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의 고장 상주

한 많은 세상

paxlee 2015. 12. 27. 12:39

 

한 많은 세상

 

지난 24일 날 문자 메세지로 '부고'를 한통을 받았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옛날에는 부고를 쓰서 프린트를 해서 보냈는데, 이제 전화보다 편리한 문자로 알릴수 있으니 너무 간편해 졌다. 4촌 동생이 보낸 부고는 "부고! 김성훈의 모친 이O순님이 오늘(4월24일) 새벽, 별세 하셨습니다. 빈소: 삼육서울병원, 장례식장: 구 서울위생병원 B205호, 이O탁 올림" 이었다. 언젠가 뇌경색으로 위생병원에 입원 가료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다녀온 기억이 있는데, 그 후 동생에게 누나 소식을 전해 듣기로는 치매까지 와서 사람을 알아보지을 못한다는 소식을 받고도 그 후에 한 번 더 찾아가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죄스럽기만 하다.

 

한 많은 삶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가 마지막 가는 코스이니 누구나 가야할 그 길을 누가 먼저가고 늦게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는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삶의 의미를 깨닭게 되는 우리의 삶이 아닌가 한다. 고인은 참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다. 농촌에서 태어나 이웃마을로 시집을 가서 한 가정을 이루면서 아들 형제와 막내로 딸, 삼남매를 낳아 모두 건강하게 공부를 시켜 훌륭하게 키웠다. 그들 부부는 농촌에서 뼈 빠지게 일을 하면서 아들과 딸은 모두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두 결혼을 시켰다. 고인의 삶은 그 만큼 힘들고 고통도 따랐겠지만, 그들은 불평없이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일이라 묵묵히 일만 하면서 살았다.

 

성훈이 아빠는 너무 고달픈 삶의 여운인지 수년전에 먼저 가족의 곁을 떠났다. 오랜 병고 끝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의 곁을 떠나간 성훈이 엄마는 삶을 너무 고지식하게 살아서 더 힘들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 가면서 가꾸고 유지하는 것이 본인의 의무이자 책임이지만, 그 힘든 농촌 생활로 자식을 남 부럽지 않게 키워주었기에 병든 여생을 그래도 병원에서 보낼수 있었다는 것에 위안을 드리고 싶다. 그 분은 친척 모임에도 나오지 않으며 자기 일에 바쁘게 살아온 길에 본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하였겠지만, 친척과 이웃과의 소통에 원활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참 힘들게 사는 구나 하는 연민을 느끼기도 하였다.

 

저녁에 퇴근을 하여 빈소에 찾아갔을 때 두 아들과 딸의 문상객이 넓은 빈소를 체우고 있는 모습과 빈소앞에 쌓여있는 조화가 넘처나고 있어 고인의 삶이 아무리 고단하였다고 하나 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은 그분에 대한 한을 조금은 풀어주는 것 같아 편히 보낼수 있구나 생각했다. 고인의 빈소앞에 걸린 고인의 사진에는 그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욕심부리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앞만 보고 살아온 고인의 한 많았던 세상이 나의 가슴까지 아프게 하고 있지만, 그것이 그의 삶이고 그의 인생이었기에 그의 행복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본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야하는 마지막 길에서 생각하게 하는 삶은 누구는 성공을 하고, 누구는 실패를 하였다고 말들을 하지만, 그것은 오직 이 세상의 삶의 과정일 뿐이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을 일깨워주는 메세지로 받아들이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되어 주기도 한다. 성공하였다고 과시해서도 않되지만 성공후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 다음의 과정을 옳바르게 밟아가야 한다, 아무리 많은 부를 누려도 마지막 가는 길에는 내가 가지고 누리던 모든것을 이곳에 두고 빈 손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역시 인생은 더불어 공감하면서 공생해야 한다는 진리의 문이 바로 보일 때 인생을 참으로 바르게 살았구나 하고 느낄수 있을 것이다.

 

동생이 장지를 다녀와서 보내준 문자에 "올해 75세로 누워 계시던 지난 8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26일 5시 30분경 발인제를 지내고 성남영생원에서 화장하여 화서면 가족묘지에 먼저가신 부군 고 김O호님 옆에서 영면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병이 나기 전에는 일을 하느라 온 몸이 힘드시더니 밭에서 일하던 중 찾아온 뇌경색이 긴 시간동안 고인을 힘들게하고 병 간호하느라 늘 노심초사하던 딸 김O자에게 이제야 자유를 주고 한마리 나비처럼 저 세상으로 훨훨 그렇게 떠나 갔습니다. 여러모로 보살펴주신 형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O탁올림" 이 문자를 받고 "그래 수고가 많았다. 참으로 한 많은 세상이었다. 그것이 누나의 삶이고 행복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마지막 가는 날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명복을 빈다." 이렇게 하여 4촌 형제자매 중 또 한 분이 내 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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