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 한국 경제위기 구조 진단 [3] *-

paxlee 2009. 1. 14. 12:24

 

한국 경제위기 구조 진단 [3]

 돈 구경하기 힘든 건설 현장

 

이런 구조에서 정부가 경기부양 명목으로 예전처럼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 등을 통해 건설사업 재정 확대를 하면 어떻게 될까. 답은 뻔하다. 건설사업 예산은 대부분 공사를 수주한 대형 원도급자가 차지해버리고 밑바닥으로는 거의 내려가지 않는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2002년 발주해 2004년까지 진행된 경기 성남~장호원 도로건설 공사 2공구 공사 현장 사례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도표4’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 공사에서 A건설 등 3개 대형 건설업체 컨소시엄은 총공사비(정부 예정가격은 3032억원) 2853억원에 수주해 약 1970억원어치의 공사 물량을 그 60.5% 수준인 1190억원에 하도급을 주었다.

 

간접공사비와 자재비 등의 명목으로 챙긴 이익만 해도 883억원(2853억-1970억)이다. 이에 더해 직접공사비 하도급 과정에서 780억원(1970억-1190억)을 추가로 챙겼다. A사 등은 간접 공사비와 자재비만으로 처음부터 총공사비에서 30.9%가량을 챙긴 다음 직접공사비 하도급 과정에서 추가로 27.3%가량을 챙긴다. 총공사비의 58.2%가량이 A사 등 대형 원도급업체의 이익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에 대해 대형 건설업체들은 직원을 투입해 공사 전반을 관리하는 비용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각종 관리 비용은 이미 간접공사비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단순히 공사물량을 넘겨주는 브로커 역할을 하는 하도급 발주 과정에서 다시 엄청난 차익을 챙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투입해도 대형 건설업체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된다. 정부가 기대한 효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위의 예에서 경기 부양 효과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건설경기 부양 예산 2853억원의 58.2%가 자재비/인건비 883억원과 마진 780억원의 형태로 대형 원도급업체에 돌아간다. 원도급업체가 차지하는 이 돈은 사업관리 및 영업직원들의 월급과 음성적인 로비자금까지 포함된 활동비, 자재비 등으로 나가지만 대부분 이익으로 사내 유보된다. 문제는 이 자금이 대부분 향후 이들 건설업체가 주택사업 등을 위해 택지를 매입하는 데 들어간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의 기대와 달리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자금이 땅값을 부추기는 데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지금처럼 건설업체가 자금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는 경기부양 예산이 이들의 부채 상환에 사용될 소지가 크다. 하도급 업체에 지급되는 1190억원(41.8%)도 3차, 4차, 5차 다단계 하도급 과정을 통해 중간 마진 형태로 상당 부분 사라진다.

 

이에 따라 최종 시공 인력과 덤프 트럭 및 중장비 기사 등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당초 건설경기 부양 예산의 3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 명목으로 아무리 돈을 풀어도 건설사업 현장에서는 돈 구경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더구나 시공 인력 가운데 30~40%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을 상당 부분 본국으로 송금한다.

 

국내 소비 진작 효과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위의 사례에서 원도급자가 챙기는 마진이 큰 이유는 턴키입찰(설계시공 일괄 입찰) 방식으로 공사를 발주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에선 도급순위 상위의 대형 건설업체가 가격 담합을 통해 얼마든지 폭리를 취할 수 있다. 물론 평균 낙찰가가 가장 낮은 최저가 낙찰제의 경우에도 원도급자는 20~30% 이상 남기는 게 보통이다.

