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산행기

-* 북악산과 인왕산 산행기 *-

paxlee 2007. 11. 18. 22:45

 

                북악산과 인왕산 산행

 

산행일시 / 2007, 11, 18. 일요일 오전 09:30.

모임장소 / 전철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앞.

산행회원 / 가을님, 편강님, 하늘님, 트로이님, 미풍님, 서리태님,

                소나무.

산행코스 / 종각역(전철1호선 3번출구)-종로타워앞 마을버스 02번

                승차-성균관대학교 후문 와룡공원입구 하차-말바위

                쉼터-숙정문-촛대바위-곡장-청운대-백악마루(북악

                산정상)-돌고래쉼터-창의문-부암동-기차바위-인왕산

 

                                           북악산 산행기점에서  

 

오늘은 서울의 진산 북악산과 인왕산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종각역 3번 출구앞에 도착하니 트로이님과 미풍님이 와 있다.

가을님이 도착하고, 편강님이 오고, 서리태님이 다가왔다.

하늘님은 산행기점인 와룡공원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우리는 3번 출구로 올라가 종로타워앞을 지나서,

마을버스 타는 정류소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2번 버스를 타고,

말바위 쉼터아래서 내려 걸어 올라가다가 주차관리소 앞에서

하늘님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만남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공터에 둘러서서 트로이님의 리도로 가벼운 스트레칭 운동을 하였다.

 

 

오늘 서울 날씨가 영하 3도라고 하는데, 찬 바람이 불어오고

추위를 느끼게 하였다. 걸음을 빨리하였으나 땀이 나지 않았다.

가을은 이렇게 멀어지고, 단풍은 지고 낙엽은 길에 산에 딩군다.

말바위 쉼터에 이르니 관리 사무실에서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산행신청을 한 후 번호표를 받아 목에 걸고 산행을 하란다.

사무실을 벗어나니 서울성곽을 따라 길이 연결되어 있다.

성곽 넘으로 먼저 보이는 것이 그 유명한 상청각 건물이다. 

지금은 서울시에서 매입하여 대중 고급 식당으로 변했단다.

그리고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이 가까이 보인다.

다시 조금 오르다 보면 숙정문이 우리 앞에 다가선다.

숙정문(肅靖門)은 서울의 4대문 중의 북문에 해당한다.

 

 

북악산은 청와대 뒷산으로 유명하지만, 경복궁의 진산이다.

서울성곽은 남산에서 시작하여 흥인지문(동대문)을 지나

 낙산(駱山/125m)에서 북악산(342m)으로 해서,

인왕산(338m)을 지나 서대문에서 숭례문(남대문)을 지나,

다시 남산(262m)으로 이어지는 약18.2km 이다. 

옛날 조선조시대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정문과

그 중앙에 보신각을 두어, 이 서울 성곽안의 4대문 안을

서울(한양)이라고 하였는데, 현재는 삼각산(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봉화산, 망우산, 용마산, 까치산을

경계로 한강을 건너 남한산성과 청계산,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산과 근교산까지 서울이 확장되어

전통문화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촛대바위  

 

북악산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아 가을이지만,

그 푸르름이 산을 지키고 있어 산객들의 마음을

한결 푸르게 밝게 이끌어 주고 있음을 느끼며 오른다.

촛대바위는 별로 높지는 않지만, 눈길을 끌어 당긴다.

곡장이라는 곳을 올라가니 성곽의 전망대와 같다.

이곳에는 해설자가 있어 곡장은 성곽이 ㄷ자와 같이

되어 있어 성곽외부를 넓은 시야로 감시할 수 있으며,

삼청각의 현재의 모습과 북악마루의 마루는 순수한 

우리말로 정상이라며, 북악산 정상을 이르는 말이란다.

인왕산의 기차바위와 치마바위에 대한 전설도 알려주었다.

 

 

 

곡장을 내려와 조금 오르니 청운대가 있고 그곳에서

다시 북악마루를 오르는 길은 계단길이 이어지고 있다.

북악마루에서 서울시내를 내려다 보는 시야는 눈부시다.

세종로 네거리가 정면으로 뚫려있고,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서울의 중심가는 고층빌딩들의 전시장이다.

남산의 높은 타워는 서울의 상징이기도 하고, 인왕산 넘어

안산도 한가롭게 서있다. 북한산의 보현봉이 높게만 보인다.

도봉산을 멀리 보이지만,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가

형성한 삼각산의 본 모습은 보여주지를 않았다.

청와대 뒷산이지만, 정상에서는 청와대가 보이지 않는다.

 

                    계절을 잊은 진달래 한송이와 함께

 

북악마루에서 창의문으로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의

계단길이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편강님이 계단길을 내려오다가 무릎이 아푸다고 하소연...

걸음이 늦어진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매섭고,

계단길은 하산을 힘들게 하여 쉬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창의문에 도착하여 관리사무소에 번호표를 반납하고,

하늘님이 집에서 김장관계로 전화연락을 받고

여기서 귀가를 해야 하겠다고 하여, 그냥 헤여지기가

섭하여, 자하문 안쪽 공터에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산책을 나온 것 처럼, 소풍을 나온 것 처럼, 모여서

약술과 막걸리를 한잔하고, 꿀맛같은 점심식사를 하였다.

 

 

 

하늘님은 귀가를 하고, 우리는 부암동을 지나

인왕산 골목길을 지나 능선길로 오르는데,

길을 잘 못 들어 바위에 미끄러지면서 오르다 보니

한쪽에 철을 잊고 피어난 진달래 한송이를 발견하고

반갑다고 그 옆에 가서 사진촬영을 하고 올라갔다.

