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 한국 경제위기 구조 진단 [1] *-

paxlee 2009. 1. 13. 11:37

 

                 김광수경제연구소의 '한국 경제위기 구조 진단'

 
 ▼ 제1부 글로벌 금융위기와 한국의 부동산 거품
 

 

 

한국 경제가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와 맞물려 빠르게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내 부동산 거품이 급속히 붕괴하고 있고, 환율은 정부 개입에도 불구하고 폭등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계속 인하고 있지만 시중 금리는 여전히 높은 상태다. 주가는 2007년 고점 대비 반토막 수준까지 내려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규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증가하면서 건설업계 위기론이 고개를 든 지 오래다.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이들에게 돈을 빌려줘야 할 금융기관마저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자영업자가 줄줄이 무너지고 있고, 저소득층은 저소득층대로 고통이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각각 독립돼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현상의 근저에는 부동산 거품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해야 현재의 위기 구조를 인식할 수 있고, 그에 맞는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원초적’ 악성 종양 부동산 거품

 

이 같은 위기 구조의 한가운데에는 가계가 2000년대 이후 한껏 부푼 부동산 거품에 취해 엄청나게 늘린 부동산 담보 대출이 있다. 아울러 프로젝트 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을 포함한 건설업계에 대한 과다 대출에도 문제가 있다. 이런 과다 대출은 지금 한국 경제의 ‘화약고’가 돼 있다. 현재 부동산 거품이 급속히 꺼지면서 화약고로 이어지는 여러 가닥의 도화선이 빠르게 타들어가고 있다.

 

이런 불길은 그동안 부동산 거품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여기에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가 덮쳐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화약고의 폭발력이 강해질 소지도 크다. 부동산 거품이 어떻게 한국 경제의 위기를 초래하고 이를 심화시킬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부동산 거품은 생겨날 때부터 국민경제라는 신체에 기생하는 악성 종양이다.

 

다만 이 악성 종양은 착시 현상 때문에 일정한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오히려 자산효과(wealth effect)와 건설경기 붐 등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부동산 거품의 폐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조금만 설명해도 그 폐해를 짐작할 수 있다. 가령 그동안 전문가들이 한국 경제의 핵심 문제로 꼽았던 내수 침체, 실업률 증가, 양극화 확대, 고비용 구조 등은 상당 부분 부동산 거품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우선,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가계의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다. 이는 집 값 등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생겨나는 자산 효과를 훨씬 압도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그만큼 무주택 서민의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아울러 주거비 부담이 커져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로 이어진다. 부동산 거품은 이처럼 그 자체도 문제지만 그것이 터질 때는 경제에 더 큰 충격을 몰고 온다.

 

당장 2008년 하반기 이후 계속되는 시중금리 상승이나 환율 폭등도 부동산 거품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우선, 금리 문제부터 살펴보자. 현재의 부동산 거품이 생긴 것은 금융권의 과다 대출 경쟁 때문이다. 특히 2002년부터 금융권은 부동산 담보 대출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반면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시중 자금은 은행권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은행 몸집 불리기의 부작용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예대율이다. 예대율이란 총예금에서 차지하는 총대출 비율을 말한다. 은행은 예금자의 지급 요청 등에 응할 여유를 갖기 위해 ‘예금 범위 내 대출’이라는 불문율을 지켜왔다. 이런 점에서 예대율은 일반적으로 85% 이내가 적절하다.

그러나 2004년부터 국내 은행의 예대율(양도성 예금증서 제외)이 100%를 초과하기 시작했다. 예대율은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 2007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는 130~140%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양상은 과다 대출로 자금난을 겪었던 1980년대 말의 일본 은행과 너무나 닮았다.

예대율이 높다는 것은 시중은행이 부족한 대출 재원을 예금보다 조달 비용이 비싼 양도성 예금증서(CD)나 은행채 등으로 채웠다는 뜻이다. 또 외화 차입도 늘렸음을 말한다. 은행채 발행잔고는 2005년 초 50조원 미만에서 2008년 10월 말 139조원으로 무려 90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2006~2007년에 월 평균 2조8000억원가량을 순발행한 탓이다.

 

은행이 시중 유동성을 공급하기는커녕 이런 식으로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다보니 시중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2007년 말 이후 주택 담보대출의 95%가량을 차지하는 CD연동 대출 금리가 급등했다. 당시 변동금리는 최고 8.5%선, 고정 금리형은 최고 10%선에 육박했다. 이 같은 시중 금리 상승세는 한국은행이 2008년 9월 이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25% 포인트 인하하면서 주춤한 상태다.

