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 한국 경제위기 구조 진단 [2] *-

paxlee 2009. 1. 13. 20:58

 

   한국 경제위기 구조 진단 [2]

 

환율 폭등으로 경기 침체

 

사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는 것도 부동산 버블 붕괴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본국의 금융위기로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이 급증하면서 이에 응하려는 목적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환율이 폭등하는 상황에서도 외국인이 강한 매도세를 보이는 것은 부동산 버블 붕괴 충격이 가시화하기 전에 한국 증시를 탈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2008년 8월부터 본격화된 원·달러 환율 폭등은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환율이 폭등하는 상태에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생산을 축소한다. 기존에 확보한 원자재만 활용해 공장을 가동하기 때문이다. 환율이 폭등한 이후엔 원자재를 수입해서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데, 어떻게 공장을 돌리겠는가. 그나마 아직은 환율 폭등으로 인한 생산 정체 현상이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초부터 기업의 본격적인 생산 정체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중소기업이 환율 폭등으로 원가 부담을 이기지 못해 생산을 줄이면 대기업도 납품을 받지 못해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분만큼 제품 가격을 올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수출이 둔화되고 내수도 급감하는 상황에서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채산성이 악화돼 도산하는 기업이 줄줄이 나타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원·달러 환율 폭등은 고유가보다도 악성이다. 고유가는 에너지 절감 노력이나 원화 강세로 어느 정도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 또 유가 상승은 원유를 대량 사용하는 기업에 한해 큰 부담이 된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은 금리정책과 마찬가지로 모든 기업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실물경기 불황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원·달러 환율이 안정돼야 한다.

 

집값 폭락, 은행 건전성 위협

 

부동산 버블이 낳은 또 다른 문제는 바로 가계 부채 급증이다.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로 금융권 전체의 가계 부채 총액은 2001년 말 342조원에서 2008년 6월 말 660조원으로, 거의 320조원이나 늘었다. 매년 40조~50조원 불어난 셈이다. 증가율(1999~2005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스페인,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이 가운데 부동산 담보 대출은 307조원에 달한다. 중소기업이 운영자금 명목으로 빌리거나 제2 금융권이나 제도권 금융 밖에서 신용대출 명목으로 빌린 위장 대출까지 포함하면 부동산 담보 대출은 400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문제는 부동산 담보 대출 가운데 상당 부분이 부실화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2006년부터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가 도입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실제로 2008년 11월 MBC ‘PD수첩’ 팀이 방송 보도를 위해 무작위로 샘플링한 경기 용인 지역 한 아파트 단지 200가구의 평균 대출액은 3억4600만원이나 됐다. 대출을 받지 않은 집은 37가구(18.5%)에 불과했다.

 

물론 용인의 경우 부동산 투기 붐이 절정이었을 때 대규모 분양이 이뤄졌기 때문에 그 정도가 심한 편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가계의 부동산 투자는 용인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만약 가계가 잔뜩 빚을 지고 집을 샀는데, 그 집의 자산가치가 본격적으로 하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2007년 말 현재 주택을 두 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는 전국적으로 105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평균 4.5채씩 총 477만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2000년대 집값 거품기에 새로 두 채 이상 소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은행 빚을 얻어 집을 장만했어도 집값이 오르는 한 은행 금리를 감당하고도 남는 장사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상당수 집값이 떨어지고 금리가 오르면서 집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잠재적 매수자들은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해 입질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면 ‘버블 세븐’ 지역의 경우 고점 대비 30~40% 폭락했다. 다른 지역도 고점 대비 10~20% 하락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다주택자 105만명이 평균 한 채씩만이라도 매물로 내놓는다고 생각해보라. 집값은 폭락에 폭락을 거듭할 것이다.

 

이 같은 집값 폭락이 장기화할 경우 시중은행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부실 자산이 늘어날 소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집값 하락은 ‘대차대조표 불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과거 일본에서 벌어졌고,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라는 자산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 그 자산을 사기 위해 진 부채는 그대로 남는다. 이 때문에 가계 등 경제 주체는 한동안 부채 청산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이 지속된다.

 

부동산 PF 대출 제2 금융권 위협

 

이런 소비 위축은 다시 내수 침체와 경기 위축을 불러와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부동산 버블을 만든 주역은 중상류층이었다는 점에서 사태가 심각하다. 집값 하락으로 인한 소비 위축 효과는 주로 저소득층이 가담했던 카드채 버블 사태의 몇 배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 한 국책연구소는 최근 가계대출의 3분의 2 이상이 부동산 관련 대출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에 고소득층일수록 부동산 구입 자금 비중이 높아 70%대에 달한다는 것. 고소득층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가치가 급락하고 전반적인 신용 수축이 지속되면 이들의 부채 청산을 통한 불황 충격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밖에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PF대출 부실 문제도 결국 시행사와 주택건설업체들이 부동산 거품에 편승해 무리하게 주택 사업을 벌인 탓이다. PF대출 부실은 저축은행과 보험사 등 제2 금융권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아울러 PF 사업과 연계된 은행의 건전성도 위협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서로 연쇄 반응을 일으켜 한국 경제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 부동산 거품 붕괴의 충격과 폐해는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경제의 위기를 단순히 세계경제 상황 탓으로 돌리는 현 정권의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지 알 수 있다.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졌다고 해도 국내의 부동산 거품이 이렇게 크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 경우 한국 경제는 부동산 거품이 없는 튼튼한 경제 체력을 갖췄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휘청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2부 건설회사 죽어야 한국 경제 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각종 건설 경기 부양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8·21대책부터 10년간 500만 호 주택 공급을 천명한 9·19대책, 가계 주거 부담 완화 및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구조조정 방안을 담은 10·21대책,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인 11·3대책에 이르기까지 불과 4개월 만에 직접적인 건설 경기 부양 대책만 네 차례나 발표했다.