기차바위를 지나고, 치마바위 위를 지나서 올라서니

북악산아래 청와대건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치마바위의 전설에 얽힌 경복궁 궁궐의 모습은 여전하다.

명종과 폐위된 신씨(愼氏)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인왕산 치마바위

 

연산군의 폭정으로 중종반정이 성공하여 중종이

왕위에 오른후 왕비가 된 분이 단경왕후이다.

단경왕후 신씨(愼氏)는 연산군 추종자 신수근의 딸이다.

중종반정 반대세력으로 반정과정에 역적으로 참살되었다.

반정으로 실권을 쥔 세력들이 단경왕후는 역적의 딸이라,

후환이 두려워 역적의 딸을 왕비로 삼을 수 없다는

공신들의 끈질긴 요구에 결국 굴복하여 왕후 신씨를

폐위시켜 사가로 내 보낼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왕후로 책봉된지 겨우 7일만에 폐위가 되었단다.

중종이 임금이 되기 전 10여년을 함께한 부부가

만인지상이신 임금이 된 후 신하들의 강요에 의해

사랑하는 부인을 조강지처를 폐위하는 심정은.....

 

                         인왕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경복궁

 

중종임금은 종종 경회루에 올라 폐비 신씨가 살고 있는

인왕산 쪽을 바라보곤 한다는 소문을 들은 폐비 신씨는

인왕산에 올라 병풍바위 밑에 솟아 있는 바위에

궁중에서 입던 치마를 걸쳐놓아 왕이 바라볼 수 있게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에 치마를 펼쳐 놓았다가

저녁이 되면 거둬들이면서 서로간의 사랑의 정을

주고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애달픈 사랑의 이야기인가.

이 때부터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한 나라의 주인이었던 왕으로서도 어쩔수 없었던 것은

정통의 계승이 아닌 반정으로 오른 왕이기에 당한 수모이다.

인왕산 치마바위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인왕산 선바위

 

인왕산에는 조선시대 호랑이의 출몰로 호환(虎患)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민가는 물론이요. 경복궁이나,

창덕궁에까지 들어와 소란을 피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피해가 커지자 조정에서 군대를 동원해 호랑이를

잡을 정도였다. 불과 100년 전인 1901년에도 경복궁에

호랑이가 출몰한 기록이 있다고 하니, 이런 곳에 호랑이가,

아무리 인왕산을 둘러보아도 호랑이가 서식할 곳이 못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수려한 경치 덕분에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산수화가 많다고 한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국보 제216호인 이 작품은 비 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모습을 잘 표현한 걸작이다.

그의 400여 점 유작 가운데 가장 크고, 겸재 특유의 화법이

잘 나타나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북악산과 인왕산은 1968년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자하문으로 침투한 사건이 일어난 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다가 인왕산은 1993년 2월 24일부터

등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북악산은 2007년 4월 부분 개방된 후

10월부터 와룡공원에서 창의문까지 완전 개방되었는데,

양쪽 산행기점 관리사무소에서 등산신청서를 작성하여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번호표를 받아 목에 걸고 산행한다.

서울의 진산 중 하나인 인왕산은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싼

4개 산 가운데 풍수적으로 우백호에 해당한다.

조선 초에는 서쪽에 있는 산이라 서산(西山)이라 불리다

세종 때부터 인왕산(仁王山)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인왕산 정상에 오르니 이곳에도 개나리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마도 개나리는 봄과 가을의 날씨 온도를 감지하지 못하나 보다.

 

                             북악산 아래 청와대.  

 

인왕산 정상에서 산하의 시야는 서울의 모습을 가장 많이 보여준다.

남산아래 서울의 빌딩 숲과 강남 삼성동의 무역회관, 6,3빌딩과

하늘공원아래 월드컵경기장, 목동의 빌딩숲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한강의 풍부한 수원은 서울을 이 만큼 발전시킨 젖줄이기도 하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지만 쉽게 찾아갈 수 없는

북악산과 인왕산 산행은 서울의 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산행이었다.

언제 한 번 서울역 앞에서 남산을 산행하고 장충동으로 하산하여

동대문에서 낙산의 낙산공원을 거처 북악산을 오르고, 다시 인왕산을

오르는 서울 성곽코스를 일주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인왕산 서울성곽과 등산로  

 

하산길도 돌 계단이 있고 오름길에는 철 계단길이 이어졌다.

북악산같이 가파른 길은 아니였지만, 은행나무 아래는 노란 낙엽이,

단풍나무 아래에는 붉은 낙엽이 그대로 쌓여있어서 낙엽 그 자체가

또 다른 단풍을 연출하는 것 같아 그 아름다움이 마음을 움직인다.

이제 가을의 끝자락은 멀어지고 겨울의 산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7명이 함께한 북악산과 인왕산 산행은 가벼운 산행으로 산책하는 것

처럼, 소풍을 즐기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분 좋은 산행을 하였다.

종로문화체육회관 쪽으로 하산하여 낙엽이 쌓인 사직공원을 지나

세종문화회관 뒤쪽 종로 빈데떡집에서 뒤풀이를 하고있는데,

아우게님이 찾아와 함께 산행 마무리를 맛있게 풍성하게 하였다.

 

             -/ 사진제공 / 4050 정다운산악회 / 트로이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