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산서를 먼저 읽고 산에가자. *-

paxlee 2008. 2. 20. 20:21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산서에 미쳐 '산' 자 들어간 책은 죄다 수집하여,
      리얼하고 드라마틱한 등산세계가 진한 감동으로...


이용대씨는 <등산><즐거운 암릉길> 등 을 공동집필하고 <등산교실><알피니즘, 도전의 역사> 등의 단행본을 쓴 산서 저자이기도 하다. 이씨가 9월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를 낸 뒤 출판기념회에서 책에 저자 사인을 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등산 전문 잡지 <山水><등산>과 단행본 <등산백과> <히말라야>.

나의 산서(山書) 편독(偏讀)은 산에 미치면서 시작됐다. 산서 읽기에 빠지다 보니 산서 수집에도 광적으로 빠져들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청계천변 고서점을 드나들었다. ‘산’자가 인쇄된 표제만 보면 국적과 필자를 가리지 않고 수집했다. 내가 산서에 몰입하는 이유는 그것이 흥미롭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 평생을 살아도 체험할 수 없는 리얼하고 드라마틱한 세계가 숨쉬고 있어서 한번 손을 대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뗄 수 없는 강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산서는 산만을 주제로 다루지 않는다. 인간과 산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의 감동적인 실화가 가득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산서의 세계에도 적용된다. 책을 읽고 오른 산은 느낌이 풍요롭고 감격적이다.

 

<산경표>를 읽고 백두대간에 가면 우리의 옛 지리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위험한 산도 책에서 정보를 얻어 오르면 즐겁고 안전하다. 산서를 읽고 수집하는 일은 내게 일상사가 돼버렸다. 전공서적을 퇴출한 책꽂이 빈 공간에는 산서가 새 주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산서가 이제는 2,000여권에 이른다. 내 주변에는 산서 소장자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산서회 회원들이다. 이수용(수문출판사 대표) 최선웅(한국 산악박물관장) 윤형두(범우사 대표) 변기태(전 한산도서관장) 남선우(월간 마운틴 대표) 홍석하(월간 사람과산 대표) 김성진(전 대한산악연맹 부회장) 김병준(대한산악연맹 감사) 허창성(평화출판사 대표) 심산(산악문학가) 박그림(설악녹색연합 대표) 등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서 소장자다.

 

특히 산악계의 원로 김영도, 손경석 두 분은 산악문학의 보급과 창작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김영도 선생은 세계적인 산악명저 20여권을 번역했다. 우리 산악인에게 축복이라 할 수 있다. 1960, 70년대는 등산 관련 서적과 정보가 절대 부족하던 시대였다. 등산에 관한 나의 지적 갈증을 풀만한 책이 없었다.

 

우리 말로 읽을 수 있는 등산서적은 손경석씨가 국내 최초로 펴낸 등산 기술 지침서 <등산백과>(1962년 발행)와 박철암씨가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에 진출해 다울라기리2봉(7,751m)을 답사하고 펴낸 <히말라야>(1963년 발행) 정도가 있었다.

 

현재까지 500여권의 산서가 출간됐고 해외 서적도 필요한 만큼 수입돼 독자의 서재를 풍요롭게 하고 있지만 그때는 출판된 산서가 너무 적었다. 69년에는 등산전문지를 표방한 <등산>과 <山水>라는 두 월간지가 한 달 차이를 두고 국내 최초로 발간된다.

 

그러나 <등산>은 통권 6호를, <산수>는 통권 4호를 마지막으로 자금난 때문에 폐간한다. 71년에는 최초의 번역서인 가스통 레뷔파의 <雪과 岩>이라는 표제를 달고 변형진씨에 의해 번역, 발간된다. 당시 산악인들 사이에서 바이블처럼 애독되던 책이다. 바늘처럼 뾰족한 침봉 끝에 서서 로프를 사리는 광경이 내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감동과 충격을 주었으며 그가 책 속에서 쏟아낸 수많은 금언은 산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다.

 

당시 우리나라 레저시장은 규모가 매우 작았다. 등산인구가 적고 국민소득도 레저를 즐길 정도가 아니었으며 등산문화라는 개념조차 낯선데다 등산장비라야 군용장비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광고 수입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등산> <山水> 두 잡지는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등산>이 국내 최초의 등산지라는 영광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잡지와 인연을 맺거나 맺을 뻔한 두 사람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사진부장으로 예정된 임경식은 69년 2월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한국산악회 해외원정 훈련대 보도대원으로 참가했다가 눈사태에 묻혀 운명했다.

 

초대 발행인 장남석은 창간호를 가슴에 품고 71년 가을 인수봉 정상에서 음독 자살한다. 그러나 초대 편집장 최선웅은 인수봉의 웅자에 가려있던 숨은벽에 새 바윗길을 내는 등 고군분투했다. <등산>은 월간 <산>으로 명맥이 이어졌으며 현재 우리나라에는 현재 월간 <사람과 산> <마운틴> <산>등 3개 전문 잡지가 발간되고 있다. 국토면적의 70%가 산악 지형이지만 그 높이가 3,000m 이하로 만년설이 없는 저산국(低山國)인데도 이런 환경 속에서 3개의 전문지가 공존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지금 우리는 등산인구 1,000만 시대에 살고 있으며 아웃도어 시장 규모도 2조원 대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산서의 세계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는 산서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산서를 읽고 산에 가야 등산의 진수를 알 수 있다. 산서 읽기와 산행을 함께할 때만이 진짜 산행이라 할 수 있다.

주5일 근무로 여가시간이 는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늘어난 자유 시간을 산서 읽기에 투자하고 산행의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산에 가는 것이 어떨까?.

 

     - 글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

     - 폄 / 한국일보 2007, 11, 27일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