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연이 휘날리는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의 위용. 한국산악인들은 77년 고상돈씨의 한국초등 이후 올봄까지 62개팀이 도전, 40개팀이 정상을 밟았다.<사진=이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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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에는 현재 1953년의 초등 루트인 사우스콜 루트와 1960년 중국팀의 노스콜 루트, 1963년 미국팀의 서릉~혼바인 쿨와르 루트, 1975년 영국팀의 남서벽 루트, 1979년 유고의 서릉 직등루트, 1980년 일본의 북벽 쿨와르 루트, 폴란드의 남릉 루트, 라인홀트 메스너의 북벽 그레이트 쿨와르 루트, 1982년 러시아의 남서벽 그레이트 쿨와르 루트, 1983년 미국의 캉슝페이스(동벽) 루트, 1984년 오스트리아의 북벽 노턴 쿨와르 루트, 1986년 캐나다의 웨스트숄더~혼바인 쿨와르 루트, 1988년 캉슝빙하~사우스콜(동벽) 루트, 1995년 일본의 북동릉 루트, 1996년 러시아의 북북동 쿨와르 루트 등 15개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한국의 고상돈 대원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1977년에 오른 루트는 1953년 초등 루트인 남동릉 루트다. 이후 한국의 원정대는 여러 루트로 등반을 시도했는데, 어떤 루트로 등정 시도를 해왔는지 루트별로 등반사를 정리해 보겠다.
초등루트 남동릉…30개팀 도전, 20개팀 등정
영국은 유니온잭 깃발이 24시간 휘날리던 시절에 북극과 남극 탐험경쟁에서 미국과 노르웨이에 뒤져 각각 2위로 밀려나자, 에베레스트를 제3의 극지(The Third Pole)로 정하고 국가적인 지원을 하며 초등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1921년, 1922년, 1924년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등반대를 구성하여 티벳쪽으로 도전했지만, 조지 말로리와 샌디 어빈의 미스터리만 남긴 채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이후 1950년, 네팔 왕국이 개방되면서 본격적인 등정 가능성의 길이 열렸고, 1953년 남동릉 루트를 통해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가 초등에 성공했다.
한국은 30개팀이 이 루트로 등반해서 동계 등정과 무산소 등정을 포함해 20개 팀이 성공했다. 1977년 고상돈이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에 성공한 루트가 이 남동릉이며 가장 많은 등정자를 배출했다. 고상돈은 58번째 등정자이며 국가별로는 8번째였다. 이 원정대는 김영도 대장과 대원 17명으로 조직됐는데, 당시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했던 통산 25번째 등반대 중에서 단 한 번의 시도 끝에 오른,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온사이트(on-sight) 등반에 성공한 원정대였다.
고상돈의 한국 초등 후 두 번째로 도전한 원정대는 1984년의 양정산악회 동계팀이었다. 오인환 대장과 대원 13명은 사우스콜을 눈앞에 둔 7,900m 지점에서 악천후로 하산했고, 1985년 동계에는 고려대팀이 75일간 악천후에 시달리며 8,500m 지점에 도달하는 것으로 후퇴했다.
- ▲ 77년 9월15일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고상돈씨가 대한민국 국기와 네팔 국기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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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오인환 대장이 이끈 한국팀은 히말라야 등반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허영호, 바인타브락과 알프스 3대 북벽을 등정한 바 있는 유한규 등 7명으로 구성됐다. 소수정예로 도전한 이 팀은 사우스콜(8,000m)까지 진출했다. 1987년에는 함탁영 대장이 꾸린 한국산악회 합동대가 도전하여 고상돈 이후 10년만에 허영호 대원이 한국 제2등과 동계 등정에 성공했다. 그는 두 번의 시도 끝에 셰르파 앙 리타와 함께 등정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최창민 대장과 전국에서 선발된 대원 21명으로 구성된 대한산악연맹 원정대는 6명의 등정자를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1차 등정은 김창선과 엄홍길 대원이, 2차에는 장봉완 부대장과 정승권, 장병호 대원이 올랐다. 3차에는 88 서울올림픽 폐막일에 맞추어 남선우 대원이 등정하면서 로체팀과 함께 같은 날에 등정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9년 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의 동계 원정대는 김하경 대장과 대원 25명의 대규모 등반대였으나, 고산병으로 셰르파가 사망하고 계속되는 악천후로 사우스콜(8,000m)에 진출하는 데 그쳤다. 1990년 노종백 대장의 한일 합동대는 부산 산악인 11명과 일본 산악인 3명으로 구성됐다. 복진영, 김재수, 박창우 대원과 두 셰르파가 등정에 성공했고, 일본 대원은 도중에 포기했다. 그러나 등정조를 지원하기 위해 사우스콜에 올라와 있던 함상헌 대원이 실종되어 에베레스트에서 일어난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1991년에는 대구 지봉산악회가 동계에 도전했다. 김특희 대장과 5명의 소규모 원정대는 8,600m 지점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날씨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대원들도 지쳐 하산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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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한국 여성원정대는 지현옥 대장과 13명의 여성 산악인으로 구성됐다. 등반대는 고소적응이 잘 안 됐고 눈보라와 심한 바람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지현옥 대장, 최오순, 김순주 대원이 셰르파 4명과 함께 정상에 섰다. 한국 여성으로 처음이며, 세계적으로는 16, 17, 18번째의 여성 등정자로 기록됐다.
