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의 고장 상주

-* 상주 갑장산(805.7m) *-

paxlee 2011. 10. 14. 21:42

 

 

 

▶▶ 상주특집 갑장산 805.7m

 

용흥사 앞 주차장~남석문~정상~갑장사~용흥사 계곡~주차장

‘상주’하면 갑장산이지요!

 

취재를 맡은 갑장산이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그간 여기저기서 말은 많이 들었지만 생면부지의 산이라 갑장산에 대해서 잘 아는 동행이 절실했다. 그래서 내려가기 전에 갑장산 전문가 두 명에게 도움을 구했다. 상주의 산에 대해서는 둘째 가라면 섭섭할 전문가인 상주시청 문화체육과 전병순 계장과 몇 해 전 갑장산을 605회나 오른 것이 화제가 되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 MS저축은행 상주지점장 장영기씨. 10월에 있을‘상주 감고을 축제’준비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전 계장은 대신 믿을 만한 다른 이를 소개시켜 준다.

 

장영기씨도 따로 동행을 구해놓았는데, 재밌게도 두 사람이 말한 인물이 일치했다. 상주시 복룡동에서 도이터와 마운틴이큅먼트를 취급하는 아웃도어용품점‘삼백레포츠’를 운영하는 성명(47세)씨.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하고 성실함이 느껴지는 말투, 매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TANNOY 스피커로 세팅된 오디오 세트가 그의 취향과 성품을 짐작케 한다. 삼백산악회 총무이기도 한 그는 고맙게도 산악회 회원 중 세 명을 더 섭외해 두었다.

 

예비군 중대장 출신 인 이병열(60세)씨와 산악회 산행대장 안병철(43세)씨 그리고 홍 일점인 상주다문화센터 한국어강사인 이미숙(39세)씨다. 여기에 장영기씨, 성명씨까지 저마다 갑장산 전문가들인 5명이 동행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하다. 갑장산으로 이동하는 길, 내심 이른 가을을 기대했는데 바람 없이 해만 쨍하다.

 

“후텁지근한 게 날이 무척 덥네요.”

“아직 한 두 주 더 바짝 뜨거워야 합니다. 여름 내내 비만 내려서 농사 다 망치게 생겼거든요. 마지막 더위가 가기 전에 해가 잘 나야 지 그나마 올 농사 기대해 볼만 합니다.” 이병열씨가 늦더위가 오히려 다행이라며 농사 걱정을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만 쏟아 붓던 하늘을 향해 울상을 짓던 농부들에 겐 여름 끝에 찾아온 이 햇살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닐 것이라고 하였다.

 

지천동 솔숲을 지나 도착한 넓은 주차장. 비구니 수행도량인 용흥사와 상주 4장사 중 하나인 갑장사 들머리를 겸하는 이곳은 갑장산을 찾는 이들 대부분이 산행기점과 종점으로 삼는 곳이다. 상주시 종합 관광안내도가 선 주차장은 그러나 평일이고 성수기마저 지나서인지 텅 비었다. 산행코스를 묻자 장영기씨가 용흥사 남쪽 능선을 따라 갑장산에 올랐다가 정상아래 헬기장에서 야영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추천한다.

 

찻집‘귀래정’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자‘정상 3.2km’라 적힌 예쁜 이정표 가 반기고 곧 묵무덤을 지나 솔숲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속절없이 떠나가는 여름을 붙잡으려는가,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귀가 멍해질 지경이다.

 

 

까마귀도 아는 갑장사 공양시간

 

울창한 숲에 덮인 등산로, 그러나 숨이 턱턱 막혀오는 더위는 어쩔 수가 없다. 대형배낭 가득 야영채비로 패킹해 온 안병철씨와 성명씨는 벌써 땀범벅이 되었다. 전날 밤 약간 과했던 술자리 때문인지 안병철씨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가다 쉬기를 반복하며 1시간 30분 남짓 오르자 왼쪽으로 조망이 트였다. “이 기자님, 저기 허연 바위가 상사바위입니다. 그 옆에 기와건물이 갑장사고요. 갑장사 위에 잘록한 부분에 오늘 야영할 헬기장이 있습니다.

