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알프스에서 온 편지] 트렐레조 계곡 [3] *-

paxlee 2007. 9. 7. 22:01
 
                [알프스에서 온 편지] 트렐레조 계곡
 
          ‘나는 낭가파르밧을 당신의 말대로 공평한 수단으로 올랐다’
             헤르만 불이 머메리에게 헌사한 <8000미터 위와 아래>

내기등반으로 돈을 벌다


이후 헤르만 불의 활동영역은 돌로미테에 집중된다. 필자가 가본 적이 있는 마르몰라타 남벽을 오르는 헤르만의 이야기를 읽으며 손에 땀을 쥔다. 암벽용 헤머를 아이스피켈로 대신하며 빙벽을 오르고 모진 비박까지 감행하며 그는 마침내 남벽을 오르고 만다. 이후 그는 돌로미테 산군을 종횡으로 누빈다. 그리고 그는 꿈에도 그리던 서부 알프스 산행을 위해 동계에 암벽을 오르고 평소 눈덩어리를 손에 쥐고 다니며 추위에 대한 저항력을 기르기도 한다. 이 모든 게 그가 앞으로 행할 등반에의 탄탄한 준비과정일 따름이었다.


한밤중에 이렇게 1시간 정도 책을 읽다 다시 눈을 감는다. 이른 아침의 일출을 맞이하고 싶었기에. 눈을 뜨니 새벽 5시 반이다. 텐트 밖을 살핀다. 차츰 날이 밝아온다. 하지만 기대한 멋진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한여름의 희뿌연 파노라마만 펼쳐졌다. 다만 아르장티에와 투르 빙하 주변의 흰 봉우리들이 붉게 피어났다.


자세히 보니 아르장티에 빙하 깊숙이 위치한 트리올레 북벽이 보인다. ENSA 초청으로 그토록 원하던 이곳 몽블랑 산군을 찾은 1948년 여름에 헤르만 불이 오른 벽이다. 날씨가 나빠 그랑조라스 북벽을 단념한 헤르만 일행은 그랑 샤르모를 오른다. 몽탕베르 언덕에서 가까운, 샤모니 계곡 어디에서든 보이는 침봉이다. 이 등반 후 계속해서 나쁜 날씨가 이어지는 와중에 헤르만은 ENSA 베란다에 걸린 그림 한 장을 보고 매료된다. 바로 트리올레 북벽의 거대한 빙벽이었다.


▲ 로리아 산장 너머로 몽블랑 산군이 펼쳐져 있다.

배가 고파 빵으로 아침을 먹는다. 그 사이에 아침 해가 텐트에 닿는다.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이제 한창 읽는 재미가 붙은 <8000미터 위와 아래>를 좀 더 읽기로 한다. 헤르만 불은 다음해도 몽블랑 산군을 찾는다. 하지만 이때도 날씨가 나빠 제대로 등반을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간다. 다음해인 1950년 겨울, 그는 그랑 조라스 북벽을 오르기 위해 겨울에 마르몰라다 남서벽을 오른다. 그리고 봄에는 영화촬영 일을 도우며 산행경비를 모은다.


필자 또한 오래 전에 가본 적이 있는 베르니나 산군의 모르테라츠 빙하에서 그는 등반내기, 즉 보발산장에서 베르니나(4,052m) 정상에 빨리 다녀오는 내기를 걸어 돈을 딴다. 정통파 산악인들이 고귀한 행위로 돈을 버는 짓이라 혹평할지라도 그는 그 돈으로 보다 높이 보다 멀리 자신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다며 개의치 않는다. 등산이라는 행위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오늘날의 산악인들은 과연 어떨까. 보다 나은 등반이나 이상을 위한 것이 아닌 단지 축재를 위해 고귀한 행위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격하시키는 경우는 없는지 말이다.


▲ 국경인 코르보 고개 아래의 설사면을 오르고 있다.

해가 중천에 뜬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책을 덮는다. 일어나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좀 있으니 이른 아침에 르뷔에를 출발한 중년의 트레커 한 명이 올라온다. 잠시 땀을 식힌 그는 곧장 코르보 고개로 향한다. 필자 또한 배낭을 짊어진다. 이때 또 다른 트레커 둘이 올라오고 있다. 중년의 부부 트레커다. 그들 앞을 걸으며 지난밤을 보낸 계곡 상단을 돌아본다. 차츰 오르니 설사면이 나타난다. 그리고 모레인 돌밭이다. 고개 정상에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반대편에서 온 트레커 셋이 우리가 올라온 계곡으로 내려간다.


