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이야기

-* 대관령 금강송 숲 *-

paxlee 2007. 11. 29. 20:03
 
                      - 대관령 금강송숲 -
 
조림 80년, 금강송은 붉은 광채 내뿜는 최고의 숲이다.
일출시 눈(雪)과 조화를 이루면 풍광의 진수 볼 수 있다.
▲ 솔고개 주변의 솎아베기한 소나무숲.

강원도 강릉시 대관령 자연휴양림에 자리 잡은 80여 년생의 금강송숲은 사람이 만든 최초의 소나무숲이다. 생김새가 빼어나고 일반 숲의 5배가 넘을 정도로 울창하다. 교통도 편리하고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에 위치하여 우리나라 최고의 숲으로 손색이 없다. 더구나 이른 아침 소나무에 비치는 동해의 붉은 해와 겨울 눈이 함께 연출하는 자연의 조화는 대관령 소나무숲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겨울철 하룻밤 통나무집에 머물며 물소리를 벗하고 잠을 청하면 부족한 것이 없다. 영동고속도로가 대관령에 몇 개의 다리와 굴을 만들어 쉽게 백두대간을 넘게 한 후부터는 구불구불한 길을 통과하면서 느끼던 숲의 아름다움과 대관령휴게소에서 동해나 강릉을 바라보는 정취가 사라졌다. 


1988년 우리나라 최초로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만든 국유 대관령 자연휴양림은 표고 841m의 제왕산까지 약 400㏊를 인공으로 만든 소나무숲으로 덮여있다. 처음 휴양림을 만들 때 숲이 울창하고 계곡과 물이 많으며 접근성이 우수한 곳을 선정하려고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까? 그러나 대관령 소나무숲은 당연히 모든 면에서 뛰어났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휴양림사업을 시작하였을 것이다. 1922년부터 1926년 사이 종자를 산에 직접 파종하여 만든 숲은 가리왕산 하안미리 소나무숲 외에는 없다고 한다.


산림축적 ㏊당 450㎥…남한 평균 5배

▲ 하늘을 가린 가지와 잎.

주차장에서 두 개의 길 중 먼저 윗길로 갔다. 초보 운전자들에게는 약간 겁이 날 정도로 가파른 길을 올라서면 솔고개인데, 왼쪽에는 안내자 없이 스스로 소나무숲의 생태와 나무를 알 수 있도록 만든 숲의 시작점이 나타나고, 그 앞에 식탁과 의자가 있어 솔 그늘 아래 쉬기에 좋다. 곧게 뻗어 하늘을 찌를 듯한 소나무는 사람 키 높이부터 황토를 뒤집어쓴 것같이 붉은 광화(光華)를 내뿜고 있다. 그 붉은 빛이 강렬하게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빛이 소나무 전체를 휘감고 있어야 더욱 소나무답다는 욕심은 왜 생길까.


나무와 대화하면서 숲과 나무에 정신과 육체가 몰입된다. 소나무숲에 매료된 사람들은 동틀 녘 붉은 해가 붉은 소나무에 비치면서 더욱 붉어지는 숲 광경을 잊을 수 없어 이 숲을 찾는다. 솔고개 오른쪽 솔숲은 얼마 전 솎아베기를 하여 시원한 감이 들 정도인데, 빽빽하던 숲에 듬성듬성 나무가 서 있으니 쇠퇴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우려를 완전히 없애고 잘 자란다.
 
우리나라 평균의 5배가 넘는 ㏊당 450㎥ 이상 목재가 들어있다는 소나무숲엔 참나무가 우뚝 솟아 소나무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상을 구축하고 있다. 멋진 소나무숲을 찍으려고 수련장 부근의 숲을 카메라 렌즈에 이리저리 담아 보지만, 소나무 아래에는 활엽수들이 절반쯤 가리고 있어 소나무 전체를 찍기 어렵다. 끊임없이 변하는 숲이 실감난다.


나무 중의 왕이요 으뜸인 강원도 소나무는 강송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으며, 내륙의 소나무와 생김새가 다르다. 우선 미끈하고 색깔이 붉다. 솔잎혹파리라는 무서운 해충으로부터 의연히 견디고 수천 년을 살아온 탓인지 꿋꿋하다. 그래서 소나무숲은 인간에게 쾌적한 안식을 제공하는 가장 좋은 장소다.

▲ 솔숲 가운데 있는 대관령 휴양림 교육관.

 

이 숲보다 더 크고 변화가 많은 숲이 운동장 오른쪽 능선부터 1.2㎞ 떨어진 도독재까지 이르는 숲길이다. 솔숲길은 매 지점마다 다른 놀라운 경치와 감동을 주고, 마음이 저절로 풀어지고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해주는 숲이 이어진다.


생소한 체육시설을 지나 계단으로 짧은 능선으로 오르면 당연히 숲이라 어두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저버리고 갑자기 훤해진다. 몇 그루의 어미나무를 세워두고 그 나무에서 종자가 날아와서 숲이 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벌채했다. 금강송정(金剛松亭)이라 명명한 정자가 길가에 탐방객을 쉬어가라고 유혹한다.


숲이 시작되는 오르막길엔 소나무 외에도 물박달나무, 굴참나무, 산벚나무가 왕성하지 못한 삶을 이끌고 하층에는 들어갈 수 없게 식생이 뒤덮였다. 소나무는 키가 20m 정도이고, 직경은 50cm 내외로 균일한 형태다. 겨울 눈의 피해를 받았는지, 아니면 벼락에 맞았는지 나무 중간이 부러진 것들도 있다. 연결된 다른 능선에 닿으니 묘가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소나무들은 키가 계속 크고, 잎들은 다른 곳의 소나무보다 훨씬 진하여 나무가 건강함을 알게 한다.