 

일본이 거품 붕괴 막지 못한 이유

 

앞에서 말한 대로 외환위기 이후 건설업계는 사업구조 및 고용구조를 크게 바꿨다. 이 때문에 건설토목 사업을 통한 고용 창출 및 내수 진작 효과는 과거에 비해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건설경기를 부양한다고 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이제 일본 사례를 통해 부동산 거품이 붕괴할 때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경우 2007년 하반기 서브 프라임론(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 급격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책과 공적자금 투입,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준금리 인하 등도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하자 많은 사람이 미국은 일본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폴슨 재무장관이나 버냉키 FRB 의장 등도 가장 먼저 일본의 거품 붕괴 사례를 주시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도 현재 미국에서는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도표5’에서 보듯 일본 정부는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기 위해 1992~1995년 무려 66조9000억엔에 달하는 각종 경기부양 대책을 쏟아냈다. 그밖에 2조엔씩 세 차례 보완 대책이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 재정 투입은 73조엔에 달한다. 이는 1994년 일본 정부의 일반 예산 규모와 맞먹는 액수였다. 이처럼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결국에는 거품 붕괴를 막지 못했다.

 

이 기간 일본 경제는 0%대의 실질성장률에 그쳤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그중 당시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의 건설족(토건족) 의원의 요구에 따라 불요불급한 각종 건설·토건사업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다는 점이 첫손에 꼽힌다. 말하자면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거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당시엔 뚜렷한 계획도 없이 육지와 무인도를 연결하는 대교를 건설했다. 또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산을 마구 훼손해 도로를 건설했지만 나중에 겨우 산토끼와 노루만 지나다닌다는 비판도 나왔다. 조그만 시골길과 연결되는 거대한 고가도로도 지었다. 그러나 이런 퍼주기식 경기부양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국 거품이 붕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당시 일본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책을 폄으로써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부실 건설업체가 연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일본 건설업체는 거품 붕괴 초기의 줄도산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그 수가 오히려 늘어났다. 경제전문가 사이토 세이치로는 저서 ‘일본경제 왜 무너졌나’(들녘, 1998년)에서 건설 토목산업 종사자 수는 1991년 604만명에서 1996년 676만명으로 오히려 72만명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반면 이 기간에 제조업 종사자 수는 1563만명에서 1450만명으로 113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또한 같은 기간 건설·토목 관련 업체 수는 60만2000개에서 64만7000개로 약 4만5000개나 늘었다. 또 일본 전문가인 알렉스 커 역시 저서 ‘치명적인 일본(Dogs and Demons)’ (홍익출판사, 2001년)에서 1994년 일본의 콘크리트 제조량은 모두 9160만t으로 7790만t인 미국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국토의 단위 면적당 미국에 비해 약 30배나 많은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생기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반대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의 막대한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거품이 붕괴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건설업체가 늘어난 것이다. 이들 건설업체는 상당수 부실 업체였다.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졌다면 이들 업체는 인수합병되거나 퇴출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예산이라는 인공호흡기가 있었기 때문에 연명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저가 입찰 등 시장 질서를 어지럽힘으로써 건강한 기업의 발목까지 잡았다. 세이치로씨는 이를 두고 “1990년대 일본의 경기부양책은 건설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 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가했다. 세이치로씨는 이런 건설경기 부양 대책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폐해는 일본 경제에 오래도록 악영향을 끼쳤다. 우선 적자 재정 편성이 계속되고 국채 잔고가 누적되면서 재정 건정성이 위협받았다. 초저금리 정책을 펴고 재정 지출을 확대함으로써 격렬한 통증은 숨길 수 있었지만 일본 경제의 병인(病因)이 모호해져 병의 원인 진단에 오류가 발생했다. 또 건설사의 부실은 수면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심해졌고, 결국 1998년부터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침체를 불러왔다.

