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알프스 통신] '알피니스트의 에덴동산' *-

paxlee 2007. 9. 8. 22:46

 

     [알프스 통신]

  - 달빛 벗 삼아 오른 '알피니스트의 에덴동산' -

◇ 쿠베르클 산장은 바위 아래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에서 메르데 빙하를

    건너면 몽탕베르 역에 닿는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이번 겨울은 춥지 않다. 하지만 1월말 한차례 닥친 한파로 유럽에서 48명이나 동사할 정도로 자연의 힘은 크다. 바로 이 한파가 지나간 다음, 여전히 매서운 추위가 남아 있지만 아르장티에(Argentiere) 빙하의 주요한 북벽 하나를 오르기로 했다. 방학을 맞아 이곳에 온 민경원씨의 귀국일정에 맞춰 더는 등반을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2박 3일 일정으로 단단히 등반짐을 꾸려 샤모니를 떠났다. 약 20분 후, 버스는 아르장티에 마을의 그랑 몽테(Grands Montets·3295m) 케이블카 역에 멈췄다. 며칠 전에 내린 신설을 즐기기 위해 많은 스키어들이 몰려 있었다. 줄을 서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역인 로냥(Lognan·1930m)에 이른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그랑 몽테로 올라야 하는데, 한 시간 이상 지루하게 기다린 끝에야 차례가 돌아온다.

 

곧 도착한 3200m 고지의 그랑 몽테 전망대는 몹시 춥다. 강한 바람에 날리는 가루눈은 사정없이 얼굴을 맹타해 그랑 몽테 콜(Col)을 내려서기가 힘겹다. 급사면을 약 200m 내려선 후, 설피를 신었지만 눈이 발목까지 빠진다. 몇몇 가파른 사면을 걸어 내릴 때는 깊은 눈이 편하다. 한 시간 이상 걸어 아르장티에 빙하에 내려선다.

 

케이블카 중간역인 로냥에서 오려면 두 시간은 더 걸리는 거리다. 이제부터 완만한 빙하를 따라 오르면 아르장티에 산장(Refuge d’Argentiere·2772m)이다.

드넓게 펼쳐진 아르장티에 빙하는 언제 보아도 너른 품으로 맞아주는 듯하다. ‘알피니스트들의 에덴동산’이란 말답게 수많은 등반대상지들이 도열해 있다. 그 중간에 우리가 오를 레 쿠르테(Les Courtes·3856m) 북벽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961년 초등된 표고차 800여m의 레 쿠르테 북벽

 

쿠르테를 보며 한동안 빙하를 따라 오른 후, 왼편으로 발길을 돌린다. 에귀 아르장티에 언저리에 위치한 산장에 닿기 위해서다. 너덜지대의 급사면을 올라 3시간 만에 산장에 이른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150명 이상 묵을 수 있는 이 큰 산장에는 겨울 추위에 더욱 썰렁하게 아무도 없었다. 땀에 젖은 옷을 말리며 차를 끓여 마시는데, 남녀 두 명의 독일 산악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전날 산장에 왔다는 그들은 빙하 상단부의 몽돌랑(Mt Dolent·3823m) 쪽으로 빙벽등반을 하러갔지만 눈이 너무 깊어 접근하는데 애만 먹고 돌아왔다고 한다. 은근히 우리 또한 심설에 고생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준비해간 빵에 차만 끓여 마시고 일찍 침상으로 향했다. 짐을 줄인다고 우모복도 가져가지 않았기에 담요를 다섯 장이나 덮는다. 새벽 2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녁 8시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잔뜩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으니 주방탁자에 춥게 앉아 있는 것보다 낫다. 이런저런 생각에 설핏 잠이 들려는 순간, 우모복까지 입고 바로 옆에 누운 민경원씨가 부스스 일어난다. 곧 있을 등반에 대한 긴장감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 초저녁에 누웠으니 어찌 잠이 오겠냐며 그에게 한마디 쏘아붙인 나 또한 애써 초조함을 감춘다. 10여 차례나 알프스를 찾은 그가 이제껏 오른 어떠한 벽보다 큰 벽을, 그것도 겨울에 오를 예정이기에 잔뜩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하리라.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 소리를 들으며 얼핏 든 잠에서 깨 시계를 확인한다. 그래도 시간은 잘도 가 자정이 지났다. 또다시 눈을 뜨니 새벽 1시, 이윽고 2시 반이다. 뒤늦게 잠이 들어 코까지 골고 있는 민경원씨를 불러 깨운다. 추운 겨울의 이른 새벽에 따뜻하게 데워진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니 힘겨울 수밖에. 그러나 곧 있을 등반을 생각하며 우리는 힘차게 담요를 걷어차고 일어난다.

