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설악산 동계 산악인 워크숍 [1] *-

paxlee 2011. 2. 22. 17:29

 

                       제1회 동계 산악인 워크숍 [1]

 “살아 돌아오는 등반이 가장 빛나는 등반”
설악산에서 2박3일간 열려 한국·일본 클라이머들 알파인스타일 등반에 관해 주제 발표
 
제1회 동계 산악인 워크숍이 1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 3일간 설악동 일원에서 열렸다. 전국에서 이 행사에 참가한 100여 명의 산악인들은 대부분 역동적이면서도 첨예한 등반을 펼치는 클라이머들의 경험담을 통해 고산 거벽 알파인 등반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하는 바람이 컸다. 때문에 주최 측인 오버마운틴 클럽 유학재 추진위원장(전 한국산악회 등반기술위원장)과 최강식(32·경상대 OB)씨에 이어 일본 산악인 아마노 카주아키(34·메이지대 산악부 OB)씨가 주제발표를 할 때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질의응답 시간에는 많은 질문에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 1 설악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 세미나실에서 열린 제1회 동계 산악인 워크숍에서 주제발표자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형일, 유학재, 박정용, 최강식씨. 김형일씨와 박정용씨의 주제발표는 행사 이튿날 일어난 토왕빙폭 사고로 무산되고 말았다. 2 특별강연 후 유학재씨와 기념촬영한 조대행 박사(왼쪽). 3 유학재 추진위원장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다니구치 케이(왼쪽)와 카주아키 아마노(가운데). 4 촐라체 북벽 등반에 대해 설명하는 최강식씨.

조대행, “순수한 마음으로 산을 대해야 등반 빛 발해”

‘한국 알피니스트, 알피니즘의 미래 조명’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14일 오후 7시 설악산국립공원관리소 내에 위치한 탐방안내소 세미나실에서  조대행 박사(가톨릭의대 교수, 전 대산련 부회장)의 ‘21세기의 등반’특별강연으로 시작되었다.

‘77 에베레스트 원정과 ’88 에베레스트 원정에 참가하고, 50대 후반인 2004년 아마다블람(6,812m)에 도전하는 등 현재 60 중반의 노령에도 현역 등반가로 활동하는 조대행 박사는 “1786년 알프스 몽블랑(4,810m) 등정으로 시작된 황금시대, 마터호른(4,477m) 등정으로 비롯된 은의시대, 핀스텔호른 북벽으로 시작된 북벽시대를 거쳐 히말라야 고봉 등정 시대로 이어졌다”며 시대 흐름에 따른 등반사를 설명해 주었다.

조 박사는 또한 “노멀루트 등정의 시대는 거벽 등반의 시대로 변했고, 이제는 5,000~6,000m대 히말라야 거벽을 대상으로 하는 소수 멤버에 의한 경량 속공 등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등반 도중 흔적을 남기지 않는 NLT 운동이 추가됐다고 덧붙였다.

조 박사는 알파인스타일 등반에 대해 멤버는 6명 이내로 고정로프와 인공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사전 정찰등반 없이 다른 사람의 지원을 받지 않으며 로프는 팀당 1~2동의 등반로프만 가지고 등반해야 한다고 정의했다.

조대행 박사는 가셔브룸4봉 서벽을 등반한 뒤 “우리는 정상에 가지 않았지만 우리의 등반에 만족한다”는 보이테크 쿠르티카의 말과 “에베레스트 노멀루트 등반은 이제 육체 노동일 뿐이다”는 라인홀트 메스너의 말을 예로 들며 “무엇보다 산악인은 나름대로 철학이 있어야 하며,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산을 대해야만 비로소 등반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며 강연을 마무리지었다.


유학재, “최소한의 식량으로 버텨야 좋은 등반 가능하다”

둘째날 행사는 참가자들이 오전 5시 반경부터 설악동을 출발해 토왕성빙폭, 소승폭, 형제폭 3개 지역에서 빙벽등반을 마친 뒤 오후 6시30분 탐방안내센터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첫 주제발표는 유학재 추진위원장의 ‘알파인 등반의 식량’으로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네팔 히말라야의 파릴랍차(Parilapcha·6,017m) 북벽 신 루트 등반에 성공했으나 후배 대원이 복통을 일으키며 급사하는 변고를 겪은 유학재 위원장은 알파인스타일 등반에서 식량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했다.

유 위원장은 “낭가파르바트(8,125m)를 초등정한 헤르만 불이 마지막 캠프를 출발해 정상에 올랐다 다시 마지막 캠프로 돌아오기까지 40시간 동안 29세 청년이 80세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은 지방을 전부 소모하고 나서 단백질까지 에너지로 사용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등반을 잘하려면 단백질과 지방을 7대 3 비율에 맞춰 식량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은 1g당 9cal의 열량을 내고, 탄수화물은 1g당 4cal의 열량을 내지만 탄수화물이 변화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7대 3 비율의 이유를 설명했다.