이제부터 스위스 땅이다. 지도에 고개 아래에 공룡 발자국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어 그쪽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한참을 내려가도 찾을 수 없다. 할 수 없이 단념하고 에모송 댐쪽으로 내려가는데, 중년의 부부가 작은 호수 옆에 쉬고 있다. 그들에게 물으니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하며 공룡 발자국은 주먹만 하지 생각만큼 그렇게 크진 않다고 한다. 하여 미련 없이 곧바로 하산한다. 한참을 내려가니 드디어 에모송 댐이 내려다보인다. 그 뒤로 저 멀리 아이거가 있는 베르너 오버란트 산군이 보인다. 헤르만 불이 낭가파르밧 초등 전 해에 오른 아이거 등반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 이야기는 등반을 함께 한 가스통 레뷔파의 <별빛과 폭풍설>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 두 개의 에모송 댐 중 위쪽을 배경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 트레커들.

코르보 고개에서 2시간 걸어내려 에모송 댐 전망대에 이른다. 여기서 로리아 산장(Refuge de la Loriaz·2,020m)으로 가기 위해 전망대 못미처에서 우회전한다. 몇 군데 쇠사슬이 설치된 구간들을 지나 오솔길을 오르내린다. 이윽고 큰 산모퉁이 하나를 돌자 몽블랑 산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6시간만에 로리아 산장에 이른다. 함석지붕으로 된 막사가 줄지어 있는데, 대부분 소를 키우는 우리로 쓰이며 트레커를 위한 산장은 위쪽에 위치해 있다.


샘물을 떠 산장 위 풀밭에 텐트를 친다. 마침 20대 초반의 프랑스 아가씨 둘도 옆에 텐트를 친다. 바람이 꽤나 불어 큰 돌을 주워와 텐트 속 귀퉁이에 놓아둔다. 구름이 짙어 멋진 저녁놀은 기대치 이하다. 오히려 잘 되었다 생각하며 못다 읽은 <8000미터 위와 아래>를 펼쳐든다. 드디어 세 번째 찾은 그랑 조라스 북벽에서 헤르만 불은 동료 쿠노와 함께 워커스퍼를 오른다. 그리고 이들은 바로 이곳 로리아 산장 너머 저 멀리 건너다보이는 그레퐁에서 플랑을 지나는 샤모니 침봉들을 종주한다.


한편 고향으로 돌아간 헤르만은 140km의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려 바딜레 북벽을 단독으로 오르며 자신을 시험한다. 또한 그가 아이거 북벽을 오르고 페이지가 다음해의 낭가파르밧 이야기로 넘어가자 밤이 깊었다. 여름의 밤은 짧기에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는 다음날 아침으로 미루고 눈을 감는다.


눈을 뜨니 새벽 5시가 넘었다. 차츰 날이 밝아왔다.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많았지만 지난 저녁보다 경치가 나은 편이다. 마침 텐트 아래의 풀밭에서 황소들도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한동안 목가적인 풍경에 빠져든다. 이어 <8000미터 위와 아래>를 마저 읽기 시작한다. 도중에 빵으로 아침을 먹으면서까지 줄곧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니 해가 꽤나 솟아 있다. 두 프랑스 아가씨들도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아침 9시가 다 되어 그들은 테라스 고개(Col de la Terrasse·2,648m)로 올라가고 필자는 르뷔에로 내려온다.


전나무숲 길을 따라 내려오며 상쾌한 아침공기를 들이킨다. 헤르만 불을 다시 생각한다. 자신의 낭가파르밧 초등을 머메리와 그 때까지 낭가파르밧을 오르다 희생된 수많은 선배들의 공으로 돌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알피니스트의 면모를 엿본다. <8000미터 위와 아래>는 분명 산악고전에 속하지만 그가 행한 알프스 등반만 하더라도 아직도 우리 산악인들에겐 배우고 행할 게 많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알피니즘의 근간을 이루는 머메리즘의 창시자 머메리에게 자신의 낭가파르밧 등반을 헌사한 말이 뇌리에 맴돌기만 했다. “나는 낭가파르밧을 현대의 기술적 보조수단을 쓰지 않고 당신의 말대로 ‘공평한 수단으로’ 순전한 자기 힘으로 올랐다.” 그 5년 후, 브로드피크를 역시 ‘공평한 수단’으로 오르고 초골리사에서 영원히 만년설의 품에 안긴 헤르만 불은 아마도 알피니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영원히 큰 별로 빛나리라.


     -/ 허긍열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회원 / 월간 산 [455호] 20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