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트레킹ㅣ네팔 서부 트레킹 3] -6-
산정 조망에 영혼마저 사로잡히다
줌라바자르~차우리카르카~라펠릭패스~줌라 마을~라라호수
유탄에 맞아 생긴 상처로 괴로워해
잘 때는 말을 묶어 놓는다. 말뚝을 양편에 박고 그 사이에 줄을 띄운다. 그 줄 앞에 말들을 나란히 세우고 한쪽 발만 그 줄에 짧게 묶어 놓는다. 하지만 밤사이 도망쳐서 풀밭이나 물을 찾아가는 일이 종종 있다. 보통은 가까운 곳에 있지만 간혹 멀리 도망치면 마부가 한참을 찾아다닌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라펠릭 패스(고개)에 올랐다. 멀리 동남쪽으로 다울라기리 산군과 구르자 히말이 보인다. 아래로는 아침 밥 짓는 연기에 휩싸인 줌라가 한눈에 보인다. 줌라는 산에 둘러싸인 우묵한 분지여서 연기가 쉽사리 흩어지지 않는다.
물푸레 레크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곳은 티하우스로, 오가는 인마가 제법 많은 편이다.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양털실로 곡식포대를 짠다. 직조기로 한 올 한 올 짜내려 가는 손길이 아주 꼼꼼하다.
- ▲ 나무 침대를 지고 가는 고딕차우 마을 아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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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건너편 산비탈의 약초밭에서 수십 명의 남녀가 일하고 있다. 약초는 주로 인도로 수출한다. 일을 마치고 오는 여자들은 이마에 붉은 티카를 찍고 금으로 만들어진 코걸이와 귀걸이를 착용했다. 이 지역은 힌두교도들이 많다.
카메라 배낭을 담당한 스태프가 옆구리 통증을 호소한다. 마오이와 정부군의 교전 지역인 고향에 갔다가 유탄을 옆구리에 맞았다. 탄알은 뺐지만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진통제로 견딜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의료 시설을 갖춘 병원까지는 너무나 멀다.
히마나디 강가의 네오리 갓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집 앞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이 보인다. 아기가 보채자 여인은 낯선 이방인 앞에서 스스럼없이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평화로운 광경이다. 역시 모성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2009년 11월 27일. 습기 많은 계곡 부근에서 야영하면 텐트 안에 성에가 낄 정도로 춥다. 슬리핑백도 눅눅해진다. 그래서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의 느낌이 개운하지 않다. 아침에 마을을 둘러보니 집마다 추위를 녹이느라 장작불을 피우고 있다. 그 옆에서 곁불을 쬐자 비로소 굳은 몸이 풀린다.
이 마을 사람들도 역시 부지런하다. 해가 뜨자마자 한 여인이 마을 인근에서 건초를 벤다. 낫은 칼날 부분이 둥글고 짧으며, 나무로 만들어진 자루는 우리네 낫보다 한결 짧다. 여인은 손이 빨라 잠깐 동안에 한 짐을 베어내 옥상으로 나른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통나무로 만든다. 기다란 통나무에 일정한 간격으로 발 딛는 자리를 파서 이층에 걸쳐 놓았다. 이층은 평평한 흙마당으로 농작물을 손질하거나 건조하는 장소다. 건초는 삼층에 주로 보관하는데 삼층 지붕은 대부분 나무 너와로 덮는다.
- ▲ 난타 마을 학교에서 학예 발표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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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맹독성 땅벌집 밟을 뻔
너와는 적당한 길이로 자른 나무를 도끼로 쪼개 만든다. 도끼로 쪼개므로 나무의 두께가 일정치 않아 지붕이 울퉁불퉁하다. 이 방식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갔던 돌파탄 지역은 나무너와보다는 돌너와가 많았다.
집마다 벌통이 여러 개 보인다. 벌통은 통나무 속을 파내고 벌이 드나드는 작은 구멍을 제외하고는 모두 막아버린다. 우리나라는 통나무 벌통을 세워놓고 지붕을 씌우지만 여기는 지붕 없이 옆으로 뉘어 놓는 게 특징이다.
