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삶의글

백수의 일상 - 216. <궁궐의 지붕은 특별하고 아름답다>

paxlee 2021. 7. 8. 09:05

궁궐은 다양한 한옥의 전시장이다.

 

 

궁궐의 전각과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놓은 10신상(神像)을 일러 잡상(雜像)이라 한다.
10신상 이름은 1. 대당사부(三將法師 玄奬), 2. 손행자(孫梧公), 3. 저팔계(猪八戒),
4. 자화상(沙五淨), 5. 이귀박(二鬼朴), 6. 이구룡(二九龍), 7. 마화상(馬畵像), 8. 삼살
보살(三殺菩薩), 9. 천갑산(穿甲山). 10. 나토두(羅土頭)의 상이다.

 

이런 장식은 화재와 액을 막아준다는 벽사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궁궐 성문과 같은
격식이 있는 건물의 경우에 3개, 5개, 7개, 9개 등의 홀수로 사용되었다.

 

덕수궁 중화전에는 잡상 10개, 창덕궁 인정전에는 잡상 9개, 경복궁 근정전에는 잡상 7개.
창경궁 명정전에는 잡상이 5개이고, 경복궁 경회루에는 잡상이 11개로 제일많다. 지금은
궁궐건축의 미(美)를 드러내는 하나의 장식기와로 여져지고 있다.

 

 

궁궐과 한옥건물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지붕이다 궁궐에는 대부분 기와지붕이지만 간혹 초가

지붕도 있다. 지붕은 그 모양에 따라 "팔작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모임지붕"으로 나뉜다.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에는

 

팔작지붕은 궁궐의 대표적으로 근정전 지붕으로 한식(韓式) 가옥의 지붕 구조의 하나로, 합각(合閣)지붕,
팔작집이라고도 한다. 지붕 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고 처마끝은 우진각
지붕과 같다. 맞배지붕과 함께 한식 가옥에 가장 많이 쓰는 지붕의 형태이다.

 

우진각지붕은 광화문이 대표적이다. 옆지붕면이 삼각형 모양을 하여, 그 꼭지점이 용마루 끝에 닿은 형태로
서 내림마루와 추녀마루가 하나의 선을 이루어 용마루 끝에서 추녀로 비스듬히 이어진다.

 

궁궐에 나무와 숲이 없다면 매말라 보인다. 궁궐은 숲 속에 존재한다.

 

궁궐의 한옥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지붕의 모양과 그곳에 다양한 장식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식 건물과 비교해 보면, 무엇이 다른가 뚜렸하게 보인다.

 

 

궁궐에는 여러 건물이 있는데, 크기와 격에 따라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루(樓), 정(亭)’

으로 구분한다. ‘전,당,합,각,재,헌,루,정’은 품격이 높은 것에서 낮은 것으로 가는 순서이며 건물들의 신분과 

위계 질서 라고 할 수 있다.

 

전(殿) 가장 경식이 높고 규모도 큰 여러 건물들 중 으뜸인 건물이다. 왕, 왕비 또는 상왕 대비, 왕대비등 궐

안의 전(殿) 가장 경식이 높고 규모도 큰 여러 건물들 중 으뜸인 건물이다. 왕, 왕비 또는 상왕 대비, 왕대비등 궐

안의 웃어른이 사용하는 건물에 붙는다. 예)근정전/강령전/교태전/자경전 등이다. 전(殿)에 비해 규모는

비슷하나 격은 한단계 낮은 건물이다. 전은 공식적 성격을 띈다면, 당은 좀더 사적인 건물에 쓰이며

전데 딸린부속건물이거나 부속공간의 중심건물을 부르는 말이다. 예)양화당/희정당/명륜당 등

 

모두 그런 것은 아니나 전(殿)과 당(堂)의 부속건물이나 혹은 그것을 보위하는 건물이다. 양정합/ 일신합/

덕성합/ 규장각/ 동십/ 자각/ 곤령합 등, 모두 왕실의 주요인물보다는 왕실가족이나 궁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물에 붙여지는데 재(齋)는 주로 일상적 주거용으로, 헌(軒)은 공무적 기능을

가진경우가 많다. 예)낙선재/집옥재/영춘헌/정관헌 등이 있다.

 

원두막처럼 마루를 지면으로부터 높이 띄워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원활하도록 만든 건물로 휴식과 유희를

주목적으로 하는 건물이다. 예)경회루, 광한루, 용무루 등, 흔히 정자이며, 휴식이나 연회공간으로 활용된다.

누(樓)와 사용의 목적은 비슷하나 정(亭)은 규모가 작고 개인적인데 비해, 누(樓)는 건물이 크고 공공성을

가지며 사적인 행사보다는 공적인 행사를 위한 시설이다. 예)향원정/청의정/상양정 등이 있다.


궁궐건축의 특징은 뒤로는 산(북악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물(한강)이 흐르는 배산임수, 궁궐을 바라보며 왼

쪽에는 사직단, 오른쪽에는 종묘가 있는 좌묘우사를 지켰으며, 왕실의 존엄성과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서 대

규모로 화려하게 건축되었다.

 

조선 궁궐의 모든 건축물은 일제의 침략으로 원인은 알수없으나 모든 궁궐이 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

건축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의도적으로 한국의 역사를 지우기 위해 방화를 한 것으로 예상

되는 점이 많다는데 있다. 그리고 궁궐의 모든 문화재를 일본을 옮겨 갔다는 사실이

그것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라고 추정하게 한다.

 

일본의 야만인에 가까운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보드라도 그들의 만행은 인간이 행한 가장 저급한

망나니의 행동이었다. 과거를 숨기고 있는 일본은 오늘까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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