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한 자리에서 치루어진 결혼식과 회갑연이

paxlee 2017. 1. 20. 15:16



결혼식과 회갑연의 축시


이 세상에는

경사로운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만,

지금 이 시각

남해의 푸른 섬 수국에서 배풀어지는

이런 흥성스러운 잔치는

다시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과 사람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맺어지는

아름다운 가연이 참으로 많습니다 만,

지금 이 시각에

남해의 보석 수국에서 맺어지는

이런 사랑의 가연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허영자 시인이 결혼식에서 읽은 축시이다.]



그는 "결혼은 가장 큰 약속이다" 이렇게 정의를 하고, 결혼은 선택이다. 한 사람을 선택하기에는 세상에 여자가

너무 많다. 너무 많은 선택의 자유가 나를 부자유스럽게 했다. 결혼은 용기다. 그는 자신의 결단을 평생 후회 안

할 용기도 없는 겁쟁이었다. 결혼은 책임이다. 책임을 무책임하게 지기 싫은 나는 깍쟁이었다. 나에게 결혼을

하라고 권하는 사람에게 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착한 여자를 찾고 있다'는 말로 핑게를 되곤 했다.

나는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도 이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군자요. 이혼을

하는 사람은 영웅이요. 결혼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은 소인이다. 나는 소인이라고 해도 좋았다.


인생에는 3대사(大事)가 있다. 태어나는 일과 죽는 일과 결혼하는 일이다. 출생과 죽음은 누구도 자의로 어쩌지

못한다. 운명에 맡겨진 천사(天事)다. 인생의 시작과 종말이 불수의근이라는 데 인생의 비극이 있다. 그래서 사람

은 태어날 때 울고 죽을 때 울어준다. 오직 결혼만이 각자 자결권을 가졌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결혼

밖에 없다. 결혼은 당사자인 자기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부모가 결정권을 가졌다고 독단적인 부모가 너무 많

다. 부모는 자기 아들(딸)이니 자기가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결혼 당사지는 자기의 사람은 자기가 결정권을 가

졌다고 우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욕심이다.


나는 실로 60년 동안 장고(長考) 했다. 그래서 나의 회갑의 해에 결혼을 했다. 만각(晩覺)이었으나 그것은 득도

(得道)였다. 생각해 보면 결혼은 회갑(回甲)이다. 인생의 새로운 한 바퀴의 시작이다. 나의 결혼식은 동시에 회갑

연을 겸한 것이었다. 내가 결혼식을 하던 해 10월 초하루의 가을 날씨는 맑고 청명했다. 결혼식장은 나의 섬이었

다. 내가 반생을 바쳐 건설한 조그만 왕국 수국(水國)은 바다 한가운데라 세상에서 가장 넓은 결혼식장이었다.

남해의 먼 섬에서 치루어진 나의 결혼식에 대부분 나의 동갑인 그 해에 함께 회갑을 맞는 나의 동창샏들이었다.

이들은 내 결혼식에 화객이었다가 곧이어 합동 회갑연의 주인공이 되었다.


화객은 이들이 거의 모두였다. 그리고 바다, 내 유년의 친구이던 바다가 들러리였다. 또 내가 태어난 섬, 수국섬

의 바로 건너편 산 너머에 있는 내 고향 섬의 면장이 고향 사람들을 대신해 내게 가장 고마운 진객(珍客)으로 와

주었다. 야외 잔디밭의 식장에는 각계의 화환이 단 한 개도 없었다. 대신 설치미술작가 양주혜씨가 선물한 대형 

조각물이 조망대처럼 식단 뒤에 높이 세워지고 기다란 천에 제작한 그림이 풍선을 매단 꽃 아치에서부터 식단 위

까지 주단처럼 깔려 신랑 신부는 이 작품을 꽃길처럼 즈려 밟으며 입장했다. 우리의 딸 수국(水國)은 아빠 엄마의

결혼식 화동(花童)이기 위해 미리 충생해 있었다. 여덟 살이던 수국은 앞장서서 아빠 엄마의 앞길에 꽃을 뿌렸다.

 

주례는 나의 대학 동기생인 노재봉 전 총리였다. 나는 수십년 전부터 이 절친한 친구에게 하지도 않을 결혼식의

주례를 예약해 놓고 있었다. 친구가 친구 결혼식의 주례를 서는 진경을 다시 보자면 몇 세기를 또 기다려햐 할지

모른다. 신랑 신부 입장할 때 하객으로 온 유명 피아니스트에게 상투적인 웨딩마치나 쳐달라는 것은 결례였다.

