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 한·중·일·미 3대 부자 집중 비교 [1] *-

paxlee 2009. 1. 20. 19:48

                                    한·중·일·미 3대 부자 집중 비교

 

부자들은 끝없는 도전으로 인간 승리를 이룬 모험가들이다. 실패와 성공의 냉온탕을 오가면서 변화를 즐긴 사람들이기도 하다. 돈은 돌고, 진화한다. 이제는 돈 버는 방식을 바꿀 때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 4개국의 3대 부자 비교를 통해 돈이 움직이는 방식과 부자의 특성에 대해 알아본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자의 방법을 따라 하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한국·중국 상속부자… 일본은 장인·미국은 창업부자

 

 ‘부’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부’란 그 사람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능력 문제라고 했다. 즉, 만약 오늘 당장 일을 그만둔다면 며칠을 더 살 수 있는가, 바로 이것이 부의 척도라는 것이다. 한동철 한국부자학학회장은 “일하지 않고 가족이 편안히 생활하기 위해선 현금자산이 20억원 이상 있어야 한다”며 부자의 하한선을 그었다.

 

  한·중·일·미의 3대 부자의 재산 규모를 비교해 보면 단연 미국 부자가 앞선다. 한·중·일 각국 3대 부자의 전체 재산을 합치면 452억달러다. 빌 게이츠의 재산(580억달러)에 한참 못 미친다. 한국 3대 부자의 평균 재산은 28억달러로 일본(70억달러), 중국(53억달러)에도 뒤진다. 한·중·일 중에서는 일본의 최고부자인 야마우치 히로시(Yamauchi Hiroshi) 전 닌텐도 회장이 부자 1위다.

 

2005년 은퇴한 야마우치 닌텐도 회장의 재산 규모는 78억달러에 달한다. 그의 재산은 게임기 ‘위(Wii)’의 열풍으로 2006년에 비해 3배나 급증했다. 닌텐도의 위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총 1860만 대가 팔려 게임기 시장에서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앞질렀다. 한·중·일 3국의 부자 2위는 일본의 부동산 재벌인 모리 아키라가 차지했다. 부동산 업체 모리 트러스트의 사장인 그는 77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위였던 모리는 1년간 재산을 22억달러나 늘렸지만 야마우치에게 1위를 내줬다.


부자들의 평균 나이는 62.9세였다. 일본 3대 부자의 평균 나이는 78세다. 가장 나이가 많은 부호는 일본의 부수지마 쿠니오다. 83세인 그는 일본 내 3대 파친코 머신 제조업체 중 하나인 산쿄를 운영하고 있다. 산쿄는 파친코 산업 규제가 강화되자 만화 캐릭터를 이용한 머신을 새롭게 출시해 재도약에 성공했다. 70세가 넘는 부자는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야마우치 히로시, 모리 아키라, 부수지마 쿠니오, 워렌 버핏, 쉘든 아델슨 등 모두 6명에 달한다. 고희를 넘겼지만 대부분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다.


중국 부자의 평균 나이는 42세로 가장 젊다. 중국의 신흥 부유층이 급증하고 있다는 단적인 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라는 말은 이제 부자 세계에서도 통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세계 400대 부자에 지난해 15명에 불과했던 중국의 억만장자들이 66명이나 들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디에 살아야 할까. 일단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에 살고 있다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는 세계 12위 ‘부자 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즈는 최근 ‘진화하는 부’라는 부제가 붙은 <세계 부자 보고서>를 통해 이처럼 내다봤다. 보고서는 “세계의 부자 지형도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며 “향후 10년간 선진국 대신 개발도상국이 부자들의 요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폭발적 경제성장으로 부자 급증


한국, 중국, 일본의 부유층이 향후 아시아 소비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마스터카드 아시아·태평양 경제자문단은 <다음 성공기: 아시아의 부유층>이라는 저서에서 오는 2015년 한·중·일 부유층이 가장 많은 소비를 함으로써 6000억달러(약 600조원) 규모의 소비시장을 창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워렌 버핏은 새로운 투자지역으로 한국을 꼽기도 했다. 워렌 버핏은 절삭공구 전문 업체 ‘대구텍’을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인수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외국인의 기업 인수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분위기지만 대구텍 측은 인수에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왜냐하면 워렌 버핏이 회사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 살고 있다면 부자 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중국의 부자들이 급증하는 요인은 중국 경제와 주식시장의 폭발적 성장 때문이다.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중국의 주가지수 상승률은 2004년 10%에서 2007년에는 16%로 가속화됐다. 반면 미국, 영국, 독일 등의 주가지수 상승은 걸음마 수준에 그쳤다.