 

눈을 녹여 차를 끓이며 장비를 챙긴다. 이른 새벽에 먹는 아침이라 입맛이 없다. 하루 내내 행할 등반을 위해 억지로라도 삼킨다. 새벽 4시가 덜 되어 드디어 떠날 채비가 되었다. 헤드램프를 밝히며 산장을 나선다.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동계등반을 위해 충분히 옷을 입었기에 추위는 견딜 만하다. 급경사 모레인 지대를 내려와 설피를 신는다. 레 쿠르테 북벽을 향해 천천히 빙하를 거슬러 오른다. 이 드넓은 빙하에 우리 둘뿐이라는 사실이 좋다.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이런 적막감이 좋을 따름이다. 급할 게 없다는 생각에 알맞게 쉼 호흡을 하며 걷는다.

 

한 시간 후부터는 설사면이 급해진다. 설피의 뒤꿈치를 높인다. 설피가 없다면 접근하는데 꽤나 고생할 텐데 줄리앙이라는 친구에게서 잘 빌려왔다 싶다. 평소 사용하던 게 있지만 이 북벽등반을 위해 보다 가벼운 것을 빌려왔던 셈이다. 바로 이때 헤드램프가 말썽이다. 흐릿해지더니 아예 먹통이 되어버린다. 앞으로 날이 밝으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지나야 될 텐데 낭패다. 민경원씨의 최신 헤드램프에 의지해 아무리 고쳐보려 해도 되지 않는다.

 

앞으로 한 시간 후면 날이 밝을 것이고 초저녁에는 상현달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며 램프를 어둠 속으로 던져버린다. 한 10년 사용했던 거라 아쉬웠지만 그만큼 등반짐이 가벼워져 후련하다. 북벽에 접근할수록 설사면의 경사가 급해진다. 그럴수록 눈이 깊지 않아 좋다. 곧 더 이상 설피를 신고 오를 수 없을 정도의 사면이다. 아이젠으로 갈아 신고 오르니 한결 수월하다. 민경원씨가 뒤에서 비춰주는 불빛으로 몇몇 크레바스를 우회하며 오른다.

 

이윽고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지점에 닿았다. 작은 베르그슈룬트가 앞길을 막고 있다. 적당히 설사면을 다져 배낭을 내려놓는다. 산장에서 이곳까지 2시간 반 소요되었다. 등반장비를 챙기며 따뜻한 차를 마신다. 등반을 위해 우리는 물통을 두개씩 챙겼는데, 이 무게만도 무겁게 느껴진다.

 

이제 시간은 아침 7시가 넘어서고 있다. 희미한 회색으로 날이 밝아온다. 이제 불빛이 없어도 될 정도라 곧장 등반을 시작한다. 조심스럽게 베르그슈룬트를 타 넘는다. 30m 즈음 올라 후등자 확보를 본다. 이후 크러스트가 잘된 설사면이 이어져 우리는 중간확보 하나 없이 4~50m 정도 간격을 두고 함께 오른다. 누구 하나 추락하면 끝장이지만 800m 높이의 북벽 하단부이기에 그다지 위험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렇게 서너 피치 오르니 가파른 강빙 구간이 나타났다. 청빙에 아이스하켄을 하나 박고 계속해서 오른다. 하지만 그 다음 피치에서는 도저히 불안해 후등자가 도착하길 기다린다. 고드름이 아닌 결코 어렵지 않은 직벽 구간이지만 확보 없이 선후등자가 함께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일을 나눠 묶은 상대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탓일까. 곧이어 도착한 민경원씨의 확보를 받으며 오른 이후부터 또 다시 우리는 함께 오른다.

 

이렇게 해야 등반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미 해는 꽤나 떠오르고 있지만 북벽에는 전혀 닿지 않고 있다. 얼음이 얇아 피켈의 피크가 튕겨 나오는 믹스 구간들이 이어진 다음, 긴 설사면이 펼쳐진다. 도중에 데드맨이나 스노바 등으로 중간확보를 하며 계속해서 오른다. 시간을 보니 이제 정오가 지나고 있다. 아직 반도 오르지 못한 상태다. 차츰 북벽의 중앙으로 접근하자 1961년 8월에 초등된 이 오스트리아 루트를 우리가 제대로 오르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이드 책자에서 본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보지만 자신이 없다. 할 수 없이 가장 쉬워 보이는 곳으로 오른다.