 

이밖에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상 건설경기 부양 대책인 경우도 많다. 정부가 향후 5년간 56조원을 투입하는 ‘광역 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이 대표적이다. 56조원의 사업비 가운데 53조원가량을 이미 포화상태인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 도로 건설 등에 투입한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런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 경제도 살리면서 결국 그것이 국가경쟁력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국토 균형발전 측면에서 지역의 대규모 SOC사업을 앞당겨야 한다.”(이명박 대통령, 10월30일) “아파트가 아닌 지방 SOC 사업 같은 경기 활성화 효과가 큰 사업을 할 것이다. 재정 지출에서 경기 활성화 효과가 제일 큰 것은 역시 건설사업이다.”(박병원 대통령경제수석)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간 교통과 물류시설 등에 투자할 것이다.”(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11월3일) 과연 이들의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선 먼저 한국 건설산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 방법으로는 여러 기준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GDP 총량에서 건설업의 비중을 계산해보는 것이다.

  

 

 

건설경기 부양책은 효과 있을까

 

‘도표2’에서 2007년 기준 한국의 실질 GDP는 798조원이다. 이 가운데 건설업은 52조원을 차지해 6.6%에 달한다. 그런가 하면 취업자 수 면에서도 건설업 취업자는 전체 취업자 2326만명 가운데 185만명으로 8%에 불과하다. 또 2003년 기준 산업연관표에 나타난 건설업의 생산유발 계수나 국산투입 계수는 결코 높지 않다. 생산유발 계수란 최종 수요가 1단위 증가할 경우 이로부터 유발되는 산업별 산출액을 말한다.

 

건설업의 경우 2.5로, 도소매업 4.09, 음식숙박업 2.9, 운수창고업 4.07, 철강 3.2, 유화제품 4.1 등에 비해 낮다. 또 투입 계수는 각 산업별 생산물 1단위 생산을 위해 투입하는 중간재 투입물 단위를 나타낸다. 이것 역시 건설업이 타 업종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없다. 이번에는 건설경기 부양책이 현실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살펴보자. 1970, 80년대 개발경제 시대에는 경기침체가 오면 건설경기 부양으로 대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당시 이런 대응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합리적이었다. 우선, 당시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설산업의 GDP 비중이 높았고 산업연관효과와 고용효과도 높았다. 건설업에 투자하면 건설업계 자체뿐만 아니라 관련 자재 생산 및 공급 업체 등 연관 산업 전반에서 매출과 고용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또한 당시에는 각종 SOC가 아직 부족한 상태였다. 따라서 건설경기 부양을 통해 취약한 SOC를 확충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다.

 

도로, 항만, 공항 등 SOC 확충은 물류 수송의 확대와 물류 비용 절감 등의 형태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 확충에 기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은 건설업말고도 수많은 새로운 산업이 발전했다. 그로 인해 건설업 비중도 크게 낮아졌고, 산업연관 효과도 줄어들었다. 또 입지별로 다르겠지만, 웬만한 SOC 투자는 거의 이뤄진 상태다. 이용률이나 가동률이 낮은 도로나 공항, 산업단지 등이 전국적으로 증가하는 데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개발연대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형 건설업체의 조직 구조와 고용 구조가 변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세우는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게 떨어졌다. 왜 그런지 ‘도표3’을 보자. 우선, 건설업체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비용절감 명목으로 덤프트럭 운전자들과 중장비 인력들을 개인사업자 형태로 분리시켰다. 당시 노조가 빠른 속도로 조직되면서 노조원들의 임금 인상 욕구가 분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공 인력도 아웃소싱 명목으로 점차 하청업체에 떠넘겨 본사 인력을 줄여나갔다. 이 같은 추세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더욱 심화됐다. 외환위기 이후 대형 건설업체에는 최소한의 관리 및 영업 인력만 남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인력도 상당수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런 가운데 개인 사업자가 된 덤프트럭과 중장비 사업자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에 따라 트럭 운임 및 중장비 단가는 계속 하락했다.

 

하청업체의 사정도 갈수록 열악해졌고, 시공 인력의 노임 단가도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 때문에 외환위기 이후 덤프 및 레미콘, 중장비 기사와 하청업체 시공 인력 등 소위 현장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실질가격 기준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건설현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