중국 최고 부자는 광둥성 순더(順德)에 위치한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앤(碧桂園·Country Garden) 최대주주(지분율 70%)이자 집행이사인 양후이옌(楊慧姸)이다. 양후이옌은 2007년 개인자산 160억달러로 2007년 중국 부호 1위에 오른데 이어 2008년에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비구이위앤의  창업주 양궈창(楊國强)의 둘째 딸로 27세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마케팅물류를 전공한 이후 2005년 구매담당 경리로 입사하면서 부친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았다. 현재 구매, 기업 자원 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 노출을 꺼리는 탓에 중국 인터넷에 엉뚱한 인물이 양후이옌이라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오하이오주립대학을 졸업한 것과 UCC사이트인 유튜브에 그의 결혼식 동영상이 올라있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을 정도다. 최근 중국의 신흥 부호들이 자수성가형인데 반해 그녀는 부친의 재산을 상속받아 1위 부자에 올랐다는 점에서 벼락부자란 평가다. 부친 양궈창은 광둥성에서 벽돌공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초 광둥성 주장삼각주(珠江三角洲)에 대대적인 주택 개발 붐이 일자 비구이위앤을 설립했고, 결정적으로는 2007년 홍콩 증시 상장 후 주가가 급등하여 큰 부를 축적했다. <포브스>의 중국 부호 순위를 기준으로 광둥성은 중국 내 부자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중국의 두 번째 부자는 난징의 중국 가전소매업체 쑤닝전기 회장인 장진동(張近東·45) 회장이다. 안후이(安徽)성 출신인 장 회장은 난징(南京)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의류 회사에 근무하다가 1990년 형(張桂平)과 함께 에어컨 판매 전문점을 차렸다. 이후 형제는 독립해 형은 건축업 투자에, 장진동은 전기제품 판매업에 나섰다. 쑤닝전기는 1998년까지 에어컨 단일 품목으로 운영하다가 1999년 중국에 가전 붐이 일 때 기타 가전, 컴퓨터, 통신을 결합한 3C 통합경영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사세가 급속히 확장됐다.

 

쑤닝전기는 현재 중국 전역에 500여 개의 양판점을 거느리고 있다. 쑤닝전기는 <포브스> 중국 100대 기업 순위에서 2006년 10위에서 2007년 1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레노보는 1위에서 15위로 밀려났다. 쑤닝전기는 후룬바이푸가 발표한 2007년 중국 50대 브랜드와 2007년 중국 50대 민영 브랜드 순위에서 10위권에 진입했다. 회사 자산총액은 2005년 43억위안에서 2006년 89억위안으로 증가했고 최근 3년간 매출 증가율이 연평균 63%, 이윤 증가율은 100%에 달한다. 장 회장은 베이징올림픽 국내 성화봉송주자로 나설 정도로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차이나 오션 와이드 회장이며 민생투자그룹 회장인 루즈창(盧志强·57)이 중국 부자 3위다. 그는 민생은행 부회장, 민생생명보험 부회장, 전국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전국공상련 부주석 등을 겸하고 있다.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출신으로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에 다소 늦게 명문 푸단(復旦)대학에 진학해 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1988년 베이징에서 차이나 오션 와이드를 설립한 후 1990년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언론에 나타나는 것을 삼가며 묵묵히 사업을 확장하는 스타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부자들의 특징은 타고난 장사꾼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한 나라가 아니다. 대륙이다. 땅이 넓고 13억 명 이상의 인구와 56개 민족이 얽혀서 살고 있다. 그들을 묘사한다는 것 자체가 어차피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그래서 부자들의 특징을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타고난 장사꾼’이라는 것은 공통점이다.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은 양후이옌을 제외하면, 장진동·황광위 등은 모두 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다.

 


개혁·개방 이래 중국 상품의 질이 조악하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1985년 12월6일 중국 하이얼(海爾)전자그룹 CEO인 장루이민(張瑞民)은 공장 작업장에서 전체 직원회의를 소집했다. 분위기는 침통했다. 작업장 앞쪽에는 76대의 갓 출고된 냉장고가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 앞에는 대형 철퇴를 하나씩 놓았다. 장루이민은 간단하지만 힘찬 훈시를 몇 마디 한 다음 곧장 옆에 놓여 있던 철퇴를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아이보리색이 선연히 반짝이는 새 냉장고를 냅다 부수기 시작했다. 사원들도 철퇴를 집어 들고 나머지 냉장고를 때려 부쉈다.

 

그 냉장고들은 품질조사 결과 모두 불합격품이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하이얼 12·6 냉장고 파괴 사건’이다. 철퇴의 일격으로 하이얼의 백색가전은 세계적 브랜드로 웅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애니콜 화형식을 거친 후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중국 톱 40 부호 중 12명은 부동산 개발업자라는 점도 특징이다. 이는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의 부동산 개발붐과 무관하지 않다.

 

부모 잘 만나는 게 부자되는 쉬운 길


부자가 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억만장자가 되는 가장 쉬운 길은 일단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다. 재산을 상속받으면 한 마디로 ‘만사 OK’다. 중국 최고 부자에 오른 양후이옌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주식을 증여받고 이 회사가 상장하면서 갑부 자리에 올랐다. 작년 9월에는 재산이 173억달러에 달했으나 주가 하락으로 몇 개월 사이에 100억달러가 날아갔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인 정몽준 의원,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도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부를 일굴 수 있었다.


