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에베레스트와 세르파의 함수관계 *-

paxlee 2007. 11. 16. 20:03

 

              

              -* 에베레스트와 세르파의 함수관계 *-

 

네팔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우선 히말라야 산맥부터 떠올린다. 히말라야 산맥은 동서로 2400㎞로 인도·네팔·티베트·부탄·파키스탄을 지나 남북에 걸쳐 200~300㎞ 폭으로 뻗어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세계적으로 8000m 고봉은 14좌(비공인 16좌)가 있는데 그 14좌 고봉이 모두 이곳 히말라야 산맥에 있다. 14좌 중 8좌가 네팔에 있으니 네팔을 히말라야의 나라라고 할 만하다.

 

필자는 1993년 히말라야를 보기 위해 처음 네팔에 왔다. 그런 뒤 눌러앉아 15년째 이 카트만두에서 트레킹 여행사 일을 하고 있다. 카트만두 시내 중심 타멜(Thamel) 지역에 가면 에베레스트 어드벤처라는 산악장비점이 있다. 이곳의 산악장비점에 들르면 낯익은 얼굴이 많다. 바로 셰르파(Sherpa) 일을 하면서 돈을 번 이들이다. 산악 전문가이기도 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즐겁다.

 

셰르파들은 출신 별로 다양하다. 짧게는 며칠간, 길게는 몇 달간 트레커나 등반대를 위해 그들의 짐을 져주는 짐꾼(porter), 험난한 히말라야 설산(雪山)의 산행 안내를 해주는 안내인(guide), 또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주는 요리사에 이르기까지 역할은 다양하다. 그 다양한 역할을 다 맡는 전천후형 셰르파도 많다.

 

세계 최고의 기둥 에베레스트 고봉이 있는 네팔은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산악인으로 붐빈다. 수도 카트만두에는 보통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에베레스트에 도전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들은 히말라야 몇 천 미터 고지대를 트레킹하는 사람이거나 고봉에 올라가기 위해 찾는 각국의 원정대다. 그러면 이들 셰르파가 슬슬 바빠지기 시작한다.

 

셰르파는 원래 네팔에 있는 수십 개 부족 중 한 개 부족의 이름이다. 셰르파라는 부족은 네팔 북동쪽 에베레스트가 있는 솔로 쿰부(Solo Khumbu) 지역에 촌락을 구성하고 대대로 삶을 이어왔다. 고산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신체적 조건도 고산에 적응돼 있다. 세계 각국의 전문 산악인들이 이곳을 찾아 들기 시작하면서 세르파는 에베레스트의 파트너가 되었다.

 

1953년 5월 29일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힐러리경의 등반을 도운 텐징 노르가이 셰르파가 유명세를 탄 뒤, 셰르파족이 세계적 고산 가이드의 대명사가 됐다. 셰르파 중엔 등반대 못지않게 세계 최단시간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 같은 기록을 가진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일면 뒤엔 이들의 끈끈한 삶이 한 자락을 차지한다.

 

1993년 카트만두에 온 이래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내게도 셰르파 친구가 많다. 외양상 우리나라 사람과 많이 닮은 이들은 순박하고 온순해 보여서 저런 사람들이 8000m고산을 어떻게 안내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과 지내다 보면 충실하고 성실한 그들의 성격이 다른 무엇보다도 더 큰 경쟁력이 아닌가 싶어진다.

 

그들 중엔 한국 원정대를 전문으로 따라다니며 유명한 산악인의 동반자가 된 이도 있다. 셰르파들은 8000m 고봉을 외국 원정대와 함께 올라가는 꿈을 꾼다. 그러나 아무나 히말라야 고산 원정대에 참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정대 못지않은 강인함과 끈기, 체력을 가져야 하는데 셰르파 양성과정도 따로 있다.

 

우선 어려서부터 20~30㎏이나 되는 짐을 머리에 지고 히말라야의 등선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생활을 수년간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네팔등반협회에서 운영하는 등반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이때부터 산행 안내 자격이 주어지지만 그렇다고 바로 안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선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여러 경험을 쌓은 뒤, 원정대를 따라갈 수 있는 고산 원정 가이드 자격증을 따야 한다.

 

이렇게 원정 가이드가 된 뒤 사다(원정 가이드 중 최고 인솔자)를 따라 히말라야 고봉에 오를 수 있지만, 히말라야 고산은 누구에게나 죽음을 무릅쓴 지역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엔 세계 8000m 거봉을 모두 등정한 대단한 분도 있지만 눈사태와 돌풍, 강풍 속에서 목숨을 잃은 산악인과 셰르파도 많다.

