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한국 에베레스트 초등 30년 사(史) [2] *-

paxlee 2007. 9. 6. 21:59

 

                한국 에베레스트 초등 30년사

 

        15개 루트 중 6개 루트에 도전, 5개 루트만 성공
       77년 9월15일 한국 초등 이후 07년 실버원정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쪽 노스콜 루트…19개팀 중 17개팀 성공


노스콜~북릉~북동릉~정상으로 이어지는 중국 티벳쪽의 노스콜 루트는 중국과 러시아가 12회에 걸친 시도한 끝에 1960년 중국팀에 의해 겨우 성공했는데, 티벳쪽에서 처음으로 거둔 성과였다. 43명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대원 중에는 운동선수, 공무원, 지질학자, 기상학자까지 포함됐으며, 추윈화와 왕푸추, 콤부가 등정했다.


그들은 최고의 크럭스인 세컨드스텝을 한 대원의 어깨에 올라 무등을 탄 채로 피톤을 박으며 통과했고, 정상에 모택동의 석고 흉상을 남겨놓고 하산했다. 한국에서는 이 루트로 그동안 20개팀이 17개팀이 등정에 성공했다.


▲ C2에서 바라본 남서벽. 올봄 남서벽 신루트에 도전했다 사고를 당한 박영석원정대. 대원들이 등반에나설 준비를 하고있다.<사진=이한구>

1993년 한국히말라얀클럽팀이 처음으로 티벳쪽에서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 오인환 대장과 5명의 대원으로 구성됐다. 허영호 등반대장이 나티 셰르파와 함께 정상에 오른 후 네팔쪽 남동릉으로 하산하면서 두 번째 에베레스트 종단기록을 수립했고, 개인 통산 2회의 등정 기록을 세웠다.


1993년 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팀은 임형칠 대장과 10명의 대원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네팔을 경유해 티벳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등반을 순조롭게 진행시키며 박현재 대원과 셰르파 1명이 정상에 올랐는데, 광주 전남 산악인들에게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것이다.


1995년에는 3개팀이 합류해서 도전했다. 전주 개척산악회의 이동호 대장이 진행한 원정대는 서울과 전남 산악인 8명이 합류한 합동대였다. 이 팀은 고소적응을 위해 시사팡마(8,027m)를 먼저 시도했으나 등정하지는 못했다. 이들은 초반에 눈사태 사고로 사다가 목숨을 잃고 박영석 등반대장은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등반을 강행해 북동릉 7,800m 지점에 C4까지 설치했으나 전력 약화로 등반을 포기하고 북릉을 거쳐서 북동릉으로 오르는 루트로 변경했다.


개척산악회팀은 대원 후송과 악천후로 등반이 지연되고 있던 고려대팀과 포철팀과 함께 공동으로 루트를 개척하기로 했다. 개교 90주년을 기념하는 고려대팀은 김종호 대장과 8명으로 구성됐고, 포항제철팀은 이동연 대장과 11명의 대원으로 조직됐다. 이들 3개팀은 인도팀과 합류해 14명의 대원을 1차 등정조에 포함시켜 시도했지만, 장비 부족으로 세컨드스텝에서 후퇴했다. 2차 등정조는 포철팀과 인도팀이 포기하는 바람에 고대팀의 조용일 대원과 장부 셰르파, 개척산악회의 한왕용과 홍성택, 타시 셰르파가 나서서 등정에 성공했다.


1997년 봄, 이동연 대장과 9명으로 구성된 경북산악연맹 원정대는 원래 라인홀트 메스너가 초등했던 북벽의 그레이트 쿨와르가 목표였다. 그러나 북서벽 트래버스가 불가능하자 루트를 변경했다. 강풍과 폭설로 고전하던 등반대는 1차 공격조인 이인과 이홍길 대원, 두 셰르파를 세컨드스텝에 올렸다. 그러나 그곳에서 지친 이홍길 대원과 셰르파 1명이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을 하는 도중, 셰르파 타망이 고정로프가 끊기면서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등반을 계속한 이인 대원과 셰르파 1명은 등정에 성공했다.


1997년 가을, 경북산악회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세계 5대륙 최고봉 연속등반에 나섰는데 그 네 번째 목표가 에베레스트였다. 김특희 대장과 13명의 대원이 순조롭게 진행하던 등반은 갑작스런 눈사태로 최병수 등반대장이 휩쓸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원정대는 실종된 최 대장 수색작업을 폈으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고 등반을 포기해야만 했다.


2002년 대구산악연맹 원정대는 대장 김보열과 6명의 대원이 소수 정예로 도전하여 배영록과 박종철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고, 2003년 티벳등산협회와 합동등반한 서울시산악연맹팀은 대장 강태선과 15명의 대원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강풍에 텐트가 파손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엄홍길, 구은수, 박종관, 박주헌, 고용준 등 5명이 등정했고, 티벳 대원 4명과 셰르파 1명 등 전부 10명이 등정에 성공했다.


▲ 네팔쪽 남동릉 루트 최난구간인 힐라리스텝을 오르는 산악인들.<사진=양정산악회>

2004년 계명대산악회는 배해동 대장과 8명의 대원으로 조직됐다. 그러나 등정에 성공한 박무택과 장민 대원이 하산 도중 탈진으로 사망했고, 이들을 구조하러 올라간 백준호 부대장도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한편, 여성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추진하고 있던 수원대산악회의 오은선은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 오은선은 이 등반 도중 8,750m 지점에 있는 세컨드스텝에서 로프에 매달려 숨져 있는 계명대팀의 박무택 대원을 발견하기도 했다.


2004년에 조난사한 계명대팀의 백준호 부대장, 박무택, 장민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휴먼 원정대가 2005년 봄, 손칠규 대장과 엄홍길 등 18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세컨드스텝에 있던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등로에서 벗어난 바위지대로 옮긴 뒤 돌무덤을 만들어주었으나, 이들을 격려차 왔던 한승권 계명대산악회 회장이 고산병으로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2006년에는 6개팀이 도전하여 모두 등정에 성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박영석 에베레스트 횡단등반대는 11명의 대원으로 박영석 대장, 오희준, 이형모 대원이 등정했고, 박영석 대장은 네팔쪽 남동릉으로 하산하는 횡단등반에도 성공했다. 대전의 It’s Daejeon 원정대는 윤건중 대장과 9명의 대원이 도전해서 이승복, 강연룡, 김영일 대원이 등정했으며, 백두인 외 7명의 전남대학교 원정대에서는 이현조와 이형관이 등정했다. 부산산악연맹의 홍보성 대장과 6명의 대원 중 김진태와 서성호 대원이 정상에 올랐고, 장덕상 외 4명의 제주 원정대는 정상수, 김대량, 김민호 대원이 등정했다. 또한 제주의 설암산악회는 이창백 대장과 4명의 대원이 도전하여 고경만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다.

          
                      - / 글 호경필 한국산서회 회원 / 월간 산 [455호] 20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