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씽크 이노베이션 *-

paxlee 2008. 5. 19. 21:51

 

                  씽크 이노베이션 (경쟁자가 못하는 것을 하라)


 * 성공적인 이노베이터, 무엇이 다른가?

‘씽크 이노베이션 ? 경쟁자가 못하는 것을 하라’라는 자못 선동적인 제목에 이끌려 본서를 집어 든 사람이 있다면 채 10장을 넘기지 못하고 당혹스러워 할 지도 모른다. 본서는 기업이 어떻게 이노베이션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전략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노베이션 작법 ? 리더에게서 배우는 혁신의 인간학이라는 원제가 이 책의 본질을 더 잘 대변하고 있다. 2005년 출간되어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 ‘1위의 패러다임(원제 이노베이션의 본질)’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본서는 경영학계의 구루 피터 드러커로부터 ‘현장을 제대로 아는 몇 안 되는 경영학자 중 한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지식경영 이론의 창시자 노나카 이쿠지로가 일본 각지에서 건져 올린 13건의 싱싱한 혁신 이노베이터 사례 모음집이다.

 

저자는 샤프, 소니, 도요타 등 대기업 케이스는 물론이고, 흑참치의 완전양식에 성공한 지방대학 연구소부터 최다 관중동원 기록을 세운 J리그 축구팀 사례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는 혁신가들의 행동양식과 철학, 리더십 스타일을 꼼꼼히 분석해 기존 지식경영 이론에 대입해 가며 본서를 꾸며가고 있다.

전작인 ‘1위의 패러다임’에서도 누누이 강조되고 있는 포인트지만, 형식적인 시장조사와 논리적 분석에 매몰되어 본질을 보지 못하는 ‘분석마비증후군’을 질타하고 다분히 동양적인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본서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즉, 이노베이션이란 올바른 것, 참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을 직시하고 불굴의 열정을 가진 중간관리자층의 리드 하에 지식이 조직내외부에 걸쳐 수직종횡으로 링크되면서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엄선한 ‘성공적인 이노베이터’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특질을 지니고 있을까?

 

 * 이상주의적 실용주의 추구
저자가 강조하는 이노베이터의 기본기는 균형감각이다. 높은 이상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실천력을 보이고, 또 이론에 충실하면서도 겸허한 마음으로 현장을 관찰함으로써 혁신의 씨앗을 발견하는 절묘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1년 ‘기타노 포장마차’라는 히트 아이템으로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일본의 포장마차 산업을 부활시킨 사카모토 가즈아키는 지역부흥의 열망을 가진 동시에 필요하다면 마키아벨리식 정치력까지 구사할 줄 아는 이상주의적 실용주의자의 대표자이다. 예컨대 포장마차촌을 설계할 때 ‘동일 부지 내에는 같은 용도의 건물을 한 동밖에 세울 수 없다’는 건축기준법이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자 그는 지붕이 이어져 있으면 한 동으로 본다는 법의 틈새를 발견하여 지붕은 하나로 이어져 있으면서 각기 독립된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디자인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이동식 포장마차는 1주일 정도의 임시 영업밖에 허가해 줄 수 없다는 식품위생법의 장벽에 직면해 ‘포장마차=움직이는 것’이라는 선입관을 불식시켜 고정식 주방과 이동식 좌석을 합체시키는 독자적인 방식을 고안해 경직된 법의 장벽을 보기 좋게 뛰어넘었다. ‘이노베이터=이상주의자’라는 등식에 익숙한 사람의 허를 찌르는 대목이다.

 

 * 사람들의 공감을 부르는 무대를 생성
한편 현장에서의 실천이나 경험을 통해 체화된 이러한 균형감각을 일종의 암묵지라고 규정한 저자들은 무대를 생성해 이를 조직 내부는 물론 고객과 공유하려는 노력이 이노베이션 리더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연간 150만명의 방문객 수를 자랑하는 신요코하마 라면박물관의 예를 살펴보자. 백지 상태에서 라면박물관을 완성해 낸 이와요카 요지 관장은 ‘황혼’, ‘엄마가 부르는 소리’, ‘집들이 늘어선 풍경’ 등 방문객의 향수를 자아낼 만한 수많은 은유를 실마리로 삼아 1950년대의 요코하마 시공간을 현재에 재구성했다.

 

‘누구나 편안한 느낌을 가질 온기 넘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는 도랑 덮개 한 장도 소홀히 취급하지 않았다. 지하공간의 석양을 연출하는 천정 높이를 단지 3미터 더 높게 만들기 위해 총 공사비 35억 엔 중 억 단위의 비용을 투자한 것이나 삿포로 최고의 라면가게를 입점시키기 위해 3년간 50회 이상 방문해 설득할 정도로 공을 들였던 것은 라면박물관을 단순한 라면 판매만을 위한 사업장이 아닌 추억의 세계를 완벽하게 재현해 고객의 공감을 부르는 의미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신념 때문이었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 조직 내외부에 지식의 링크를 연결
일단 무대가 생성되고 암묵지가 형식지화하기 시작되면 조직 내외에 존재하는 다른 형식지와 연결해 새로운 형식지를 만들어가며 컨셉트를 구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해지는데, 거시와 미시세계, 연역과 귀납적 사고를 수직적으로 왕복하며 지식의 링크를 엮는 것 역시 성공적인 이노베이션 리더들의 특질이라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2000년대 초, 샤프는 환경건강가전이나 건강조리기라는 개발의 방향성은 정립했으나 막상사내에는 이를 구현할 핵심기술이 없었다. 이러한 지식의 갭을 극복한 사람이 바로 샤프 가전상품 개발센터의 이노우에 다카시 실장이었다.

