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한국 히말라야 원정대 [11-2] (1993년) *-

paxlee 2007. 10. 26. 20:01

 

            고룡산악회 가셔브룸 2봉원정대

▲ 김병석 권오수 문인주대원

창립 15주년 기념사업으로 결성

된 포항 고룡산악회의 가셔브룸

2봉원정대가 5명 등정이란 큰

성과를 얻어냈다. ‘포항 지역 단

일팀 최초의 8천미터급 산 등정’

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 원정대

는 장이석대장(29), 김병석부대장

(31), 이재욱(29), 손은호(27),

문인주(24), 권오수(28)대원 등

                                                                6명으로 구성된 단촐한 팀이었다.

 

이들은 5월 29일 베이스캠프(5,200m)에 도착하여 노멀루트인 남서릉으로 등반을 개시 6월 7일 제1캠프, 21일 2캠프, 30일 3캠프를 설치하며 한달 만에 정상공격의 채비를 마쳤다. 드디어 7월 5일 4캠프 지점에 올라 다음날 김병석, 권오수, 문인주 등 3명의 대원이 새벽 2시 10분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일행은 5시 40분 남동콜을 올라 남동릉을 등반, 오전 10시 30분 무사히

정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장이석대장과 손은호대원이 2차 공

격에 나서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총 6명의 대원 중 5명이 등정에 성공하는

보기드문 성과를 올렸다. 이 등정은 93년도 시즌 가셔브룸에서의 첫등정

이었다.


경희대산악회 브로드피크원정대



가셔브룸 원정대가 5명 등정이란 큰 성과를 올린 반면, 같은 산군에 있는

브로드피크(8,047m)에 도전한 경희대원정대는 정상을 불과 11미터 남겨

두고 통한의 후퇴를 해야만 했다. 브로드피크는 88년 악우회가 전봉을 등

정한 것을 비롯 92년 경남연맹팀에게도 실패를 안겨준 산으로 중앙 콜에

서 정상에 이르는 구간이 적설량이 많고 거리가 멀어 많은 원정대들을

상 못미쳐 돌아서게 했다.


62년 국내 최초의 히말라야 원정인 다울라기리 2봉을 다녀온 바 있는 경희

대산악부는 그 당시 대원이었던 송윤일회장(58)을 단장으로 해서 홍정표

대장(39), 오규동등반대장(28), 박흥수(25), 박창수(25), 한동근(27), 박성

현(24), 박영식(24), 박영록(27), 신달호대원(47) 등 모두 10명으로 원정대

를 결성했다.


원정대는 7월 7일 베이스캠프(4,950m)에 도착한 지 2주 만인 20일 3캠프

(7,100m) 설치를 마치고 정상공격 채비를 했다. 그러나 29일과, 8월 14일,

15일에 걸쳐 세 차례나 정상공격을 시도했지만 많은 적설량 때문에 번번

히 실패했다. 원정대는 하산 포터를 미리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16일에는

본부 텐트 한 동만을 남겨두고 일부 대원들이 철수해야만 했다.


정상등정을 위해서는 또하나의 캠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대원들

은 8월 23일 7,500미터 지점에 설동을 파고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오규동,

박창수대원이 마지막 공격에 나섰다. 밤 1시 40분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

이들 중 오규동등반대장이 11시경에 제2봉(8,036m)에 도달했다. 그러나

심한 강풍 속에서 더이상 혼자 등반해서는 안된다는 본부의 지시를 받고

오대장은 눈물의 후퇴를 해야만 했다.


충남공대 낭가파르밧원정대



한편 남봉 낭가파르밧 서벽에 출사표를 던진 충남공대원정대도 정상을

얼마 안 남겨놓고 대원이 실종되는 비운을 맞았다. 최형득대장(42)의 지

휘아래 차용석(39), 박재범(37), 김환중(36), 박승우(26), 송승준(29), 안

춘문대원(27) 등 7명으로 구성된 이 원정대는 킨스호퍼 루트를 따라 제4

캠프(7,650m)를 설치하고 7월 7일 정상공격에 나섰다. 새벽 4시에 출발한

공격조 안춘문, 박승우 두 대원은 스페인대원 2명과 함께 정상을 향했다.

