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의 고장 상주

-* [상주 MRF이야기길 | 제12코스] 자산산성길 *-

paxlee 2011. 2. 18. 13:47

 

                  [상주 MRF이야기길 | 제12코스] 자산산성길

 자산산성길은 상주 민초들의 애환이 길섶과 골짜기마다 묻어나는 길이다. 출발점은 상주 시내 북천시민공원이다. 야외 공연장과 잔디밭이 있는 강가의 너른 터다. 북천의 발원지는 백두대간상의 백학산과 윤지미산이다. 두 개의 물길이 갈방의 작은비루에서 합쳐져 바랑골과 능바우를 거쳐 남장동을 지나 영빈관 주변에서 둔치를 형성했다. 이 둔치를 정비해 만든 것이 북천시민공원이다.

북천시민공원은 시내권역 MRF 출발점이다. 강이 얕아 징검다리를 밟아 반대편 강둑으로 건너간다. 어차피 나중에 다시 건너와야 하지만 길의 풍취가 건너편이 좋고 공원 쪽 제방 길은 콘크리트길이기 때문이다.

▲ 북천 징검다리를 건넌다. 맞은편에 보이는 탑과 건물이 임란북천전적지다.
 
벚나무가 이어지는 둔치를 따른다. 고층 빌딩 없이 뚫린 하천은 파란 하늘이 시야의 반이다. 다시 징검다리를 건넌다. 물이 유리처럼 투명하다. 다리 건너 제방 길을 이어간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이라 조심스럽고 빠르게 지난다. 곧 이정표가 있는 연원교 갈림길이다. 남장 방향의 똥고개길과 천년길 그리고 연원 방향 자산산성길과 너추리길이 갈리는 곳이다.

자산산성길은 앞쪽으로 이어진 흙길 제방을 따른다. 몇 걸음을 옮기면 시골의 주름 깊은 할매 같은 간이 철제다리가 나온다. 오른쪽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름 지어진 징담마을이다. 왼쪽은 과수원이 길게 자리를 잡았다. 갈림길 같은 곳은 MRF 이정표가 있고 전봇대에 파란 페인트로 자산산성길을 알리는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 국립공원처럼 깔끔하게 정비된 맛은 없지만 시골의 모습 그대로를 걸을 수 있다. 인가 주변을 지날 때마다 집 지키는 데 충실한 개들이 기를 쓰고 짖어댄다.

연원천 제방을 따라 올라간다. ‘구서원 입구’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간다. 얼마간 직진하자 상수원보호구역임을 알리는 안내판 앞에서 MRF 이정표가 오른쪽 길로 가야 한다고 알려준다. 직진하면 너추리길이다. 본격적으로 산등성이로 드는 것이다. 곳곳에 사과나무와 감나무가 눈에 띈다. 수확 시기가 지났지만 큼지막한 대봉 감이 그대로 달린 나무도 있다.

산으로 들기 직전 인가에서 마을 어르신이 감을 먹고 가라고 일행을 붙잡는다. 자식들 장가보내고 할머니와 사별하고 읍내에 집이 있지만 농사 때문에 이곳에 혼자 나와 있다고 한다. 감을 먹고 나자 야쿠르트를 내온다. 한적한 시골길처럼 지나가는 누군가가 몹시 그리웠나보다.
▲ 북천 강둑길. 건너편에 보이는 야외공연장이 자산산성길의 출발점인 상주시민공원이다.

 

허수아비가 있는 밭에서 콘크리트 포장길이 끝나고 산길로 든다. MTB 길을 겸하는 이곳은 MRF 이정표와 MTB 이정표가 뒤섞여 붙어 있다. 앙상한 나무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고 그늘진 곳엔 눈이 얕게 쌓였다. 산길이지만 비포장임도 수준의 편안한 길이라 굳이 등산복을 입지 않아도 운동화만 신으면 걷기에 어려움이 없다. 오르막도 숨이 가쁘지 않은 완만한 길이다. 능선으로 오르자 홀로 푸른 솔을 틔운 소나무들이 싱싱하다. 능선엔 등산 이정표까지 섞여 있으나 당황할 필요 없다. ‘임란북천전적지’ 이정표만 따라 가면 된다. 둔덕 같은 육산의 소나무 오솔길이 이어진다.

능선 갈림길이다. 지금껏 온 길 중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지점이다. 가장 높다곤 하지만 GPS 고도는 226m를 알린다. 이정표는 하산길 능선으로 내려가라 한다. 여기서 오르막 능선으로 1.6km 가면 천봉산 정상이다. 자산산성길은 천봉산이 품은 길 중 한 갈래인 것이다. 천봉산은 상주의 진산이다. 435.8m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상주의 너른 들판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할 정도로 포근함을 자아낸다. 시내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항상 산책하는 사람들이 붐빈다. 수많은 길이 능선으로 이어지고 천봉산으로 연결된다.

천봉산은 만산, 연원, 부원, 남적, 봉강 등 6개 마을을 품고 있으며 산 끝자락에는 자산산성과 호국성지인 임란북천전적지가 있다. 만산동 안너추리에는 남매상을 모신 성황사와 바위 집인 영암각 그리고 국사 남매 성황당 등이 있다. 그만큼 천봉산은 상주 주민들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한 민간신앙의 장소이며 무속인들에게도 특별한 산이다. 태백산, 계룡산과 더불어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는 산으로 알려져 내림굿을 받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무속인들이 찾는다.


▲ 연원교를 지나 서서히 산길로 접어 들고 있다.