부모를 잘못 만났다고 부자가 될 꿈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여전히 부자가 될 기회는 넘친다. 억만장자 1125명 중 67%가 당대에 부를 일군 사람들이다.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는 10대부터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는 점과 자수성가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930년 대공황 시절에 주식 거래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워렌 버핏은 6살 때 코카콜라 6개 세트를 사서 낱개로 팔아 5센트의 수익을 올리는 등 어릴 때부터 숫자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11살 때 주식투자를 시작했고, 시티 서비스라는 회사의 주식을 38달러에 구입했다. 주식은 사자마자 27달러로 떨어졌지만, 주식이 40달러가 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가 팔아서 이득을 얻었다. 그러나 이 주식은 곧 200달러로 치솟았고, 버핏은 이때 인내와 믿음이야 말로 투자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워렌 버핏은 1951년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의 벤자민 그래엄 교수가 그의 가치투자의 스승이다. 버핏은 평소 “그래엄은 투자의 기본은 비즈니스로 주식을 봐야 하며 시장의 변동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안전함 속에서 이익을 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나의 투자 좌우명이다”고 말하곤 했다. 1956년 워렌 버핏은 자신의 버핏 투자회사(Buffett Asso-ciates, Ltd.)를 차리고 본격적인 투자 사업에 나서게 된다. 이때 워렌 버핏은 다우(Dow) 주식시장에 투자해 251%라는 기록적인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그의 이름은 고향 오마하에 널리 알려졌고, 그가 투자하면 반드시 벌어온다는 명제가 성립되기 시작했다.

 

이후 투자금은 워렌 버핏에게 몰리기 시작했고 720만달러의 투자금으로 10년간 1156%라는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워렌 버핏은 11살 때 배웠던 투자에서 인내와 믿음이라는 가치를 평생 지켜왔다. 1965년 인수한 투자 회사 버크셔 헤더웨이의 경우 회사에 대한 인내와 믿음으로 장기적인 투자를 했고, 연이은 성공으로 주가가 계속 올랐지만, 주주에 대한 믿음과 보상으로 단 한 차례의 액면분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가는 1만 배 올라 현재 1주당 10만달러, 한화로 1억원이라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며 월스트리트 가에서 황제주로 불리게 됐다.


빌 게이츠는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1973년 하버드대학에 입학해 그 곳에서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으로 있는 스티브 발머를 만나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했다. 빌 게이츠 회장은 대학 2학년 때 폴 알렌과 함께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에 보다 전력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했다. 이들은 PC가 모든 사무실과 가정에서 중요한 툴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PC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운영체제인 MS-DOS와 윈도우의 개발로 그는 전 세계 IT산업을 주무르는 위치에 올랐다.


창업은 현재도 부를 일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로 이름을 올린 미국의 마크 주커버그는 이제 고작 23세다. 우리로 치면 대학 졸업반이다. 그는 벌써 15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다. 그는 하버드대학에 다니다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을 만든 뒤 아예 학교를 때려치웠다. 이후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틀면서 ‘제2의 게이츠’와 ‘제2의 구글’을 꿈꾸고 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서지 브린(34)과 래리 페이지(35)도 각각 187억달러의 재산을 거머쥔 갑부로 성장했다.


미국 부자 3위인 ‘카지노의 대부’ 쉘던 아델슨(Sheldon Adelson) 라스베이거스 샌즈그룹(Las Vegas Sands Corp.) 회장은 투자의 귀재다. 자신이 창시한 컴퓨터 관련 전시회인 컴덱스(COMDEX)를 1995년 일본 소프트뱅크(당시 대표는 재일교포인 손정의씨)에 8억6000만달러에 매각했고, 마카오 진출 자금을 얻기 위해 베네치안 호텔 내 쇼핑센터와 일부 식당 등을 매각 또는 임차해 7억66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재벌로는 처음으로 아시아에 진출, 대박을 터뜨렸다. 2004년 증시에 기업을 공개, 거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의 재산 규모는 265억달러다.


아델슨은 보스턴에서 택시운전사를 하던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부터 사업을 시작해 부동산, 투자 및 재정 컨설턴트로 부를 축적했고, 지금까지 50여 개의 회사를 설립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1989년 라스베이거스 샌즈 호텔과 카지노를 구입하면서 카지노 업계에 뛰어들었다. 그 해는 바로 라스베이거스 황제로 불리는 스티브 윈(Steve Wynn)이 미라지 호텔을 오픈, 라스베이거스 역사를 바꿔놓은 해다. 미라지 호텔의 대성공을 계기로 라스베이거스는 음습하고 퇴폐적인 도박과 환락도시 이미지를 탈피, 온가족이 휴가를 즐기는 ‘테마가 있는 엔터테인먼트’ 도시로 변신하고, 라스베이거스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운 좋게도 그런 부흥기에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한 아델슨은  탁월한 운영 능력으로 부를 일궜다.

 

              -  글: 장시형 기자  Economy Plus Special Repo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