 

그러나 도중에 박대원이 심한 고소증세로 등반을 포기하고 4캠프로 내려

갔다. 혼자가 되어버린 안춘문대원은 등반을 강행했으나 8,070미터 지점

에서 마지막 교신을 한 뒤 실종되어 버렸다. 이것은 봄에 에베레스트에서

2명이 조난사한 데 이은 93년도의 세 번째 사망 사고였다.


홍익대산악회 라카포시원정대



소카라코룸의 라카포시(7,788m)에 도전장을 낸 홍익대산악회는 해발 5,

800미터 지점에서 눈사태를 만나 고립되는 등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

다가 역부족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소카라코룸의 두 번째 고봉인 라카포

시(Rakaposi)는 예로부터 ‘악마의 꼬리’, 혹은 ‘눈의 어머니’로 불렀다.

이 산은 58년 영국-파키스탄합동대에 의해 남서릉으로 등정했는데 한국

대가 노린 북릉은 79년 폴란드-파키스탄 육군합동대에 의해 등정된 루트

였다. 한국대는 이 산의 제 7등을 노리고 베이스캠프(3,800m)를 건설했다.

홍익대산악회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결성된 한국대는 이상돈대장(37)의

지휘아래 김대실부대장(34), 송재헌(27), 정사찬(25), 유인대(31), 이성기

대원(25) 등 6명으로 구성되어 6월 23일부터 등반을 개시했다. 이들은 첫

번째 난관인 꿀루와르를 통과해 29일 북릉으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그

리고 날카로운 설릉을 등반해 7월 10일 제2캠프(5,400m)를 건설했다.

 

7월 13일에는 눈사태를 만나 대원들이 5일간이나 고립되어 있기도 했지만

2캠프를 재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이 5,900미터 지점의 날카

로운 설릉을 돌파하고 3캠프 건설을 눈앞에 두었을 때부터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틀 만에 적설량이 2미터를 넘었다. 결국 이들은 더이상의 전

진이 어렵다고 판단, 26일 등반을 포기했다.

그레이트 트랑고 벽등반 개가

서울시립대 트랑고 타워원정대

93년 파키스탄에서 행해진 등반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된 것은 서울시립대가 개가를 올린

그레이트 트랑고 타워(Great Trango Tower)

등정이었다. 이것은 전년도에 남가주한인산악

팀이 개가를 올린 트랑고 네임리스타워(6,

231m) 등정에 이은 히말라야 거벽등반의 큰

성과로 꼽혔다.


시립대는 91년 요세미티 원정에서 쌓은 거벽

등반의 경험을 살려 조동영대장(28)의 지휘

아래 이계남(27), 이수용(25), 김창호(25),

이동훈(38) 등 5명으로 원정을 떠났다. 이들

발토로빙하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수

고도 1,500미터에 달하는 그레이트 트랑고

타워의 북동벽 노르웨이루트를 따라 올랐다.

이 봉우리는 트랑고 타워 산군의 최고봉으로

77년 7월 미국대 6명의 대원이 전원 남서벽을 따라 알파인스타일로 초등

정한 화강암 봉우리이다.

 

그후 남서벽, 북서벽과 북동벽에 새 루트가 뚫렸는데 시립대가 택한 북동

벽은 84년 노르웨이팀이 초등한 루트이다. 그후 90년에 일본대가 재등에

성공했고 한국대가 세 번째 등정을 노린 것이다. 원정대는 하단 400미터

지점까지 루트개척을 해놓고 7월 17일부터는 정공법으로 등반을 개시하

여 총 41피치에 이르는 구간을 15일간 오른 끝에 8월 1일 이계남, 이수용,

김창호대원이 암벽부의 마지막 지점(6,150m)에 도달했다. 여기서 날씨가

악화되어 눈발이 거세지고 나머지 설면루트의 상태가 나쁘다고 판단, 하

강을 결정했다. 비록 이들이 정상에는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북동벽의 전

암벽구간을 돌파한 것만으로도 이 등반의 목표는 달성된 셈이었다.

