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 금융위기 해법은 케인즈에 있다 *-

paxlee 2009. 1. 17. 19:20

금융위기 해법은 케인즈에 있다 
 

다음은 영국의 금융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간판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가 지난 12월 23일 쓴 'Keynes offers us the best way to think about the financial crisis(케인즈가 금융위기 해법을 찾는 최선의 길을 제공한다)'의 주요 내용(원문보기)이다.
▲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

이 글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즉시 <뉴욕타임스> 블로그를 통해 '마틴 울프가 쓴 훌륭한 칼럼(Great piece by Martin Wolf)'이라고 극찬해 주목받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의 글로벌 경제위기 해법은 케인즈가 주장했듯 과감한 재정지출로 총수요를 끌어올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펴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인 시장주의자들은 여전히 재정지출보다는 민간지출이 더 효과적이며, 재정지출은 그저 돈을 푸는 출구를 민간에서 정부로 이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 월스트리트 등 금융자본의 대변자이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전파 매체로 평가받는 <FT>에서, 그것도 <FT>의 수석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가 시장주의자들의 논리를 배제하는 글을 쓴 것이다. '케인즈주의자'를 자처하는 크루그먼은 마틴이 마침내 케인즈의 입장이 현재 위기 해법을 찾는 최선의 길이라고 강조한 글을 쓴 것에 크게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편집자>

"프리드먼 이론은 죽었지만, 케인즈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이제 모두 케인즈주의자들이다. 버락 오바마가 취임하면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제안할 것이다. 이런 경기부양책은 다른 많은 정부들도 내놓고 있다. 독일조차 이런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거시경제학의 아버지'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다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케인즈와 함께 그의 영향을 크게 받은 가장 주목할 만한 학자 하이먼 민스키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제는 그가 제시한 '민스키 모멘트'에 대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금융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지는 순간 말이다. 모든 예언자와 마찬가지로, 케인즈는 추종자들에게 모호한 가르침을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케인즈 제자들이 "재정정책으로 미세조정이 가능하다"면서 만들어낸 이론을 지금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케인즈의 정반대 입장에 서있는 저명한 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정책을 믿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따라서 케인즈 사후 62년만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경제침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지금, 케인즈의 가르침에서 쓸 만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 더 쉽다.

3가지 교훈을 추려낼 수 있다.

첫번째, 민스키가 널리 알렸듯, 금융업 관계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건전한 금융가는 위험을 예측하고 피하는 자가 아니라, 망할 때 일반적인 방식으로 망하는 자를 지칭한다"고 말했다.

두번째 교훈은 "경제는 개인사업과 같은 방식으로 분석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회사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하지만 세계 전체가 이런 노력을 한다면 수요를 위축시킬 뿐이다. 개인은 소득을 전부 지출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세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교훈은 경제문제를 도덕문제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930년대 들어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이념이 대두됐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는 1920년대 국가 주도의 통화 남발 정책은 청산되어야 한다면서 강력한 비판을 한 반면, 사회주의자들은 실패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전면 교체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견해들은 일종의 세속적인 종교적 신념에 기원하고 있었다. 개인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경우 안정적인 경제질서가 형성된다는 신념과 이와 반대로 개인의 자율에 맡기면 착취와 불안정, 그리고 위기를 초래할 뿐이라는 신념이 대립한 것이다.

"케인즈 사상의 핵심은 실용적 접근"

케인즈의 사상이 빛나는 것은, 그가 경제시스템은 이런 식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역설했다는 점이다. 그는 가능한 한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되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도시화된 경제의 민주주의 사회에 정부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는 시장경제를 원했지만, 자유방임이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 되리라는 것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도덕적 논쟁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현대판 '청산주의자'들은 파산을 통해 새롭게 정화된 경제가 탄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좌파 진영에서는 시장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한다. 나조차 빚을 많이질수록 부가 커진다는 '금융연금술사'들이 대가를 치르는 꼴을 보고 싶다.

하지만 케인즈가 현재 살아있다면 이런 접근방식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꾸짖을 것이다. 시장은 무오류도 아니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은 생산적인 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그러나 시장은 심각하게 망가질 수 있기에 신중하게 관리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론 폴과 랠프 네이더는 설 땅이 없다"

오바마가 당선된 것은 이런 실용주의에 대한 지지를 반영한 것이다. 자유주의자 론 폴이나 좌파 랠프 네이더는 설 땅이 없어졌다. 따라서 미국의 새 행정부는 미국과 전세계를 당면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실용적 해법으로 이끄는 임무를 갖고 있다. 시급한 과제는 세계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케인즈가 주장하듯 총수요를 유지하는 과제가 우선적이다. 또한 중앙은행이 금융업체들에게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역적자국들에서 주택대출에 의존한 소비가 교정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정부의 대대적인 지출은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가계와 금융시스템을 건전하게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부실화된 금융업체의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수요 균형을 조정하는 과제가 있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주요 과제로 다뤄야만 하는 글로벌 경제질서 재구축 문제에서 이러한 과제는 중심을 차지할 것이다. 케인즈가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논의된 전후 통화체제와 관련해 염두에 둔 제안이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규제시스템과 신용팽창과 자산거품을 통제할 통화정책을 새롭게 구축하려는 시도 역시 실용적인 것이다. 민스키가 분명하게 지적했듯, 영원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복잡한 금융시스템이 안고있는 근본적인 취약점을 인식하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다. 현재의 위기에 실용적으로 공조해 대처하느냐, 이념에 매몰된 자들과 이기심이 우리를 방해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목표는 분명하다. 가능한 한 많은 인류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개방되고 최소한의 적절한 안정성을 갖춘 세계경제를 이루자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경제학에 대해 한마디했다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진실은 드물게 순수하고, 결코 단순하지 않다"고 말이다. 나로서는 그것이 이번 위기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다. 케인즈 자신도 여전히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  한배선의 경제아카데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