신수정 씨는 대신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를 연주하고 있었다. 내 결혼식 날을 택일한 것은 파리에 사는 백건

우.윤정희씨 내외다. 이 부부가 파리에서 결혼식을 하던 날 나는 신랑 신부를 내 차에 태우고 식장에 갔었다.

그 답례삼아 이들이 날을 받아 와 주었고 백건우씨는 라스트 편곡의 <리콜레토> 연주로 축하해 주었다.


가수 김신자씨가 <노래의 날개 위에>를 축가로 불렀다. 우리 딸 수국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로 아빠 엄마 대

신 하객에게 인사했다. 이것은 파리에서 출생할 때 내가 산실을 방문했던 백.윤씨 부부의 따님 진희 양이 바이올

리니스트가 되어 따라와서 교습시킨 것이다. "젊은 시절에 나는 결혼이란 철없는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

습니다. 그것이 철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60년이 결렸습니다." 이 날의 주인공 노랑(老娘)은 이렇게 인

사말을 했다. 결혼식에 이어 바로 신랑(老娘)의 축하객으로 참석한 친구들과의 합동 회갑연이 열렸다.


"이 포도주는 오늘 회갑연을 맞는 여러분들과 나이가 똑 같은 '사토 라피드 로칠드'입니다. 여러분이 나이를 먹어

오는 동안 이 포도주도 나이를 먹어 왔고, 여러분들이 익어 오는 동안 이 포도주도 익어 왔습니다. 회갑을 맞는

술로 회갑을 자축하는 축배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지만 이 포도주는 나이를 먹었

다고 해서 맛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60평생의 인생처럼 풍상에 시달리어 맛이 많이 변해 있을 것입니다. 설령

쓰고 시더라도 이것이 자기 인생의 맛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한병을 조금씩 나누어 마신

포도주는 뜻밖에도 꼭 결혼식을 갓 마친 내 새로운 청춘처럼 건강했다.


이 포도주는 내가 파리에 있을 때 보르도 지방에 있는 사토 피트로 로찰드의 성관(城館)을 직접 찾아가 지배인에

게 특별히 부탁해 사둔 것이었다. 나는 나의 회갑을 그 때 예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갑연이 곧 결혼식일 줄은

몰랐다. 그 술을 마시고 보니 회갑 잔칫날의 결혼식은 60년 묵은 포도주맛 같은 것이었다. 회갑이란 윤회(輪廻)

다. 내 어릴때 신기하게 듣던 유성기 소리가 다시 듣고 싶었다. 노년의 가수 황금심씨를 모시고 갔다. 유성기 속의

<알뜰한 당신>을 육성으로 재생해 축가로 불러주었다. 가수 이동원씨가 김기림 시인의 <길>을 토크송으로 읊었

다. 인생이란 때때로 이렇게 자꾸만 자꾸만 돌아가고 싶은 것, 그러나 나의 결혼식의 회갑은 아직 남은 길의 행진

곡이었다.


하오 3시에 시작한 식은 그 자리에서 여흥으로 이어져 배우 손숙씨의 사회로 으스름한 수은등 아래서 밤 12시가

넘도록 온 섬을 흔들었다. 인간문화재 안선숙씨의 <배사메무초>와 배우 윤석화씨의 <오동추야>로 가을밤을 지

새우고 있었다. 나는 결혼식을 소원성취했다. 철이 너무 늦게 들기가 참으로 다행이었다. 철이 일찍 들었으면 이

런 결혼식은 없었을 것이다. 그 시월 초하루의 가을 날씨는 벽해(碧海)와 더불어 벽옥(璧玉)처럼 푸르렀다. 주례

를 맡았던 노재봉 전 총리는 이 날 결혼식을 이렇게 총평했다. "그림같은 결혼식이었고, 그것은 김성우 자작.주연

의 드라마였다." 나는 평생에 꼭 한 편만 드라마를 출연하고 싶었다. 그것이 결국 자신의 결혼식이었다.

  

[이 글은 김성우씨의 자전적 에세이집' <돌아가는 배>에서 인용한 글이다. 이 책이 최고의 명문장으로 쓰여졌다

고 추천을 해서 읽어 보았다. 이 분의 결혼관은 우리와 달랐다. 그 다른 점을 여기에 인용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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