 

이정표 방향을 따라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제법 연륜 있어 보이는 굵은 소나무들이 걸음에 운치를 더한다. 그러다 체육시설이 있는 쉼터와 만난다. 이곳이 자산산성 터다. 자산산성은 삼국시대 신라에서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200m쯤의 토성 흔적만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진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상주성의 외성격인 산성으로 자산산성에서부터 천봉산 쪽으로 곡선을 이루면서 군데군데 돌무지와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체육시설과 콘크리트 포장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니 왼쪽에 몇 백 년 묵은 돌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지금은 너무 늙어서인지 돌배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흙길을 오른다. ‘♂바위’ 가는 길이다.

어디에 ‘♂바위’가 있을까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좌측 길 옆 산소 뒤편 잡목 속에 부끄러운 듯 꼭꼭 숨어 있어 들어가서 봐야만 볼 수 있다. 등산로에서 3m 정도 거리에 있다는데도 말이다. 여느 남근바위와 달리 독특한 모양새다. 보통은 하늘 위로 솟았는데 이건 직각을 이루며 진짜 거시기처럼 수평으로 뻗었다. 상주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을 떼어 달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흠집이 많다.

다시 내리막으로 발길을 돌리면 얼마 안 가 임란북천전적지에 닿는다. 여기서 둑길을 따라 640m 가면 출발지였던 북천시민공원이므로 임란북천전적지에서 사실상 흙길 걷기는 끝나는 셈이다. 임란북천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군대와 향군이 왜군에 맞서 싸운 격전지로 900여 명의 선조들이 순국한 곳이다. 1988년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정화사업을 시작해 충렬사를 건립, 순국한 윤섬, 권길, 김종무, 이경류 등과 무명열사의 위패를 배향했다. 매년 6월 4일 제향행사가 열리고 비각, 기념관, 침천정, 전적비, 태평루, 상산관 등이 있다.

 
▶자산산성길 | 총 7.8km, 2시간

북천시민공원~(1.9km, 30분)~연원교~(1.6km, 30분)~상수원보호구역 갈림길~(2.2km, 40분)~체육시설~(1.5km, 30분)~임란북천전적지~(0.6km, 10분)~북천시민공원

자산산성길은 넉넉하게 2~3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는 부담 없는 코스다. 상수원보호구역 갈림길이 나오기 전 3.5km는 강둑과 차도와 콘크리트 포장이 된 시골 임도가 뒤섞여 있다.
▲ 앙상한 나무가 줄지어 선 겨울의 시골길을 걷는다.

 

산길 역시 소박한 시골 뒷산이라 조망이 시원한 곳은 없다. 상주의 꾸밈없는 시골길과 낮고 편안한 육산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갈림길에는 MRF 이정표와 등산로 이정표가 있으며 전봇대에 파란 페인트로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다. 자산산성길 표시와 임란북천전적지 화살표를 따르면 된다.

▶찾아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IC → 상주 방향 25번국도 우회전 → 후천교 앞 후천사거리 시민운동장 방향 우회전 → 후천교 건너 법원 방면 좌회전 → 상주시민공원 주차장


▲ 갈림길의 MRF 이정표. 자산산성길 표시와 임란북천전적지 표시를 따르면 된다.

 

▶볼거리

임란북천전적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중앙군 60여 명과 지역에서 모병한 향군 800여 명이 조총으로 무장한 1만7,000명의 왜병과 회전하여, 우리 군사 전원이 순국한 호국성지이다. 지방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침천정, 태평루, 상산관 등이 있다.

▲ 산길은 대부분 오솔길이고 경사가 완만해 걷기 좋다.
 
▶천봉산 ♂바위

돌배나무 가지고 지구에 온 자산 왕자

천봉산은 상주의 삼악 중 하나인 석악(石岳)이며, 그 산자락 끝에 나지막이 솟아 있는 봉우리가 자산이다. 천봉산에는 이상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남근바위에는 전설이 있다. 하늘의 북두칠성에는 일곱 개의 왕국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천봉왕국이다. 왕을 비롯한 세 명의 왕자와 백성 모두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다. 왕자 중에는 자산이라는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다른 왕자들과 달리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다. 자산 왕자는 천체를 관찰하던 중 유난히 아름다운 별, 지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구에 가고픈 마음에 밤마다 꿈을 꾸게 되었다. 지구에 자신의 이름과 같은 자산이란 봉우리를 가진 천봉산이 있다는 것이다.

자산 왕자는 아버지에게 지구로 보내줄 것을 간청했다. 왕은 자산 왕자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단서를 단다. 양식은 돌배만 먹어야 하고, 그 어느 누구에도 돌배를 주지 말 것과 사랑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돌배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지구에 내려온 왕자는 천봉산 기슭에 돌배나무를 심고 꿈같은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어여쁜 아가씨를 만나 정이 들어 돌배를 나누어 먹고 사랑에 빠진다.

화가 난 왕은 돌배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못하게 하고, 왕자는 천봉산 기슭에 ♂바위로 만들어버렸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은 왕은  ♂바위 앞을 다른 바위로 가로막아 멀리서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게 했다. 아가씨는 돌배나무 가지를 꺾어 만든 배에 태운 뒤 낙상동 뒷산에 그 배를 좌초시켜 ♀바위로 만들어 서로 마주보게 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위를 깨어 달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퍼져 많이 망가졌지만, 돌배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는 것처럼 바위를 달여 먹어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지금은 누구하나 손대는 사람 없이 풀섶에 가려져 있다. 낙상동 ♀바위는 건드리면 동네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고 하며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 없이 이야기만 무성할 뿐이다.
- 글 신준범 기자 / 사진 김영선 객원기자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