인도 지역 2개 팀 진출, 연속 고배

대구합동대 탈레이사가르 원정대



93년은 인도의 두 지역에 있는 6천미터급 암봉에 한국 2개 팀이 진출해

눈길을 끌었다. 대구합동대가 가르왈히말라야 강고트리 지역에 있는 화강

암봉 탈레이사가르(6,904m), 부산공업대에서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 쿨루

산군에 있는 두 침봉 팝수라(6,451m), 다람수라(6,445m)에 의욕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탈레이사가르(Thaley Sagar)는 ‘흰 얼음’이란 뜻을 가진

암봉으로 인도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는 ‘파팅 피트와라’라고 부른다.

 

주변에 쉬블링, 바기라티, 케다르나스 돔, 메루 등과 함께 거벽등반의 대

상지로 꼽히는 이 산은 79년 6월 미국-영국합동대가 서면 꿀루와르를 통

해 초등정한 이래 6개 팀만이 등정에 성공할 정도로 난이도 높은 곳이었다.

한국대는 이 봉우리의 북벽에 신루트를 뚫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4월 27일

베이스캠프(4,700m)를 구축했다.

 

91년 대산련 시샤팡마-초오유 원정대원이었던 최병수대장(29)의 지휘아래

최상원(29), 허긍렬(28), 최기환(28), 송종길(27), 하찬수대원(25) 등 6명

으로 구성된 이 팀은 5월 13일 해발 5,600미터 지점에 전진캠프를 설치하

고 벽등반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은 북벽의 6,400미터 지점에서 날씨 악화

와 귀국 일정으로 등반을 포기해야

만 했다.


부산공대산악회 인도히말라야원정대



한편 팝수라, 다람수라에 첫진출한 부산공업대팀은 바라시그리빙하를 거

쳐 6월 21일 베이스캠프(4,200m)를 건설했다. 서승일단장(50), 홍보성대

장(38)의 지휘아래 김영택(37), 정대길(32), 남현욱(27), 서대원(26), 권

광호(25), 구진국(26), 한태운(25)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된 이 원정대는

부산공업대 창립 70주년 기념으로 결성된 팀이었다.


이 팀은 먼저 다람수라 북벽 초등을 노리고 제1캠프(5,200m)와 2캠프(5,

750m)를 설치하고 6월 26일에는 권광호, 한태운대원이 3캠프 공략에 나섰

다. 그러나 이들이 6,000미터에 위치한 3캠프 지점을 100여미터 남겨두었

을 때 갑자기 표층 눈사태가 발생해 이들을 1,000미터 아래로 쓸고 내려갔

다. 이 사고로 권대원이 무릎 골상을 입자 원정대는 등반을 포기하고 말았

다. 이로써 인도히말라야로 진출한 두 팀의 등반은 실패로 끝났지만 높이

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산을 찾아 벽등반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

가되었다.

칸텡그리와 포베다 연속등정

전국합동 칸텡그리-포베다원정대
산사람산악회 포베다-칸텡그리원정대



전년도에 이어 구소련 카자흐공화국의 천산산맥 국제캠프에 참가한 한국

대는 2개 팀 13명이었다. 한상국(46·성균관대산악회)을 중심으로 7명이

개인적으로 참가한 전국합동팀과 6명으로 구성된 산사람산악회팀 등 2개

팀은 천산산맥 최고봉 포베다(7,439m)와 칸텡그리(7,010m)를 동시에 노

리고 있었다.


7월 14일 베이스캠프에 들어간 합동팀은 19일과 23일에 정상을 노렸으나

 악천후로 패퇴하고 31일 엄홍길(33), 김재수(32)조가 설동에서 비박을

감행한 끝에 정상에 올랐다. 이어서 이틀 후인 8월 2일 한상국, 최주환(35)

조가 정상을 밟는 데 성공함으로써 시즌 첫등정을 기록했다. 한편 포베다

를 먼저 공략한 산사람산악회는 조성덕대장(33)의 지휘아래 유홍균(33),

홍종대(34), 조성호(33), 박우택(30), 변철희대원(28) 등 6명으로 구성되

었다.