 

◇ 레 쿠르테 북벽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아르장티에 산장이 기점이 된다. 산장은 샤르도네와 에귀 아르장티에를 바라보며 빙하를 건너게 된다.


북벽을 반 이상 오르자 찬바람이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여름이면 이 북벽에 그래도 햇살이 닿을 텐데라며 벌써부터 따뜻함을 그리워한다. 차츰 상단으로 진입할수록 얼음이 단단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왼발 아이젠이 말썽이다. 이 등반을 위해 오랫동안 사용한 설벽용 아이젠을 신었더니 청빙을 얼마 오르지 않아 앞쪽이 이중화 앞 축에서 빗나가 있다. 불안한 생각에 아이스하켄을 설치해 매달려 아이젠을 다시 착용해보지만 마찬가지다.

 

가파른 빙사면에서 아이젠을 신느라 온몸의 힘만 빼 낙심이다. 삐뚤어져 얼음에 튕겨나는 왼발을 조심스럽게 디디며 오른다. 당연히 후등자의 확보를 받으며 오른다. 정상부에 가까워지자 고도감이 안전의식을 높여 서로 조심하자며 다짐한다. 오후 4시가 넘어서도 아직 정상은 멀다. 열심히 뒤따르고 있는 민경원씨는 정상이 멀었는지 묻지만 이런 알파인 벽에선 생각보다 정상이 멀기에 느긋하게 그저 열심히 오르기나 해야 한다며 파이팅을 외친다.

 

등반 내내 먹은 거라곤 몇 모금의 물밖에 없다. 춥고 시간적인 여유도 없어 수통의 물 또한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도중에 쉬고 싶지만 해가 기울고 있기에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쉴 순 없다. 오후 5시가 넘자 뒤편의 샤르도네(Chardonnet·3824m)나 아르장티에(Argentiere·3902m) 침봉들에 저녁놀이 물들기 시작한다. 시간이 없다. 해가 지기 전에 정상에 도착해야만 한다. 정상부 사면은 단단한 얼음이라 인내의 한계를 요하고 있다.

 

바짝 긴장한 채 프런트포인팅에 여념이 없다. 아이스하켄 하나에 60m 로프를 통과시키고 함께 오른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정상부 빙사면이 드디어 끝났다. 정상이다. 저 멀리 서쪽에 위치한 몽블랑 우측으로 태양이 떨어지고 있다. 정상부 설사면 아래의 암각에 자일을 휘감아 후등자 확보를 보며 주변 풍광을 카메라에 담는다. 좀 더 일찍 올라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이렇게 무사히 정상에 도달한 것만으로 위안을 삼는다.

 

좀 늦은 석양을 배경으로 민경원씨가 정상에 이른다.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피켈을 번쩍 든 그의 모습에 동계 북벽을 오른 기쁨이 엿보인다. 세찬 바람만이 우리를 반겨주지만 다행히 하늘이 맑다. 이제 하산이 문제다. 한겨울에 정상부위의 눈밭에서 비박을 할 수는 없다. 콜 델라 뚜르 데 쿠르테(Col de la Tour des Courtes·3720m)까지 이어지는 칼날 설능을 어떻게 내려가느냐가 관건이다. 차갑게 식어버린 물로 목만 축인 채 하산을 서두른다.

 

아무도 밟지 않은 커니스 구간을 조심스럽게 오르내린다. 이미 어둠이 우리를 감싼 상황, 다행이 떠오른 반달이 헤드램프 없는 나를 안심시킨다. 도중에 가파른 빙벽구간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조심스럽게 민경원씨를 먼저 내려 보내고 그에게 도착해보니 또 다른 강빙 구간이 아래에 위협적으로 펼쳐져 있다. 아이스하켄을 설치하고 그를 먼저 하산시킨다. 그가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 긴긴 시간동안 갈등이 인다.

 

이 아이스하켄을 회수하고 클라이밍 다운을 하느냐, 아니면 이 춥고 어두운 상황에서 혹 슬립이라도 하면 북벽 아래로 직행한다는 불안감에 그냥 이 정도의 장비는 버려야 마땅하지 않느냐고. 결국 미련 없이 버리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곧바로 아이스하켄에 줄을 걸고 하강한다. 이윽고 사면은 충분히 걸어 내릴 정도가 되어 얼마 후 콜에 이른다. 이후 줄곧 45도 정도의 설사면이 쿠르테 빙하까지 이어진다.

 

앞서 내려가는 민경원씨를 확보 보며 뒤따른다. 콜 아래쪽 사면에서는 다행히 바람이 없어 추위가 덜하다. 또한 차츰 어둠이 짙어지자 반달이 충분히 주위를 밝힌다. 빙하로 내려서는 설사면은 끝이 없을 듯 펼쳐져 있다. 종종 주저앉는 민경원씨는 잠깐의 휴식으로 힘을 내 움직이길 반복한다.