 

헬기장 바로 위로 정자가 보이죠?” 갑장산 마니아인 장영기씨가 조목조목 짚어가며 친절한 설명 을 한다. 헬기장까지는 아직 길이 멀다. 벌써 오후 6시를 훌쩍 넘겼는데 크고 작은 봉우리 두셋은 더 넘어야 한단다. 잠시 뒤 닿은 전 망바위, 습해진 공기 때문인지 갑장산 북쪽을 가로지르며 뻗은 청원-상주간고속국도와 상주시가지 풍광이 희미하다. 그 너머로 노악산 실루엣이 하늘금을 그렸다.

 

“까악- 까악-”머리 위로 까마귀 몇 마리가 나타나더니 갑장사 쪽으로 날아간다.“까마귀도 공양시간 되니까 밥 먹을라고 깍깍거리며 절로 찾아가는 기라. 우리도 후딱 가서 밥 먹자고.”이병열씨 의 말에 모두 웃음보가 터진다. 곧 해가 질 것 같아 모두 걸음을 서두른다. 갑자기 커다란 바위 두 개가 길을 막고 섰다. 남석문이다. 바위사이로 난 재미난 길, 통과해 돌아보니 한쪽 바위가 웅크린 채 잠이 든 양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 잠시 뒤 또 나타나는 거대한 입석 둘. 연이어진 남석문의 두 번째 문이다.

 

두 번째 바위를 지나 3분쯤 갔을까, 주능선 동쪽으로 조망이 트 이며 낙동면 풍광이 한눈에 든다. 해질녘이라 아쉽긴 하지만 발아 래 용포리 다랑논이며 복우산(508.7m) 너머 김천의 산들이 펼친 아름다운 산너울이 무더위 속에 힘들게 오른 걸음을 보상해준다. 멀리 낙동면 물량리를 지나는 낙동강도 가늠된다. 고개를 돌리니 정상부가 손에 잡힐 듯 잘 보인다. 그런데 온통 바윗덩이다. 낙동 면 쪽은 아예 깎아 세운 절벽이어서 아찔하기까지 하다. 해가 지고 길도 험해 우리는 주능선을 버리고 갑장사로 이어지는 산허리길로 방향을 튼다.

 

결국 헤드램프를 켜고서야 도착한 헬기장, 생각했던 것보다 넓 고 반듯하다. 성명씨와 안병철씨가 잠시 뚝딱거리더니 어느새 든 든한 타프가 세워지고, 갑장사에서 길어온 물로 저녁준비에 일사 불란하다. “우와~ 산에서 어떻게 이런 걸 다 먹어요? 전 김밥만 먹는 줄 알 았어요. 집에서도 해먹기 힘든 요린데.... 아까부터 저리 큰 배낭에 대체 뭐가 들었나 했어요. 완전 대박 진수성찬입니다.”

 

충북 괴산이 고향으로 상주총각을 만나 대간을 넘어 시집와 이 제는 상주사람이 된 이미숙씨가 성명, 안병철씨가 떡하니 차린 저 녁상을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한다. 오늘의 메인요리는 통돼지수 육과 묵은김치. 야생버섯에 조예가 깊은 안병철씨가 아까 올라오면서 딴 갖가지 버섯까지 더해지며 갑 장산에서의 늦여름 행복한 밤이 깊어 간다.

 

2시간. 헬기장에서 비박을 했던 성명, 안병철, 그리고 나, 세 명이 밤새 잠 잤던 시간을 합친 것이다. 이병열, 장영기, 이미숙씨가 밤 9시쯤에 하산을 한 후 우리는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앵~”한두 마리씩 시간차를 두고 달려드는 산모기 때문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낭을 덮어쓰면 습하고 더워서 견딜 수가 없고, 걷으면 모기가 달려들고. 건초더미를 모아 모깃 불도 지폈지만 효과는 그 때 뿐이었다.

 

 

갑장산은 상주의 으뜸 전망대

 

“텐트냐 타프냐 한참을 고민했는데, 순간의 선택이 하룻밤을 고생 시켰네요.”

