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 한·중·일·미 3대 부자 집중 비교 [2] *-

paxlee 2009. 1. 20. 19:52

 

                                한·중·일·미 3대 부자 집중 비교

 

기업공개 후 주가 급등으로 재산 급증


창업을 해 돈을 벌었다면 주식 가격을 높여야 한다. 전 세계 부자는 거의 대부분 창업 후 고수익을 내 시가총액을 창업 당시보다 수만 배 이상으로 만들어 부자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삼성전자보다 훨씬 적지만 10% 정도 지분을 가진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부자다. 순익이 많기 때문이다. 워렌 버핏도,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도 주식으로 부자가 됐다. 부동산은 유한하나 창업 비즈니스의 주식 가치 상승은 무한하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이 세계 최고 부자에 등극하고, 13년 동안 세계 으뜸 갑부로 이름을 올렸던 빌 게이츠 전 회장이 3위로 밀린 것은 단순히 보면 주가 때문이다. 현재 워렌 버핏의 재산은 620억달러. 1년 전보다 100억달러나 불었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그가 경영하는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가가 급등한 덕을 톡톡히 봤다. 빌 게이츠는 주가 하락으로 3위로 내려앉았다. 빌 게이츠의 재산은 580억달러. 1년간 20억달러 증가하는데 그쳤다. 특히 연초 야후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가 하락한 영향이 컸다. 이들 재산 차이는 불과 40억달러. 주가가 조금만 변동해도 순위가 금방 뒤바뀔 수 있다.

 


한국 부자서열 1, 2위는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형제다. 이들의 재산규모는 각각 58억달러(약 5조8000억원)다. 한국 최고 부자 1, 2위를 모두 현대가 형제가 차지했다. 이들이 한국의 초특급 부호로 떠오른 것은 주가 상승에 의한 재산 급증이다. 정몽준 의원은 조선업 호황으로 인해 현대중공업의 주가가 치솟은 덕분이다. 그의 재산은 3조6043억원. 이는 지난 2006년 2648억원에 비해 12배 이상 증가한 액수이다. 1조원 가까운 재산을 신고해 화제를 모았던 2007년 재산 9974억과 비교할 때에는 2.6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일본 장수·장인 기업으로 부 일궈


일본 부자만의 특징으로는 장수기업·장인정신이 꼽힌다. 전 세계에 창업한 지 200년 이상 된 기업 5586개사(총 41개국) 가운데 절반 이상인 3146개사가 일본에 몰려 있다. 한국에는 창업한 지 200년 이상 된 기업은 없다. 100년 이상 된 기업도 두산(1896년)과 동화약품공업(1897년) 두 곳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 1000년 이상 된 기업은 7개, 500년 이상 32개, 200년 이상 3146개, 100년 이상 5만여 개 등이다. 이들 장수기업의 89.4%는 종업원 300명 미만의 중소업체이다.


또 식품·요리·술·의약품을 만들거나 고유 기술로 소재·부품을 생산하는 기업, 다도와 같은 전통문화와 밀접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여관 등 가족 단위로 운영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닌텐도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비디오 게임 사업을 시작한 지는 불과 2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화투를 만드는 것을 가업으로 한 집안의 부잣집 아들로 1927년에 태어났다. 1945년 와세다대학 법학과 야간과정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조부가 병으로 쓰러지자 22살의 나이로 닌텐도 사장에 취임했다. 사장 취임 이후 닌텐도는 업계 최초로 얇은 플라스틱을 사용한 트럼프를 개발해서 일본의 트럼프 시장을 휩쓴다.


이어서 야마우치 히로시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의 트럼프와 게임 시장을 둘러본 후, 트럼프 업계가 아닌 다양한 산업 분야로 진출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시도했던 식품 산업, 택시, 호텔 경영, 교육 등이 모두 실패하고 1960년대 후반 닌텐도는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백화점 등 전국적으로 구축된 네트워크는 이후 닌텐도가 급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막대한 타격을 입은 닌텐도는 결국 자신들이 갖고 있는 화투장, 트럼프 등 게임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락기구 산업에 전념하게 된다. 그리고 1979년에는 세계 최초의 휴대형 게임기 ‘게임&와치(Game & Watch)’를 발매해 대히트를 거둔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휴대용 게임기 게임&와치의 이익금을 재투자해 1983년에 패밀리 컴퓨터라는 게임기를 출시하는데, 이것이 공전의 대히트를 함으로써 게임 기업으로서 닌텐도의 지위를 확고히 구축하게 됐다. ‘패밀리 컴퓨터’를 계기로 트럼프와 화투를 일본 내수용으로 판매했던 작은 회사가 단기간에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글로벌 컴퍼니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장수기업을 대표하는 기업은 일본 건축회사 곤고구미(金剛組)다. 578년 쇼토쿠(聖德) 태자의 초청으로 백제에서 건너간 곤고 시게미쓰(金剛重光·한국명 유중광)에 의해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곤고구미는 과거에는 사찰과 성 등을 지었으나 요즘에는 빌딩, 아파트, 단독주택 등 현대식 건물도 건설하고 있다. 곤고구미의 정신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노렌은 지킨다”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노렌은 상호가 그려진 무명천으로 곧 신용을 뜻한다. 사실 ‘메이드 인 제팬’이란 명성은 장인정신으로 대변된다. 일본에는 아직도 ‘모노쓰쿠리(물건 만들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젊은이가 많은 것도 이런 정신에 맞닿아 있다.

