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해외 트레킹ㅣ네팔 서부 트레킹 3] -5- *-

paxlee 2010. 8. 3. 09:57

 

                     [해외 트레킹ㅣ네팔 서부 트레킹 3] -5-

     

       산정 조망에 영혼마저 사로잡히다

        줌라바자르~차우리카르카~라펠릭패스~줌라 마을~라라호수

2009년 11월 24일. 미투리 산악회의 최효범 대장 일행이 카트만두로에서 비디오카메라를 가져와 우리 일행과 합류했다. 이제부터는 동영상 촬영이 가능해서 한결 힘이 난다. 하루 정도 쉬면서 부족한 물자를 구입하려고 줌라 바자르(시장)로 갔다.


줌라 바자르는 말과 소, 차와 트랙터가 뒤섞여 매우 혼잡하다. 물건의 종류는 많지만 대부분 조악한 편이다. 하지만 넘치는 활기만큼은 거칠고 순수해서 마음에 든다.


▲ 트리푸라고트 마을 지나 고개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

오후에 어제 지나왔던 강가의 넓은 농경지로 촬영을 나갔다. 여인들이 곡식을 빻는데 절굿공이가 대충 다듬은 기다란 통나무다. 가운데를 잘록하게 파서 손잡이로 삼고, 유선형으로 미끈하게 다듬어 내린 우리의 절굿공이와는 많이 다르다.


이들은 가공과 별로 친숙하지 않다. 다리도 마찬가지다. 두껍고 긴 통나무 두 개를 강에 걸쳐놓고 편편하게 다듬어 놓은 게 전부다. 안전을 고려한 난간은 없지만 사람과 짐승이 별 어려움 없이 다닌다. 그 투박한 다리 아래로 만년설이 녹아 형성된 강물이 거칠게 흐른다. 이 강물은 석회질을 함유해서 다소 뿌연 색을 띤다. 주로 농사와 가축의 식수로 이용하고 인간의 식수는 깨끗한 계곡물을 따로 이용한다.


이 은혜로운 강물 덕분에 줌라 지역은 유난히 논농사가 발달해 있다. 이들은 주로 소를 이용해 논을 간다. 소는 목덜미 끝에 불룩한 혹이 있는 종류로, 코뚜레가 없다. 물론 고삐도 없다. 그래서 주인이 소를 부려 논을 갈자면 어려움이 많다.


이들은 두 마리의 소에 멍에를 지우고 쟁기를 연결한다. 멍에와 쟁기는 우리네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소를 툭툭 치며 논을 간다. 고삐로 소를 조종하지 않는데도 고랑의 간격은 거의 일정하다. 신기한 마음에 가까이 가보니 주인은 소에게 호통을 치고 손으로 꼬리를 잡아당기면서 말을 듣게 하려고 애를 쓴다.


▲ 부팅라 마을의 집과 주민들.

쟁기는 소가 아니라 농부가 메고 가


일을 마치자 소들은 홀가분한 맨몸으로 앞장서 털레털레 집으로 향한다. 그러자 농부는 그 무거운 쟁기를 어깨에 둘러메더니 묵묵히 소의 뒤를 따르는 게 아닌가. 소에게 쟁기를 지우지 않는 게 이채롭다. 그 한 사람만 그런가 해서 둘러보니 다른 농부들도  마찬가지다.


문명세계의 인간은 소에 코뚜레를 끼우고 고삐를 잡아당겨 부리는 일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쟁기를 지고 소를 뒤따르는 농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이들은 소와 교감하고 짐을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


11월 25일. 라라 호수로 향한다. 포터 1명을 더 구하고, 최 대장 일행 3명이 합류해 이제 일행은 사람 20명과 말 6마리로 늘어났다. 휘발유와 식료품을 추가로 구입하여 짐도 많아졌다.


시내를 통과해 고개를 오르는데 길가에 군부대가 보인다. 군 주둔지의 규모로 보아 연대급 이상으로 판단된다. 연병장에서는 네팔 군인들이 큰 북소리에 맞춰 열병 훈련을 하고 있다. 계곡에 물레방아가 여러 채 보인다. 안에서는 한 여인이 방아를 찧고, 밖에서는 여인들이 바구니에 두엄을 담아 연방 밭으로 내간다. 부근에서 수색작전 중인 군인들이 또 보인다.

 

▲ 줌라 마을 주민이 두 마리 소를 이용해 논을 갈고 있다. 우리와 달리 코뚜레를 꿰지 않았다.

줌라 시가지를 거의 벗어나는 지점에 학교가 있다. 여러 동의 큰 건물과 넓은 운동장으로 미루어 대학교로 짐작된다. 운동장에서는 약간의 남녀 학생이 야외 수업 중이다. 산간에서 이런 큰 규모의 학교는 처음 본다.


계속 오르막을 오른다. 주변 산 여기저기에 굵은 히말라야 소나무가 몇 그루 보인다. 예전에는 분명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벌목으로 현재는 텅 비어 버리고 목초지로 사용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고송들마저 도끼질과 불길에 수난을 당해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네팔의 나무들은 도처에서 무참히 난자당하고 있다. 조림 정책은 아예 없어 보인다. 자연의 재앙을 불러올까 두렵다.


오후 늦게 차우리 카르카에 도착했다. 허름한 돌집이 한 채 보인다. 마당에서는 한 여인이 돌판 위에 양털을 놓고 나무방망이로 두드리고 있다. 심하게 엉킨 양털을 푸는 작업이다. 옆에서는 남편이 그 양털로 실을 뽑아 실패에 감는다. 부부가 합심해서 일하니 보기가 좋다.


돌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는 중대 병력의 군인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하고 있다. 네 명씩 조를 짜서 상관의 지시에 따라 번갈아 돌격 훈련을 하는데 영국식 전술로 짐작된다.


네팔은 구르카 용병으로 유명하다. 구르카는 마나슬루 지방의 산악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체력이 강인하고 용맹해서 전투에 능하다. 구르카 용병은 영국군에 준하는 금전적인 대우를 받고, 영국 시민권까지 획득할 수 있어 네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아주 높다.


네팔은 전체적으로 돌산이 많다. 풍수적으로 골기가 강하면 기운이 강하고 영성이 발달할 소지가 많다. 네팔인의 생활에 종교가 깊이 스민 이유가 될 수 있다.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살육은 어울리지 않는다. 가난이 원수다.


2009년 11월 26일. 밤새 텐트 옆에서 말들이 울면서 발굽을 구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목이 말라 그랬다고 한다. 이번 트레킹에서 짐을 운반하는 말들은 대단히 요긴한 존재다. 마부가 평소에 잘 관리하는데 어젯밤에는 깜빡했던 모양이다.


마부는 아침에만 말에게 옥수수 알을 먹인다. 일종의 특식이다. 옥수수 알이 든 긴 포대를 말의 입에 대고 줄을 말 목에 걸어 놓으면 말이 알아서 먹는다. 하지만 점심과 저녁은 근처 초지에서 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저녁에 짐을 풀어놓으면 말들은 흙 위에서 뒹굴기를 좋아한다. 포대가 닿았던 등판이 땀 때문에 근지럽기도 할 것이다. 뻐근한 척추를 펴는 운동으로도 보인다. 저녁에 짐을 내릴 때마다 말은 그 운동을 절대로 빼놓는 법이 없다.


▲ 나무를 해 지고 오는 가리방 마을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