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이야기

-* 삼척 준경묘 소나무 (1) *-

paxlee 2010. 1. 7. 22:05

 

            [김규의 나무기행] 삼척 준경묘 소나무 (1)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1)
제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 차지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나무다. 조상들의 한국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고,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으로 시작하는 애국가 2절에 표현될 정도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다.

소나무(松)는 나무(木)와 공(公)자가 합쳐진 글자로 지체 높은 나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 소나무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2009년 8월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2050년에 한반도는 아열대화로 소나무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고 대표 수종은 더위에 강한 졸참나무로 바뀔 전망”이라고 밝혔다.

▲ 준경묘역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34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적송의 맏아들 격인 금강송을 최고로 꼽아

우리나라의 산림은 646만4000ha로 국토 면적의 65% 정도다. 소나무는 1970년대까지 전체 산림의 50%를 차지했다. 그러나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매년 감소해 2007년에는 23%인 150만㏊로 줄어들었다.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이다. 대신 같은 기간 활엽수림은 10%대에서 26%까지 넓어졌다. 국립산림과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2060년경에는 지구온난화로 경북 북부, 지리산·덕유산 등 고산지대와 강원도에서만 소나무를 볼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도 나왔다.

소나무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는 원인으로 크게 병충해, 산불, 지구온난화 등을 꼽고 있다. 이 중에서도 소나무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심각한 가뭄 피해를 입고 있다. 활엽수나 낙엽송과 달리 소나무는 겨울철 이상 고온이 지속될 경우 증산작용을 해 수분이 빠져 나감으로써 고사하게 되는 것이다. 소나무는 양수(陽樹)로 햇빛이 있어야 자란다. 그러나 숲이 우거져 활엽수 잎들이 바닥에 쌓이면서 소나무의 자연발아를 차단하는 것도 감소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소나무류가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기인 1억70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트라이아스기에는 초기 공룡과 원시 포유류가 등장했다. 식물계에서는 겉씨식물과 양치식물의 진화가 뚜렷했다.

한반도에서는 백악기의 퇴적층에서 소나무류 화석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오늘날의 소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경북의 포항·영일·감포 지역과 강원도 통천·부평 등에서도 많은 양의 소나무류 화석이 보고되고 있다. 소나무는 백악기에 이 땅에 함께 나타났던 나무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환경에 적응한 나무라 할 수 있다.

현재 소나무가 우리나라의 우세수종이 된 이유는 생태학적으로 생육 범위가 넓고 건조에 강하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강수량이 그리 많지 않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또한 무기염류의 요구가 적고, 뿌리에 균근의 기생으로 인한 생육이 빠르다. 열매를 많이 달아 많은 종자를 생산하고 산포력이 넓은 것도 개체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 (좌) 준경묘는 두타산의 배꼽에 해당하는 명당이다. (우) 2005년 ‘아름다운 숲’ 대상에 선정된 준경묘 소나무 숲 표지석.
지질학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모암이 화강암(65%)으로 이루어져 있어 배수가 잘 되기 때문이다. 특히 3, 4월의 강수량이 적어 소나무의 꽃가루 생산과 수분(受粉) 활동에 유리하다. 대개 봄철이 되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송홧가루가 연푸르게 날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소나무의 왕성한 번식활동을 입증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소나무를 십장생의 하나로 꼽을 만큼 존송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목재로서의 높은 가치 때문에 나라에서 법으로 엄격하게 관리하였으므로 폭넓은 소나무 숲이 유지될 수 있었다. 지구상의 소나무는 100여 종이나 된다. 북반구의 북위 30도 위아래로 폭넓게 분포하지만 주 분포지는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우수리 지역이다.

우리가 늘 가까이 하는 소나무는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다르다. 잎으로 구분하면 두 갈래 잎에는 적송, 해송, 반송 등이 있다. 세 갈래 잎에는 백송, 리기다소나무, 테에다소나무가 있다. 다섯 갈래 잎인 오엽송의 대표는 잣나무다.

종별로 구분하면 먼저 붉은 표피를 가진 적송(赤松)이 있다. 육지 소나무의 대표이므로 육송(陸松)이라 부른다. 적송은 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지며 하늘을 향해 매끈하게 쭉 뻗어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 붉은색을 띤다. 목질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재로 쓰이고 있다.