밤을 꼬박 지새우고 날이 희끄무레할 즈음에야 잠시 눈을 붙였 던 성명씨가 침낭 지퍼를 열며 아침인사를 한다. 기대했던 일출은 물 건너 간 듯, 하늘이 잔뜩 흐리다. 혹시나 싶어 카메라를 들고 서 둘러 정상에 오른다. 서북쪽의 상산(694m)만이 낮게 깔린 잿빛 구 름 위로 얼굴을 내밀었을 뿐, 낙동면 쪽이나 상주시내는 여백처럼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아침을 먹고 다시 올랐을 때도 갑장산 자락을 벗어난 풍광은 여전히 오리무중. 맑은 날에는 구미 금오산까지 오롯이 조망된다는 데, 처음 찾아온 이방인에게 갑장산은 낯선 채를 한다. 그러나 낯가 림하는 그 자태 또한 신비롭고 아름다워 정상에서 한참을 머물며 조망의 감흥에 빠진다. 갑장산정상부는 품이그리 넓지않다. 남북으로 발달한 능선의 동쪽은‘나 옹 바 위 ’, ‘ 백 길 바 위 ’라 이 름 이 붙 은 깎 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서쪽은 기울어 평탄하지가 못하기 때문. 그곳에 산불감시초소와 통신용 철탑, 삼 각점과 1989년에 상주산악회가 세운 정상표지석이 있다,

 

2000년 마지막 날에 상주시가 세운 갑장산 안내석, 전병순 계장이 주도해 만든 돌 탑 등이 있다.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각 시설물이 산의 크기에 반하지 않게 덩치를 줄여 풍경이 적당하다. 낙동면 조망터로는 이곳이 단연 최고인 듯, 위치가 기가 막히다. 상주시가지 쪽으로는 나뭇 가지들로 막히는데, 대신 정상과 헬기장 사이에 팔각정이 있다.

 

용흥사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하산코 스는 헬기장에서 문필봉, 상산을 거쳐 능선을 따라 내려서거나 갑 장사에서 골짜기를 따라 내려서는 두 가지다. 날이 조금만 더 맑다 면 당연히 능선길인데, 오늘은 갑장사를 둘러보고 계곡길을 따르 는 게 더 나을 것이라며 상사바위로 길을 안내하는 성명씨. 아찔한 벼랑을 이룬 상사바위 위로 아름드리 낙락장송이 숲을 이뤘다. 애틋한 사연이 전하는 상사바위보다 솔숲이 무척 맘에 들어 그 기운을 느껴보려 괜히 어슬렁거린다.

 

갑장사 풍광에 놀라다

 

갑장사는 상사바위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져 있다. 여말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창건했 다는 설이 있는 갑장사는 최근 불에 탄 후 1988년에 다시 지었다. 그래 고졸한 맛이 없지 만 대신 반듯하고 정갈하다. 위압적이지 않은 높이의 축대에 산의 크기와 조화롭게 들 어선 법당과 너무 넓어 휑하지도 또 너무 좁아 답답하지도 않는 마당, 그 한곳에 자리한 어른과 키를 잴 만한 높이의 정겨운 3층 석탑이 보기에 무척 편안하다.

 

마당과 법당 그 리고 요사채가 만나는 곳에 꽃을 활짝 피운 배롱나무 한 그루가 지루할 것도 같은 산사의 풍광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활짝 핀 키 작은 꽃들도 보기 좋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라고 읊조렸던 나옹의 법맥이 지금도 이어지는 것인가, 여간 절간다운 게 아니다.

 

갑장산 이름과 관련해 전해오는 설 두 가지가 전한다. 고려 충렬왕이 승장사에 들렀다가 갑장산 을 우 러 르 고 는 “ 영 남 의 으 뜸 산 ”이라며 명명 했다는 것과 이곳 갑 장 사로 인해 갑 장 산 이되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지 갑장사는 위치나 규모나 꾸밈이 갑장산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마당을 가로지른 안병철씨가 배낭을 벗더니 탑 앞에서 정성스레 합장을 한다. 잠시 쉰 후 요사채 부엌에 들러 수통을 채우고 하산을 시작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통나무 계단길을 따라 내려서는 걸음, 나옹선사의 선시(禪詩)가 귓전을 맴돈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글 사진|이승태 기자 / 사람과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