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산행기

-* 도봉산 둘레길 *-

paxlee 2011. 8. 7. 19:24

 

                       도봉산 둘레길

둘레길 개념도.JPG

 

 

요즈음은 전국적으로 둘레길이 대세인것 같다. 각 지자체마다 다투어 둘레길을 조성하는 것이 붐이다.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이 개통되고 나서 서울의 북한산 둘레길이 개통되면서 전국 곳곳에 둘레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지난해 북한산 둘레길 44km가 개통되고 나서 지난달에 도봉산 둘레길은 8개구간으로 26km가 개통되어 북한산 둘레길은 70km가 연결되었다.

 

오늘은 제9호 태풍 '무이파(MUIFA)의 영향으로 내일(8월6.7.8일)까지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산행 예약을 하지 않고 있다가 아침에 날씨가 비가 올것같지 않아 새로 개통된 도봉산 둘레길을 한 번 다녀오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북한산 둘레길은 우이동에서 시작하여 소나무숲길(우이동)~성너머길(불광역)까지 걸어 보았으나, 하늘길~우이령길은 아직 다녀오지 못하였다.

 

우이동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우이령 입구에서 도봉산 둘레길의 들머리를 찾아보아도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다. 등산객 몇 분에게 문의를 해도 모른다는 대답 뿐이었다. 북한산 둘레길과 도봉산 둘레길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갔다가 미리 안내도를 준비하지 못하고 온 것을 후회하였다. 두리번 거리다가 우이동에서 방학동으로 넘어가는 도로로 많은 등산객이 옮겨가기에 그분들을 따라갔다.

 

방학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약 700m 가다가 보니 우측으로 도봉산 둘레길 안내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실묘역길이라는 안내판이 그곳에 붙어있다. 우이령 입구에서 우리령길과 소나무숲길로 연결하는 안내판은 서 있는데, 새로 개통된 도봉산 둘레길의 안내판은 아직 설치를 하지 못하였나보다. 아마도 얼마동안 이곳에 안내판이 설치 될때까지 나 같은 사람들이 다수 있을 것 같다.

 

산 길로 접어드니 숲이 우거지고 아늑한 흙 길이 편하게 안내를 하였다. 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급하지도 않고 걷기가 편하고 여유로운 길이 전개되었다. 아직 선전이 많이 되지 않아서 인지 북한산 둘레길 개통때 같이 이용객이 많지 않았다. 이 삼복더위에 도봉산 정상을 올라가는 길이 버거워 둘레길을 걷기로 하였지만, 둘레길은 등산로처럼 오름길이 박세지 않아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진행을 하였다.

 

도봉산 둘레길 '왕실묘역길'에서 처음 만나는 것은 방학동 은행나무이다. 방학동 은행나무는 오로지 한자리에서 침묵을 지키며 870여 년의 세월과 역사를 품었다. 서울시보호수 제1호(1968.2.26. 지정)로지정되었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받지 못했다. 높이가 25m, 둘레가 10.7m다. 1513년 그의 수령 333세쯤에 연산군 묘가 북쪽 이웃에 이장해 온 것을 이 은행나무는 연산군의 슬픈 행적과 비참한 말로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500여년 동안 연산군의 외로운 영혼과 교감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싹이 튼 지 2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씨를 심어 손자를 볼 나이에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공손수(公孫樹)라 부른다. 징코(ginkgo)라는 영어 이름은 은색 견과 곧 은살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은행나무는 장수, 정숙, 장엄, 진혼 등을 상징한다. 은행(銀杏)이란 은빛의 살구 곧 은살구라는 뜻이다. 중국이 원산지로 고려시대 이전에 승려들이 중국에서 씨를 가져와 절 근처에 심어 전국의 사찰에는 은행나무가 많다. 이 은행나무는 한 그루여서 그런지 은행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 방학동 은행나무 -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은 성종의 아들로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19세의 세자 융이 왕위에 오르니 제 10대 임금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선정을 베풀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모후 폐비윤씨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거기에 관여한 자들도 알아 버렸다. 그후 연산군은 폭군으로서 점차 바뀌어가게 되었다. 연산군은 재위 12년만에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폭정에 대해 몇몇 사람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을 새로운 임금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연산군의 부인 거창신씨(居昌愼氏)는 영의정 거창부원군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 재위 12년만에 폐왕이 되고 연산군으로 강봉되어 강화(江華) 교동(喬桐)에 유배되었다가 그 해에 병사했다. 부인 신씨는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의해 연산군과 함께 폐위되었고 자신의 두 아들 또한 유배지에서 사사(賜死)되는 불우한 일생을 마감한 비운의 여인이다. 연산군묘(사적 제362호)와  거창신씨의 묘역의 아래에는 궁인인 의정궁주조씨(義貞宮主趙氏)의 묘와 연산군의 딸, 사위 구문경(具文景)의 묘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 연산군의 묘역 -