 

이들은 7월 14일 베이스캠프에 들어가 고소적응을 마친 뒤 8월 4일 4캠프

(6,400m)까지 진출했으나 악천후를 만나 등반을 포기했다. 한편, 칸텡그

리 등정에 성공한 합동대의 한상국대원은 러시아인 2명과 함께 8월 13일

포베다 등정에도 성공함으로써 양봉 연속등정 기록을 세웠다.

한국원정대 감소한 네팔히말라야


93년 가을과 겨울시즌을 합쳐 네팔히말라야로 3개 팀만이 진출했다. 이것

은 예년에 비해 대폭 감소된 것으로 한국대가 에베레스트를 제외하고는

점차 다른 지역으로 등반대상지를 옮기고 있음을 뜻하고 있었다.


대전산업대산악회 록노와르원정대



세 팀 중 가장 먼저 네팔에 도착한 것은 대전산업대의 록노와르(7,485m)

원정대였다. 학교 개교 66주년 기념으로 꾸려진 이 원정대는 양화석대장

(45)을 포함, 유의선 등반대장(35), 김홍성(34), 강희용(29), 박지용(26),

박을용(24), 임병문(22), 이인우대원(여·27) 등 9명으로 구성되었다. 네팔

의 공식 명칭으로는 캉세르캉(Kangser Kang)이라고 불리는 록노와르

(Roc Noir)는 프랑스어로 ‘검은 바위’란 뜻이다.

 

안나푸르나 1봉과 글레이셔 돔 사이 능선에 솟아 있는 이 봉우리는 접근

이 어려워 등반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안나푸르나 1봉을

등반하기 위해 그레이샤돔과 록노와르를 경유한 원정대가 몇 있었다. 기

록상으로 볼 때 65년과 69년 독일대가 안나푸르나를 등반하기 위해서 이

산을 경유했었다.

 

또한 81년 스웨덴팀과 84년 스위스팀도 안나푸르나를 등정하기에 앞서

이 봉우리를 경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91년 겨울 대륜고OB산

악회에서 동계초등을 노리고 도전했다가 6,250미터에서 단념한 적이 있다.

93년의 한국팀은 8월 19일 출국, 8월말부터 남면으로 등반을 개시했으나

악천후로 인해 단념하고 말았다.


한오름산악회 구르카르포리 동계원정대



한편 대구 한오름산악회의 구르카르포리(Gur Karpo Ri ; 6,874m)원정대

는 이 산의 동계등정을 목표로 11월 20일 베이스캠프(4,800m)를 구축했

다. 구르카르포리는 네팔의 랑탕히말 동남부에서 티베트와 국경을 이루며

 솟아 있는 산으로 산명은 티베트어로 ‘흰 진영(陣營)의 산’이란 뜻이다.

이 산은 92년 1월에 외국인에게 개방되어 기록상 미답봉으로 남아 있었는

데 한국대가 세계 초등정을 목표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전년도에 이미 정찰을 마친 바 있는 대구 한오름산악회는 창립 17주년을

맞아 천영호대장(34)을 포함, 조종제부대장(38), 김윤근(34), 임채근(32),

이후달(31), 송종길(29), 하용찬대원(25)등 모두 8명을 파견했다. 원정대

는 남서릉을 따라 등반을 개시 고정로프를 2,400미터나 설치하면서 12월

6일에는 해발 6,100미터 지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커다란 수

직벽이 더이상의 전진을 막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이들은 루트를 변경하

려 했으나 정부연락관이 허가를 하지 않아 등반을 포기하고 말았다.


동의공고OB산악회 동계 아마다블람원정대



한편 93년도의 마지막 한국원정대라 할 수 있는 아마다블람원정대가 3명

을 정상에 올리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부산 동의공고OB산악회에서 파견

한 아마다블람원정대는 윤광대장을 포함 이진용(29), 조광재(28), 김대영

(26), 송훈재대원(25) 등 5명으로 구성되었다. 남서릉 노멀루트를 택한

이들은 11월 하순 베이스캠프를 건설한 뒤 바로 등반을 개시했다. 그리고

12월 1일 오후 1시 조광재, 김대영, 송훈재 대원이 셀파 1명과 함께 정상

에 오르는 데 성공함으로써 한국의 6번째 등정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