적송은 다시 색깔과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뉜다. 적송의 맏아들격인 금강송은 줄기가 밋밋하고 곧게 자란다. 외형적으로는 육송의 형태이나 곰솔(해송)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둘 사이의 잡종으로 본다. 금강송 중에서 미인처럼 쪽 뻗은 나무는 미인송이라 불린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서 밀생하는 춘양목, 속이 황금빛을 띤다 하여 이름붙인 황장목(黃腸木) 등도 모두 적송이다. 은송은 잎에 흰색 또는 황금색의 가는 선이 세로로 있다.

      처진소나무(반송·盤松)는 가지가 가늘고 길어서 아래로 늘어진 형태이다. 경북 청도군 운문사의 처진소나무가 유명하다. 줄기 밑부분에서 굵은 곁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수형이 우산처럼 더북하여 바라만 보고 있어도 편안한 마음이 든다.

바닷가에 서식하는 해송(海松)은 표피가 검다. 곰솔, 흑송으로도 불린다. 해송은 바닷바람을 맞은 탓에 껍질이 거칠고 강한 잎을 가지고 있다. 자연조건에 적응하느라 줄기도 많이 구부러져 있으며 잎이 짧다. 이런 특징 때문에 분재용으로 많이 쓰인다. 울릉도 해변의 아주 오래된 해송들이 멋진 풍취를 자랑하여 지난 여름 카메라에 많이 담아왔다.

껍질이 하얗게 벗겨지는 백송(白松)은 소나무의 돌연변이로 알려져 있다. 중국 베이징 지방이 원산지다. 중국에 가면 궁궐이나 묘지에서 백송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백송은 모두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백송의 껍질은 매끄럽다. 20년 정도 되어야만 껍질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40년 이후에야 백색의 큰 껍질 조각이 떨어져서 백송의 특징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개체는 서울 조계사와 재동 헌법재판소의 백송을 들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백송은 수령 600년으로 최고령을 자랑하며 아직도 생장상태가 좋다.

▲ 목조대왕 구거유지. 20여 그루의 소나무가 미학적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다.

507만1126㎡ 면적에 34만여 그루 자라

1950년대 산림녹화용으로 미국에서 들여온 리기다소나무는 껍질이 거칠고 곧게 자란다. 목재는 질이 나쁘고 송진이 많이 나오며 옹이가 많아 쓰임새가 적지만 송충이의 피해에 강하고 어디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사방조림에 주로 사용했다. 지금은 별로 심지 않는다.

아울러 일본 원산인 금송(金松)도 있다. 금송은 잎이 두툼하고 더운 지방에 산다.
이처럼 많은 종류의 소나무가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금강송을 최고의 소나무로 친다. 그 이유는 미인송이라 이름붙일 만큼 곧게 자라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목질이 좋아 건축재로서의 가치가 높으며, 장기생육하여 둘레가 큰 목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디게 자라 목질이 조밀하고, 송진 함유량이 많아 잘 썩지 않으며 갈라지지 않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금강송은 경북 봉화·울진, 강원도 삼척 등에서 주로 자란다. 울진은 금강송 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하지만, 삼척군 준경묘·영경묘역은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자라는 곳이다.

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 장군의 묘다. 준경묘로 가기 위해서는 동해고속도로 동해 종점에서 우회전하여 38번 국도를 타고 미로면에 들어선 후 활기리에 이르면 표지판이 있다. 하지만 준경묘는 평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노동산(蘆洞山) 정상 부근에 있으므로 마을 사람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차에서 내려 산길로 1시간여를 걸으면 갑자기 탁 트인 분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위치해 있는 준경묘 주변의 소나무들은 궁궐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 문화재청의 소유로 시가 관리하고 있으며 면적은 507만1126㎡에 이르고 소나무만 34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준경묘역은 2005년 제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숲인데 이 숲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 “해동(海東) 육룡(六龍)이 날아샤 일마다 천복이시니…”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목조(穆祖)는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李翰)의 17대손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5대조로 본명은 이안사(李安社)다.