 

이노우에는 환경, 건강, 안전, 안심이라는 거시적인 흐름을 늘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새로운 기술의 씨앗을 찾아 현장으로 걸음을 옮겨 미시세계를 철저하게 파고드는 이노베이터였다. 그 과정에서 복어를 건어물로 만드는 건조시스템에서 힌트를 얻어 마침내 과열수증기라는 핵심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과열수증기 기술 자체는 100년 전부터 존재했고 업무용으로는 조리에도 활용되고 있었지만 ‘가정용으로 만들 수 있다면 재미있지 않을까?’라고 상품화 가능성을 직시한 이노우에가 없었다면 연결되지 못했을 지식의 링크였던 것이다.


 * 논리를 초월한 승부사의 감을 개발
맥주에서 보리를 쓰지 않는다면? 주원료로 맥아가 아닌 완두단백을 사용해 제3의 맥주라는 블루오션을 찾아낸 삿포로맥주 드래프트원의 개발 이면에는 이상주의적 낙관주의를 가진 생산기술부장 가시다와 슈사쿠가 있었다. 그는 맥주 부문에서는 아사히가, 발포주에서는 기린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산뜻한 맛을 요구하는 거대한 조류를 따르면서도 고객이 싫어하는 쓴 맛을 제거한 또 다른 맥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본능적 확신을 가졌다. 비록 지금은 없지만 시장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승부사적 직관이 있었기에 ‘이런 상품을 누가 사겠느냐’며 ‘좀 더 맥주에 가깝게 만들라’는 상층부의 압력에 꾸준히 저항하는 한편 영업현장을 돌면서 잡주로 분류되는 제품을 취급하기 꺼려하는 바이어들을 설득, 결국 대히트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저자들은 이처럼 블루오션을 창출하거나 기존 제품에 활력을 불어넣는 성공사례의 경우 논리분석에 치우치는 분석만능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 그것을 초월하려는 이노베이터의 승부사적 직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한다. 당면한 상황 속에서 추구할 절대가치가 정해지면 상품의 본질적인 의미가 보이게 되고 균형점을 직관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시다와가 과감하게 ‘맥주의 혼’인 맥아를 제거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 역시 기존의 시장에서 타사와 경쟁한다는 눈앞의 목표가 아니라 맥주의 쓴맛과 보리냄새를 싫어하는 고객도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상품을 만들려는 보다 상위의 목표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옳은 것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보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올바른 삶의 자세 없이는 이노베이션도 없다고 저자들은 단언한다. 즉, 진정한 이노베이터라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자신에게 질문하고 고뇌하는 가운데 삶의 자세를 확립해야 한다. 삶의 자세를 올바르게 확립하지 않는 한 사물을 주관적으로 생각하거나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것은 물론, 환경을 바꿀 정도의 획기적 이노베이션은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구글’, ‘Web 2.0의 기수’라고 불리며 월간 방문자 수가 누계 800만에 달하는 인터넷 서비스업체 하테나. 끊임없는 혁신으로 하테나를 변화시키는 리더는 인터넷에 대한 가치관이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르다는 소위 ‘75년 세대’에 속하는 곤도 준야 사장이다. 그는 특히 개방성을 중시하는 인물로서, 회의도 주제의 흐름에 따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선 채로 진행할 뿐 아니라 서비스 개발 역시 핵심적인 서비스 이외의 부분들은 50% 완성도로 발표해 사용자의 요망을 받아 완성해 가는 개방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인터넷의 개방성을 이용하여 사용자의 생활을 보다 풍요로운 것으로 만들고, 일본에서 시작된 독자적인 서비스를 전세계에 제공하여 다음 시대를 개척하고 싶다는 절대가치의 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진단한다.


 * 진정한 이노베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본서는 외견적으로는 본격적인 분석서가 아닌 가벼운 사례 모음집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각 사례들이 전, 후반부로 나뉘어 전반부에서는 스토리를 설명하고 후반부에서는 시사점을 제시하는 등 상당히 짜임새 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게다가 마지막 8장 ‘성공의 본질’ 편에서는 전반부에 등장한 13가지 사례 내용뿐 아니라 전작인 ‘1등의 패러다임’에서 인용된 사례들이 노나카 교수의 지식경영이론과 더불어 씨줄과 날줄처럼 교묘하게 얽혀 있어 한 권을 읽는 동안 수많은 사례를 접할 수 있으며, 핵심포인트에 대해서는 수십 번에 걸쳐 반복학습을 하는 효과가 있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경영이란 마케팅과 혁신(innovation)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만큼 기업활동의 중요한 한 축임도 불구하고 여전히 혁신이라는 말은 생산현장과 더 가까운 개념으로 느껴지고 사람보다는 프로세스적 측면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더 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성공적인 이노베이터의 자질로부터 혁신의 본질을 탐구한 본서의 미덕은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노나카 교수의 지식경영 이론을 실제 사례와 함께 부담없이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진정한 이노베이터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 무엇보다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유능한 이노베이팅 리더를 판별하고자 하는 일반 경영자 모두에게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리 뷰 / 이정호 수석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
저 자 / 노나카 이쿠지로, 가쓰미 아키라 / 발행일  2008 / 400P / 가 격  ₩ 1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