 

꿀르와르 하단부의 베르그슈룬트 상단에서 하강지점을 찾으며 한 시간 정도 시간을 허비한 후, 훨씬 우측으로 돌아 마침내 빙하로 이어지는 완사면에 닿았다. 안심이다. 이제 우리를 위협할 것은 없어 보인다. 천천히 심설의 완사면을 걸어 내린 후, 설피로 바꿔 신을 지점에서 우리는 배낭을 내려놓고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버너로 눈을 녹여 마신다. 따뜻한 차를 마시니 힘이 솟는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정상에서 쿠르테 빙하의 안전지대까지 여섯 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 1961년 8월 초등된 레 쿠르테 북벽은 몇몇 구간을 제외하고 크게 난이도 높지는 않다.


2박 3일간 만끽한 동계 알파인 등반 이제 쿠베르클 산장(Refuge du Couvercle·2687m)만 찾아가면 된다. 이제부터 탈레프(Talefre) 빙하를 걸어 내린다. 상현달이 고요히 빙하 위를 밝히고 있다. 몸은 힘들지만 달빛에 드러난 풍광이 기쁨을 안겨준다. 한참을 걸어내려 산장이 위치한 언덕 아래에 닿았다. 이제 이 오르막 하나만 오르면 편안히 휴식할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 힘을 다해 오른다. 가파른 구간에선 설피가 미끄러져 넘어진다. 무릎을 이용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기어오른다. 드디어 쿠베르클 산장이다. 산악인들을 위해 비수기에 개방해 두는 윈터룸이 큰 바위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다. 아르장티에 산장에서 약 하루 만에 북벽을 넘어 이 산장에 도착한 셈이다. 산장은 텅 비어 있었다. 급히 눈을 녹여 차나 스프를 마시지만 등반식으로 준비해간 빵은 먹히지 않는다. 민경원씨는 녹차만 넘길 정도다.

 

곧바로 침상으로 가 담요를 다섯 장이나 덮고 눕는다. 하지만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목이 말라 일어난다. 따뜻한 스프를 끓여 마시고 다시 눕는다. 또다시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차갑게 언 빵을 몇 조각 넘긴다. 옆에 누운 민경원씨는 꼼짝도 않고 있다. 이렇게 몇 번이나 침상과 주방을 오가니 날이 밝아왔다. 북벽을 오르내리느라 몸의 열량을 모두 소모한 탓인지 담요 속에서 몇 시간이 지나도 땀에 젖은 속옷이나 양말이 마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나무를 찾아 난로에 불을 지핀다.

 

연기만 자욱하게 피어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발바닥을 맞대며 양말을 말린다. 아침 9시가 넘자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대충 아침을 챙겨먹고 산장을 나선다. 지난밤에 오른 언덕길을 따라 내린 후, 가파른 꿀르와르를 따라 레쇼(Leschaux) 빙하에 내려선다. 며칠만이긴 하지만 인간의 흔적을 만나니 반갑다. 누군가 지나간 설피 자국을 따라 메르데 빙하(Mer de Glace)로 내려선다.

 

몽탕베르(Montenvers) 언덕이 한참 아래에 보이는 지점이다. 3명의 산악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등반차림을 보자 발걸음을 멈췄다. 재작년에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오른 스티브 하우스 일행이다. 매력적인 얼굴의 스티브는 자신들의 그랑드조라스 북벽등반을 위해 몇 가지 등반조건을 묻는다. 그들의 성공을 바라며 우리는 계속해서 빙하를 거슬러 내린다. 땀에 전 발바닥이 쓰려온다. 이윽고 몽탕베르 산악열차 역이다.

 

마침 누군가가 어깨를 두르려 돌아보니 지난 가을에 로쉬포트 능선에서 만났던 이태리 산악가이드 프란세스코이다. 자신에게 보내준 사진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무척 반가워한다. 이렇게 그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기에 나 또한 기쁜 마음으로 대한다. 그는 손님을 데리고 발레 블랑쉬 설원에서 스키로 내려왔다고 한다. 잠시 그와 대화를 나눈 후, 우리는 산악열차에 올랐다. 덜컹거리는 산악열차 창밖으로 막 저녁노을이 펼쳐지고 있다. 이제 힘든 여정후의 즐거운 축배가 남았다.

 

- 글 : 사진 /허긍열 알프스 통신원 - / 월간 마운틴 2007, 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