 

그렇다고 시중 금리가 기준금리가 낮아진 만큼 빠지지도 않고 있다. 한마디로 기준금리와 시중금리가 따로 노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하반기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치자 국내 은행이 외화를 차입하기 어려워졌다. 외화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여기에 국내에서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자 국내 은행도 신용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기존 대출을 회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정부는 ‘11·4 대책’을 통해 서울 강남 3구를 제외한 부동산 투기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 등을 해제했다. 사실상 대출 규제 완화 조치인 셈이다. 그러나 국내 금융기관은 과거처럼 적극적인 부동산 담보 대출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바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과다 대출은 금리 상승만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권이 원화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면서 기업 또한 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은 은행이 대출을 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기업보다 신용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 은행이 은행채를 남발하자 평소 회사채를 소화하던 기관투자자가 이쪽으로 몰린 탓이다. 은행은 그동안 만기가 1년 이상 7년 이하의 은행채를 주로 발행했다. 예컨대 2006년에 만기 2~3년짜리 은행채를 발행했다면 2008년부터 2009년에 걸쳐 상환 기간이 도래한다.

 

이런 식으로 은행채의 상환 잔존 기간별 상환도래 금액(도표1 참조)을 살펴보면, 2008년 10월 현재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금액이 55조9000억원으로 전체 발행잔고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또 1~2년 사이에 상환해야 하는 금액도 41조6000억원으로 30%를 차지하고 있다. 2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은행채가 총 97조5000억원으로 전체 발행잔고의 70%에 달한다는 얘기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차환 발행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용위기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도표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2008년부터 전월대비 은행채 순발행(증감)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은행채 차환 발행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만기가 도래한 은행채의 경우 원리금을 상환해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은행이 극심한 원화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물론 CD와 단기 외화차입 상환도 마찬가지로 원화 유동성 부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은행채 금리도 폭등하고 있다. 이는 은행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급감해 수급 균형이 무너진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은 막대한 은행채 상환을 위해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급기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나서서 원화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다. 은행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예금 금리를 올려 시중자금을 끌어오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은행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뻔하다. 부동산 담보 대출이나 기업 대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경우 부동산 가격은 더 급속히 하락할 수밖에 없다. 또 대출을 회수당한 기업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져 도산할 소지가 크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상황이 가속화하고 있다.

 

달러 수요 감당할 수 있나

 

현재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하는 환율 폭등 문제는 또 어떤가. 달러 사재기와 환(煥) 투기 등의 요인이 일부 있을 수 있지만, 펀더멘털 측면에서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순매도로 인한 외환 수요다.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순매도 규모는 2007년 27조2000억원(약 290억달러)에 이어 2008년에도 40조원(약 500억달러)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2008년 들어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된 데다 수출 기업이 달러를 내다 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8월까지 경상수지 적자폭이 125억달러를 넘었으나 10월과 11월의 경상수지 흑자 전환으로 2008년 적자 규모는 70억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율 폭등으로 외환시장의 최대 공급자이자 수요자인 수출 기업이 환차익을 노리고 달러 공급을 꺼린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수출총액을 약 4400억달러로 볼 때 수출 기업이 결제 대금 가운데 10%만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고 해도 연간 440억달러의 달러 공급이 줄어들게 된다. 2008년 경상수지 적자 추정치 70억달러를 포함하면 연간 약 510억달러의 공급이 줄어드는 셈이다. 셋째, 은행권의 단기 외채 상환을 위한 달러 수요다. 국내 은행(해외 지점 포함)이 2009년 6월까지 상환해야 하는 외채는 800억달러에 달한다.

 

국내 은행과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을 통한 단기 외화 차입은 부동산 담보 대출 경쟁이 정점에 이른 2006년부터 급증했다. 위의 세 가지 요인을 감안하면 한국의 외환시장은 플로 측면에서 약 1800억달러가 필요한 상태다. 여기에 구체적인 수치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환율 상승에 따른 투기적 가수요까지 포함하면 ‘최악의 경우’2000억달러 안팎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정부의 외환보유고는 지난 11월 말 기준으로 2005억달러까지 내려가 있다. 환매 문제와 투자손실 문제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가용 외환보유고는 한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 인도 등에 투자한 민간부문 해외 투자 펀드의 자금 환류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해외 투자 펀드가 반토막 이하가 됐을 뿐만 아니라 환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부의 시장 개입에도 불구하고 2008년 8월부터 원·달러 환율이 계속 폭등하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달러 수급 불균형이 앞으로도 계속될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은행권의 달러 수요까지 포함하면 이미 한국 외환시장은 수급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통화 스와프를 통해 300억달러 규모의 긴급 달러자금을 공급하고 수출 대기업에 달러 매각을 강요한다 한들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거듭 얘기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한창일 때 금융권은 과도하게 외화를 차입해 경쟁적으로 부동산 담보 대출에 나섰다. 그러나 글로벌 신용위기 이후 은행이 외화 차입에 어려움을 겪자 환율이 폭등하고 있다. 오늘의 환율 폭등을 부른 원인 제공자는 부동산 거품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신동아  2009.01. 통권 592호(p82~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