 

동서양간 부의 세습에는 커다란 차이

 

부의 상속과 이전은 동서양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난다. 부의 세습은 세금을 제대로 낸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세금을 제대로 내고 나면 재산 상당 부분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부자로서는 배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혹독한 시련기를 맞고 있는 삼성그룹을 보면 그렇다. 삼성특검을 받은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지난 6월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 이병철 전 회장이 1938년에 삼성상회를 설립한 지 꼭 70년 만이다. 최근 불거졌던 삼성의 차명계좌 문제도 이재용에게 부와 경영권을 동시에 승계하려는 과욕이 원인이었다.

 

삼성애버랜드 불법 전환사채 발행이나, e-삼성의 부실을 계열사가 떠안게 된 것도 승계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이다. 이는 현대그룹도 비슷하다. 현대가 역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워렌 버핏은 부를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에 대해 명백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는 부의 상속에 대해 자녀들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정도의 돈만 물려줄 것이라고 천명해 왔다. 그는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나 같은 부자의 유산을 조금 더 빼앗아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며 상속세 옹호론을 펼치기도 했다. 올 주주총회에서 원렌 버핏은 그의 투자 사업을 계승할 더욱 젊은 후계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워렌 버핏은 자신의 전 재산 대부분을 자선단체인 ‘빌&멜린다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기부할 재산은 310억달러에 달한다. 역사상 가장 큰 기부금액이다. 워렌 버핏은 평생 동안 인내와 믿음으로 새로운 기회를 바라는 곳에 장기적인 투자를 해왔다. 따라서 그의 기부는 새로운 투자로 볼 수도 있다. 기존과 다른 것이 있다면 단지 투자의 대상이 기업에서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빌 게이츠 회장도 공식 은퇴 후 자선사업에 주력하게 된다. 멜린다의 주도로 2000년 설립된 재단의 현재 자산은 330억달러. 빌과 멜린다의 결혼을 주선한 워렌 버핏이 낸 돈 34억달러도 포함돼 있다.

 

빌 게이츠는 58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 중 1000만달러 정도만 세 자녀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실현할 재단에 출연하기로 공약했다. “부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는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최대 부자로 떠오른 양후이옌은 지난 5월 쓰촨성 대지진 발생 후 300만위안의 구호금을 전달하는 등 사회사업에도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된 양후이옌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양후이옌은 지난 2002년 어느 날 부친인 양궈창에게 전화를 걸어 “가난한 집 아이들을 위해 무료 학교를 짓겠다고 하고선 왜 아직 실천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시 양궈창은 “재산은 나중에 모두 네 것이 될 테니까 좋은 일은 네가 다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양후이옌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은 빨리 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말해 부친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같으면서도 다른 부자 스타일

 

동서양 부자들의 스타일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워렌 버핏의 연설은 날카로운 비즈니스적인 해석과 유머러스한 것으로 유명하다. 네브라스카 오마하에서 매년 열리는 버크셔 헤더웨이 주주총회의 연례보고서 등에서 워렌 버핏은 성경에서부터 미국식 농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적 수사법을 사용한다. 지난 5월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총장. 단상에 찰스 멍거 부회장이 나타나 “버핏이 버크셔 헤더웨이를 떠나기로 했으며, 미모의 드라마 주인공인 수전 루치와 직업을 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수전은 “신임회장으로서 배당률을 높이겠다”고 말한다. 일순간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 워렌 버핏이 등장해 수전과의 계약서를 찢어버리며 “나는 버크셔 헤더웨이를 떠날 수 없다”고 외친다. 이 한편의 코미디에 주주들의 버크셔 헤더웨이에 대한 애정이 깊어간다. 워렌 버핏은 브리지 카드게임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다. 그는 2006년에는 브리지 게임 대회인 버핏컵을 후원하기도 했다. 워렌 버핏은 브리지 카드게임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다. 일주일에 12시간을 브리지 게임으로 보낼 정도다. 게임 상대방은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다.

 

이 대회는 골프의 라이더컵을 모델로 한 것으로 미국과 유럽간 브리지 게임 대회다. 워렌 버핏은 휴대전화가 없으며, 그는 책상에 컴퓨터도 두고 있지 않다. 그는 캐딜락DTS를 손수 운전하고 다닌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영락없는 동네 할아버지다. 빌 게이츠는 6월27일 은퇴하였다. 그는 스티브 발머와의 불편했던 동거생활이 공개되면서 빌 게이츠 회장이 컴백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는 지난 2000년부터 1년가량 엄청난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반독점 공세에 시달리던 MS는 명목상 권력 이양을 시도했다.

