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의 고장 상주

-* 속리산 르포 [4] *-

paxlee 2011. 11. 1. 21:16

 

        [백두대간 대장정 제8구간] 속리산 지명 

 

‘속리’는 높음의 뜻인 ‘수리’
        늘재는 ‘비탈이 길게 늘어진 재’란 의미

‘법주사가 창건된 지 233년만인 784년(신라 선덕왕 5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김제 고을의 금산사(金山寺)로부터 이곳에 이르자, 들판에서 밭갈이하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았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회심이 저리 존엄한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하며 머리를 깎고 진표율사를 따라 이 산으로 입산수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때부터 사람들이 ‘속세를 떠난다’는 뜻에서 속리산(俗離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 속리산 능선. 속리(俗離)를 음역된 지명으로 보고, 이를 옛날식 우리 음을 따라 유추해 보면 결국 '수리'가 된다. 속(俗)은 중국 음으로는 '쉬'이고, 우리의 옛음으로는 '수'이니, 속리는 결국 '쉬리', '수리'이거나, 아니면 이에 근사한 어떤 음일 것이다.<사진 허재성 기자>


문헌이나 구전을 통해 전해오는 속리산의 이름 유래다. 속리산은 그 산이름 자체에서 뿐만 아니라 이 산의 여러 봉우리 이름에서도 신앙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이 그러하고, 비로봉(毘盧峰), 관음봉(觀音峰) 등이 그러하다.


‘세속을 떠난 산’의 의미를 가진 속리산


백두대간의 남쪽 줄기는 한반도의 남부 내륙을 활 모양으로 휘어내려 영호남을 구분지어 놓았는데, 이 산줄기 중에는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등 잘 알려진 산들이 많다. 이러한 산들 중 불교적 색채가 유달리 짙은 이름이 속리산이다. 따라서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신앙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나 여겨지게 한다.


속리산우리나라 8경의 하나로, 예로부터 소금강, 또는 제2금강이라고도 불러왔다. 또, 구봉산(九峰山), 지명산(智明山), 미지산(彌智山), 형제산(兄弟山), 자하산(紫霞山), 광명산(光明山), 이지메 등의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속리라는 이름을 보고, 한자 그대로 풀어 ‘세속을 떠나’라는 지명풀이에 머물러야 할까? 세속을 떠난다는 뜻을 한자로 나타낸다면 조어의 관행상 ‘이속(離俗)’이어야 더 옳을 것인데, 왜 ‘이속’이 아닌 ‘속리’가 되었는지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여러 산이름들을 살펴보면서 순 우리말에서 출발한 이름들이 한자로 붙여지는 과정에서 뜻의 혼동을 가져온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특히, 음역(音譯)에서 그러한 경우가 많은데, 큰 산, 신성한 산의 뜻인 ‘감뫼(검뫼)’가 검산(劍山), 감악산(紺岳山)이 된 것이라든지, 밝은 산, 양지쪽 산의 뜻인 ‘(밝달)’이 박달산(朴達山), 백산(白山)으로 된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승려나 풍수가들이 만든 지명 수두룩


무릇 모든 땅이름이 거의 다 그렇지만, 산이름도 처음부터 특별히 어떤 이름이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고, 단순히 그대로 산이나 꼭대기의 뜻인 달, 두리, 술, 수리, 부리, 모로, 모루, 모리, 마루, 마리, 자, 재 등으로 불려왔다. 지금과 같이 어떤 큰 생활 영역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던 오랜 옛날에는 사람들이 자기 집, 자기 마을 주위만 알면 그만이어서, 무슨 산이라는 이름의 필요성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았다.

 

따라서, ‘산’이라는 말 자체가 그대로 이름처럼 사용됐고, 부득이 어느 산을 따로 지칭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큰 산, 작은 산, 앞산, 뒷산, 동산, 남산 식으로 불렀던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불려온 관계로 전국의 수많은 산들이 몇 개의 아주 큰 산, 잘 알려진 명산을 빼놓고는 모두 비슷비슷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같은 산이름이 무척 많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생활권의 확장, 고장과 고장 사이의 교류 왕래에 따라 서로 같거나 비슷한 산이름이 조금씩 구분지어 불려지기 시작했고, 더욱이 지명의 한자화에 따라 같은 산이름을 두고도 표기를 각기 달리하는 방법을 써서 이름의 다양화를 꾀하였다. 그래서, ‘한밝’이 태백(太白), 대박(大朴), 함박(咸朴), 함백(咸白) 등으로 되고, ‘감뫼(검뫼)’가 신산(神山), 가마산(可馬山), 검산(劍山), 웅산(雄山), 흑산(黑山) 등으로 되었다.