▲ 1)차세대 소나무 식재. 2)숲가마 체험. 3)물레방아. 4)소나무 구과.

 

약간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길은 솔숲에 공간을 주어서 참나무들이 길 주변에 제법 크게 자라지만, 소나무 아래에 있는 것들은 몸을 웅크리고 다음 세상을 기다린다. 숨이 차게 가파른 길이 나타나 천천히 올라가고 싶지만 해가 질까봐 걸음을 재촉하니 땀이 몸을 적신다. 그런데도 숲이 주는 청량함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정면에 붉은 소나무들이 극적으로 해를 가리며 나타난다.


길이 편평하면 환하고, 경사 지면 어두움이 반복된다. 잠시 쉬면서 소나무껍질을 자세히 보면 밑둥 가까이에는 검은 색의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이 점차 정사각형으로 되다가 위로 올라가면서 새털 모양으로 되고, 결국 황토색의 밋밋한 껍질로 변한다. 거북껍질도 아니고 용비늘도 아닌 것은 아직까지 생장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다.


중간층 숲이 당단풍, 굴참나무, 철쭉으로 바뀌고, 황량한 무덤가에 선 몇 개의 석물을 지나면 대관령 솔숲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소가 나타난다. 마치 절벽에 있는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확 트이고 경사가 급한 곳에 선 소나무는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고 자생적으로 가지가 굵어지면서 이리저리 용틀임하는 모습으로 균형을 잡고 있다.


소나무 사이에 신갈나무 한 그루가 잘 버티고 있다. 신갈나무숲이 200m 가량 분포하지만 아직 소나무 위세에 눌려 가느다란 줄기와 약한 잎만 내고 언젠가는 자기들이 지배하는 숲을 꿈꾼다.

 

당단풍, 굴참, 신갈나무 등도 군락 이뤄

▲ 소나무숲과 앞 공간에 자라는 활엽수들.

 

대관령 옛길과 만나는 세 갈래 길을 지나면 수련장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다. 계곡을 따라 소나무만한 활엽수들이 나타난다. 동료들과 경쟁하는 것보다 활엽수와 경쟁하는 것이 좋은지 직경이 80m나 되는 소나무도 간간히 보인다. 이 길은 비만 오면 물길이 되어 많이 패였다.

 

눈높이에 있는 나무는 전부 활엽수다. 가을에 낙엽이 지면 줄기와 가지뿐이나 겨울을 넘어 봄이 오면 연두빛 잎이 새롭게 피어나 빛이 투과할 수 있을 만큼 투명한 숲이 될 것이다. 특히 소나무 아래 생강나무가 엮는 터널은 소나무가 충분히 주지 못하는 아름다운 그늘을 만들 것이다. 숲길에 난 공간을 먼저 확보하여 삶을 영위하려는 본능이다.


작은 개울 한가운데 직경이 30cm나 되는 산돌배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뿌리가 깊어 산사태가 나더라도 흙을 잡고 있는 힘이 강하여 떠밀리지 않고 서 있는 방재수종이다. 소나무가 석양을 받아 가로등처럼 붉은 빛으로 길을 밝혀 숲길이 다시 환해진다. 숲속 비밀한 어느 곳에서 생긴 물이 점점 합쳐져 개울을 만들고 청아한 물소리를 비산시킨다.


▲ 하늘로 뻗은 금강송숲.

 

계곡을 건너면 노루목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지만 계속 하산하면 길가에 말끔하게 숲을 정비하고 야생화 밭을 조성하였다. 계곡이 끝나는 평지에는 매발톱, 투구꽃, 구절초 등을 식재하여 봄이 되면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을 갖고 수줍게 피는 꽃들이 물가를 채울 것이다.


입구로 내려와 계곡을 따라 통나무집이 자리 잡은 대관령 옛길로 들어선다. 군데군데 우람하고 커다란 소나무들이 아직 주인 노릇을 하지만, 많은 활엽수가 다음 세대를 차지하려고 틈을 엿보며 대기한다. 통나무집에 하루 머물며 물소리를 벗하고 잠을 청하면 부족한 것이 없을 것 같다.


한번의 숲 탐방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솔숲을 알기에는 부족하므로 계절마다 한 번씩 오기를 작정한다. 특히 눈이 날리는 겨울에 오면 소나무숲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내내 아쉬운 감정을 달래려 선비걸음으로 천천히 숲을 거닌다. 어슬렁거리며 나무를 보고, 낙엽을 보며, 돌을 보고, 또 나무를 본다. 자연의 포근함을 맛본다.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횡계 나들목으로 나와서 옛 대관령 도로를 굽이굽이 돌다가 고개 아래 처음 닿는 마을인 어흘리의 버스정류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대형버스는 지나가기 거의 어려운 좁고 구부러진 길이 나타나고, 개인이 지은 통나무집들을 지나면 곧 아름다운 휴양림 매표소가 보인다.


영동고속도로 강릉 나들목에서 나와 우측 300m 지점 성산·대관령 방면으로 좌회전 후 성산을 지나 대관령길(456번 지방도)로 오면 좌측에 대관령 박물관이 있으며, 700m 더 올라오면 대관령 휴양림 표지석이 나타난다. 좌회전하여 마을 안길로 마을회관을 지나 외길을 따라 가면 좌측에 커다란 개인 통나무집이 보이고, 여기서 1km 더 가면 된다.


대중교통 서울에서 강릉으로 고속버스를 이용한 다음 강릉시내에서 시내버스나 택시로 신용극장 맞은편 구한전(교보생명)으로 이동, 503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마골(어흘리) 종점에서 내려 마을 안길로 1.8km 걸어 들어간다.


/ 글 / 이천용 숲과문화연구회·산림과학원 임업박사.

/ 월간 산 [457호] 2007.11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