유 위원장은 아미노산은 근육감소 양을 줄이고, 비타민E는 고소 활동에 도움을 주지만 아스피린과 같이 혈액이 묽어지게 하는 약을 먹는 사람은 출혈과다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유 위원장은 식수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원정을 앞두고 체세포의 수분 함유량을 높이려고 집에서도 변이 묽게 나올 정도로 물을 많이 마신다”며 “원정 중에는 1리터 용량의 물통을 끼고 지내면서 계산한 만큼 물을 마시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학재 위원장은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미국 산꾼들은 등반 중에 뭘 먹느냐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1주일 내내 굶고 등반한다’였다”며 “우리 클라이머들은 대개 배가 불러야 힘을 쓰기는 하지만 평소 굶거나 적게 먹으면서 등반하는 능력을 키워야 좋은 알파인스타일 등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보름 가까이 잡은 파릴랍차 원정 때 베이스캠프에 올린 짐은 장비와 식량 모두 합쳐 300kg에 불과했고, 베이스캠프에서는 한식으로 식사를 충분히 했지만 3명이 2박 3일에 필요한 식량도 하루에 알파미 2봉과 라면 1개, 간식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다 먹지 못했다”며 “따라서 식량에 대해 더욱 철저히 분석하면 짐 무게를 더 줄일 수 있고 그로 인해 등반속도를 더욱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최강식씨의 촐라체 북벽 등반보고에도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최강식씨는 2005년 1월 박정헌씨와 함께 촐라체 북벽에 신 루트를 내는 데에 성공했으나, 하산길에 크레바스에 빠지면서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이후 2박 3일간 사투 끝에 살아난 클라이머로 당시 사고로 손가락 9개와 발가락 10개를 일부 절단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박정헌씨가 ‘끈’이란 타이틀의 등반기를 펴내 많은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등반이 알려졌지만 최강식씨가 직접 보고의 자리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최강식씨는 밝은 표정과 유머 넘치는 화법으로 100여 명의 참가자들을 1시간 동안 집중케 했다.


최강식, “짐 줄이더라도 필요한 장비는 꼭 챙겨가야”

최강식씨는 “2003년 한국산악회 팀의 등반사진을 보고 가볍게 나선 등반이었는데 둘째날 비박지에서 이제 5.5mm와 7mm 지름의 55m 로프 두 동으로는 하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첫날 포기할 걸 잘못했다 싶어 후회했다”며 “하산 길에 조난을 당했지만 실제론 등정길에 조난당했다는 표현이 맞는 말일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최씨는 “특히 베이스캠프에서 열흘간 한가롭게 지내면서도 하산 루트로 잡은 남면 노멀루트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 해 결국 큰 타격을 입었다”고 당시 루트 관찰에 소홀했던 점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산 길에 크레바스에 빠져 왼쪽 발과 오른쪽 정강이뼈가 부러져나간 상태에서 어렵게 크레바스를 빠져나온 뒤 2박 3일간 겪은 사투는 이미 회자되어 알 만한 산악인은 다 아는 내용이지만 최강식씨가 크레바스에 빠질 때 받은 충격으로 갈비뼈에 금이 가고, 설사면에서 미끄러지면서 눈썹부위가 찢어지는가 하면 안경이 달아나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였던 박정헌씨와의 심리적인 갈등 등, 마음속 깊이 담아놓았던 사고 당사자의 진솔한 얘기는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최씨는 “짐을 최소·경량화하기로 했지만 꼭 필요하다 싶어 휴대했던 등강기와 탈진상태에서 카메라를 버리면서도 챙겼던 바일 두 자루가 결국은 생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원정 나갈 때 필요하다 싶은 장비는 꼭 챙겨가기를 당부했다.

최강식씨는 “매트리스 없이 얼음바닥에서 자는 것은 정말 고통이었다”, “빙하에서 탈출할 때 막판에는 소리로 수직 빙벽의 높이를 가늠하기 위해 돌을 던졌다”는 얘기와 함께 “앞에 계신 분들은 절대 맨바닥에서 자지도 말고 돌을 던지는 일도 없기를 바란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최강식씨는 끝으로 “내가 했던 촐라체 등반은 성공도 실패도 없었다”며 “어떤 등반이든지 살아날 수 있고, 살아서 숨 쉴 수 있어야 값진 등반”이라 말했다. 최씨는 “클라이머는 죽거나, 다치고 나면 좋아하는 등반을 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최강식의 옛날 영혼은 이미 죽어버렸다”고 현실의 아픔을 토로한 뒤 “그래도 손가락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바일을 만들어 후배들이 훈련 중인 소토왕골에 들어가 빙벽을 오르고 왔다”며 산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아마노, “어떤 게 정당한 등반인가에 대해 늘 고민”

일본의 아마노 카주아키(天野和明·34)씨는 2009년 황금피켈상을 수상한 알파인스타일 등반인 카란카(6,913m) 북벽 등반에 대해 얘기했다. 아마노는 이치무라 후미다케, 유스케 사토 3인조 팀을 이뤄 2008년 9월 14일, 북벽 중앙 혼합등반지대로 진입, 하루에 500m씩 3일간 등반해 해발 6,600m 지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불어닥친 악천후 때문에 2인용 텐트에 머무르다 3일이 지난 9월 22일 새벽 등반을 재개해 70도 경사의 암빙설 혼합벽 300m를 교대로 선등을 서며 등반에 정상에 올라섰다.