같은 해, 남서벽 등반에 실패한 동국대팀은 루트를 바꿔 남동릉을 통해 박영석 등반대장과 안진섭, 김태곤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다. 이때 박영석 대장은 국내 처음으로 무산소 등정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하산 도중 안진섭 대원이 사우스콜 부근에서 실종되어 한국인 두 번째 에베레스트 희생자가 됐다.
한편 전북연맹 원정대는 전병만 대장과 12명의 대원으로 출발했지만, 깊은 적설량을 뚫지 못하고 세 차례 등정 시도를 무위로 8,400m 지점에서 하산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철수를 선언한 이틀 후 당시 에베레스트 등반사상 가장 많은 40명이 한 날에 등정했다.
1996년 조선대산악회가 개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한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는 임형칠 대장과 9명의 대원으로 구성됐다. 로체 페이스 상단부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셰르파가 사망하고 고정로프가 손실되는 사고 때문에 등반이 지연됐지만, 최종태와 신광철 대원, 셰르파 3명이 등정에 성공했다.
2000년 손중호 대장과 8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대한산악연맹의 7대륙 최고봉 원정대는 악천후와 체력소모 등으로 세 차례의 등정 시도를 무산시키고, 네 번째 시도에서 박헌주와 모상현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다. 같은 해 가을 충북연맹의 6대주 최고봉 원정대는 윤홍근 대장과 7명으로 조직됐고, 김영문 대장과 16명의 대원으로 출발한 울산 연맹팀은 에베레스트와 로체 연속 등정에 성공했다. 이 두 팀의 연속 등정은 1988년 대한산악연맹팀의 연속 등정에 이은 성과였다. 충북연맹팀은 김웅식, 조철희, 홍순덕 대원이, 울산팀에서는 김환구, 조성철 대원이 정상에 올랐다. 김환구 대원은 이때 45세로 당시 국내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자로 기록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 진출을 기원하는 합동 원정대는 10명의 대원으로 구성됐고, 엄홍길 대장, 이인, 박무택, 나관주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다. 같은 해 가을, 에베레스트-로체 연속 등정에 도전한 충남연맹팀은 이세중 대장과 9명의 대원이 눈사태와 강풍으로 실패했지만 로체 등정에는 성공했다.
- ▲ 중국 쪽 북릉~북동릉 루트에서 가장 어려운 구간인 세컨드스텝. 중국측이 사다리를 설치해놓았다.<사진=대구시산악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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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50주년을 맞은 2003년에 도전한 건국대 원정대는 대장 임종하와 8명의 대원으로 조직되어 등정 시도를 꾀했으나 8,500m 지점에서 악천후로 하산했다. 같은 해 재미산악인인 선우중옥씨는 60대 나이에 상업등반대를 통해 등정을 시도했으나 8,000m 지점에 도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04년에는 네팔의 반정부군과 마오이스트들의 준동으로 국제 등반대가 11개팀에 불과했다. 인하대산악회는 개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원정대로 천병태 대장과 10명의 대원으로 구성됐다. 천병태 대장과 심성보 대원이 등정에 성공하면서 이 산악회의 5대륙 최고봉 등정도 달성하면서 천 대장(당시 46세)은 한국 최고령 등정기록도 경신했다.
2005년 봄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양정고산악회 원정대는 정기범 대장과 9명의 대원이 도전하여 김근생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다. 최흥환 대장과 5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한양대산악회도 이상세, 석진호, 안종호, 김형철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4개팀이 도전해서 한왕용의 청소등반대를 제외한 3개팀이 모두 등정에 성공했다. 황순광 대장과 8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천안 원정대는 이세중, 박주열 대원이 정상에 올랐고,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중동고산악회는 지훈구 외 8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어 신장섭, 이명호 대원이 등정했다. 이상배 대장과 2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양산 원정대의 곽정혜도 등정에 성공했지만 하산 도중 탈진으로 조난당했다. 그러나 때마침 등반 중이던 중동고팀의 등장조 세 대원 중 최인수, 박재우 두 대원이 이들을 구조하느라 등정 시도를 포기하는 일화도 남겼다. 한왕용의 청소등반대는 8명의 대원으로 사우스콜(8,000m)까지 진출하여 쓰레기를 수거했다.
2007년 한국산악회의 김성봉 대장과 7명의 대원으로 조직된 실버원정대는 전 대원이 60세 이상으로 김성봉 대장(66)과 이장우 대원(63)이 등정했다. 김성봉 대장은 현재 국내 최고령 등정자로 기록됐다. 2007년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 30주년을 기념하고 한국도로공사 노조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박상수 대장의 희망원정대는 로체 서벽과 에베레스트를 동시에 등정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팀의 대원으로 참가한 김홍빈씨는 장애인 7대륙 원정에서 다섯 번째 등정에 성공하여 남극의 빈슨매시프와 인도네시아의 칼스텐츠만 남겨 두었고, 김미곤과 윤중현 대원은 최초의 개인 연속 등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1987년 한국에서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던 허영호는 자신의 등정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등반에 나섰다. 그는 등정에 성공하면서 개인 통산 3회 등정으로 엄홍길과 함께 한국인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 기록을 세웠다.
- - / 글 호경필 한국산서회 회원 / 월간 산 [455호] 20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