줌라 마을을 지나 카프라 오다 마을에 도착했다. 한 할머니가 도리깨로 콩을 털어 키로 까부르고 있다. 키는 우묵한 삼태기 모양으로 우리와 달리 날개가 없다. 콩은 검은색, 붉은색, 연두색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크기는 우리 콩의 반쯤으로 밤맛과 비슷하다.
- ▲ 부팅라 마을에서 유채를 타작하고 있는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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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가량을 걸어 차우타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는 경찰의 체크 포인트가 있다. 라라 호수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마을의 경찰 초소에 들러 트레킹 허가서에 반드시 도장을 받아야 한다.
한 마을 아낙이 나무절구에 쌀을 찧고 있다. 쌀알은 녹색으로 크기가 작아서 싸라기처럼 보인다. 일조량은 충분하지만 기후가 춥고 땅에 거름기가 적어 제대로 여물지 못한 탓이다. 대신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 청정식품이다. 구입해서 먹어보니 찰기가 많고 맛이 훌륭하다.
물푸레 마을을 지나 구치 라그나 패스의 티하우스 근처에 여장을 푼다. 넓은 목초지에서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양치기 소년들은 우리를 보더니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른다. 그 소리가 크고 맑다. 노래마저 무공해다.
- ▲ 콩을 고르는 고딕차우 마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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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8일
딸랑딸랑 하는 종소리에 잠을 깬다. 말 목에 매달린 종소리로 꽤 많은 말이 지나간다. 종소리에 섞여 마부의 노랫소리까지 들린다. 어제 저녁에 들었던 목동의 노래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아침을 여는 활력이 느껴진다.
한 시간 반 정도 경사가 심한 비탈을 오른다. 길은 없지만 전망이 좋다는 현지인의 귀뜀에 무조건 가는 중이다. 산등성이에 오르자 아래쪽으로 나무가 무성한 산들이 보인다. 그 너머에는 그토록 보고 싶던 라라호수가 길게 누워 있다.
멀리서 보는 라라 호수는 어두운 청색이다. 아마도 돌포의 폭순도 호수보다는 수심이 얕은가보다. 수심 700m 가량의 폭순도 호수는 짙은 코발트색이다. 호수의 수면에 이는 잔물결이 언뜻 살얼음으로 보인다.
라라 호수 너머로 길게 늘어선 설산들이 보인다. 사이팔 히말, 고르카 히말, 시스네 히말, 카티 히말, 칸지로와 히말, 다울라기리 히말이 연이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가슴이 뻥 뚫리며 후련해진다.
- ▲ 소젖을 짜고 있는 고다코 마을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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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촬영을 마치고 먼저 출발한 스태프들의 뒤를 쫓는다. 현지인에게 귀뜀 받은 뷰포인트는 더 가야 한다. 여기보다 훨씬 좋다고 한다. 길은 있지만 트레킹 지도에는 기록되지 않은 은밀한 지점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급한 마음에 길을 재촉하다 하마터면 땅벌 집을 밟을 뻔했다. 이곳의 땅벌은 대단히 위험하다. 몇 방만 쏘여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게다가 근처에는 병원도 없다. 역시 방심은 금물이다.
능선을 굽이굽이 돌아 우뚝 솟은 4000m 고지에 도착했다. 과연 조망이 환상적이다. 하늘과 히말, 라라호수와 굽이치는 산들의 조화가 내 영혼마저 사로잡는다. 일몰과 일출까지 담으려고 점심 후에 아예 야영을 준비했다.
산꼭대기는 사실 야영지로 적당치 않다. 우선 협소하고 지면도 고르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취사용 물이 없다. 하지만 운 좋게도 북사면에서 눈을 발견했다. 눈을 녹이면 취사는 가능하다.
일몰은 서서히 진행된다. 태양이 산머리에 걸려 떨어지면서 노을은 빛나기 시작한다. 태양의 주변은 황금빛으로, 그 위쪽은 미묘한 붉은색으로 물들어간다. 그 빛은 구름에 반사되면서 다시 오묘한 파스텔 색감을 연출하고 이윽고 잦아들면서 연보라색 여운으로 남는다.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자꾸 등이 배긴다.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뇌리에서는 일몰의 여운이 맴돌고 가슴은 흐뭇하기만 하다. 이런 정도의 노력 없이 어찌 좋은 작품을 얻겠는가. 일출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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