은 발에 잡힌 물집과 후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자꾸 만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만난 지 5년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나를 긴장하게 만들죠. 누구도 정복할 수 없다는 것. 그게 바로 '그'의 매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복하려하지 않고 사랑하면 반대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대상지 : 네팔 랑탕히말라야 칸진리봉
기 간 : 2007년 4월 21~28일
대 원 : 김세준 대장 외 36명

글 /추명희 멘토대원· 사진 /김세준 원정대장·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강사             

             

           - 월간 마운틴 07.06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