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의 고장 상주

고향 형님의 명복을 빌며

paxlee 2015. 12. 27. 12:51

 

고향 형(兪石濬)님의 명복을 빌며


지난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마음이 들떠있는 오후에 고향 향우회 친구 2명으로부터 고향 형님이 별세를 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80평생을 고향을 지켜주신 형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가슴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었다. 형님과 함께한 지난 세월의 흔적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순간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먼저 찾아뵙던 형님을 이제는 뵈울수 없다는 것이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친구는 내일 오전에 내려간다고 하면서 같이 갈수있는지 물었다. 나는 약속된일이 있어 오후 5시쯤에나 출발하겠다고 전했다.


25일 오후 4:45분 쯤에 일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향했다. 5:30분 상주행 직행버스를 타고 고향을 향해 떠났다. 동서울에는 고속버스가 없단다. 남부터미널보다 동서울이 가까워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이곳에서 출발 하였다. 상주까지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하니, 저녁 8시 도착하게 된다. 버스는 28승이라 고속버스와 다르지 않았다. 마음도 무겁고 착잡하여 피로가 밀려와 우선 눈을 붙였다. 얼마를 잦는지 창밖을 내다보니 문경을 지나고 있었다. 잠시 점촌에 들렸다가 상주에 도착하니 정확하게 8시였다.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먼저 내려간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절골에 같이 내려온 몇명이 함께 있다고 알려주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형님의 여동생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형님의 빈소앞에 서니 가슴에 쌓아온 형님에 대한 의지가 무너지는 슬픔이 밀려왔다. 형님의 영정을 바라보니 형님께서 배풀어주신 가르침과 배려가 더 없이 크게 느껴졌다. 형님을 보내는 마지막 예를 드리고 형님의 아들과 손자들과 애도의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여동생이 차려온 저녁을 들면서 형님의 병세를 문의하니 형님께서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시고 계셨으나 별로 아프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라가셨다는 설명을 들었다. 아들과 딸들이 형님의 장례에 찾아오신 많은 손님들을 열심히 맞고 있었다.


조금 지나니 한동네 같이 살았던 형님의 외가의 형님과 친구의 아들, 딸, 그리고 며느리 등이 들어왔다. 그간의 안부를 나누었다. 친구의 셋째 아들이 친구와 똑 같이 닮아 친구를 보는 것같아 먼저간 그 친구가 새삼 그리움으로 밀려오기도 하였다. 오늘 빈소에 영정이 걸린 형님깨서는 1990년 고향 향우회를 창립하여 1992년 향우회의 모태가 된 마을회관 건립에도 버팀목이 되어주신 형님이신데, 고향을 끝까지 지켜주신 형님은 6.25동란시 군에 가신 외에는 고향에서 묵묵히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항상 따뜻하게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해 주시고, 삶에 고향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하시던 형님의 애정어린 덕담이 가슴을 녹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형님이 배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내일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도리인줄 알면서도 삶의 현실에 쫓겨 9시 반쯤에 작별인사를 하고 택시를 콜해 상주터미널에 도착하여 10시 마지막 심야버스로 서울을 향했다. 이렇게 한사람 한사람 돌아올수 없는 길을 떠나는 지인들을 보낼 때마다. 그 분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나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나도 언젠가는 그 길을 가야 하겠지만, 슬프하거나, 누구를 탓하지 않고 담담하게 삶과 죽음을 받아 들이자고 마음으로 다짐을 해 본다. 다음날 0시 20분 경에 동서울 터미널에 내리니 눈발이 날린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하늘에서 눈 발이 점점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삼백의 고장 상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30일 둘째날의 여행  (0) 2016.12.03
주왕산국립공원 주왕계곡  (0) 2016.12.01
어머니, 우리 어머니  (0) 2015.12.27
한 많은 세상  (0) 2015.12.27
여름휴가는 고향에서   (0) 20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