 

10.연산군 - 궁인 및 연산군의 딸과 사위 묘

- 위쪽에 연산군과 부인신씨묘, 그아래 의정궁주조씨(義貞宮主趙氏)묘가 있고,

그 아래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묘가 있다. -

 

연산군 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의공주 묘역이 있다. 정의공주(貞懿公主)는 세종대왕의 둘째딸이다. 죽산 안씨(竹山安氏)의 후손인 양효공 안맹담(安孟聃1415∼1462)과 혼인하여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정의공주(貞懿公主)는 총명하여 후세에 “조선의 작은 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영민(英敏)하여 학문에 재주가 높아 천문(天文) 산수(算數)등의 부분까지 능통하였다 한다. 부군 안맹담은 수명이 길지 못하여 마흔 여덟에 병사하고 정의공주는 안맹담 타계한 후 15년 후인 성종 8년(1477)에 세상을 떠나 안맹담 옆에 묻혔다. 정의공주 묘역은 도봉산 둘레길 왕실묘역길 연산군묘와 가까운 곳에 있다. 한소진작가 쓴 "정의공주"가 지난 3월에 해남출판사에서 출간 되었다.

 

- 세종대왕의 둘째 딸 정의공주 묘와 부마 안맹담의 묘역 -

 

연산군의 묘와 정의공주의 묘를 보면서 도봉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조금은 의아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연산군 묘보다 정의공주의 묘의 봉분이 더 크고 묘역도 넓다는 것이다. 연산군이 폐위가 되어 왕이 아닌 연산군으로 강등이 되었다고는 하나 그 후에 많은 이조의 임금과 관리들은 제도에 묶여 이러한 모순을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된 잘 못을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지금도 관리들은 제도에 묶여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그 제도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류를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 나라의 임금이 된다는 것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고 들 한다. 현제의 대통령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을 이웃집 아저씨처럼 쉽게 대하고 평하고 자기의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사사건건 반대를 하는 행태는 언제가는 누군가가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왕실묘역길' 다음은 '방학동 길'이다. 방학동 길에는 북한산길에 있는 구름전망대처럼 쌍전망대가 높이 솟아있다. 이곳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면 도봉산의 산세가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다. 도봉산의 정상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 그리고 신선대, 주봉, 병풍바위, 칼바위가 도봉산의 아름다운 산세를 그리며 뻗어있는 모습이 장관이며 일품이었다. 다락능선에서 바라보는 도봉산의 모습과는 또 다름모습이 눈 길을 끌고 있었다.

 

도봉산 둘레길은 무수골로 이어지고 있었다. 무수골 2.0km 지점에서 부터는 계속 오르막이 전개되고 있었다. 따끈따끈한 삼복더위에 산길도 아닌 둘레길을 걸으면서 그 오르막 길에서는 많은 땀을 흠뻑 흘리며 올라갔다. 약 1km는 그렇게 힘든 경사길을 올라가야 한다. 도봉산 둘레길에서 가장 힘든 코스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내려가면 무수골이다. 무수골을 내려가는 곳에 계곡길이 조금 질퍽 거렸다.

 

도봉산 둘레길은 계속 모래가 섞인 흙 길이어서 걷는데 무리가 없는 아주 편한 길이다. 무수골에 이르니 개울물에는 피서객들이 개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물은 많고 깨끗하였다. 그리고 윗 무수골로 이어지는 길에는 집들이 있고 그 길에는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도 뜸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오르막 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렇게 지루하게 길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려서니 '도봉산 옛길'이 이어졌다.

 

'도봉산 옛길'은 보문능선길로 연결이 되었다. 도봉사와 능원사가 나오고 도봉산 등산 입구에 이르니 등산객을 많이 만날수 있었다. 둘레길은 다시 광륜사쪽으로 올라가라고 되어있다. 아마도 다락원 길로 연결이 되어있는 것 같았다. 둘레길 오솔길을 걸을 때는 그래도 불평없이 걸어왔는데, 갑자기 넓은 길로 나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 땀으로 전신이 젖어있어 조금은 짜증도 나고 더 걷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나는 것 같아서 다음코스는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하산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