순 우리말 산이름을 한자로 바꿔 붙일 때, 우리 조상들은 가급적 뜻이 좋은 한자를 취하였다. 특히, 불교가 성해지고 풍수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산이름을 붙임에 있어 산과 관련이 많은 승려나 풍수지리가들이 산이름을 그러한 쪽으로 이끌어간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속리’를 한자풀이의 차원이 아닌, 우리말의 유추 차원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속리는 ‘수리’의 차음일 듯


한자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에서 쓰고 있지만, 잘 알다시피 그 뜻은 같되, 읽는 법은 나라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天(천)’이란 한자 하나만 보더라도 중국 음으로는 ‘톈’이요, 우리 음으로는 ‘천’이며, 일본 음으로는 ‘덴’인 것이다.


그런데, ‘天’은 우리의 옛 자전에 ‘하늘 텬’하는 식으로 ‘텬’으로 읽은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세 나라가 이 글자를 거의 같은 음으로 읽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한자 발생지가 중국인 점에 비추어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한자의 음이 처음에는 중국 본래의 음에 가까웠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한자로 기록된 삼국시대의 옛 지명을 우리말로 유추해 보면 이 추측은 더욱 굳어진다.


따라서, 음역이 확실한 어느 한 지명을 가지고 우리 본래의 음으로 유추할 때, 지금의 우리식 한자음에 맞추기보다는 음역되었을 당시의 발음 상황을 고려해야 더욱 확실한 우리 본래의 땅이름을 찾아낼 수 있다.


속리(俗離)를 음역된 지명으로 보고, 이를 옛날식 우리 음을 따라 유추해 보면 결국 ‘수리’가 된다. 속(俗)은 중국 음으로는 ‘쉬’이고, 우리의 옛음으로는 ‘수’이니, 속리는 결국 ‘쉬리’, ‘수리’이거나, 아니면 이에 근사한 어떤 음일 것이다.


수리는 꼭대기를 뜻하는 옛말로서, 오늘날의 머리의 정수리도 바로 이 말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수리는 그 원말이 ‘술’일 것이며, 폐음절(閉音節)이 주를 이루었던 원시 언어로까지 올라가면 ‘숟(숫)’일 것이다.


·수리 < 술 < 숟(숫)
·마리 < 말 < 맏
·가리 < 갈(갇, 갓)


그렇다면, 수리의 뿌리말인 ‘숟(숫)’은 원래 어떤 의미를 지녔던 것일까? 이에 대하여 학자층에서는 높음(高)이나 힘셈(强)의 뜻이었으리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지금의 말에 숫놈, 숫소 등의 그 ‘숫’과도 연결지어 볼 만하다.


신라시대의 벼슬로, 지방민에게만 수여한 외위(外位;外職) 11관등 중에 술간(述干)이란 것이 있는데, 여기서의 ‘술’도 높음의 의미로 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간(干)이나 한(汗)은 신라시대 고위직(벼슬) 이름에서 접미사처럼 많이 붙는 음절이다. 따라서 산이름에서 술뫼나 수리뫼처럼 ‘술(수리)’이 들어가 있을 때는 큰 산(大山)의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리를 음역으로 한 산이름에는 수리산(修理山·안양시), 소래산(蘇來山·시흥시), 소리산(所伊山·강원도 이천군 *대동여지도 상의 지명), 소의산(所衣山·가평군), 소라산(所羅山·황해도 평산군) 등이 있다. 차산(車山), 차령(車嶺), 취령(鷲嶺) 등도 모두 ‘수리’를 수레(車)나 수리(鷲)로 보고 한자로 취한 것이다.


늘재는 ‘늘어진 줄기의 산’의 뜻 


▲ 늘재. '늘'은 땅이름에서는 대개 '늘어진'의 의미로 들어간 것이 많은데, 이것이 고개 이름으로 쓰일 때는 느릅재, 느랏재, 늘재 등이 된다.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와 용유리 사이의 늘재라는 고개는 늘티라고도 하는데, 한자로는 유티(楡峙) 또는 어치(於峙)라고 쓴다. ‘늘’은 땅이름에서는 대개 ‘늘어진’의 의미로 들어간 것이 많은데, 이것이 고개 이름으로 쓰일 때는 느릅재, 느랏재, 늘재 등이 된다.