 

 

일본 정부는 1996년 실질 GDP 성장률이 3.5%로 올라서자 1996~97년에는 경기부양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도표 5 참조). 그동안 건설경기 부양으로 국가 채무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1997년부터 건설업체와 금융기관이 줄도산하는 등 2차 위기를 맞게 됐다. ‘도표6’을 보면 1990년대 후반 도산 기업 수와 도산 기업의 부채 총액이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건설업의 도산 급증으로 실직, 감봉, 장기휴가 등 근로자 피해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롱거리 된 일본의 주가 부양

 

일본 정부는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기 위해 금리 인하와 주가부양 대책도 함께 동원했다. 일본 대장성은 우정연금과 국민연금 등을 통해 1992년 하반기에만 약 2조8200억엔을 주식시장에 투입해 주가를 떠받쳤다. 이후 공적 연금은 1995년까지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주식시장에서 순매수했다. 국제 금융계에서는 당시 일본의 이 같은 주가 부양 대책을 두고 유엔 평화유지군의 머릿글자인 PKO(Peace-Keeping Operation)에 빗대 PKO(Price-Keeping Operation)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주식시장의 건전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한정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당시 특정 목표주가를 정해 투자를 직접 결정하고 집행함으로써 조롱 대상이 된 것이다. 또 일본 대장성은 일본은행에 수시로 압력을 가해 1990년 8월까지 6%였던 기준금리를 이듬해 4.5%로 떨어뜨렸다. 1994년엔 1.75% 수준으로 낮췄다. 하지만 건설 및 부동산 업계는 이런 금리 인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은행은 이미 부동산 및 건설업계의 대규모 부실채권을 잔뜩 떠안고 있는 상태였는 데다 신용경색까지 겹쳐 추가 대출을 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미 부동산시장의 투자자가 모두 거품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고 해서 부동산 쪽으로 눈길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없었다.

 

요약하자면 일본 정부는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붕괴할 때 공공건설 사업을 중심으로 한 막대한 건설경기 부양책(재정정책)과 금리 인하(통화정책), 주가부양책(공적 연금 동원) 등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버블 붕괴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과감한 구조조정 이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재정 및 통화정책 수단을 일찌감치 소진해버렸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1990년대 일본은 엔고(高)가 급속히 진행됐다는 점이다.

 

▼ 제3부 거품 붕괴 이후 한국 경제의 선택

 

지금 한국 정부는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는 가운데 1990년대 일본 정부가 하던 정책을 따라 하고 있다. 재정 확대를 통한 건설경기 부양책, 대통령까지 나선 금리 인하 요구, 연금을 동원한 주식 매입과 한국은행의 은행채 매입 등이 그것이다. 바로 일본이 장기불황으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정책 실패가 계속되고 국가적 위기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미 외환위기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료 및 정치권의 무능과 무지가 드러났다. 이들은 급변하는 21세기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한국 경제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발 밑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2008년 10월30일 일본 정부가 내놓은 긴급 경기부양 대책인 ‘생활대책’이 참고가 될 수 있다(도표7 참조). 여기에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다. 생활지원 정액 급부금(가칭) 실시 및 재계에 임금인상 요청, 고용보험료 인하, 전기 및 가스요금의 2009년1~3월 인상폭 축소,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안정 대책 강화, 중소기업 등 고용 유지 지원 대책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중소기업과 서민, 저소득층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건설·토목사업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과거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정부의 진정한 역할이 뭔지를 보여주는 대책이 아닐 수 없다. 자산시장 가격 조정은 자산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상이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가격이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는 법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하지 않던가.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미국의 경우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서 자산가격 하락을 막으려 한들 ‘밑 빠진 독에 돈 붓기’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정부는 개발경제 시대 때의 경제 운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 가계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 있는 경제는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벌이는 개발사업으로는 선진 경제를 만들 수 없다. 21세기는 첨단 기술경제 시대다.

 

지식정보화 시대이고, 창조경제 시대다. 당연히 한정된 국가의 자원을 이런 분야에 우선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첨단 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은 사람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창조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식과 정보를 생산·가공하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결국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한국 경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토건국가적 개발사업을 자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각종 건설·토목사업에 돈을 쏟아 붓다 오히려 ‘잃어버린 10년’을 만든 일본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가 걱정이다. 콘크리트에 투자하는 경제는 미래가 없다.

   

                 - [2009.01. 신동아 통권 592호(p82~101)]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