아마노씨는 카란카 북벽을 등반하게 된 것은 절친한 자일파트너가 산악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마노씨를 비롯한 세 명의 자일파트너는 베이스캠프 출발에 앞서 등반 일정을 닷새로 잡았다. 등반 3일, 하산 1일 그리고 하루는 예비일이었다.

그러나 계획한 중앙벽 중단의 쿨와르 진입이 너무 어렵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쿨와르 하단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지능선을 따라 등반해야 했다. 아마노씨는 “첫날과 둘째날은 설사면을 깎아내 비박을 하고, 셋째날은 등반 중 눈과 스노샤워를 만나 애를 먹었는데 좋은 야영장소를 찾아낸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술회했다. 거대한 오버행 바위 아래 설치한 눈을 깎아내 설치한 캠프는 북벽 등반 중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이들은 3일째 캠프사이트를 ‘호텔 카란카’라 이름지었다. 등정 후 하산길에 하룻밤 지낸 호텔 카란카 이후 20차례의 현수하강으로 바닥까지 내려설 수 있었다. 


아마노씨는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기 위해 하강할 때 처음에는 확보에 철저했지만 나중에는 작은 돌에 감아놓은 슬링에 로프를 걸며 하강하기도 했다”며 “4박5일 일정으로 등반에 나섰는데 베이스캠프로 돌아올 때는 11일이 지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마노씨는 카란카 북벽 등반은 황금피켈상을 받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은 등반이었음에도 “우연히 발견한 비박지 덕분에 이후 등반이 순조롭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코 좋은 등반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위험해 가지 않았어야 할 벽이 아니었나 싶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마노씨는 질의시간에서 “알파인스타일 등반만이 꼭 좋은 등반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게 정당한 등반인가에 대해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말했듯이 좀더 정당한 등반을 하고 싶습니다. 고정로프를 사용하면 안전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성전화나 일기예보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도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없던 것을 사용하면 편해지지만 그게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죠. 결국 내 마음속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게 알파인 등반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노씨는 “그러나 대상지에 따라 극지법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루트도 많이 있다”며 “아무튼 산에서 사고가 나거나 죽으면 남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마노씨는 신소재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한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신소재 장비의 발전은 좋은 루트 개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고정로프를 사용하든 산소를 쓰든 셰르파와 동행을 하든 모든 게 본인의 선택이며,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등반이 좋은 등반”이라며 “그러나 고정로프와 산소통을 남겨놓는 행위는 옳지 않다. 지금도 안나푸르나 남벽에 남겨놓은 장비들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아마노씨는 “골든피켈상 수상을 위해 방문한 프랑스 샤모니에서 전설적인 산악인들을 만났을 때는 정말 기뻤다”며 “그렇지만 상을 받기 위한 등반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못을 박았다. 아마노씨는 “토왕폭 등반을 통해 한국 산악인들이 강한 정신과 추위에 강한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러나 안전 면에서는 일본 산악인이 한 수 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셋째날 행사는 박정용씨의 ‘꽝데 북벽 솔로 등반’, 김형일씨의 스팬틱(골든피크·7,027m) 북서벽 신 루트 등반, 그리고 2009년 황금피켈상을 수상한 일본의 여성산악인 다니구치 케이씨의 카멧(7,756m) 남동벽 신 루트 등반으로 이어질 계획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둘째날 오후 워크숍 참가자들의 토왕빙폭 추락사고로 무산되고 말았다. 워크숍에 참가한 아마노씨와 케이씨 역시 “이번 행사를 영국의 인터내셔널 클라이밍, 일본의 윈터 미팅에 이은, 극한 고산 등반가들의 모임으로 세계 산악계에 알리고자 했다”며 아쉬워했다.


중장년층의 첨단 알파인 등반에 대한 관심도 높아

이번 행사는 대한산악연맹이나 한국산악회와 같은 거대 단체가 아닌 유학재(필라코리아 기술자문역·위원장), 박충길(모츄라코리아·산바라기), 김형일(K2 익스트림팀 팀장) 등 현역 등반가들이 주축이 돼 열린 행사였다. 주최인 오버마운틴클럽 역시 이번 행사를 위해 만든 모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응이 컸던 것은 무엇보다 산악인들의 첨단 고산 등반의 정보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같은 기간에 원주 판대 아이스파크에서 노스페이스 아이스클라이밍 대회가 열리는 등의 이유로 전문 클라이머들이 분산돼 고산등반과 알파인스타일을 추구하는 클라이머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았고, 주제발표 시간이 한정돼 있다 보니 질문과 토론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었다는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50, 60대 참가자가 많아 중장년층의 알파인스타일 등반에 대한 관심도를 읽을 수 있었다.

유학재 위원장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행사 참가자가 목숨을 잃고 마지막 날 주제발표가 무산되는 등 행사가 엉망이 돼 마음이 무거웠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많은 클라이머들이 첨단 고산 등반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올해 행사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다음 내년에는 더욱 알찬 행사가 열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 글 한필석 '월간 산'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