 

2000년 1월 빌 게이츠가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최고 소프트웨어 개발책임자란 생소한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보다 하위 직급자가 된 빌 게이츠는 여전히 회사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직급 이상의 역할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티브 발머의 손에 넘어간 것은 명목상의 CEO 자리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둘은 이때부터 한동안 끊임없이 충돌했다. 한편에서는 스티브 발머가 MS를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할 경우에는 빌 게이츠가 컴백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회사 설립자들은 회사의 영광을 회복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구세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때 은퇴했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클 델 등이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 다시 돌아왔다. 작은 화투 제조 기업을 수십억달러의 비디오 게임기 회사로 성장시킨 일본 최고 부자인 야마우치 히로시에 대한 평가도 썩 좋지만은 않다. 닌텐도는 야마우치 히로시 개인의 고집대로 운영해 나가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닌텐도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단독 결정으로 운영돼 일본 기업의 사생아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였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악독한 제왕적 스타일’로 불린다. 1949년 유일한 가족 멤버로 경영에 참여하면서부터 그는 걸림돌이 되는 임직원은 무차별적으로 해고해 누구도 그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했다. 신상품을 결정할 때도 그에게 어필하는 것과 시장에 대한 육감으로 혼자서 결정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그는 53년간 닌텐도를 이끌 수 있었다. 이는 비디오 게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없었지만 소비자들이 미래에 원하는 것을 알아채는 직감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보다는 디자인이나 예술성이 비디오 게임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창의적인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3개의 리서치 그룹을 두고 서로 경쟁하게 했다.


그는 2002년 53년간의 ‘장기경영’에서 손을 떼고 40대 초반의 사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의 퇴진은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게임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사고를 갖춘 젊은 경영인으로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 5대 부자의 가장 큰 특징은 대기업을 보유한 재벌들이라는 것. 자수성가한 것이라기보다는 부의 상속으로 부자가 된 케이스다. 또 부자문화가 아직은 정착되지 않아 그나마 부자문화를 형성해 가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가장 패쇄적인 문화를 추구하기도 한다. 이들은 단순히 돈만 있다고 유유상종하지 않는다. 사람을 사귈 때도 집안 배경과 학력, 사회적 지위를 까다롭게 따진다. 나름의 계급의식이 있고 품위와 합리성을 중요시한다. 재벌간 혼맥이 얽히고설킨 것도 이 때문이다.

 

  Interview     한동철 부자학학회 회장

“부자 바라보는 곱지 않은 정서 고쳐야”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부자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부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국내 부자학 최고 권위자인 한동철 부자학학회 회장(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은 부자에 대한 사회의 이중성이 가장 큰 문제라며 법을 지키고 양심에 따라 부자가 됐다면 그의 재산이 수조원에 달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부자가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지만 우리는 비난의 대상입니다. 부의 축적과정이 정당하지 못하고 생활방식이나 상속방식도 깨끗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 부자에게 물건을 파는 ‘부자 마케팅’을 공부했고 외환위기 이후 5년여 동안 국내 기업체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수천 명의 부자를 만났다. 그는 올해 안식년이라고 하지만 거의 매일 7시면 학교에 출근한다. 자신이 지난해 세운 한국부자학학회의 활동과 관련된 사업을 처리해야 하며, 아시아학회와 세계학회 창립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9월 출범한 부자학회는 회원, 학계 인사, 기업·금융회사 임직원 등을 포함 각계각층의 전문가 1000여 명이 가입해 이미 만만치 않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는 학회를 통해 존경받는 한국형 부자 모델의 발굴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좋은 부자, 나쁜 부자가 있을까. 그는 가지고 있는 부를 나눠줄 수 있는 부자가 좋은 부자라고 말했다. 부자들은 돈을 벌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사회에 부의 일정부분을 환원해야 하며 부자들은 돈을 쓰는 것에도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경주 최 부자’를 한국형 존경받는 부자 모델로 꼽았다. 경주 최 부잣집은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명가(名家)다.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는 옛말이 있다.

 

부를 지키기는 더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경주 최 부잣집은 무려 12대에 걸쳐 만석꾼 집안의 영예를 누렸다. 그는 최 부잣집이 오래도록 부를 쌓고 존경받은 데는 ‘부자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집안에는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마라’, ‘만 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등 모을 수 있는 재산에 한계를 뒀습니다. 또 ‘흉년에 땅을 사지 마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이 있었습니다. 남이 잘 돼야 나도 잘 산다는 상생의 지혜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기 때문에 300년 넘게 부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부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자학 박사’는 어떻게 재테크를 하고 있을까. “예전에 5년 정도 5개 기업체의 경영자문역을 하고, 부자학 강의가 많을 땐 수입이 꽤 됐습니다. 그땐 번 돈으로 직접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요즘은 펀드나 주식에 투자하고, 운용은 금융기관에 맡겨두고 있습니다.”(그는 얼마나 수익을 올리고 있는지,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는 끝까지 함구했다.) 그는 비영리단체 등에서 강의를 통해 버는 돈은 전액 부자학회에 기부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저소득층 지원단체 등에 3000만∼4000만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  글: 장시형 기자  Economy Plus Special Repo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