 

올 한 해 동안만 보더라도 봄 에베레스트 캠프3에서 추락사한 셰르파를 포함해 에베레스트에서만 5명의 셰르파가 죽었고, 네팔 여자 셰르파 중 주목을 받던 펨파 도마 셰르파는 로체에서 사망했다. 네팔 최대의 국내 항공사 사장인 치링 셰르파란 사람은 그의 아내인 파상 라무 셰르파를 에베레스트에서 잃었다.

 

파상 라무 셰르파는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세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하다가 성공한 뒤 하산 길에 세상을 떠났다. 성공한 원정대의 영광 뒤엔 대원들 못지않은 이들 셰르파의 헌신과 노력이 있다. 이들은 만나보면 농담도 잘하고 평범한 산(山)사람 같지만, 히말라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목숨을 건 직업의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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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레스트 등반을 앞두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네팔의 셰르파들.

 

이렇게 한 해 원정을 다녀오면 목돈을 만질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한 번 고산 원정을 가면 이곳 돈으로 3락(약 35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트레킹 길에 있는 숙소(게스트하우스)나 티하우스(tea house)를 지어 운영하기도 한다. 트레킹 사업을 하다 알게 된 파상 셰르파(42)는 17살부터 짐을 드는 셰르파로 일했다.

 

셰르파 경력만 25년차다. 요즘은 산행 길에서 요리사 역할을 하는데, 한국인 원정대를 13년간 담당해왔다. 셰르파들은 이렇게 나라별 전문가로 나뉜다. 등반대의 언어와 음식 등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파상 셰르파는 요즘 그의 아들 장보 셰르파(18)를 보조로 데리고 다닌다. 그의 산행 요리 일정을 보자.

 

아침 5시에 일어나 줄 차를 끓여 트레킹을 하는 이들의 방문을 두드려 깨우는 일부터 시작한다. 차를 대접한 뒤, 새벽 산속에서 얼굴을 씻을 트레커들을 위해 물을 데우고 아침식사 준비에 들어간다. 국을 끓이고 쌀을 씻어 솥에 앉히고 반찬을 만들어 상을 차린다. 그런 다음 자신들이 먹을 밥까지 한 뒤 단시간에 설거지를 마쳐야 한다.

 

굉장히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이미 산행을 떠난 트레커의 점심시간에 맞춰 밥을 준비할 수 없다. 부엌살림을 낭로(nanglo·짐 운반을 위한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서 점심식사 장소까지 부지런히 가야 한다. 이 경우 트레커보다 빨리 점심 장소에 도착해야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트레커를 앞질러 도착한 뒤, 들고온 가재도구를 꺼내 석유 버너에 불을 붙인다. 도시에서 가져온 감자, 콜리풀라워로 반찬을 만드는 손길보다 마음이 더 급해진다. 저쪽 산등성이로 아침에 출발한 트레커들이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한다. 점심상을 차려놓고 그들을 맞은 뒤, 숭늉까지 대접한다. 다시 그릇을 낭로에 담은 뒤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파상 셰르파는 이날 저녁식사로 토종닭을 잡아 닭볶음탕이나 백숙을 만들기로 했다. 마을에 들러 몇 마리를 골라잡은 뒤 흥정을 해서 샀다. 숙박 예정인 롯지(lodge)에 도착해 부엌살림을 정리하고 다시 저녁을 준비한다. 그의 역할은 음식 준비로 끝나지 않는다. 설거지는 물론이고 옆에서 서비스도 해야 하고, 추운 날씨에 침낭에 넣을 핫백에 넣을 물도 끓여서 나눠 준다.

 

그러면 어느새 해가 저물어 있다. 아버지 파상 셰르파를 보조하는 아들 장보 셰르파의 꿈은 언젠가 8000m 고봉에 외국 원정대를 따라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고산 정상에 오른 산악인들의 화려한 영광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대단한 드라마를 만들어낸 메인 무대 위 주연들 뒤에는 조용히 일하는 셰르파들의 역할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혹시 네팔에서의 트레킹을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래서 이곳에 오셨다가 셰르파를 고용하든지 우연히 만난다면 정겨운 인사 한마디 건네면 어떨까 싶다. 나마스테(안녕하십니까).

 

/글 / 김 이 근 / 1993년부터 네팔 카트만두 거주. 트레킹 여행사 사랑산과 한식당 서울 아리랑운영. / Weekly Chosun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