이안사의 할아버지(15대) 이린은 이용부로 대장군을 지냈다. 대장군은 고려시대 무인의 최고 관직이다. 16세 이린은 내시집주를 지냈으며 당시의 실력자인 시중(侍中) 문극겸의 딸과 결혼했다. 시중은 현재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최고 관직으로 시중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고려사>를 보면 이린은 이의방의 동생으로 되어 있다. 이의방은 정중부, 이고 등과 함께 고려 의종 때 무신란을 일으켜 문신들을 모조리 척살하고 무신정권을 창출한 주역이었다. 그러나 이의방은 계속된 권력투쟁의 와중에 정중부의 아들 균에게 살해되었다. 이때 이의방의 형인 이준의도 죽었으며 동생 이린도 실각했다. 다만 이린이 죽음을 면한 것은 시중 문극겸의 영향력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린은 유배지를 떠돌다 전주에 정착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이안사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호방하여 사방을 경략할 뜻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그는 전주 관아에 소속된 관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산성별감이 이안사가 좋아하는 관기에게 수청 들게 하자 이 일로 전주 주관(州官)과 다투게 되었다. 이안사를 경계한 주관은 안렴사(按廉使:안찰사·지방5도의 장관)와 의논하여 중앙에 알리고 군사를 동원하여 이안사를 치려 했다. 소식을 들은 이안사는 황급히 피란해 강릉도 삼척현으로 이주했다. 이때 170호가 이안사를 따라 나섰다.

이안사가 삼척으로 도피한 까닭은 부친 이양무가 삼척 이씨 이강제의 딸과 혼인하였기 때문이다. 전주를 떠난 이안사는 태산준령을 수없이 넘어 삼척군 미로면 활기리에 정착했다. 그러나 이안사가 170여 호의 대집단을 데리고 정착한 활기리는 지금도 누구나 가보면 알 수 있듯이 첩첩 두메산골이다. 현재 활기분교에서 동북쪽으로 200m 가면 목조대왕 구거유지(舊居遺址)가 있다.

옛 집터에는 지금도 섬돌과 주춧돌이 남아 있다. 앞에 냇물이 있고 뒤편에 산이 있는 100여 평의 터로 집 한 채가 들어갈 만한 정도의 옹색한 공간이다. 그러나 옛터 앞에 자라고 있는 20여 그루의 소나무는 아주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발한다. 활기리에는 약간의 평지가 있으나 논농사는 부적합하고 겨우 밭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라서 170호가 살 수 있는 터전이 전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170호를 끌고 왔다는 것은 과장이라고 생각된다.

百馬를 白馬로 오해하고 흰 말 잡아 제 올린 뒤 만든 묘
▲ 준경묘와 영경묘는 3.6km 떨어져 있다.
그런데 활기리에 머물게 된 1년 후 부친인 이양무가 죽고(1231년·고려 고종 18년) 말았다. 아버지 이양무가 죽자 이안사는 묘지를 구하러 사방을 헤매다 나무 밑에 쉬고 있었다. 마침 한 스님이 지나다 “이 자리에 묘를 쓰면 5대 후손이 왕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귀가 번쩍 뜨인 이안사는 스님에게 달려가 자세히 물었다. 그는 “이 자리에 말 백 마리를 잡아 제물로 하고, 황금으로 만들어진 관을 쓰면 5대 후손이 왕이 될 것이다”라고 일러주었다.

부유하지 못했던 이안사는 이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꿈속에서 동자가 들판과 장에 나가 보라고 했다. 다음날 일찍 들판에 나가 보았더니 벼의 황금빛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무릎을 쳤다. 다음으로 장에 나가 보았더니 흰 말을 팔러 나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백마를 사 가지고 와 볏짚으로 관을 싸 황금관에 준하여 사용하고, ‘百馬’를 ‘白馬’로 해석해 흰 말을 잡아 제를 올렸다. 그렇게 하여 준경묘가 만들어졌다.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준경묘는 명당이다. 여름철 땀을 뻘뻘 흘리며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축구장 두 개 넓이의 탁 트인 분지가 나타나는데, 분지 상단에 묘가 있다. 두타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노동산 자리는 풍수상 좌청룡 우백호의 외형이 잘 갖춰진 명당임에 틀림없다. 필자가 보기에 이곳은 두타산의 배꼽에 해당하는 곳이다. 

 -  필자 김규 중앙대에서 문학과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으며, 문화일보신춘문예(시)에 당선됐다.
     중앙대·한서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 월간 산 11월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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