·느릅재 : 동해시 발한동, 춘천시 사북면 고성리 등의 유치(楡峙) / 춘천시 동면 감정리, 원주시 귀래면 운계리, 인제 귀둔리, 괴산 장연면 방곡리,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 등의 유현(楡峴) 


·늘째(늘재, 느럿재, 느릇재) : 경주시 덕동, 정읍시 고부면 용흥리, 문경시 농암면 율수리


·늘티(늘티고개, 눌티재) : 보은군 회남면 판장리, 옥천군 군북면 구건리 등의 판치(板峙) /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 계룡시 계룡면 기산리


위에서 보다시피 늘어짐의 ‘늘’은 한자로 판(板) 또는 유(楡)로 옮겨간 것이 많다. 전국에는 판(板)을 앞음절로 하는 지명이 허다한데, 이것은 대개 늘어지거나 너르다(廣)의 의미를 가진 토박이 이름들이 그 바탕인 것이 많다.


늘다와 넓다는 큰 의미로 보아서는 같은 뜻이기 때문에 판(板) 지명 중에 산 관련에서는 대개가 늘어짐의 뜻으로 보아야 하고, 들 관련에서는 너름(넓음)의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너름과 느러짐은 큰 의미로는 같아  


판교(板橋)라는 지명은 전국에 무척 많다. 서천시의 판교면과 판교리, 성남시 분당구의 판교동, 순천시 서면, 강릉시 사천면 등의 판교리(板橋里) 등이 그성이다. 판교의 앞글자를 한자 뜻 그대로 풀면 널빤지가 되겠지만, 땅이름에서 널빤지라는 뜻이 그렇게 많이 들어갈 까닭이 없다. 즉, 판교를 널빤지로 놓은 다리로 무조건 푸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성남시의 판교옛날에 너들 또는 너드리(너더리)라고 불리던 곳이다. 다리(橋)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지명이며, 단지 너른 들의 의미일 뿐인 것이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늘’을 ‘널’로 발음하는 경향이 많으므로 ‘늘’ 관련 땅이름들이 한자로 옮아간 것 중에는 광(廣) 자가 취해진 것이 많다.


서울 한강의 섬 중에는 넓다는 뜻이 들어간 이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의도다. 여의도전에는 딴 이름으로도 불렸다.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이름은 잉화도(仍火島)다. 그러나, 잉화도는 밤섬과 여의도를 하나의 섬으로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밤섬과 여의도는 한강 물이 높지 않을 때에는 서로 붙기 때문이다.


동국여지비고에는 나의도(羅衣島)로 나와 있고, 대동지지에는 여의도(汝矣島)로 나와 있다. 이렇게 여러 이름을 가졌지만, 그 뜻은 모두 너른 벌의 섬이란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너벌섬‘이 원이름일 것이다. 나의주의 ‘나‘는 ‘너‘의 소리빌기, 의(衣)는 ‘벌‘을 취한 한자 표기로 보인다. 옷의 옛말이 ’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羅衣)는 너른 벌의 뜻인 ‘나벌‘ 또는 ‘너벌‘의 표기로 보인다.


잉화도(仍火島)에서 잉(仍)도 ‘너‘ 또는 ‘나‘의 옮김일 것이다. 이 잉(仍)은 ‘니‘로도 읽어 왔는데, 이 글자는 예부터 땅이름에서 ‘너‘, ‘니‘ 등의 소리빌기로 많이 써 온 글자이다. 잉화의 화(火)는 ’불‘로, ‘벌‘과 음이 근사하니, 잉화도는 결국 ‘너벌섬(니벌섬)‘의 한자 표기라 여겨진다.


따라서, 여의도, 잉화도, 나의주는 모두 ‘너벌섬‘의 다른 표기로 보이는데, 항간에 떠도는 여의도 이름풀이와는 거리가 멀다. 즉, 여의도를 쓸모없던 땅이라고 해서 ’너나 가질 섬‘의 뜻에서 나왔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한낱 얘기 좋아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근거 없는 말이다.


‘늘다’나 ‘너르다’와 관련한 산지(산줄기나 고개) 지명에서는 한자로 광(廣) 자가 들어간 것을 그리 많이 볼 수 없다. 더러 보이는 광현(廣峴)이란 지명은 대개 ‘넉고개’나 ‘늦고개’가 그 바탕인 것으로 보아 이는 고개의 폭이 넓어서라기보다 비탈이 길게 늘어져서 붙여진 것일 것이다. 


산지 지명에서는 ‘늘다’의 ‘늘’의 뿌리말 같은 인상을 주는 느릅나무 유(楡) 자나 ‘늘’의 취음으로 적합한 어조사 어(於) 같은 한자가 들어간 것이 많다. 따라서, 백두대간 상에 있는 상주시의 늘재(유치, 楡峙)도 늘어진 고개의 뜻을 가지고 있음이 거의 확실하다.

 

- 글 /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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