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알프스에서 온 편지] 트렐레조 계곡 [2] *-

paxlee 2007. 9. 7. 21:59
 
                  [알프스에서 온 편지] 트렐레조 계곡
 
   ‘나는 낭가파르밧을 당신의 말대로 공평한 수단으로 올랐다’
      헤르만 불이 머메리에게 헌사한 <8000미터 위와 아래>
가난으로 담금질한 유년시절

 ▲ 계곡 상단에서 몽블랑 산군쪽을 바라보며 헤르만 불을 만나는 즐거움을 가졌다.

       우선 목차부터 펼쳐보니 8000미터 아래쪽 이야기 즉, 헤르만

       불이 이곳 알프스에서 성장하며 행한 등반 이야기가 대부분

       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위고 한 해 늦게 학교에 갈 정로도 허

       약했던 헤르만이 어떻게 불굴의 알피니스트로 자랄 수 있었

       는지 짐작이 간다.

       고향 인스브루크 외곽 연봉들을 보며 자란 헤르만은 열 번째

       생일 기념으로 아버지와 인스브루크 외곽의 글룽게처

       (2,600m)를 오르고서 산의 세계에 빠져든 뒤 이후 산악회 소

       년부에 들어 자신의 넘치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인

       스브루크 북쪽 연봉들을 오르내린다.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더욱 산을 찾지 않았나 싶다.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으로 낮에 용달사 일을 도와 번 용돈으

       로 싸구려 음식점을 찾아 해결하고 남은 돈으로 일요일마다

       산에 갈 돈을 모았던 헤르만 불. 다행히 기차 값 걱정 없이 인

       스브루크 외곽 산을 오를 수 있어 마냥 행복해 한 그였다.

       그러고 보니 필자의 학창시절, 밥값까지 아낀 푼돈을 모아 고

       향의 팔공산이나 그렇게나 그리던 설악산으로 향할 때의 행

       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 가족 셋이 야생화 밭을 지나고 있다. 저멀리 투르빙하쪽이 보인다.

이제 소년티를 벗은 십대 후반의 헤르만은 고향 연봉에서 북티롤 산군, 그리고 돌로미테까지 활동영역을 넓힌다. 선배들이 오른 루트를 답사하며 더욱 산의 세계에 매료되는데, 정상에 올라 케언 아래에 감춰진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을 때의 심정은 누구나 쉽게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리라. 이후 더욱 혹독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단련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과연 위대한 등반가란 그저 길러지는 게 아님을 느낀다.


계곡이 깊어 텐트에 일찍 그늘이 졌다. 금방 한기가 느껴져 재킷을 껴입고 이른 저녁을 먹는다. 또다시 책을 펼쳐든다. 열여덟의 나이에 군에 입대한 헤르만 불은 규율에 얽매이는 생활에서도 틈만 나면 산으로 향한다. 굳은 빵과 치즈만 가지고도 시끄러운 병영을 빠져나와 대자연을 접하며 자유와 독립을 만끽했던 그는 한번은 마우크 서벽을 초등했지만 복무규정 위반과 외출시간 초과로 닷새 동안 영창 신세를 지고 일선부대에 배속된다. 이후 전쟁과 포로생활로 2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산에 대한 그의 열정적 충동은 억눌리지 않아 오히려 더 타오르기만 한다.


▲ 이튿날 아침, 르뷔에에서 출발한 중년의 트레커들.
이제 저녁 9시가 넘어 눈이 침침해진다. 랜턴을 켜지만 그다지 밝게 느껴지지 않는다. 눈이 침침해 눈을 감는다. 어느새 잠들었는지 캄캄한 밤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다.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있다. 침낭에 파고들어 랜턴에 의지해 책장을 넘긴다. 헤르만 불 또한 한때 스키에 매료되어 시합에 출전하기까지 하지만, 스키선수로서의 생활은 왠지 맞지 않음을 알고 등산에 매진한다. 그러던 중 크레바스를 건너뛰다 다리를 다쳐 몇 달 간 깁스를 하게 된 헤르만에게 예쁜 아가씨가 나타난다. 필자 또한 이십대 후반에 울산바위에서 야바위하다 다쳐 몇 달 간 깁스를 한 상태로 첫사랑을 만났던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 허긍열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회원 / 월간 산 [455호] 20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